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27
226화.
케일이 떠나는 날이 되었다.
물론 로운 왕국 측 인원이 모두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케일을 비롯한 일부의 마법사, 기사, 다크엘프들은 오늘 떠난다.
그리고 제국 측도 일부 떠나는 날이었다.
“…사령관.”
덥석.
또 제 두 손을 잡는 발렌티노 왕세자의 징글징글한 행동에 케일은 간신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래, 그래.”
발렌티노는 찡한 표정으로 케일에게 다정히 미소를 그려 보이고는, 감동은 지우고 다정한 미소만 유지한 채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봤다.
“후텐 공작, 그동안 정말 고마웠네.”
“아닙니다, 저하. 모고르와 카로 왕국의 사이는 돈독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돈독은 얼어 죽을.
케일은 후텐 공작의 말에 속으로 코웃음을 날리면서도 발렌티노의 변함없이 잘 정돈된 표정에 감탄했다.
‘연기 하나는 참 잘하네.’
케일은 어제 왕세자 알베르가 케일과의 영상통신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발렌티노? 인간적인 면이 강해. 솔직히 말하면 꽤 좋은 사람이야.’
발렌티노는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알았으며, 슬플 때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제 사람과 왕국을 아끼고, 그러면서도 두려움과 겁도 아는, 지극히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그게 알베르가 발렌티노에게 내린 평가였다.
‘하지만 도박과 경매의 나라가 카로 왕국이다. 그곳에서 왕세자 자리에 올라선 사람이야.’
그러나 감성과 이성은 철저히 다른 법이다.
‘계산은 누구보다 빠르지. 그래서 지금 우리 로운의 말을 믿든 안 믿든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우리 손을 놓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알베르는 묘한 표정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로운 왕국에 꽤 감동한 것 같더군.’
‘…혹시 저하께 순수한 얼굴로 감동을 설명하였습니까?’
알베르와 케일은 서로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랑 안 맞아.’
‘저도요.’
오랜만에 같은 말을 내뱉은 두 사람이었다.
지난 대화를 떠올리는 케일에게 후텐 공작이 다가왔다.
왕세자는 제국과 로운 왕국 각 인사들에게 친히 고마움을 전하며 한 명씩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 틈에 후텐 공작은 케일의 바로 앞에 섰다.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군.”
“저도 다음에 꼭 뵙기를 바랍니다, 공작님.”
꼭. 케일은 아주 꼭 보고 싶었다.
“그래. 내 살면서 케일 사령관만큼 강대한 방패의 힘을 지닌 이는 처음 보았네. 그런 힘을 지닌 자를 알아둘 수 있는 게 영광이지.”
“소드 마스터이신 공작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쑥스럽군요.”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후텐 공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자네와 로운 왕국을 보며 많이 반성했네.”
진중한 미소를 드리운 얼굴. 후텐 공작의 진중한 눈빛이 케일의 주위를 훑었다.
“…힘을 기르려면 이리 길러야 하는데 말이야.”
조용히, 그리고 아주 강하게.
후텐 공작은 뒷말을 삼켰다. 그의 눈동자는 다시 케일을 향했다.
‘붉은 벼락.’
아직 그 힘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암’의 마법진을 파괴할 정도의 그 힘. 과연 누구의 힘일까?
제국도, 암도, 불굴 연합의 힘도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 로운 왕국의 힘일 터.
그리고 로운 왕국 힘의 중심에 선 자.
“하하, 공작님. 전쟁만 끝나면 필요 없을 힘입니다.”
케일 헤니투스를 보며 공작은 짐짓 장난스레 몸을 떨었다.
“로운이 무서워서 말이야.”
“무서우실 일이 무엇 있습니까? 제국과 로운은 돈독한 사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 증표가 저한테 있습니다만?”
케일은 재킷 안에 달린 작은 훈장을 내보였다.
모고르 제국 훈장.
그는 이를 꽤나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후텐 공작을 응시했다.
후텐 공작은 미소를 그렸다.
케일 헤니투스.
그는 로운 왕국 힘의 중심에 선 자이고, 동시에 제국과 로운의 끈이 되어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로운에 대한 조사는 천천히 하면 된다. 이 케일 헤니투스를 살살 다루면서.
“하하하, 그렇지. 자네에게서 모고르 제국 훈장을 보니 참으로 기뻐. 이제 그만 나는 가야겠어. 다음에 또 보지.”
“네, 공작님. 다음에 꼭 뵙죠.”
‘꼭’을 내뱉는 케일의 표정엔 정말로 제국에 또 오고 싶어 하는 눈빛이 보였다. 후텐 공작은 조금의 안도와 비웃음을 속으로 삼키며 먼저 텔레포트 진을 통해 떠났다.
케일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약한 인간, 근데 우리 제국 가면 그땐 다 부수러 가는 거 아닌가?
케일은 라온의 말을 가벼이 흘렸다.
그리고 제 입꼬리를 매만졌다.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역시 진심이 담긴 말을 하면 표정도 자연스러운 법.
모고르 제국에 꼭 갈 것이다.
-인간! 무슨 생각 하나? 부수는 생각 하나?
케일은 라온의 이 말도 모른 척했고, 곧 그도 텔레포트 진 위에 올라섰다.
최한, 메리, 타샤, 힐스만.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하는 그들을 보며 케일은 진동하는 마법진의 움직임에 눈을 감았다.
***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로운 왕국에 도착해 있었다.
“형님.”
“오라버니!”
로운 왕국의 동북부 최전방. 헤니투스.
그곳에서 케일은 눈을 떴다.
그는 홀로 돌아왔다.
그런 그를 맞이한 이들은 가족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인간! 나도 지금 왔다! 우리 집 1호에 왔다!
물론 라온도 함께였다.
텔레포트 진에서 내려서는 케일에게로 데르트 백작이 다가왔다. 그는 아들의 얼굴과 몸 곳곳을 살펴보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왔다.”
그 말만 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바이올란 백작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케일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고개를 끄덕이곤 뒤돌아섰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음식 준비를 해뒀으니, 얼른 가서 먹자구나.”
그러고는 먼저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곁을 데르트 백작이 함께했다.
케일은 편안한 기분을 느끼며 뒤를 따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곁으로 차남 바센과 막내 릴리가 다가왔다.
“…형님.”
“기념품은 못 샀다.”
케일은 대충 답하며 얼른 가자고 턱짓했다. 그 모습에 바센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수도에서 카로 왕국의 대승을 이루고 돌아온 로운 왕국 사람들을 위한 성대한 축하 퍼레이드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왜 혼자 여기로 오셨습니까?”
케일을 제외한 로운 왕국 사람들은 카로 왕국에서 로운의 수도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로운 왕국 측에서는 그런 그들을 위한 환영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바센은 그 자리에 누구보다도 자신의 형님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님은 그 자리를 거절하고 홀로 먼저 이곳에 돌아왔다고 들었다.
그런 형님의 행동에 대해 부모님은 따로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바센은, 릴리는 궁금했다. 케일이 영광의 자리를 피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냐면 둘에게 케일은 자랑거리였으니까.
바센은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난 그런 것과 안 맞아. 이겼으면 됐지, 그 이상은 필요 없다.”
또 그런 퍼레이드 현장에 가면 사람들이 방패를 흔드는 그 끔찍한 광경을 봐야 한다.
케일은 혼자 빠져나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자신이 빠져야 최한이나 메리, 다크엘프 타샤에게 관심이 집중되지 않겠나?
그 정도 눈치는 있다.
그리고 자신이 없는 퍼레이드 행렬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힐스만과 타샤, 왕세자 저하가 있으니 잘 처리하겠지.’
부단장 힐스만과 왕국 사정에 빠삭한 다크엘프 타샤, 그리고 일 하나는 잘하는 왕세자 알베르. 그 셋이 있으니 연기 못하는 최한이나 착하기만 한 메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최한과 메리도 알겠다고 했고.’
반발할 줄 알았던 최한과 메리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특히 최한은 케일이 지시와 조언을 건넬 때마다 착실히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아, 최한. 괜히 귀족들이 말 붙여도 모른 척해. 물론 왕세자 저하가 알아서 다 해줄 것이지만.’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케일은 순하게 웃는 최한의 얼굴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때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한, 왜 그렇게 웃나?’
음?
최한에게 왜 저런 말을 하지?
케일은 자신이 꼭 사기 치려고 할 때마다 라온이 내뱉던 말을 최한에게 내뱉자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순하게 웃는 최한이 보였다. 그 옆에 차분하게 서서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검은 로브 메리도 보였다.
‘하하하! 공자님, 걱정 마세요. 최한 씨와 우리 메리는 잘 해낼 겁니다. 공자님 생각보다 두 사람은 강하거든요.’
‘…강한 건 나도 잘 안다만?’
‘하하하하!
케일은 뭐가 그리 웃긴지 타샤가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영문을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골칫거리, 힐스만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지막 충고를 건넸다.
‘…넌 또 방패 공자, 그딴 소리 하지 마.’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공자님!’
케일은 힐스만의 호탕하지만 찝찝하게 들리는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중얼거렸다.
“…집이 제일 편하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케일은 진리를 되새겼고, 그 말을 들은 동생들은 서로를 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형님의, 오라버니의 크다고만 생각했던 등이 오늘따라 두 사람에겐 유독 작아 보였다.
이를 알 리 없는 케일은 식탁 위의 음식들을 실컷 맛있게 먹었다. 물론 가끔씩 바이올란 백작 부인의 질문을 들어야 했다.
“케일, 카로 왕국에서 밥은 제대로 주니?”
“네, 줍니다.”
“케일, 잠은 잘 자니?”
“음. 뭐, 보통 잘 잡니다.”
“그렇구나. 케일, 누가 너 작위 없다고 무시하더니?”
“작위로 무시한 건 아니지만, 태양신 대신관이요.”
“…그렇구나.”
케일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답하며, 오랜만에 헤니투스가 요리사표 육즙 가득한 소시지를 먹으면서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데르트 백작은 바이올란 부인의 차가운 눈빛을 보다가, 그깟 소시지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들을 보며 포크를 내려놓고 쓰린 속을 찬물로 채워야 했다.
***
“우리 집이다! 오랜만이다!”
라온이 신이 나 케일을 지나쳐, 먼저 짱돌 저택이 보이는 지하 공동 안으로 날아가 버렸다.
“쯧쯧, 꼬맹이가 힘만 세져가지고.”
에르하벤이 혀를 차며 케일의 곁에서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둠의 숲 지하에 위치한 짱돌 저택. 그곳에 오랜만에 돌아온 케일은 저 멀리서 성자성녀 남매, 미친 신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라온을 보며 슬쩍 제 옆의 에르하벤을 쳐다봤다.
“왜?”
시선을 느낀 고룡이 되묻자, 케일은 입을 열었다.
“저번에 만난 암의 용 혼혈이 저를 용 혼혈이라고 착각하던데요.”
착각을 해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용 혼혈이라니. 케일은 용이냐고 묻던 놈의 기상천외한 생각의 흐름에 기가 차면서도 조금 찝찝했다.
그래서 에르하벤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에르하벤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네가?”
뭔가 상당히 우습지만 참는다는 표정이었다. 케일은 차마 웃지 못하고 애써 참는 고룡의 저 입꼬리를 보자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때, 에르하벤이 케일보다 앞서 나아가며 툭 던지듯 말했다.
“네 품의 그것이 있는데, 무슨 용 혼혈이야.”
네 품.
그 말에 케일은 멈칫햇다.
케일의 안주머니 속 아공간 주머니에는 왕관이 있었다. 용의 피를 좋아한다는 그 왕관.
에르하벤의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박복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어. 쓸데없는 것들만 주워와.”
케일은 할 말이 없었다.
동시에 감탄했다.
역시 고룡은 괜히 고룡이 아니구나.
그는 라온도 알아차리지 못한 왕관의 기운을 알아차린 에르하벤에게 새삼 감탄했다.
그렇기에 흔들리는 돌기둥 앞에 섰을 때, 케일은 안심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미친 신관 케이지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5분의 2 정도 사슬이 부서졌어요.”
“하지만 케이지 씨의 죽음의 신 힘이 대신 묶고 있군요.”
“뭐, 이 정도는 신이 해줘야죠.”
케일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케이지에게서 시선을 돌려 돌기둥을 쳐다봤다.
짱돌이 봉인해 두었다는 통로. 십만 년은 버틴다더니.
‘어딘가 맛이 간 힘 같더니, 믿을 게 못 되는군.’
십만 년은 무슨. 지금 당장 부서질 것 같았다.
끼이익, 끼익.
지금도 쇠사슬들이 부딪치며 당장에라도 돌기둥이 쓰러질 것 같았다. 돌기둥이 들썩거릴 때마다 그 아래의 통로 모습이 조금씩 보였다.
기이한 보라색이었다.
상당히 들어가기 싫은 통로 색이었다. 케일은 고개를 돌려 에르하벤을 바라봤고, 눈이 마주친 에르하벤은 입을 열었다.
“이건 상대 쪽에서 부숴서 그런 것 같구나. 반동이야.”
“상대 쪽이요? 동대륙?”
“그래. 동대륙의 누가 건드리나 보군.”
케일의 표정이 살짝 안 좋아졌다.
누가 이 돌기둥을 건드는 걸까?
힘이 있는 자라면 이 돌기둥의 봉인만 봐도 건들지 않을 텐데.
‘암’의 짓일까?
케일은 제 품의 왕관까지 알아차린 위대한 고룡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에르하벤 님,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에르하벤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긴. 걱정 마라.”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얼굴이 상당히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세월의 연륜이 보이는 듯했다. 케일은 새삼 든든함을 느끼며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고, 에르하벤은 씨익 웃으며 단호히 말했다.
“우리가 먼저 부수면 돼.”
“오, 금 용아! 부수자!”
케일의 든든함이 부서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