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29
628화.
‘아버지가 고용한 자들 중에 용이 섞여 있다고?’
그것도 약한 척하는 용이라고?
그리고 우릴 보고 불량하게 웃는다고?
“…갑자기 뒤통수가 시린데.”
분명 용은 아군이 될 여지가 많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케일은 뒷골이 서늘해져왔다. 마치, 쓸데없는 덤터기를 품에 안아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었다.
“음? 케일, 무슨 소리를 했냐?”
“아, 아닙니다.”
“피곤하지? 어서 들어가자꾸나.”
“네.”
케일은 어깨를 쫙 펴고 발걸음에 굳센 의지가 담긴 데르트 공작의 뒤를 터덜터덜 따랐다.
데르트 공작은 아들의 걸음걸이를 보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걷는 것에 힘이 없구나. 그래, 힘들겠지.’
데르트는 바이올란의 말대로 하얀 별이라고 불리는 몹쓸 놈을 어서 세상에서 지워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강자가 필요했다.
‘흐음. 고래족은 고용이 힘드려나?’
아니면.
‘어디 용이라도 없나? 돈은 달라는 대로 줄 수 있는데.’
데르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이려는 찰나.
“아버지, 고용한 자들의 신원은 확실합니까?”
그는 케일의 물음에 얼른 주름을 펴며 가벼이 답했다.
“그럼! 공작가의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서 신원이 철저한 자들만을 뽑았다! 걱정 말려무나! 최소한 태어나고 자란 환경은 파악했으니까! 설사 드래곤이라도 파악해낼 정도로 철저하게 했지!”
…아닌데요. 아버지, 여기 용이 있대요.
케일은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어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를 본 데르트는 눈빛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얼마나 피곤하면, 저런 억지 미소를 짓다니!’
데르트 공작은 마음이 쓰리다 못해 하얀 별의 목을 쥐고 탈탈 털고 싶었다. 그는 애달픈 마음을 삼키며 정원을 지나 저택으로 향했다.
케일은 정원을 지나며 도열해 있는 강자들을 눈에 담았다.
용이 누군지 궁금했으니까. 그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섣불리 라온에게 그자가 누군지 물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다들 눈빛이 좀 이상한데?’
케일과 그 뒤의 최한을 바라보는 대다수 강자들의 눈빛이 묘했다. 그러다 케일은 한 명의 노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여든은 넘었을 것 같은 이가 케일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케일 공자님.”
“네?”
노인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브렉 왕국에서 온 바발라 경이지. 오십여 년 전부터 브렉 왕국의 몬스터 몰살 계획에서 중심으로 활동하신 분이지.”
그런 대단한 분이 여길 왜 와요?
케일은 묻고 싶었다.
“돈을 떠나 너를 돕기 위해 오신 분이지.”
데르트는 흐뭇한 미소를 그렸다.
“그런 분들이 많아.”
물론 돈을 보고 온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겸사 겸사라고, 대다수가 돈도 돈이지만 케일의 밑에서 일하거나 그를 돕고 싶어서 온 이들이었다.
바발라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힘겹게 싸우는 영웅의 걸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군요.”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소름이 돋았다.
“전혀.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케일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최한에게 시선을 두었다.
“별것 아닌 사람입니다. 있다면 제 동료들이 영웅이겠지요. 제 동료들은 주목을 받아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아.
바발라 경은 탄성을 흘렸다.
‘이다지도 겸손한 사람이 있다니!’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고 하는 저 얼굴은 분명 진심이었다.
‘거기다가 자신의 동료를 잊지 않고 추켜세우는 모습이라니!’
여든이 넘는 삶 동안 저토록 자신의 동료를, 수하를 진심으로 추켜세우고 싶어 하는 이는 몇 보지 못했다.
그리고 저렇게 진심인 이들은 모두 역사에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저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도와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담백한 인사와 함께 케일은 바발라 경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다른 고용된 강자들을 향해 살짝 인사를 하였다.
케일은 생각했다.
‘이 정도면 최한이 더 주목받겠지? 나는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고.’
케일은 스스로의 적절한 대처에 흡족했다.
“…정말로 공자님은-”
바발라 경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내 하려던 말을 삼키고 차분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봤다.
“피곤하실 테니, 푹 쉬십시오.”
“감사합니다, 바발라 경.”
통했나보네.
케일은 바로 저를 놓아주는 바발라 경의 모습에 제 대처가 알맞았다 싶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바발라 경의 결의에 찬 꽉 쥔 주먹을 보지 못했다.
‘내 인생 가장 큰 전쟁을 치르겠구나. 나의 모든 것을 걸리라.’
노기사의 마음에 어린 영웅이 남긴 말이 큰 불씨가 되어 활활 타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래. 이왕 싸운다면, 이런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
‘어찌 사람이 저리 선할 수가! 하. 영웅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군.’
‘저런 파리한 안색이라니, 질투하고 싶어도 불쌍해서 못하겠군. 도대체 얼마나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야?’
‘역시 존경할 만한 영웅!’
케일은 몰랐지만, 이들의 타오르는 열기 가득한 마음에 정원 곳곳의 공기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케일은 라온의 말에 어깨를 멈칫했다.
-인간아, 우리 인간이 말할수록 용이 더 불량하게 웃으면서 코웃음 친다!
응?
내가 말할수록 웃는다고?
-저기, 저 9시 방향 뒤쪽에! 분홍 머리! 보이나?
분홍 머리?
케일의 시선이 9시 방향으로 향했다.
한밤이지만, 환한 빛으로 감싸인 헤니투스 공작가.
분홍색 머리칼은 금방 눈에 들어왔다.
진짜로.
매우 상당히 불량하게 웃는 분홍색 뽀글머리가 보였다.
‘…솜사탕? 푸들?’
바람에 꿈쩍도 안 하는 뽀글머리는 동그랬다.
분홍 용의 키는 대략 로잘린보다 조금 더 큰 정도로, 등에 제 키만 한 활을 매고 있었다.
눈 아래는 두건으로 가려졌고, 이마는 뽀글머리가 점령하고 있어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연한 분홍 머리와 달리 연보라에 가까운 눈동자가 케일을 향해 있었다.
-분홍 용이다! 속성이 뭘지 궁금하다!
동시에 라온과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날 쳐다보네?
상당히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높은 듯 낮은 목소리.
그러면서도 우아함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케일은 절로 긴장감이 밀려왔다.
‘저 용은 어떻게 나를 알고 찾아온 것일까?’
오반테 시장과 다크엘프들, 엘프들이 용을 찾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디 소문이라도 난 것일까?
‘아니다.’
은밀한 움직임인데, 그것이 소문이 날리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알고, 다른 존재도 아닌 그 이기적인 용이 직접 행차한 것일까?
용이란 존재는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였다.
케일은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뽀글머리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갑다. 나는 고결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하고 아주 매우 멋진 도도리다.
아.
갑자기 케일은 이 용이 그냥 지나가는 동네 애처럼 느껴졌다.
왜일까?
케일은 괜히 라온 생각이 났다.
-곧 네 방으로 찾아가지. 문 열어놓도록.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냥 갑자기 이 용이 무섭지 않게 느껴졌다.
-흐음. 내가 알던 것과 달리 곁에 용이 하나 있군.
알던 것과 달리?
케일은 그 말에 주목했다.
‘내 정보를 어디서 듣고 온 건가?’
케일은 다시 긴장감이 밀려왔다.
그때, 뽀글머리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케일 헤니투스.
음?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으나 케일은 일단 용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
케일, 최한, 라온.
이렇게 셋만 남은 케일의 침실.
“문을 열겠습니다.”
“좋아.”
최한이 테라스 문을 열었다.
“바람이 차다, 인간아! 무릎 안 시리나?”
투명화를 푼 라온이 담요를 가져다가 케일을 꽁꽁 둘러쌌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왔다!”
“용이라고 바로 아네.”
타닥타닥.
테라스에 내려서는 뽀글머리가 보였다.
조금 전과 같은 차림새의 뽀글머리 용은 태연하게 테라스를 지나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케일 앞에 섰다.
‘일어나야겠군.’
케일은 그 모습에 소파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분홍 용 도도리의 시선은 케일에게 가 있지 않았다.
“야.”
“왜 그러나?”
분홍 용은 라온을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너 이름이 뭐냐?”
라온은 새로운 용이 반가운 듯 해맑게 답했다.
“라온 미르다! 인간이 지어줬다! 즐겁게 사는 용이 되라는 아주 훌륭한 뜻을 품었다!”
“…그래? 너 몇 살이냐?”
“난 올해로 위대한 여섯 살이다!”
굳어 있던 도도리의 눈꼬리가 휘며 웃음을 그렸다.
“흥. 어리군.”
그러고는 콧방귀를 끼며 어깨를 으쓱였다.
라온이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분홍 용은 사뭇 어른으로서 가르쳐 준다는 듯 진지한 눈빛으로 라온을 내려다봤다.
“아직 세상을 알기엔 부족해.”
높은 듯 낮은 목소리 톤이어도 무게감이 느껴져서인지, 그 말이 다른 이들에게 크게 다가왔다.
케일은 도도리를 가만히 살폈다.
데르트 공작이 모집한 이들의 최소 나이 기준이 성인이라고 하였다.
분홍 용 도도리는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달리 못해도 케일의 또래로 보이는 겉모습을 지녔다.
케일의 탐색어린 시선을 못 느낀 것인지 도도리는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라온을 내려다봤다.
사뭇 도도한 눈빛이었고 라온은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분홍 용아! 나는 위대해서 세상 잘 안다! 그러면 분홍 용이 생각하는 세상을 알려면 몇 살이어야 하냐?”
흥.
도도리는 한 번 더 콧방귀를 끼며 입을 열었다.
특별히 가르쳐 준다는 눈빛이었다.
케일은 그 대답을 기다렸다.
이 대답에서 도도리의 나이를 유추할 수 있을 터.
도도리가 생각하는 세상을 아는 나이.
“용생 14년을 살고 깨달았지. 적어도 14세 정도는 되어야, 세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14살?
케일은 순간 바센과 릴리, 라크와 늑대족 아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도리는 라온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선배로 모셔라. 후배 용아.”
라온이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쳐다봤으나, 도도리는 이를 가볍게 무시하며 케일을 쳐다봤다.
번뜩이는 눈빛이었지만, 이상하게 갈수록 케일은 이 분홍 용이 그냥 동네 애처럼 느껴졌다.
“크흠. 큼. 케일 헤니투스여.”
도도리는 케일을 보면서도 힐끗힐끗 최한과 라온을 슬쩍 쳐다보더니,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케일은 그 모습이 의아했다.
‘…쑥스러워해?’
도도리는 지금 쑥스러워하고 있었다.
분홍 용은 케일의 의아해하는 시선에 더 헛기침을 해댔다.
“크흠. 그대의 일대기는 크흠. 참으로. 크흠.”
뽀글머리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크흠.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크흠.”
…응?
케일은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분홍 용은 한번 내뱉으니 용기가 난다는 듯 이전보다 목소리가 커졌다.
성큼.
도도리는 케일 바로 앞에 서서 제 가슴께를 탕탕 두드렸다.
“그래서 친히 내가 케일 헤니투스, 자네를 보러 왔다! 용이 하나 옆에 있는 줄은 몰랐지만 크흠. 아무튼, 아무튼!”
…용이 하나가 아니라 셋. 아니지. 반만 용까지 합치면 총 넷인데.
케일은 도도리의 오류를 수정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도리는 케일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분홍 용은 갑자기 두 팔을 뻗었다.
그리고 담요에 감긴 케일의 두 어깨를 움켜쥐었다.
결의에 가득 찬 무게감 있는 우아한 목소리가 도도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만 믿어라! 너를 인간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어주마!”
…뭐야, 이 미친 용은?
순간적이었지만, 케일은 진심으로 저 뽀글머리의 헛소리를 내뱉는 입을 막고 싶었다.
-…인간아.
그는 머릿속으로 라온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온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온에게 우리 인간은 이미 최고의 영웅이었으니까.
굳이 만들어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저 분홍 뽀글머리 이상하다. 꼭 같이해야 하나?
그러게 말이야.
케일은 가까스로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제 본심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도도리 님은 저를 어찌 알고 찾아오셨습니까?”
도도리는 케일의 어깨를 잡고 있던 두 손을 풀며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음? 모르나?”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는 눈빛이었다.
케일은 그 모습에 자신이 도도리를 어디서 보았는지 혹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떠올렸다.
그러나 자신의 기록 속에 분홍 용은 없었다.
‘오반테 시장이 본 용은 다른 색이라고 했다.’
케일은 단호하게 답했다.
“네. 모릅니다.”
“으음.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도도리는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에서 주섬주섬 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상당히 소중한 책인 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케일의 시선이 절로 그 책으로 향했을 때, 도도리는 감동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 이야기가 담긴 책이지. 내 용생 동안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명 깊었다네.”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닳을 대로 닳은 책.
케일은 그 책의 표지를 본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책의 제목은 였다.
갑자기 도도리가 다다다 말을 내뱉었다.
“이 책 외에도 자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다른 버전으로 수백 권은 서대륙 곳곳에 더 있지. 그런데 아직까지 로운 왕국이나 헤니투스 공작가에서 공인한 책은 나오지 않아 아쉬워. 대부분이 음유 시인이나 이야기꾼들이 엮은 내용들뿐이야.”
도도리는 실로 이런 현상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분홍 용은 안타까움을 열정적으로 토로했다.
“아무래도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수많은 대륙인들의 마음에 부응해 이런 책들이 자네의 동의도 없이 다양한 형태로 나오는 것이겠지. 하지만 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각 책마다 부정확한 이야기들이 많이 섞여있어! 정확하지가 않아! 자네의 활약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단 말이
지!”
순간 케일은 생각했다.
‘그 수백여 권을 읽었단 소린가? 거기다가 분석도 하고? 왜? 이 용이 내 이야기 분석을 왜 해?’
도도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자네가 인정한 제대로 된 위인전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군! 자네, 위인전 편찬에 대한 제안은 들은 적이 있나? 내가 유명한 역사학자들을 구해다 줄 수 있네! 최소 10권짜리 고급 양장본과 실속 있는 내용과 실감나는 삽화! 초판 한정판에는 자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저장구! 더불어 동
서대륙 전역 판매 루트까지! 내가 다 준비해줄 수 있네!”
케일을 바라보는 도도리의 눈빛은 심하게 반짝였다.
-…인간아. 쟤 진짜 눈빛이 이상하다.
“아이고, 머리야.”
케일은 결국 두 손으로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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