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1
300화.
두웅, 두웅-
케일의 몸 안이 요동쳤다.
케일은 몸속에서 커다란 울림이 들려왔다.
심장 위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던 붉은 벼락.
그 벼락이 그의 몸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고대의 힘 중 유일하게 그 문신만이 몸에서 사라져 갔다.
‘흑마법이라.’
‘영웅의 탄생’에서는 흑마법에 대한 설명이 딱 한 문단 나왔다.
태양신 교단에 의해 네크로맨서들이 죽음을 맞이하던 그때 언급된 이야기였다.
케일은 순리를 거스르며 만들어진 존재를 바라봤다.
골렘.
그의 귓가로 모고르 제국 측의 혼란으로 가득 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저자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가장 거대한 골렘도 부쉈는데, 그러면 다른 것들도 저렇게 순식간에 부수는 것 아닙니까?”
귀족과 수뇌부들이 외쳐댈 때, 반대로 병사들은 몸을 움츠러트리고 있었다.
끼이이이- 끼이이-
검은 연기와 소름 돋는 울음소리.
분명 우리 제국에서 만든 강력한 병기가 골렘 같은데, 그 골렘에서 끔찍한 것이 흘러나왔다.
“…저, 저게 뭐란 말이야.”
징그러웠다.
더불어 저것들을 공격하는 이들은 태양신 교단의 신관과 성기사들 같아 보이지 않았던가.
“…뭔가 이상해.”
“그러니까, 이상해.”
보병들이 윗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케일이 그것을 알아채며 눈동자에 이채가 감도는 순간, 황태자 아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텔로나!”
부탑주 메텔로나가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제국의 검과 고대의 성스러운 유물 골렘을 파괴한 저 검사와 새들을 공격하라!”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다시금 수백 개의 마법들이 전장을 향했다.
“하, 하하-”
케일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쓰레기 새끼들.’
최한과 클로페, 백골새들은 지금 골렘 부대와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그쪽을 향해 공격을 한다고?
뻔했다.
‘가리려는구나.’
저 검은 연기와 끔찍한 울음소리를 가리려는 수작이었다.
병사와 귀족들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일 터.
콰아앙! 콰앙!
위퍼 측의 로잘린도 마주 마법을 펼쳤다. 어쩔 수 없었다. 백골새들을 보호해야 하니까.
콰앙! 쾅! 쾅!
검은 연기와 끔찍한 울음소리가 마법들의 폭발과 굉음에 묻혀갔다.
-인간아! 나랑 최한이 골렘 부수고 그 구슬에서 흘러나온 검은 액체를 보았다. 이거 없애야 한다! 그런데 나는 몰라서 못할 것 같다! 금 용 할배 불러야 한다!
그 굉음 사이로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마법을 피해 위로 날아오르는 백골새. 그 위에 올라탄 검은 투구의 검사.
-그리고 최한이 이상했다! 꼭 저 검은 액체에 홀린 것 같았다!
…최한이 이상했다고?
-그런데 저 서른 개 넘는 골렘 구슬을 어떻게 하나? 큰일이다! 누가 다 부수냔 말이다! 모두 구해야 하는데 나는, 나는 위대하지만 아직 덜 배웠다!
케일은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내가 나서야 하나?’
아니, 나서야지.
저걸 남겨둘 순 없다.
없애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지금껏 제국 쪽에서 했던 연기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자신은 렉스 경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다.
그게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다.
더불어 자신이 나서면 로운 왕국도 이 싸움에 끼어들게 된다.
그러나 로운은 더 이상 왕국민들의 피를 보기 싫어했다.
그때였다.
파괴하는 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외에도 저 검은 절망을 정화할 수 있던 존재들이 있었지.
있다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나?
-다크엘프와 네크로맨서.
하!
케일은 기가 찼다.
사람들이 혐오하여 숨어 살아야 했던 다크엘프. 그리고 태양신과 빛 속성 교단들에 의해 멸망해야 했던 네크로맨서들.
-그들도 자연의 일부인 이유지.
하지만 자연은 다크엘프와 네크로맨서를 버린 적이 없었다.
케일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검은 사막, 죽음의 땅. 그곳 지하에서 살아왔던 한 사람.
‘온몸에 핏줄이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픈 와중에 살려면 죽은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 중에 네크로맨서를 택했습니다.’
10살의 메리는 살아남기 위해 네크로맨서를 택했다.
그리고 지금 이 전장 위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선 메리, 그녀가 필요하다.
케일은 생각할수록 자꾸 실소가 흘러나왔다.
-인간, 괜찮나? 너무 화나서 맛이 갔나? 클로페처럼 되면 안 된다!
태양신 교단이 있는 곳에 흑마법이 연금술로 위장해 존재했다고?
코미디가 따로 없어 웃겼다.
두웅. 두웅!
몸 안의 울림이 더욱더 거세졌다.
케일은 몸이 뜨거워졌다.
불꽃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인간! 일단 내가 금 용 할배한테 연락한다!
케일은 라온을 내버려 두었다. 에르하벤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시끄러운 제국 측 주둔지.
케일은 그들과 떨어진 곳에서 왕세자 발렌티노와 함께하며 입을 열었다.
“메리를 데려와.”
케일은 부단장 힐스만의 품속 영상 통신구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공자?
로잘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은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골렘은 일단 부수지 말고 막기만 하세요.”
케일의 눈동자가 황태자와 전장, 마이플성을 빠르게 오갔다.
‘라온이 에르하벤 님과 연락을 끝내면 바로 왕세자 저하께 연락한다.’
그리고 움직인다.
케일은 결정했다.
그때였다.
-인간! 인간!
라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케일은 심장이 철렁했다.
‘에르하벤 님께 일이 생긴 건가?’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 용 할배한테 연락 못 했다!
아, 진짜.
케일의 얼굴이 구겨졌을 때, 라온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인간! 그, 그 영상 통신구로 방금 전에 메시지가 남겨졌다.
메시지?
누구?
-정글이다! 리타나가 보냈다!
정글의 지배자 리타나?
그녀가 왜?
그녀는 현재 정글 전사들을 이끌고 제국 남부와 가까운 정글 구역으로 이동해 있는 상태였다.
케일과 리타나는 위퍼를 돕기로 한 결정을 바꿔, 제국이 위퍼와의 2차전에 패배했을 때 제국 남부를 공격하기로 계획해 둔 상태였다.
더불어 그때 발렌티노 왕세자의 카로 왕국도 움직일 터.
라온이 메시지 내용을 다급하게 읊었다.
-‘공자! 정글이 공격받고 있어요! 정글 7구역을 제국이 공격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케일은 순간 머리가 멍해져 왔다.
정글 7구역.
총 14구역으로 나뉜 정글에서 7구역은 정글의 중심으로 거대한 강이 구역을 가로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대대로 정글의 우두머리, 왕의 궁이 그곳에 있었다.
수도나 다름없었다.
그곳을 제국이 쳤다고?
큰일이었다.
‘지금 7구역에는 전사들도 얼마 없을 텐데! 리타나도 없고!’
빌어먹을!
케일의 눈동자가 황태자에게로 향했다.
분명히 아딘 저 새끼는 알고 움직인 거다.
정글에 리타나도, 전사들도 없다는 걸 알고 움직인 거다.
-그리고 ‘공자, 아무래도 우리 정글 쪽에 스파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보냈다!
케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스파이.
그 말이 떠오르자, 케일은 예전 정글 1구역에 제국이 불을 질렀던 때를 떠올렸다. 그래, 맞다. 그때 그 일을 첩자도 없이, 타국인 제국이 혼자서 벌일 수 없었을 터.
물론, 로운을 포함한 4종족 1연합에 대해서는 아직 제국이 모르는 것으로 보아, 첩자가 수뇌부는 아닐 것이다.
“…안일했어.”
아니, 멍청했다.
“공자님?”
부단장 힐스만이 갑자기 굳은 표정을 짓는 케일을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케일은 들리지 않았다.
‘영웅의 탄생’에서는 툰카 쪽의 스파이는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정글에 1구역 불기둥에 대한 이야기에 첩자는 없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제국이 혼자서 벌인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케일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제국이 정글의 전사들과 마주치지 않고 바로 정글의 중심인 7구역을 공격하지?’
아.
케일은 의문을 품은 순간 답을 떠올렸고, 라온도 그 답을 말해주었다.
리타나는 전했다.
-‘비행 물체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모고르 제국기를 달고 있어요’란다!
제국도 하늘을 지배할 수단이 있었다.
역시, 아딘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대외적으로 위퍼를 치면서 뒤에서는 자신들을 노리는 정글을 과감하게 공격한다.
콰앙! 콰아아앙!
여전히 마법들이 부딪쳤고 그 사이로 백골새와 골렘들이 소모전이나 다름없는 부딪침을 이어가고 있었다.
위퍼는 골렘을 공격하지 않고 그저 막고 버티는 것에만 집중했다.
케일의 명령 때문이리라.
그것을 케일도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케일에게 라온이 마지막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공자, 미안하지만 나는 회군합니다. 정글 7구역을 구해야 해요! 보고한 전사의 말에 따르면 비행 물체 갑판에 등장한 연금술사들이 무언가를 소환하려고 한대요. 불안합니다,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되면 바로 연락할게요!’라고 한다. 인간, 이거 소환하는 거!
라온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거 골렘 같은 거면 어떡하나?
전사들은 방어를 위한 최소한만 있을 것이고, 대부분 일반인들만이 존재할 정글 7구역.
그곳에 골렘이, 혹은 그 검은 절망이 땅을 뒤덮으면 어떻게 될까?
파괴하는 불이 알려주었다.
-검은 절망은 죽은 마나에서 시작되었기에 죽은 마나처럼 살아 있는 존재에게는 독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더 강한 독이지. 그것들은 저주받을 능력을 지녔어.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그 순간, 케일은 입을 열었다.
“족쳐야겠네.”
그를 지켜보던 부단장 힐스만과 왕세자 발렌티노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케일은 이어 말했다.
“불러와.”
케일의 손이 허공에서 한 글자를 적었다.
투욱. 그러고는 저를 부축하는 힐스만을 살짝 밀쳤다.
“공자님? 어? 공자님! 왜 가십니까?”
힐스만이 놀라 케일을 붙잡으려 했지만, 케일은 이를 무시한 채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황태자 아딘에게로. 그가 있는 전장의 중심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정신없는 전장.
“아니, 사령관. 위험해도 쉬지 그러나?”
“사령관님, 쉬세요.”
귀족과 제국군이 전장의 중심으로 향하는 케일을 보며 다들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그러나 케일의 시선은 그들에게 향하지 않은 채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중심에 고고하게 서 있는 황태자 아딘.
홀로 여유로운 그는 고개를 돌리다가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사령관, 무슨 일인가? 몸은 괜찮-”
그가 말한 순간.
케일의 발끝에 바람이 일어났다.
찰나였다.
화살처럼, 그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케일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움켜쥐었다.
“괜찮나- 커헉!”
황태자는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목덜미가 하얀 손에 움켜쥐어졌다. 그 순간 아딘은 깨달았다.
‘아픈 게 아니다!’
하얀 겉모습과 달리 손아귀 힘은 아주 강했다. 황태자는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저를 내려다보는 암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동자의 주인은, 케일은 아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뒤통수가 얼얼하네.”
몇 초도 안 걸린 짧은 시간.
“헛! 사령관!”
“전하!”
“이게 무슨 일이야!”
제국 쪽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황태자 아딘은 케일을 보며 눈꼬리를 휘었다.
“여, 역시, 크윽, 의심을 놓으면 안 된다니까.”
1%의 의심을 버리지 못한 이유.
그리고 웃는 이유.
‘이렇게 과감하게 행동해도 돼?’
로운 왕국이, 케일 헤니투스가 이렇게 행동해도 돼?
그런 그는 저보다 더 환하게 웃는 케일 헤니투스가 보였다.
그는 아딘의 귓가에 속삭였다.
“야, 아딘.”
크윽.
아딘이 밭은 숨을 토해내었을 때, 케일의 목소리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들려왔다.
“네놈은 내가 반드시 죽인다.”
아딘은 멈칫했다.
진심으로 분노에 가득 차 저를 죽이려는 눈빛이었으니까.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에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마법이 안 먹힌다! 이럴 수가, 이게 마법이라고? 금 용 할배 수준이다! 나랑 같다! 인간! 방패!
케일은 곧바로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펼쳤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검은 바람의 화살이 케일에게로 쏘아졌다.
“크윽!”
케일의 몸은 충격으로 황태자를 놓치며 뒤로 튕겨졌다. 방패와 방패에 두른 라온의 실드 덕에 무사했지만, 충격파가 케일을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케일은 웃으며 황태자의 앞에 선 이를 쳐다봤다.
탑주의 제자 혼트.
생기가 없는 몸과 달리 생기가 넘치는 눈동자를 향해 케일은 말했다.
“너 탑주지?”
혼트는 미소를 지었다.
“이놈,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긴가민가했는데 용도 있고.”
이야, 부정 안 하네?
그리고 용도 알아차리셨어요?
마지막 남은 붉은 별은 흑마법사이리라.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 당황한 귀족과 병사들, 저를 공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연금술 부탑주 메텔로나가 외쳤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좋은 순간이었다.
케일을 사로잡고 동시에 케일을, 로운을 건들 기회가 생겼다.
“전하를 공격한 저놈을 잡아라!”
황태자를 건드는 일. 감히 그 목을 잡고 죽이려 했던 자.
참수에 처해져야 마땅한 자였다.
메텔로나는 갑자기 케일이 황태자를 공격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잘못된, 혹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잡아라!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재차 이어진 명령에 군사와 기사, 마법사들이 케일을 에워싸며 공격하려 했다.
흐.
케일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다 망했다.
황태자의 편인 척하며 뒤에서 움직이려던 계획을 제 손으로 망쳤다.
숨어 있어야 했는데.
‘숨기는 얼어 죽을.’
저 골렘과 정글의 골렘을 메리 혼자서 어떻게 없앤단 말인가?
케일 자신도 나서야 했다.
그리고 메리가 나서면 로운과 케일의 관여는 당연한 문제였다.
‘이런 놈들도 대놓고 움직이는데 내가 뭐가 아쉬워 숨는단 말인가.’
그리고 뭘 다 떠나서.
이런 상황을, 골렘의 출처를, 더러운 수작을 봤는데.
“성질나서 못해먹겠네.”
망나니의 본능이 튀어나왔다.
“다 엎어, 엎자고.”
중얼거리는 케일의 눈동자에 빛이 머금어진 순간.
두웅! 둥!
그의 몸 안을 뒤흔들던 요동이 멈췄다.
동시에 메텔로나는 외쳤다.
“뭐 하는가! 저 멍청히 서 있는 놈을 잡아라!”
하지만 그 목소리는 묻혔다.
케일이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태양신 교단 신도들은, 일반 제국민들은 뒤로 물러서라!”
뭐?
다가오던 이들이, 특히 태양신 신도들이 갑작스러운 말에 멈칫했다.
태양신 교단 신도. 제국군 3분의 2 이상이 신도였다.
그들의 눈에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외치는 케일 헤니투스 사령관이 보였다. 그는 제국 훈장을 받던 자리에서 태양신 교리에 빗대어 소감을 말했던 인물.
그가 외쳤다.
“검은 연기와 검은 화살을 보았으리라! 저자들은 죽은 마나를 사용하는 자들이다!”
죽은 마나.
빛 속성 신관과 신도들이 이번엔 멈칫했다.
부탑주와 황태자, 혼트가 케일을 보았다. 생기 넘치는 눈동자의 케일이 힘껏 외쳤다.
“나는 방금 전 전하의 눈동자를 제대로 보았다!”
라온이 말했다.
-인간, 곧 올 거다!
케일은 이어 말했다.
“그는 흑마법에 사로잡혔다!”
흑마법.
그 단어에 부탑주 메텔로나가 멈칫했다.
‘흑마법을 어떻게?’
고대에 사라졌다고 알려져 흑마법의 모습을 본 이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고 판단했다. 설사 용이라고 할지라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왜냐면 용의 수명은 약 천 년이고, 고대는 만 년 전이니까.
“헛소리 마라! 당장 저 헛소리를 하는 자를 잡아라! 저자는 로운의 수족일 뿐 제국 사람이 아니다!”
메텔로나가 외쳤고, 몇몇 기사들이 케일에게 검을 뻗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왔다, 인간!
파아앗!
환한 빛이 전장을 감쌌다.
동시에 텔레포트 진이 케일의 옆에 나타났다.
“어?”
“아!”
기사들의 검이 멈춰졌다.
아까 전, 케일이 허공에 손으로 적은 한 글자.
잭.
성자 잭을 불러와라.
제국의 태양신 교단 신도라면 모두가 아는 그 얼굴.
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얼굴의 남자가 나타났다.
성자와 성녀. 테러 혹은 교황 피살의 범인이라 지목되어 도망쳐 버린 존재.
그러나 제국군은 잭을 보며 입을 열 수 없었다.
사아아아-
빛 무리가 성자 잭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치유가 담긴 신성력이었다.
기사와 병사들의 얕은 상처들이 그저 감싸는 빛무리에 점점 아물어갔다. 그 모습을 본 보병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테러의 범인이라기에는 너무나 순수하면서도 따스한 태양빛의 손길이 담겨 있었다.
챙그랑.
탕.
신도였던 기사들의 검이 멈칫하고, 신도였던 병사들은 무기를 놓았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나아가리라.”
네크로맨서를 처단할 때 태양신 교단이 외쳤던 말.
우리는 빛을 향해 가리라.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 케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당연했다.
지금부터 로운, 위퍼, 정글, 그 밖에도 네크로맨서와 다크엘프까지 무수한 이들이 함께할 테니까.
그저 여러 왕국, 여러 교단, 여러 종족의 모든 인간들이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일 뿐이었다.
네크로맨서와 다크엘프를 억압하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적을 명확히 그려낼 것이다.
그 적은 황태자와 흑마법.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면 새로운 판을 만들면 되는 법.’
새 판으로 싸우면 된다.
케일은 황태자의 목을 공격했다. 그리고 성자가 나타났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될 것이다.
케일은 성자 잭을 바라봤다.
갑작스럽게 불려온 성자 잭은 현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혼트와 하늘의 검은 연기를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케일의 말에 이어 내뱉었다.
“다 함께 이겨내리라.”
그가 지금껏 케일과 함께하며 새로이 배운 세상의 뜻이었다.
그 직후.
삐이이이- 삐이이-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제국군은 고개를 들었다.
가장 큰 백골새가 머리 위에 있었다. 백발 신관이, 투구 검사가 케일과 잭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성기사로 보이는 이들의 새들이 그 주위를 에워쌌다.
마치 성자를 구하러 온 듯한 모습.
그때, 그들은 한 장면을 보았다.
“…비, 빛!”
“저건-!”
제국군의 상처를 감싸던 빛과는 또 다른 빛이 나타났다.
성자 잭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환한 빛.
태양빛처럼 금빛이면서도, 동시에 피를 머금은 듯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붉음이 섞인 빛이었다.
라온은 진심으로 놀라 외쳤다.
-이, 인간아! 너 지금 엄청 강해 보인다!
적금빛이 케일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파괴의 피를 닮은 붉음과 정화의 빛이 뒤섞인 힘.
케일은 파괴하는 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망을 부숴라. 부탁한다.
화려하게 타올랐다가 사라졌다고 알려진, 잊혔던 불꽃이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케일은 백골새 위에 올라타며 외쳤다. 그의 눈동자가 황태자, 혼트와 마주쳤다.
“흑마법으로 만든 골렘을 파괴해라!”
다 때려 부순다.
오랜만에 망나니의 본능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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