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25
524화.
툭툭.
케일은 최한의 어깨를 두드리고선 그 등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치겠네.’
케일은 얼굴이 구겨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호족과 라크가 이 전장에 온 것은 의외였다.
그렇지만 꽤 괜찮은 판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력만을 놓고 보면.
‘엉망이야.’
하지만 그 몰골이 다들 썩 좋지 못했다.
호족은 무슨 불에 데었는지 꾀죄죄했고, 왕궁 기사단은 실로 그 모습이 참담했다.
그뿐인가?
“공자님!”
저를 향해 반갑다고 순둥하게 웃어 보이는 라크는 여기저기 엉망이었다.
제 몸보다 큰 방패를 들고 있으면서, 방패는 어디다가 써먹었는지 저리 다쳤단 말인가?
“…어린 애를 저렇게 만들어?”
최한은 케일이 중얼거리는 말에 힐끗 라크를 쳐다봤다.
아직 스무 살이 안 되긴 했지만, 어리다고 하기엔 여기서 라크가 제일 컸다.
체격만 보면 대장군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결국 미간에 깊은 주름이 하나 생겨버렸다.
그러나 그 주름은 곧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되었고. 얼굴은 있는 대로 구겨졌다.
“제기랄. 차기 왕이라면서 왜 제일 얻어맞았어?”
알베르 크로스만. 그의 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투구와 갑옷으로 피부와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의 상태가 숨겨지는 것도 아니었고 도리어 잘 보였다.
무리를 했는지 손발이 떨리고 있었고, 살짝 들린 투구 사이로 피부가 보이기는커녕 시뻘건 피로 뒤덮여 더 참담한 모습을 띠었다.
성질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하아.”
케일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투구 속 왕세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지금 다크엘프 쿼터의 모습일 터.
그게 아니라면 저 인간이 왜 얼굴을 가리고 있겠나?
잘난 지 얼굴 자랑을 허구한 날 하는 인간인데.
“쥐어터지긴 왜 쥐어터져? 쥐어터질 것 같으면 나가질 말던가.”
답답한 마음에 중얼거린 케일이었지만, 그는 알베르가 나서야 할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리 행동한 것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답답했고, 저절로 그의 행동이 띠거워졌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는 알베르를 쳐다보다가 그 뒤에 선 하얀 별을 향해 말했다.
“손 안 떼? 안 들리나?”
케일은 하얀 별의 금이 간 가면 안에 자리한 눈동자를 응시했다. 하얀 별은 케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리 일찍 돌아왔지?”
“그게 네 알 바인가?”
퉁명스러운 케일의 말에 하얀 별은 살짝 고개를 가로젓더니 별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는 케일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이상한데?’
저놈이 왜 이리 차분하지?
평소 같으면 ‘감히 네놈 따위가!’라면서 성질을 내야 할 타이밍인데?
오히려 성질을 내는 것을 넘어 어떻게 동대륙 북부 산에서 도망쳐왔는지 화를 내며 물어야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하얀 별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고저 없는, 차분한 목소리는 되려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때, 케일의 귓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둥- 두둥- 둥둥-
조금 전부터 들리던 북소리였다.
케일의 눈동자가 움직였다가 굳어졌다.
회색빛의 옷을 입은 이들 중 몇 명이 북을 두드렸다.
로브인지 신관복인지 헷갈리는 것을 입고 하나같이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낯이 익었다.
‘…후작!’
동대륙 북부 산에서 마주했던, 마족을 섬긴다던 후작이었다.
그가 저런 옷차림을 했었다.
‘그의 수하인가?’
그는 그 후작이 고룡을 넘어서는 기이한 힘을 다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힘은 마계 혹은 마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둥- 두웅! 둥- 둥둥!
북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예감이 좋지 않다.’
케일은 차분한 하얀 별과 저 북소리에 긴장감이 일었다.
왜냐면 저 마족을 섬기는 자들은 정확하게 그 힘을 가늠할 수가 없으니까.
그때, 하얀 별과 케일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마주쳤다.
“흐음.”
하얀 별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제 팔을 움직였다.
휙-
알베르의 몸이 힘없이 앞으로 날아갔다.
최한이 재빨리 앞으로 뛰쳐나갔다.
덥썩.
최한이 던져진 알베르를 받아냈다.
“허억, 헉.”
최한은 가쁘게 숨을 고르는 알베르를 볼 수 있었다. 투구 사이로 마주친 눈동자가 최한에게 말했다.
“이야, 우리 스승님 오셨네?”
최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런 소리를 해대는 것을 보자 최한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제자님은 동생분을 꼭 닮으셨군요.”
“뭐? 하, 하하-”
알베르는 멈칫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최한이 말한 동생이 케일이고, 자신이 케일과 똑같이 행동했다고 최한이 타박을 했으니까.
“하하-, 커헉!”
하지만 그는 울컥 올라오는 피를 토해내느라 웃음을 멈춰야 했다.
케일은 그런 모습을 힐끗 쳐다보다가 하얀 별을 보며 물었다. 그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순순히 놔주네?”
하얀 별이 너무나도 순순히 알베르를 놓아주었다.
하얀 별은 별것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네놈이 왔으면 고룡이나 검은 용이나 둘 중에 하나는 오지 않았겠나?”
툭툭.
그는 검게 변한 제 팔을 아무렇지 않게 두드리며 검은 재를 떨어뜨렸다.
그 사이로 여전히 붉은 피가 흘렀다.
물론 조금 전에 비하면 많이 멎었지만, 여전히 피는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하얀 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분명 저 왕세자 녀석을 구하려고 고룡이나 검은 용 둘 중에 하나가 내 뒤를 공격해 오려 하겠지. 안 그래?”
케일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맞다! 인간아! 하얀 별이 알아챘다!
하지만 라온이 놀라서 케일의 머릿속에 말했고, 케일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위로 올라가라는 신호였다.
-알았다, 인간! 하얀 별한테서 떨어진다!
몰래 접근하던 라온이 재빨리 위로 솟구쳤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평소와 다르군.”
“음. 글쎄.”
하얀 별은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로 화가 났거든. 저번에 마지막으로 너를 봤을 때 말이야.”
하얀 별은 케일을 마지막으로 봤던 순간을 떠올렸다.
카로 왕국 죽음의 땅. 그 사막에 위치한 지하 도시. 그곳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았던 하얀 별은 진실로 화가 났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리고 반성했어.”
“뭐?”
케일은 순간 놀랐다.
하지만 하얀 별은 정말 반성했다.
케일 헤니투스를 만만하게 봤다.
하지만 이제는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의 몸을 빙의해오며 준비를 해온 놈이다.’
나를 막으려고 하는 놈이다.
지금 저렇게 뻔뻔스럽게 연기를 하며 놀란 척을 하지만.
저놈의 실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하나였다.
“천 년. 자그마치 그 시간 동안 준비해온 우리의 일을 막으려는 존재가 바로 너지.”
차분하게 말하는 하얀 별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케일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전엔 단순한 적을 향한 적의였다면 이제는 조금 달랐다.
‘…저 눈빛은 뭐야? 사생결단이라도 할 눈빛인데?’
죽든가 살든가.
단 두 가지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눈동자였다.
그 순간에도 하얀 별의 담담한 목소리는 이어졌다.
“나는 카로 왕국에서 후퇴한 후 너의 정체에 대해서 고민했다.”
오랫동안 빙의를 하며 하얀 별 저를 막으려는 놈.
그 정체는 무엇일까?
단순히 그를 막으려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고대의 힘.
그것은 생애에 천운이 닿지 않는 한 하나를 얻기도 힘든 힘이었다.
하얀 별은 여러 조력자가 있었음에도 천 년 동안 모두 모으지 못해 이렇게 마지막 힘을 찾으려 로운 왕국에 오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런데 케일 헤니투스는 고대의 힘을 아주 많이 습득했다.
그리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조력자가 있다.’
아주 오랫동안 빙의를 하며 살아온 케일 헤니투스를 도우려면 그 조력자의 정체도 보통이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그 조력자가 현재 동료들은 아니다.’
곰곰이 그간의 일을 되새긴 하얀 별은 케일 곁의 용들도, 최한도, 다른 모든 동료들도 케일이 빙의자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아주 오랫동안 케일 헤니투스를 돕는, 강력한 존재이면서도 그 정체를 들키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케일 헤니투스.”
마족이 있다면.
신이 있다.
신.
케일 헤니투스를 돕는 존재가 신이라면 모든 것이 말이 되었다!
“…넌 신의 뜻을 이어받은 자.”
순간 로운 측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심지어 알베르조차도 놀라서 케일을 바라봤다.
신의 뜻을 이어받았다.
그 말의 무게는, 파장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기사 단장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의 가공할만한 힘을 실제로 본, 몇 안 되는 이였으니까.
그리고 케일은 생각했다.
‘…뭔 헛소리야?’
그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기가 찬 헛소리에 말문이 막혀서 하얀 별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이 남들이 보기엔 기가 막혀 하는 표정이기보다는 담담하고 차분한 얼굴이었다.
물론 놀랐던 알베르는 케일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홀로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하지만 ‘남’에 속했던 하얀 별은 저 담담한 얼굴을 보자 확신했다.
케일 헤니투스 저놈은 분명 신의 사자. 혹은 신의 뜻을 이어받은 자.
다만 성자도 신관도 아니다.
그러나 명백하다.
‘내가 마계와 연관이 되었다면, 저놈은 신과 연관이 되었다.’
차분한 목소리를 내뱉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가 나와 닮은 점이 꽤 많았던 것도 이유가 있었어.”
신과 마족.
그 각기 강력한 존재가 선택한 자들이니, 당연히 닮은 점이 많을 수밖에.
“우리 둘 다 선택을 받았지. 어떻게 보면 우리 둘 다 위대한 존재야. 그렇기에 우리 둘은 서로를 죽여야만 하지.”
하얀 별은 지나온 천 년을 떠올렸다.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지배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넘어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이 순간을 위해 버텨왔던 거야.”
하얀 별은 그리 말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부드럽기보다는 비장하고 결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아우라가 하얀 별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케일은.
‘…뭔 헛소리야?’
기가 찼다.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그러나 하얀 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둥- 둥-둥–
북소리 사이로 하얀 별은 담담하게 자신의 적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끝이 멀지 않았지. 천 년. 그 시간에 비하면 몇 달, 몇 년은 별것 아닌 시간일 테니까. 너는 나를 막으려고 할 것이고, 나는 너를 떨쳐낼 것이다.”
하얀 별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와 나는 운명이다.”
…뭔 이런 소름 돋는 소릴.
저 새끼 미쳤나?
케일의 표정이 구겨질 대로 구겨져 갔다.
하얀 별은 케일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며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적수.”
두둥- 둥둥- 둥-
북소리가 더욱더 커져갔다.
“난 너를 이기고 지배자가 된다. 그리되면 신조차 이긴 것이 되지 않겠나?”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이런 미-”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나?
도대체 천 년 동안 머리가 훼까닥한 건지, 하는 생각마다 아주 거대한 헛발질이야?
당장이라도 그 말들이 케일의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케일은 잠시 말을 멈췄다.
두두둥-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조금 전보다 더 커졌다.
‘음?’
그 순간, 케일은 기이한 것을 보았다.
갈라졌던 하얀 별의 가면이 조금씩 붙어갔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며 그 상처를 메꾸는 것처럼. 가면의 틈새가 스멀스멀 줄어들어갔다.
안 그래도 저 가면을 갈라버리면 저 짜증 나는 놈 면상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뭐지?’
두둥- 둥- 둥둥!
북소리가 빨라질수록 가면의 틈새가 빠르게 메꿔졌다.
‘마계의 물건인가?’
번뜩 케일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마족을 섬기는 자들의 북소리에 영향을 받는 가면이라면, 마계의 것이 아닐까?
“이 가면이 궁금한가?”
톡톡.
하얀 별이 제 가면을 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렸다.
케일은 제 속내를 들켰다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래. 궁금하군. 알려줄 수 있나?”
“신의 뜻을 이어받아서 그런지 이 가면의 특별한 점도 눈치챘나 보군.”
아니-
케일은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얀 별이 말을 멈추지 않았다.
“후후. 위대한 자에게는 위대한 적수가 있는 법. 너를 기꺼이 받아들이마.”
하얀 별은 대범하게 말했다.
“다만 오늘은 말고.”
“뭐?”
오늘 말고?
뭔 소리야?
우우우웅-우웅-
케일은 북소리에 가려져 있던 진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진동 소리가 갑작스럽게 커졌다.
그것은 후방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펼치는 마법진의 진동이었다.
그때, 알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텔레포트진 같다.”
뭐?
텔레포트?
지금 도망가게?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망이라니, 하얀 별이 지금껏 이기고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딱 봐도 지금 케일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게 보일 텐데 도망을 간다고?
무슨 생각이지?
케일은 하얀 별을 막아야 하나 이대로 보내야 하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군의 상태를 파악하고 결정해야 했으니까.
그러다 흠칫 몸을 떨었다.
로운 왕국 사람들이 이전보다 뭔가 더 절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 선망과 희망, 존경이 보였다.
엄청나게 존경해야 할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감동마저 눈가에 일렁거리는 이도 있었다.
‘…큰일 났다!’
케일은 한 번만 더 고대의 힘을 쓰면 상당한 기간 동안 기절이라는 짱돌의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심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휙 고개를 돌려 하얀 별에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다급하고 비장했다.
“도망가려는 건가? 그리고 내가 왜 너의 운명의 적수지? 난 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얀 별은 그의 행동이 귀엽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훗. 그리 말해봤자, 나는 널 다 안다. 넌 신의 도움을 받고 있어.”
이 새끼가 미쳤나?
알긴 뭘 알아?
내 백수 꿈을 망치려고 환장을 했나!
케일은 말문이 막혀왔다. 지금 저놈에게 아무리 말해도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케일은 하얀 별에게 처음으로 말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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