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
24화.
대신 검은 용은 터덜터덜 통로로 기어들어갔다. 기가 찬 표정으로 케일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거친 바람을 뚫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던 길이었어.”
“쯧.”
케일의 혀 차는 소리에 검은 용의 등이 들썩거렸으나, 케일은 그 모습을 신경쓰고 있을 틈이 없었다. 동굴의 바람은 3시간을 주기로 그 강도가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를 반복한다. 지금은 바람의 세기가 약해지는 시점이었다. 물론 중심으로 갈수록 강해지겠지만.
휘이이잉.
“무시무시하네.”
약하다기에는 지금도 충분히 바람은 강했다. 그리고 이 강한 바람을 뚫고 150년을 산 노인은 돌탑에 다가갔다고 했다.
케일은 시선을 다시 동굴의 중심으로 돌렸다. 거대한 지하 공간. 소용돌이 중심에는 어떠한 바람도 불지 않는 듯, 반쯤 쌓인 돌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돌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저 돌들을 도로 쌓아야 하는데.’
저기까지 가는 게 문제지, 저기서 하는 건 쉬웟다.
케일은 자신의 앞을 지키는 방패와 방패로부터 뻗어져나와 자신을 감싼 날개를 한 번 훑어본 후, 걸음을 내딛었다.
탕, 탕. 거친 바람이 방패와 부딪쳤다. 투명한 은빛 방패임에도 그 소리는 실제 존재하는 것의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통로쪽에서 등 돌리고 있던 검은 용이 슬쩍 뒤돌아 케일을 바라봤다.
“…약한데.”
용이 본 케일은 방패와 날개로 막고 있었지만 한발 한발 꽤 힘겹게 내딛고 있었다. 방패와 날개로 막지 못한 바람들이 그의 옷을 펄럭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방패 아래로 세어들어온 바람이 그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케일은 한발 한발 내딛었다. 그리고 용의 눈에 보였다.
케일은 웃고 있었다.
저 거센 바람의 소용돌이에 비하면 하찮은, 같이 다니는 고양이들보다도 약하디 약한, 같이 다니는 일행들 중에서 가장 약한 인간이 그 바람을 뚫으며 웃고 있었다.
용은 저런 은빛 방패를 본 적이 없었다. 저런 날개도 본 적이 없었다. 용은 자신의 날개를 바라봤다. 이것과는 달랐다. 굉장히 아름다웠다. 저 힘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용은 화려하고 성스러운 방패보다 웃고 있는 케일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당사자인 케일은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할만 해. 편하네.’
바람 때문에 걸음이 조금 힘겹고 느려졌지만, 이 정도면 아주 편했다. 비크로스가 제 아버지 론에게 검술을 배우겠다고 죽을 뻔 했던 것에 비하면 이 얼마나 손 쉽게 힘을 얻는 것인가.
역시 무슨 이득이든 고생 안하고 편하게 얻는 게 최고라는 것을 케일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사용할 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가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부서졌을 때, 그 때 잠깐 무리가 오나 지금 정도는 부서질 강도는 아니었다.
‘밀려나지.’
바람에 방패는 앞으로 못 나가면 밀려날뿐 부서지지 않는다. 사실 케일은 몇번이고 밀려날 것을 예상하고 왔다. 그래서 처음에 방패의 강도를 줄이고 그 크기를 확대했다. 그 뒤 밀려나면 차츰 차츰 방패의 크기를 줄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방패가 일을 잘 했다. 그 사실에 케일은 조금 꺼림칙함이 들었으나, 이내 소용돌이 중심까지 반 정도 왔을 때, 딴 생각들은 지웠다.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때 쯤,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노인의 진중한 목소리라 책에서는 표현하였다.
케일은 그 목소리를 기다렸다. 그 때를 기점으로 소용돌이는 강해졌으니까.
– 나는 후회한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 크흡. 나는 후회한다.
울먹이는 노인이다.
“쯧쯧.”
케일은 혀를 찼다. 이 놈의 고대의 힘은 정상인 게 없다. 테일러는 이걸 왜 진중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녀석의 생각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케일은 혀를 차던 것을 멈추고 잠시 멈춰섰다.
– 익숙한 힘을 지닌 자여, 나는 당신이 이 힘을 가지지 않기를 바란다.
“음?”
익숙한 힘을 지닌 자라고? 케일의 귀를 사로잡은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바람이 더욱더 거세게 지하 공동을 휩쓸었다.
탕, 탕, 탕. 투명한 방패에 바람들이 더욱 더 세게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하지만 케일의 표정은 그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었다. 선명한 적발이 거센 바람에 휘날렸다.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말하는 건가?’
익숙한 힘이라는 단어에 케일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 방패 뿐이었다. 테일러에게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 힘을, 이 힘의 주인을 아는 건가? 빠르게 케일의 머릿속 생각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케일은 앞으로 향했다. 이제 바람은 밀려내는 정도를 넘어섰다.
– 나는 동료들을 배신한 것과 다름 없다. 나는 못난 놈이었다! 크흡, 나 혼자 살아남아 나는 늙어갔다. 이 얼마나 추하단 말인가!
한 발 한 발 꽤 힘겹게 내딛는 케일에게 노인의 목소리는 이따금씩 들려왔다.
– 나는 늘 바랐다. 모두가 살아나기를. 하지만 내 바람은 이미 이루어질 수 없는 것. 비통하고 비통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탑을 완성할 수 없었다.
“거 참, 시끄럽네.”
케일은 노인의 한탄어린 목소리가 걸리적거렸다. 진중하기는커녕 죽을 동 말 동 한 목소리로 우는 소리를 냈다. 케일이 딱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맛 평론하는 사람이 나았다.
그는 뒤로 살짝 밀려나려는 몸에 중심을 잡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한발을 내딛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재생의 힘은 쓸모가 없다. 나를 지키는 것만 가능할 뿐. 무엇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는 버러지다!
케일은 머릿속을 울리는 한탄을 무시했다. 그에게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가장 중요했다. 버러지면 어떤가. 살아남으면 장땡이다.
이제 다섯 걸음. 바람의 중심이 멀지 않았다.
쿵. 쿵. 쿵.
가볍게 부딪치던 바람의 소리가 강해졌다. 마치 인간의 주먹이 방패를 향해 내리치는 것 같았다.
‘부서지겠는데.’
케일은 이 강도라면 부서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려나는 것 이상이 가능할 듯 했다. 그는 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한가지를 깨달았다.
– 바람이 날카로운 검날처럼 내 몸을 베어가도 나는 죽지 않았다.
고대의 힘 주인들은 참 말이 많다는 점이었다.
케일은 곧바로 몸을 웅크리며 방패의 크기를 줄였다. 쿵. 쿵. 작아진 방패는 면적이 줄었지만 그 강도가 올라갔다. 더 강한 바람의 힘을 막아내고 있었다.
케일은 투명한 방패에 손을 뻗었다. 방패 안쪽의 투명한 손잡이를 잡은 채 케일은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 재생은 저주 받은 힘이다.
두 걸음.
– 내 심장은 늘 뛰었다. 그러나 나는 뛸 수 없었다.
세 걸음.
–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네 걸음.
– 늘 다쳤기에 아픔이 두려웠고 그 아픔의 끝인 죽음은 더 두려웠다.
그리고 마지막.
마지막 다섯 걸음을 케일은 내딛었다.
쏴아아-.
마치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리며 케일은 바람이 없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태풍의 눈. 그 고요한 공간 밖에서는 수많은 바람의 소리들이 휘몰아쳤다. 그 소리와 한 많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난 신념을 버리고 사는 것을 택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노인은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쯧.”
신념이고 나발이고 사는 게 먼저지. 쓸데없는 말이 많은 노인네였다. 케일은 혀를 차며 방패를 다시 심장으로 돌려보냈다. 그를 감싸던 은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반만 쌓인 돌탑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평범한 돌탑이었다. 어느 산 정상에 가면 있을 법한, 그런 대충 돌을 쌓아놓은 모양새였다.
다만 그 돌이 모두 시꺼맸다. 사람 먹는 나무처럼, 고대에서부터 견뎌온 돌은 다른 돌들과는 달랐다. 이 바람처럼 말이다.
“에이.”
미의식을 발휘하려던 케일의 표정이 싱거워졌다. 그는 귀찮음을 한가득 드러낸 채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는 돌들을 주워 돌탑을 마저 쌓아갔다.
탁. 탁. 탁. 돌들이 척척 돌탑들 위에 올려졌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테일러도 이 과정은 아주 수월하게 해냈다. 다만 여기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던 케이지가 죽을 맛이었으리라. 이 공간에서는 모든 고대의 힘이 그러하듯 홀로 들어와 해내야 했다.
“쉽네.”
케일은 마지막 검은 돌을 집어 이를 돌탑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그 순간이었다.
파아앗!
검은 돌들이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그와 동시에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람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어?”
얼빵한 용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며 케일은 바람이 모두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노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 나는 그 놈들과 싸우려 했다. 하지만 나는 아픔에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신을 모시는 자들이 아니었어. 나는 그걸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감금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노인이 하는 말들이 케일의 신경을 건드렸다. 부서지지 않는 방패의 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늘 신을 모시는 자들이라면서 어둠의 숲 놈들이 나한테 준 건 맛없는 거였어.’
촉이 왔다. 쓸데없는 것을 알아버린 것 같은 촉이.
왠지 방금 들은 것을 평생 홀로 알아야 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케일의 미간은 더 깊은 주름을 만들어내었고 노인은 이어 말했다. 그 목소리는 오직 케일의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것으로, 용은 가만히 서 있는 케일을 보며 주춤거렸다.
– 나는 돌을 쌓았네. 시간이 되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행복해지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돌탑을 부쉈어.
–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가다 잡힌 주제에 결국 내 행복을 바라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싫었네.
“후우.”
케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갑갑한 인간이었다. 그는 답답함에 말을 내뱉었다.
“이기적인 게 인간이야.”
잠시 노인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끝났나?’
마지막 대사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케일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크흡. 내 누이도 그런 말을 했었지. 정말 좋은 누이였는데. 누구보다도 듬직한 이였지. 크흡. 우리 누이. 크흐흑!
……운다.
“환장하겠네.”
탁. 탁. 탁. 케일의 신발이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려댔다. 짝다리를 한 케일의 자세는 상당히 불량했다. 하지만 한참을 울던 노인은 고마움을 표했다.
– 익숙한 힘을 지닌 자여. 자네의 그 싸가지 없는 면이 내 형님을 떠올리게 하네. 그런 싸가지 밥 말아 처먹은 듯한 태도가 참 부럽구나.
그리고 마침내 테일러에게 했던 말, 케일이 기다렸던 말이 흘러나왔다.
– 부숴라. 그러면 너는 네 한계를 ‘극복’할 것이다.
씩.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케일의 발이 바로 거침 없이 돌탑을 차버렸다.
탕. 타앙. 탕!
날아간 하얀 돌이 바닥과 벽에 부딪쳤다. 지켜보던 용이 흠칫하며 케일을 이상한 놈처럼 쳐다봤지만 이내 나타난 광경에 용은 탄성을 흘렸다.
“와.”
부서진 돌탑.
그 돌탑 아래에서 하얀 빛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우우웅. 동굴을 울리는 얕은 진동이 케일의 발밑에서 느껴졌다. 그 때, 그 빛이 케일에게로 쏟아져왔다.
케일은 손을 뻗어 그 빛을 잡았다. 그 순간. 파앗! 빛이 케일의 심장으로 화살처럼 쏘아졌다. 케일의 심장을 관통한 빛의 화살은 그대로 그 빛을 퍼트리며 이내 모습을 감췄다.
“후우.”
케일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내 고개를 숙여 상의 안을 살짝 들여다봤다. 가슴에 그려져있던 화려한 방패. 그 방패의 화려한 문양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붉은 심장이 그려졌다.
케일은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몸 안에서 느껴지는 활력이.
이 활력이 방패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다쳐도 일반인보다 몇배는 빠른 재생력을 보일 것이다.
초능력인 방패와는 다른, 그 인간의 타고난 신체 힘이었다. 초능력이 없다고 할 때 그 타고난 재생력이 오죽 강하면 고대의 힘으로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졌겠는가.
케일은 방패를 펼쳤다.
“역시.”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방패의 문양이 심장으로 변해있었다. 다만 붉은 색이 아닌 은빛이었다. 그는 방패를 사라지게 한 후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야.”
그 걸음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장을 쳐다보는 용에게 닿아있었다. 케일은 쪼그리고 앉아 용을 빤히 쳐다봤다. 그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호수에 돌을 던지듯 물어보았다.
“같이 다니고 싶냐?”
“…너는 보호가 필요할 정도로 아주 약하다. 하지만 인간은 싫다.”
용은 그렇게 답하며 점점 몸이 투명해졌다. 투명화 마법을 쓴 것이다. 케일은 그 모습에 콧방귀를 꼈다.
“변덕스러운 놈.”
모른 척 한다면서 물어본 자신도 변덕스러운 인간이었지만 이 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구하려고 뛰쳐나온 놈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케일은 바람도 무엇도 없이, 하얀 돌만 남은 동굴 안을 무심히 쳐다보고는 뒤돌아 동굴 밖으로 향했다. 물론 나올 때도 기어서 나와야 했다. 그는 동굴을 나와 풀 밭에 서며 덩굴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동굴의 입구를 잘 가렸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전 휙 뒤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잔디로 가득한 땅 바닥으로 향해 있있다.
“풀 밟고 서 있는 거 다 보인다.”
마치 네 발로 딛고 서 있는 듯 눌린 풀자국이 네 개 보였다. 그러나 이내 사라졌다. 날아오른 것이리라.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결국 식구가 늘었네.’
깊은 한숨이 케일의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저렇게 투명화해서 계속 따라 다닐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도대체 고위 마법인 투명화 마법은 할 줄 알면서 왜 저리 허술할까. 용이라고 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듯 했다.
산을 내려온 후, 기다리고 있던 최한과 만난 케일은 그의 떨떠름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최한은 케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산에서 구르셨습니까?”
제길.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산발이었고, 돌과 흙바닥을 기어다니느라 옷은 엉망진창이었다. 케일은 최한에게 단호히 말했다.
“어. 굴렀어.”
최한이 안쓰럽게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그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그 날 밤, 케일은 고양이들에게 서신을 하나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마법으로 제작되어 필체를 알아볼 수 없는 편지지.
“몰래 놓아두고 와.”
신관 케이지와 장남 테일러를 위한 새로운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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