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96
395화.
하지만 케일은 줄어드는 시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를 응시하던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하얀 별을 압도적으로 이기려고?”
“네.”
하얗게 질린 얼굴.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선명함을 넘어 번뜩이며 살아 있는 눈빛. 마지막으로 단호한 대답.
알베르는 케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좋고.”
케일은 알베르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다시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인간아,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얼른 저 바구니 안에 사과 파이 먹어라! 쓰러지면 안 된다! 론 할배랑 금 용 할배랑 최한이랑 비크로스랑 착한 메리한테 이를 거다!
들려오는 라온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려 했다.
뒤이어 알베르의 목소리도 이어 들려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얀 별을 압도할- 어?”
하지만 알베르의 목소리는 중간에 멈췄다.
그는 손을 뻗었다.
비틀거리는 케일의 모습이 알베르의 눈동자에 담겼다.
“공자!”
“공자님!”
테이블에서 긴장과 걱정을 담아 바라보던 이들이 모두 벌떡 일어섰다.
-인간아!
라온이 얼른 앞으로 고꾸라지는 케일에게 다가가 머리로 케일의 상체를 받쳤다. 두 앞발도 함께 상체를 받치려 쭉 내밀어졌다.
“야! 너!”
당황한 알베르의 손이 고꾸라지려는 케일의 팔을 붙잡았다.
우우우웅-
동시에 알베르는 빠르게 케일을 감싸는 붉은 마나를 볼 수 있었다. 로잘린의 마나였다.
그녀는 급히 마나를 일으켜 쓰러지려는 케일을 붙잡았다.
“…하 …씨.”
케일의 중얼거림에 급히 다가온 테일러와 케이지, 그리고 케일을 붙잡고 있던 알베르의 표정이 묘해졌다.
케일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인간아! 쓰러지려고 하면서 무슨 그런 표정을 짓고 있냐! 넌 역시 약한 바보 인간이다!
라온은 로잘린의 붉은 마나가 감싸자 케일을 받치고 있던 동글동글한 머리와 통통한 두 앞발을 슬그머니 떼어내며 케일에게 잔소리를 내뱉었다.
고꾸라지며 상체가 훅 접힌 케일이었기에 라온만이 그의 당황한 표정을 제대로 보았다.
‘뭐야?’
그리고 케일도 당황했다.
‘왜 이러지?’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몸을 비틀거리는지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고대의 힘을 쓴 것도 아니고, 능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어지러운 것도, 몸이 뜨거울 정도로 열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토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몸에 힘이 없지?’
케일은 붉은 마나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따라 서서히 몸이 뒤로 눕혀졌다. 붉은 마나는 그를 천천히 소파로 이동시켰다.
상체가 들린 케일은 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그 순간, 딱 눈이 마주친 알베르가 툭 던지듯 말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몰골이 엉망이니. 쯧.”
모두가 케일이 쓰러질 뻔한 일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라온은 보이지 않았지만.
“…저 멀쩡합니다만.”
케일의 말에 알베르의 시선이 로잘린에게로 향했고, 로잘린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겠네요.”
케일의 몸이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베르는 로잘린에게 침대를 가리켰다.
“저기 눕히죠. 소파는 불편할 테니.”
“기꺼이 그 뜻을 따르지요, 저하.”
로잘린이 손짓했고 붉은 마나는 케일을 침대에 눕혔다.
케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왜 이러지?’
그 순간 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하얗게 질렸네. 천하의 케일 헤니투스가 뭐 때문에 겁을 집어먹었지?”
하나는 알베르였고.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 몸이 일순간 놀란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무서운 짱돌이었다.
그들의 말에 케일은 진심으로 놀랐다.
‘겁을 집어먹었다고? 내가?’
누구도 아닌, 내가?
그는 기가 찼다.
오히려 화가 났다면 몰라도, 겁을 집어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케일은 손을 들어 이마에 가져다 댄 순간, 자신의 상태를 인정해야 했다.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고, 이마엔 땀이 흥건했다.
누가 봐도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나는 무엇에 두려움을 느낀 거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케일은 아까 눈앞이 깜깜해졌던 순간 보았던 과거의 기록이 다시 한번 생각났다.
“하!”
케일은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인간아! 왜 웃나? 이상하다! 지금은 웃을 때 아니다! 인간아, 위급해 보인다! 아픈데 웃는다! 진짜로 돌면 안 된다!
라온의 목소리에 케일은 할 말을 잃었다.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6살 검은 용이었다. 물론 덕분에 케일의 마음 상태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당연히 그의 몸 상태도 평소로 서서히 돌아갔다.
그 순간, 케일은 저를 조심스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고개를 돌린 케일은 처음 보는 케이지의 표정이 보였다. 그녀는 답지 않게 우물쭈물거리며 케일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 정말로 심한 말이 안 적혀 있던가요?”
케이지는 다시 한번 케일에게 안 좋은 말이, 심한 말이 적혀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집중됐다.
“음.”
케일은 잠시 고민에 빠졌고, 케이지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물론 혼자 보라고 한 내용이니, 내용까지 여기서 공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자 개인의 문제니까요. 또 공자가 내용을 무시한다고 답하긴 했지만, 그냥 심한 말이 있는지 아닌지만 궁금해서요.”
신관 케이지의 행동이 워낙 조심스러워 케일은 솔직한 심정을 토해내기로 했다.
“음, 별로요?”
케이지는 잠시 주춤했다가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 별로 심하지 않은 말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케일은 고민했다.
‘뭐, 죽음의 신이 따로 말하지 말고 비밀로 하라고 한 적도 없고. 중요한 부분 빼고 그냥 작은 부분은 말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다른 이에게 종이를 보여주면 태운다고 했지만, 그건 보여주지 말란 것이지 말로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케일의 눈동자가 일행에게로 향했다.
그가 누운 침대를 둘러싼 이들의 걱정 어린 눈동자가 보였다.
아마 자신이 다 꽁꽁 숨긴다면 더 걱정할 것 같았다. 그래서 케일은 일부만이라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일단 최정건, 최정수, 그리고 최한과 나의 관계는 말하면 안 되고. 김록수 이야기도 할 수 없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충격적일 만한 내용을 빼니 몇 개 남지 않았고, 케일은 그중 하나를 툭 내뱉었다.
“제가 죽어야 했다고 하던데요.”
순간 왕세자의 침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케일은 죽음의 신이 전했던 말 중 일부를 떠올렸다.
음, 맞아. 저 말이 그나마 덜 충격적이지.
케일은 여기 있는 동료들에게 일부지만 말해주었단 사실에, 조금은 뿌듯함과 소소한 기쁨이 밀려왔다.
케일은 최한과 라온, 그 외의 이들에게도 점점 더 자신의 속마음이나 생각을 전할 생각이었다. 이제 케일은 조금씩 제 머릿속 기록을 다채롭게 바꾸고 싶었다.
‘그래. 그러고 싶네.’
케일은 묘한 감정이 일어나는 제 심장 박동에 미소를 그렸다.
어느새 덜덜 떨리던 손과 얼굴에 맺힌 식은땀이 사라졌다. 그는 비로소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이 미친놈!”
음?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아주, 엄청나게 화가 난 알베르 크로스만의 얼굴이 보였다.
“공자는 정말이지, 가만히 두면 안 되는 사람이군요.”
더불어 웃고 있지만 살벌한 로잘린의 눈동자도 볼 수 있었다.
‘뭘 가만 안 둬?’
케일은 둘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위대한 라온 미르다. 신도 가만 안 둔다. 내가 다 이긴다.
얘는 갑자기 왜 또 이래?
훌쩍이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살벌했다. 로잘린보다 더 살벌했다. 정말로 신이라도 이겨 버릴 듯한 음성이었다.
“이런 썩을!”
그리고 케일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어깨를 흠칫했다.
“이런 지나가다 뒤통수치는 빌어처먹을 상황이 다 있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케이지였다.
그녀의 표정이 험악해졌고, 거친 말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그렇게나 말했는데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요?”
심지어 케이지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딱 두고 봅시다. 난 영원히 신전으로 안 돌아가! 난 자유인이다! 자유인! 술도 더 먹고 더 놀고 아주 자유롭게 살 거라고!”
토닥토닥.
그녀의 친우 테일러가 케이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침착하게 말했다.
“케이지, 네 꿈을 응원하마.”
뭐야?
케일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해갈 때쯤, 그는 알베르와 시선이 부딪쳤다.
그 순간, 케일에게로 알베르의 말이 다다다 쏟아져 내렸다.
“넌 뭘 또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눈빛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는 거지? 네가 죽었어야 했다는데 뭔 두 눈을 소처럼 끔벅이고 있어? 어? 이상한 데서 눈치가 더럽게 없어가지고. 뭘 봐?”
“…안 죽었잖아요?”
“뭐?”
알베르뿐만 아니라 갑자기 쏟아진 살벌한 눈빛들에 케일은 멈칫했지만, 꼿꼿이 말했다.
“아니, ‘죽어야 했다’는 과거형이죠. 지금이나 미래에 죽는다는 소리가 아닌데요? 이제는 안 죽을 겁니다만.”
“어이구, 머리야.”
왕세자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로잘린이 그 어깨를 토닥였고, 케일은 얼른 덧붙였다.
“전 오래오래 살 겁니다. 부자 백수로요.”
곧바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다. 인간은 나랑 백수로 살 거다. 나도 백수 할 거다! 인간 옆에서 계속 계속 백수 할 거다.
그래, 그래.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정하는 거지.
케일은 라온의 장래희망을 존중했다.
“아무튼 애들이랑 다른 사람들이랑 아주 행복하게 살 거니까, 걱정 마시죠.”
그가 툭 내뱉은 말 뒤에 다시 잠시 동안 정적이 내려앉았다.
-…인간, 나는 꼭꼭 인간이랑 우리 가족들이랑 행복하게 살 거다! 신도 하얀 별도 다 부순다!
정적은 금방 깨졌다.
“…말이라도 못하면.”
알베르는 도대체 이 자식을 어쩌면 좋냐는 눈빛으로 케일을 쳐다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공자, 그 말 기억해야 해요.”
로잘린이 차분하게 케일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며 다정히 말했다.
그리고 테일러와 케이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케일을 향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 변화지?
케일은 답답했으나, 그냥 아무 생각 안 하기로 했다. 어쨌든 의견은 잘 전달이 된 것 같으니, 넘어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다음 일정은 내일부터니, 일단 푹 쉬어요.”
로잘린은 그 말과 함께 케이지와 테일러를 침대에서 멀어지게 했다. 알베르도 로잘린과 대화를 나누겠다며 침대 커튼을 둘러 버리고는 케일에게서 멀어졌다.
쓰윽쓰윽.
케일은 이불 안으로 뭔가가 꼼지락꼼지락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투명화한 라온이 이불 안으로 들어와 케일에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케일은 별생각 없이 이불 안의 손을 움직였고, 동글동글한 머리가 착 하고 그의 손바닥에 닿았다.
-인간.
그래, 그래.
케일은 제 옆구리에 꼬리를 말고서 몸을 웅크리는 라온의 체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로잘린의 말대로, 아주 잠시는 쉬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면.
‘내가 개박살을 내고 만다.’
하얀 별을 개박살 내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케일은 로잘린과 알베르가 뭐라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그가 알아들을 순 없었다.
“…저하… 건강 증진을 위해서…….”
“…백수는 무슨… 맞습니다… 요양을…….”
그렇게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
툭. 툭.
케일은 제 뺨을 두드리는 손길에 눈을 떴다.
“인간, 일어났다!”
라온이 히죽 웃으며 케일의 어깨에 얼굴을 비벼댔다.
케일은 눈을 깜박이며 몸을 일으켰다.
촤르륵.
침대 커튼을 치우자, 소파에 드러누워서 자고 있는 알베르 크로스만이 보였다. 침실에 다른 이들은 없었다.
아마도 다들 각자의 방으로 안내를 받았으리라.
케일은 일어나 알베르 근처로 다가갔다.
라온이 그 뒤를 따라왔다.
“인간, 인간! 곧 온다!”
“…어. 알아.”
“이제 괜찮아 보인다!”
“어, 괜찮아.”
“인간, 나중에 나랑 행복하게 사는 거냐?”
“당연한 걸 왜 물어.”
“히히!”
둘은 그냥 평소처럼 대화를 나눴다.
그 때문인지 알베르가 서서히 눈을 떴다. 케일은 자는 동안에도 다크엘프 쿼터가 아닌 왕세자 모습의 알베르를 쳐다봤고, 둘은 눈이 마주쳤다.
“…너 뭐 하냐?”
오독.
케일은 쿠키를 씹어 먹었다.
배가 고팠다.
“인간아, 사과 파이도 먹어라!”
어린 용은 케일의 다른 손에 사과 파이를 쥐여주었다. 알베르는 머리칼이 엉망이 된 꼴로 눈 뜨자마자 과자를 먹고 있는 케일을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런 그에게 케일이 말했다.
“저하, 입가에 침 흘렸는데요.”
알베르의 얼굴이 구겨졌을 때 케일이 툭 던지듯 말했다.
“시렘, 그 녀석 어디에 있습니까?”
알베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짜 드래곤 슬레이어 시렘.
로운 왕국에서 가장 깊숙하고 위험한 곳인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자.
총 3개의 고대의 힘을 소유한 자.
더불어 로운 왕국과 불굴 연합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로운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자였다.
“그놈은 처형식이 결정되었습니까?”
케일이 무심히 묻자, 알베르가 무심한 얼굴로 답했다.
“아직 살아 있어.”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가 이어졌다.
“귀족회의에서 정확한 날짜를 곧 결정을 내릴 듯해. 지금껏 여러 일로 차일피일 미뤄왔지만. 아무래도 동북부 땅과 동북부 해안, 두 번의 전투를 감행한 자이니 제대로 벌을 줘야 한다는 게 대부분의 생각이야.”
케일은 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쿠키를 씹어 먹었다.
오독오독.
한참 동안 쿠키를 씹어 먹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놈 좀 보러 가야겠습니다.”
“안내해 주지.”
하얀 별을 박살 낼 첫 번째 단추를 끼우러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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