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22
621화.
그리고 모두의 승리였다.
마침내 이룬 승리의 순간은 고요했다.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저, 불에 타 쓰러진 황색 괴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성벽을 뛰어다니던 사람들.
성벽 밖에서 검을, 창을 휘두르던 이들.
새로운 원거리 공격을 준비하던 사람들.
누구 하나, 소리 없이 전장을 눈에 담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지나간 시간들이 영화처럼 흘러갔다.
주마등과는 달리, 기억들을 떠올릴수록 마음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마음이 가득 차올라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순간.
한 사람은 얼른 입을 열었다.
“마침내, 등급 외 괴물이 쓰러지고 우리는.”
이성원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녹음하고 기록하라던 사령관의 말을 간신히 떠올렸기에, 이 순간에도 목소리를 내었다.
마침내.
우리는.
“인간은 승리했다.”
그리고 그 말이 녹음되는 순간.
사람들은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는 승리에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을 결국 토해내었다.
와아아아—
으아아—!
환호 혹은 외침, 아니면 울음으로.
각자의 감정을 사람들은 터트렸다.
“…안개가 사라지네.”
“…해다.”
그리고 그 승리를 축하하듯 안개가 걷히며 서서히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쌀쌀한 11월의 낮이지만, 조금씩 햇볕에 따뜻해져 갔다.
그 따뜻함이 지금 상황을 실감 나게 해주었다.
이진주는 입을 열었다.
그녀의 확성 능력이 서면 쉘터 인근으로 퍼졌다.
{승리했습니다.}
기쁜 소식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등급 외 괴물이 죽었습-}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잠시 멈춰야 했다.
{록-!}
그녀는 황급히 제 입을 막았다.
한순간 자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것도 잊고, 부르려던 이름을 간신히 삼켰다.
“형!”
“이런!”
김민준과 이성원이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박진태는 성벽 난간을 붙잡은 채,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
거대한 황색 괴물의 앞에 있던 사람.
김록수.
그가 천천히 쓰러지고 있었다.
이진주는 겨우 입을 열었다.
자신의 소식을 기다릴 성안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등급 외 괴물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쓰러지는 사령관에 대한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전장의 환호가 사라졌다.
이진주는 쓰러지는 사령관을 붙잡는 이를 보았다.
“록수야!”
이수혁은 힘없이 쓰러지는 케일을 다급하게 불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케일을 부축한 이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한아.”
최한은 케일을 부축한 채,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었다.
김민아와 배푸름, 조민예, 제하정 등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최한은 그들이 오기 전, 이수혁에게 말했다.
“곧 돌아갈 시간이 올 것 같습니다.”
이수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창백하고 엉망인 꼴의 김록수와 그에 버금가게 꼴이 엉망인 최한이 담겼다.
제일 고생을 많이 한 두 녀석들이었다.
“조용한 곳으로 가죠.”
“그래.”
최한이 케일을 업으려고 하였다.
“내가 옮겨주지.”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암흑 호랑이가 제 등을 내어주었다.
최한은 케일을 그 위에 옮기고 이수혁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섰다.
알베르와 최한의 시선이 부딪쳤다.
두 사람은 직감했다.
케일이 마침내 시험의 끝을 보고 있다는 것을.
***
“결국 여긴가?”
케일은 깜깜한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당연히 보이는 것 하나 없는 어둠이었다.
곧 그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내가 너를 낮게 본 것 같군.
시뻘건 붉은 눈동자가 그의 앞에 자리해 있었다.
봉인된 신이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일에는 절대적인 법칙들이 존재하지.
케일은 잠자코 신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잠시 멈칫했다.
-죽음의 신이나 태양신, 전쟁 신에게서 듣지 않았나?
그 모습에 봉인된 신이 코웃음을 쳤다.
-네 주위에 맴도는 신들을 내가 모를까.
케일의 입이 열렸다.
“한번 정한 시험의 내용이나 그 방법을 네가 손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거지?”
최한을 통해 죽음의 신이 전해준 정보.
‘죽음의 신은 그 절대적인 규칙 중 하나가 죽음의 맹세를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봉인된 신도 절대적인 규칙으로써 시험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시험의 내용을 조작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봉인된 신은 시험 내용을 조작할 수 없다.
시험의 내용에는 당연히 그 시험을 통과하거나 무위로 만드는 조건이 들어가 있는 법.
그렇기에 시험 내용에 손을 댈 수 없었던 봉인된 신은 이쪽의 케일의 아닌 저쪽의 하얀 별을 움직여 바깥에서 케일을 흔들려고 하였다.
그 시도는 케일의 동료들 덕분에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해할 수가 없군.
신의 음성에는 진실로 의문이 담겨 있었다.
-왜 신이 준 기회인데, 받지 않으려는 거지?
-강해질 수 있는, 힘을 얻을 기회인데?
-더욱이 케일 헤니투스. 네 모습을 보면 더 내 힘이 필요할 것인데?
봉인된 신은 케일을 지켜보았다.
-피곤하잖아?
스무 살의 김록수가 된 케일 헤니투스는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힘들지 않나?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으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등에 짊어지고 지내야 했다.
-고통스럽지 않은가?
하얀 별을 통해 케일 헤니투스에게 고통을 선사했다.
그 고통은 영혼을 뒤흔드는 것이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이었으리라.
신인 자신조차도 짐작이 안 되는 통증이었을 것인데.
그것을 케일 헤니투스는 참았다.
신은 진실로 궁금했다.
왜.
-이 모든 걸 나에게 맡기면 편해졌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하!”
케일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인생이 네 거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마음이 편한 놈이야.”
그리고.
“네가 뭐라고 내 인생을 맡아? 그럴 자격이 돼?”
자신을 살린 것은 절망이 시험이라고 시험을 내주는 놈이 아니라, 제 기억 속에 그리고 자신의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었다.
죽음의 신이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운명이, 법칙이 바뀌었다고.
-자격이라.
봉인된 신은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신에게 자격을 묻는 게 우습군.
-넌 아등바등 사는 게 버겁지 않나?
케일은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왜 요 근래 피곤하게 사냐? 응?”
그냥 시험이 끝났고 그 결과만 들으면 될 것을. 왜 저리 주절주절 거리는지 모르겠다.
할 일이 많고 바쁜 사람인데.
“야.”
알베르가, 아니, 라온이 보았다면 불경함을 넘어 불량하다고 말할 만한 표정이 케일의 얼굴에 나타났다.
“아니, 어쨌든 신이니. 좀 좋게 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야, 네가 가만히 있는 나한테 시험인지 뭔지 시비를 걸어서 내가 그 뒤처리를 지금 한 거 아냐?”
케일은 성큼성큼 붉은 눈동자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코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그 눈동자의 중심을 가리켰다.
“네가 원인이잖아. 너, 멍청하게 굴래?”
케일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등바등 산다고?
지가 뭐라고 그렇게 쉬이 말한단 말인가.
역시 빌어처먹을 신이다.
‘그리고 힘들어? 피곤해?’
맞다.
힘들고 지친다.
그러나 모든 순간이 그렇기만 했던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얻은 승리 후에는 피곤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평온이 함께 찾아온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평화였지만. 그 평온함은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물론 질 때도 있고 패배할 때도 있고 뼈아픈 것을 잃을 때도 있지만.
지나간 것들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으로 충분히 체감하고 있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는 그런 순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슬픔도, 좌절도, 패배도, 절망도 담아둔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작은 기쁨, 짧은 평온, 소소한 즐거움도 새겨 넣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야.”
-…참 불경하구나. 실로 한탄스러울 정도야.
신이 헛소리를 하든 말든 케일은 귀에 담지 않았다.
“결과나 말해.”
팔짱을 끼고 짝다리까지 짚은 채로 케일은 붉은 눈동자를 띠꺼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굳이 대답해주긴 싫군.
“쪼잔하네.”
-…정말로 불경한 놈이군.
이 신 새끼가.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미적거리는 신에게 한마디를 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멈칫 어깨를 떨었다.
쩌저적-
그가 있던 공간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인간이여, 네가 이겼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연한 결과였다.
모두가 고생한 결과이니까.
-등급 외 괴물을 이겨서가 아니다.
-네가 알고 있는 과거와 결과가 달라져서도 아니다.
…뭐?
케일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저게 시험의 내용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러면 무엇 때문에 내가 이긴 것이지?
시험을 이겨낸 것이지?
그때, 봉인된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다가올 절망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케일이 신에게 했던 말들.
‘이 세상의 절망은 이제 시작이지.’
-너는 시련과 절망이 올 것이라 생각했고, 그에 대한 불안함을 지녔다.
‘이곳은 내 과거와 다른 미래를 그릴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나아갈 것이라 믿었지. 아니, 확신했지.
신은 말했다.
-네 마음이 나를 이겼다.
-이 시험을 이겨냈어.
쩌저적, 쩌적!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이 공간의 어둠이 부서져 갔다.
끝.
이 시험의 진정한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끝났군.”
케일의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내뱉어졌다.
붉은 눈동자는 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를 위해 하나의 선의를 건네지.
선의?
케일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딴 거 필요도 없다는, 질색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표정 구길 것 없네.
신은 조금 즐겁다는 듯 눈꼬리를 휘었다.
그리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눈을 뜨면 아직 11월 8일. 스무 살 김록수의 세상일 것이다.
케일의 어깨가 살짝 움찔했다.
김록수의 세상이라고?
케일 헤니투스로 안 돌아가고?
-11월 9일 0시가 되는 순간, 너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러니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케일의 표정을 지켜보던 붉은 눈동자는 그 속내를 알아챈 듯 말을 이었다.
-왜 이런 선의를 베푸냐고?
쩌저적, 쩌적-
빠르게 부서지는 이 공간. 이 어둠 속.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선명하게 그 시뻘건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 시험이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뭐라고?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난 언제든 너를 지켜보고 있을 터.
붉은 눈동자가 휘며, 곧 낮은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순간 케일의 귓가에 소름이 돋을 것 같은, 그런 웃음소리였다.
신은 웃음 속에서 속삭였다.
-다가올 절망의 순간.
마치 미래를 예견하듯.
-네 마음이 꺾이거나 흔들리는 순간.
그런 순간이 반드시 올 거라는 듯.
-나는 너를 찾아가리라.
온몸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서늘한 말, 아니, 예고였다.
케일은 천천히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붉은 눈동자가 그 행동에 웃음을 담았을 때.
“하아.”
부서지는 어둠 속에서.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툭 내뱉었다.
“백수 시켜주냐?”
-…뭐?
순간 멈칫하는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케일은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내 꿈은, 목표는 마음 편하고 등 따시고 배부른 백수다.”
정말 훌륭한 꿈이고 목표다.
덤으로 그 목표에 농사도 아주 조그맣게 살짝 짓는 것도 넣어두었다.
케일은 제 소망을 입 밖에 내뱉었다.
“네 힘을 선택하고 나서 침대에서 뒹굴고 하루 종일 많이 걸어봤자 침실 안이고. 삼시세끼 밥 먹고 자다 일어나서 간식 먹고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살아도 되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부서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피식.
봉인된 신의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헛소리로, 내 심중을 어지럽히려는 구나.
-귀여운 헛소리. 잘 들었다. 인간이여, 후에 보도록 하지.
케일은 생각했다.
‘진짠데.’
헛소리 아닌데.
입을 열어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째앵—!
서서히 갈라지던 어둠은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동시에 환한 빛이 케일을 덮쳤고, 그는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둠도.
붉은 눈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록수 형.”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박깜박.
조금씩 케일은 시야가 제대로 잡혔다.
“록수야.”
이수혁의 목소리도 들렸다.
케일의 눈동자가 천천히 침실과 같은 방의 벽으로 향했다.
시계가 보였다.
신은 작별 인사를 건넬 시간을 준다고 하였다.
째깍째깍.
시침이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고요한 공간.
시계의 침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케일의 눈에 들어왔다.
11월 8일 밤 11시 50분.
11월 9일까지 10분 남았다.
“이 빌어먹을 놈.”
참 시간 길게도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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