Lotto 1st prize is the easiest RAW novel - chapter 175
반면 정주임의 키보드 타자치는 소리만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초침은 계속 흘렀고,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다들 퇴근하시죠.”
일단은 모두 퇴근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괜한 일에 연루돼서 퇴근 시간까지 놓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들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멀뚱히 나를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퇴근을 해요.”
오과장이 말했다.
“그래도, 지금 시간이 늦었잖아.”
“괜찮습니다. 대표님 혼자 두고 퇴근할 수 없죠.”
“맞아요. 우리 회사 일이잖아요?”
“맞습니다. 대표님 옆에서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사원들이 저마다 소리를 냈다.
고마웠다.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경찰을 부를까요?”
오과장이 말문을 열었다.
“경찰?”
“막말로 저 새끼들이 우리 회사 앞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치.”
“경찰이 오면 해결해 줄 수도 있죠.”
경찰을 부를 생각은 나도 했었다.
그런데 불러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경찰이 와서 해산시켜주면? 또 찾아오지 않을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당한다라…”
“맡겨만 주시면 제가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대표님.”
현준이가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깡패야?”
“…”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일단 기다려 봐.”
마음 같으면 혼란 스킬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고 스킬을 남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김대표.”
“네. 부장님.”
“일단은 저쪽 대표들하고 만나서 대화는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기다려보시죠.”
“크흠.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같이 좀 알자.”
“생각보다는 행동을 좀 보여주려고요.”
“무슨 행동?”
최부장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현재 직원들 중에 정주임만이 컴퓨터 앞에 앉아 연신 업무를 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너무 덥고 짜증 나잖습니까.”
“그래서?”
“열은 열로써 다스리는 법이죠.”
열은 열로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의 뜻을 최부장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내 얼굴을 바라보며 씩 미소를 짓는 정주임만 이해할 것 같았다.
그녀의 키보드 소리가 더 빨라지고 있었다.
* * *
애라씨에게 전화가 왔다.
광고 촬영은 무사히 잘 끝났다고 한다. 현재 스튜디오는 모두 철수하고 뒤풀이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내게 참석 여부를 물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회식을 가겠나.
“애라씨.”
“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혹시 가편집본은 언제쯤 완성될까요?”
“가편집본이요? 왜요? 못미더우세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가편집이야 진즉에 완성됐죠.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몇 가지 수정 보완해야 될 부분이 많긴 한데, 대표님이 보시고 의견 보내주세요.”
“네.”
애라씨에게 가편집본을 메일로 받은 뒤 직원들과 함께 광고 영상을 검토했다.
이 시국에 광고라니,
최부장이 영 못미더운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광고는 잘 뽑혔다.
“와…정말 괜찮은데요? 이거 광고 나가면 사람들 문의 전화 엄청나게 빗발치겠는데요. 중간착취부터 시작해서 휴먼매니저가 대체 무슨 회사냐고 크크크.”
“그러니까. 잘 뽑혔네요.”
그래픽 부분은 더 손봐야겠지만, 지금 당장 광고를 틀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한 퀼리티였다.
“부장님, 저희 빌딩 옥상의 옥외광고 있지 않습니까.”
“옥외광고?”
“지금 틀죠.”
“뭐?”
“마침 광고도 비었겠다.”
“불난 집에 부채질할 생각인가?”
“………..”
최부장이 아까부터 예민한 상태였다.
“무슨 문제 있나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야. 저 인간들 이성 잃으면 자네 어떻게 감당하려 그래?”
“걱정 마시죠.”
“참…”
하긴, 최부장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의 성질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과거 직장 동료이며 사장이었다.
어쩌면 가장 불편한 위치에 있을 사람은 최부장이겠지.
“부장님…”
“….”
“저희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물러설 생각도 없고 합의볼 일도 없습니다. 저 믿고 따라와 주시죠.”
“알았다.”
“오과장.”
“네. 대표님.”
“광고 영상 옥외광고로 틀자.”
“네.”
도일 빌딩 옥상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광고 영상이 송출됐다.
경비원이 해고를 당하는 장면과 동시에 그의 실제 월급과 중간착취로 부당하게 떼인 금액이 표현됐고,
물류센터 근무자가 부상을 당해 절뚝거리며 홀로 집으로 돌아갈 때, 그의 실제 월급과 떼인 금액을 표시했다.
그 외, 건설, 조선소, 청소부, IT 직원, 콜센터, 공장, 등 각자 부당한 일을 겪은 장면에서 월급과 공제된 금액을 표기했다.
영상 막바지에는 한수아가 등장하여 해당 영상을 설명하고 중간착취에 관하여 고발한다.
그리고 휴먼매니저 회사 로고와 함께 광고는 끝난다.
반응은 역시 뜨거웠다.
시청자 반응이 궁금하긴 했는데, 현재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열렬하게 뜨겁고 분노에 휩싸이는 것으로 봐서는 광고는 아주 잘 뽑힌 것 같았다.
-야이 개새끼들아 광고꺼!
-부숴버리기 전에 광고 끄라고!
-휴먼매니저는 개뿔, 양아치 새끼들!
그들의 욕설이 내게는 긍정적 반응으로 들렸다
열기가 더해질수록 주위 시선들을 끌기에 적합했다.
조순형 기자를 불렀다.
나의 중학교 동창이자 유일한 기자 인맥이었다.
이 파국에 대해서 전화로 설명했고, 조순형 기자가 한걸음에 달려 와줬다.
그를 만난 건 옥상이었다.
옥상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보던 조순형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 찍은 광고라고?”
“어. 잘 뽑혔지?”
“이야, 이거 만만치 않겠다.”
“예상했던 일이야. 별로 대수롭지 않아.”
“그러니까, 이 상황을 기사로 써달라는 거지?”
“흔히 있는 일은 아니잖아?”
“…”
“하청 노동자들 시위는 흔하지만, 하청 회사가 밥그릇 문제로 시위한다? 충분히 기삿거리가 될 것 같은데. 안 그래?”
“음…그렇지, 흔한 경우는 아니긴 하지.”
“최대한 자극적으로 기사 뽑아줘.”
“예를 들어?”
“저 인간들이 지키고자 하는 밥그릇이 뭐겠어?”
“간접 고용과 중간착취에 대한 구조를 써라? 최대한 자극적으로?”
“가능할까?”
“가능은 하겠지…”
“그런데?”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래? 벌써부터 달려드는 인간들이 많은데 말이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너도 참…고집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믿는다. 친구야. 잘 뽑아줘.”
조순형 기자를 돌려보낸 뒤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들이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다들 회의 한번 하시죠.”
회의실에 들어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하여 설명했다.
이열치열.
열은 열기로 물리치는 법.
힘은 힘으로 맞서 싸우는 뜻이다.
그리고 정주임의 업무가 모두 끝났다.
그가 대량의 프린터 물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뭐지?”
최부장이 정주임을 보며 물었다.
“우리 회사 앞에 있는 업체 대표들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대표님께서 업체 계약 다 먹을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뭘 먹는다고?”
“저 개새끼들 사업을 다 먹는다고요.”
“…!”
계획은 간단하고 단순했다.
머리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의 사업을 다 먹어버리는 것.
그게 최선이었다.
“가능할까요?”
그들을 보며 물었다.
“대표님이 원하신다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지혜 팀장이 별안간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부장 모가지만 쳐내라.
회의 내용은 간단했다.
현재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타 회사 대표들의 계약을 모조리 흡수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흡수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지혜 팀장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이지혜 팀장님?”
“네.”
“늦어도 내일 저녁입니다. 가능할까요?”
“일단 해보겠습니다.”
반면, 최부장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는 회의 내내 스마트폰을 만지며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회의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화장실을 수시로 왔다 갔다 했으며, 연신 집중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대단히 불안한 모습이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듯 보였고, 수상하리만큼 말이 없었다.
최부장은 위기 앞에서 매번 강했고 냉정했다.
그런데 현재의 최부장은 이리저리 떠도는 부초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다고 봅니다.”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준비가 끝났다면…”
“이제 대화를 할 차례겠죠.”
“아…”
“회의는 내일 아침에 시작될 겁니다. 일단 다들 퇴근하시고,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사원들을 모두 퇴근시켜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대표님은요?”
정주임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퇴근들 해. 어차피 최부장님이 계실 거니까.”
직원들이 최부장을 바라봤다.
최부장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퇴근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믿겠습니다. 부장님.”
“얼른 들어들 가.”
직원들이 하나둘씩 퇴근할 때 최부장만이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부장님?”
“어…김대표…”
최부장과 사무실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부장님답지 않습니다.”
“나 답지 않다라…”
“무슨 일 있으신 거죠?”
“일이라기 보단, 마음이 복잡한 거지.”
“…”
“김대표 자네하고의 인연도 있지만, 지금 회사 앞에 상주하고 있는 천사장은 반평생 함께 사업했던 양반이다.”
“…”
“이렇게 얼굴을 마주할 줄은 누가 알았겠나.”
“괜히, 죄송합니다. 부장님 마음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김대표 잘못이 아니지. 순전히 내가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한 게 문제였지.”
“마무리라뇨?”
“워킹휴먼을 관뒀을 당시, 천사장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었거든.”
“아…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최부장님이 워킹휴먼과 잘 마무리됐다고 하셔서, 그저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죠.”
“흐흐, 심각한 것은 아니고, 어쨌든 서로 얼굴 마주하면 감정 상할 일이지. 신경 쓰지 말어라.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
“혹시 무슨 일인지…”
“뒤통수.”
“네?”
최부장의 입에서 별안간 뒤통수라는 말이 나왔다.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내게는 천사장의 앞 통수이었지만, 천사장입 장에서는 뒤통수 세게 맞은 격이지.”
“아…”
“김대표.”
“네. 부장님.”
“회사 밖에 상주하고 있는 인간들 아마 천사장이 끌고 왔을 거다.”
“…”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만약 내가 휴먼매니저에 없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발생되진 않았겠지..”
“아닙니다. 그건 제가 광고를 찍어서…”
“광고? 김대표, 단지 광고 때문에? 파견법 생긴 이후로 20년이 넘었어. 중간착복?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
“아…”
“광고나 기사 수백 개를 찍어봐야, 법이 제정되질 않은 이상 변하는 건 없다. 김대표.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나. 광고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
“그저, 광고가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이고, 이번 기회에 지네들 눈엣가시인 휴먼매니저를 어떻게든 매장시켜 버리려 들겠지. 그 중심에 내가 있을 것이고.”
“…”
“일이 어떻게 발전되는 간에, 내가 관두면 다 해결될 일일 수도 있다는 거다.”
“그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이번 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그럴 순 없습니다.”
“…”
“우리 사원들이 부장님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원래 저희가 예전부터 사람 마음 불편하게 만드는 게 특기였잖아요?”
“…”
“이번에도 제대로 불편하게 만들어 보죠.”
그때
-쾅!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무실 내부로 오과장과 정주임, 현준이가 갑자기 들어왔다.
마치 밖에서 엿듣고 있는 꼴이었다.
“안 들어가고 뭐 해?”
“생각해보니 제가 사무실에 짐을 놓고 와서요. 그리고 지금 집에 들어가면 내일 못 일어 날 것 같아서, 그냥 사무실에서 자려고요.”
“뭐?”
“그러려니 하십쇼. 사무실이 편하니까.”
그때 현준이와 정주임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
“대표님하고 부장님 혼자 두기엔 싸이코 같은 인간들이 너무 많잖아요? 혹시라도 해가 될 것 같아서, 저희가 지키려고요.”
“하이고, 든든하네. 든든해.”
“그러니까 얼른 푹 주무십쇼.”
다음 날 아침.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회사 대표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인력사무소 대표부터, 굿타임즈, 천사장, 황부장, 박찬혁, 하나같이 나와 앙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천사장이 그러했다.
과거 워킹휴먼에 첫 입사했을 때 나를 입사시켜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적대적인 관계에서 만나게 됐다.
아쉽다는 말이 맞을까.
휴먼매니저 직원들과 그들이 회의실 책상 하나를 두고 마주했다.
황부장과 최부장은 서로를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 워킹휴먼을 첫 창립했을 당시 멤버였고 이제 서로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황부장이 출소 후 다시 워킹휴먼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천사장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물류센터 근로자들의 임금을 횡령했지만, 천사장은 왜 그를 또다시 불러들였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던 걸까.
그리고 인간쓰레기 박찬혁.
그는 우리 직원들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박찬혁이 어슬렁거리며 직원들에게 다가가 불필요한 안부를 물었다.
“아이고, 고현준? 오랜만이네? 잘 지냈고?”
“어깨에 손 치우시죠. 부숴버리기 전에.”
“무서워라. 싹수는 여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