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08
707화.
이른 새벽. 후미진 골목길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어느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클로페 세카는 고고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타샤를 비롯한 다크엘프로 추정되는 이들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피식.
로잘린은 무엇이 웃긴지 고개를 숙이고서 혼자 웃음을 꾹 눌러댔다.
그리고 메리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1초가 1분 같은, 케일에게는 상당히 기나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정적이 깨졌다. 타샤의 입이 열렸다.
“…종교를 말하는 것인가?”
아이고야.
케일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케일’이라는 것이 신을 지칭하는 단어……?”
“신이라니.”
클로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분은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경이롭고 전설이라 칭할 만한 것이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클로페가 목소리를 한껏 높이며 열성적으로 외쳤다면.
그랬다면,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클로페는 차분하고 또 차분했으며, 로브를 둘렀지만 그 밖으로 드러난 하얀 갑옷과 그의 외모, 그리고 신뢰감이 듬뿍 느껴지는 목소리로 인해 정말. 정말로-
‘진짜 미친놈 같다.’
케일은 진심으로 클로페가 미친놈 같아 보였다. 아니, 미친놈이 맞다.
주춤주춤. 소름이 돋아, 케일은 절로 뒷걸음질을 쳐 로잘린의 뒤에 섰다. 그때, 로브를 눌러쓴 타샤의 고개가 클로페가 아닌 메리 쪽으로 움직였다.
“…메리, 쟤 아니?”
“압니다.”
하아.
타샤가 절망스럽다는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저 착한 아이가-”
아니, 뭘 상상하는지 알겠는데. 그런 종류 아니라니까?
케일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말을 내뱉지 못했다. 대신 답답함에 눈을 감을 뿐이었다.
반면 로잘린은 나서지 않고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케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시선을 두며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
뭐?
눈을 번쩍 뜬 케일이 황당하다는 듯 바라봤으나, 로잘린은 제 할 말을 이어 했다.
“이미 왕궁에서는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녀의 시선이 타샤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로브로 가려진 타샤의 상체로 향했다. 정확히는 벌어진 로브 틈새를 가리켰다.
“그거 영상통신구 아닌가요?”
하!
타샤는 짧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로브를 살짝 들어 올렸다.
불이 꺼진 영상통신구가 자리해 있었다.
지금은 통신이 꺼졌지만, 분명 로잘린은 이곳에 흐르던 마나 기류를 느꼈다. 영상통신구는 조금 전까지 작동하고 있었다.
은밀히 로브에 가려진 채, 이곳을 탐색하던 이.
누군지는 답이 뻔했다.
알베르 크로스만. 왕세자이리라.
로잘린은 현재의 알베르가 아닌 과거의 알베르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틀 뒤. 왕세자 저하를 뵈러 가죠.”
타샤는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무엇을 믿고?”
“그쪽의 상관을 믿으세요.”
음.
로잘린의 단호한 대답에 타샤는 침음을 삼켰다.
‘나는 왕궁에서 찾는다는 말만 했어.’
그런데 눈앞의 여자는 타샤의 상관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타샤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로잘린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미래의 로운께서는 내 말을 약속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타샤는 겨우 탄식을 참았다.
어떻게 자신이 왕세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메리가 말했나?’
아냐. 메리는 아직 왕세자와 다크엘프 간의 일은 자세히 모른다. 다만 로운 왕국에 일을 하러 다크엘프들이 이따금씩 나간다는 것만 알 뿐.
로잘린은 빛이 바랜 영상통신구를 가리켰다.
“당신의 상관은 내가 누군지 이미 알아챈 것 같은데. 내가 틀린 말을 할 리는 없다는 걸 분명히 알 겁니다.”
케일은 어느새 팔짱을 낀 채 로잘린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래. 이게 로잘린이지.’
과감하면서도 이성적인 마법사. 그것만큼 로잘린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환상 속일지라도, 타샤를 마주한 로잘린은 흔들림 없이 그녀를 모르는 사람처럼 잘 대했다.
로잘린은 생각이 많아 보이는 타샤에게 한마디를 더 했다.
“나는 브렉 왕국을 위험에 빠뜨릴 만큼 멍청하지 않아요.”
갑자기 왜 브렉 왕국을?
타샤는 눈앞의 마법사가 언급한 브렉 왕국이라는 단어가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알베르를 돕기 위해서 외웠던 서대륙 주요 인사들이 생각났다.
적발의 여인.
한 명. 정말로 단 한 명만이 떠올랐다.
실물을 본 적은 없지만, 브렉 왕국과 너무나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
“설마-”
타샤의 입에서 혼란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그리고 메리 씨를 믿으세요.”
로잘린이 메리를 언급했다. 타샤의 혼란이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그녀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로잘린은 타샤 어깨 너머 메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지금까지 보여준 냉철함과 다른,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동료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물론 메리 씨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녀를 다시 만나러 갈 겁니다. 그렇죠, 메리 씨?”
메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뒤에 뵙겠습니다.”
“그래요. 나중에 봐요.”
로잘린과 인사를 나눈 메리는 타샤의 곁으로 다가갔다. 타샤는 메리가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메리의 맑은 눈동자가 타샤를 마주했다. 어딘가에 얽매인 자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안색은 지하 도시에 있었을 때보다도 더 생기발랄했다.
‘…발랄하다고? 메리가?’
늘 어딘가 모르게 침체되어 있던 메리. 굳세지만, 지쳐 보였던 아이의 얼굴에 활기가 감돌았다. 이는 타샤이기에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아.”
타샤는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하나 싶어 머리가 아파왔다.
‘이들을 함부로 데려갈 수 없다.’
마법사의 붉은 머리칼로 인해 상대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채자, 이제는 백발 녹안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만약 저 마법사가 브렉 왕국의 그자라면, 저자는-’
북부. 그곳을 대표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타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정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눈앞의 기사를 어떤 인물로 지정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타샤가 파악한 인물들이 맞다면.
‘…거물이다.’
아직 숨어다녀야 하는 다크엘프로서는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위험한 인물들이었다. 왕세자를 위해, 그리고 다크엘프들을 위해 아직 자신들의 정체는 이들에게 들켜선 안 되었다.
“어떤가요? 이틀 뒤에 보는 게 낫겠죠?”
로잘린의 물음에 타샤는 클로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 기사도 그럴 생각일지 모르겠군요.”
클로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는 오로지 영웅의 뜻에 따른다. 그분이 아무 말씀 없으시니, 그대로 행하면 될 터.”
아, 돌겠다.
케일은 클로페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아니,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
타샤는 전방의 낯선 이들을 주시하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물러서? 아니면, 한 번이라도 잡아?’
그때였다.
삐이이—삐이—
작은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다크엘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타샤에게로 향했고, 그녀는 곧바로 손을 들어올렸다. 다크엘프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지금 영상통신구에서 흘러나오는 저 소리.
알베르가 보낸 신호로, ‘후퇴’를 뜻했다. 조금 전 통신을 끊어버린 알베르의 신호. 그가 생각을 끝내고 판단에 따라 지시를 내렸단 소리였다.
“이틀 뒤. 뵙죠.”
우우웅—
다크엘프가 펼친 마법진이 메리와 타샤, 다크엘프들을 감쌌다.
텔레포트 이동 마법진으로, 메리는 일행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파아앗!
환한 빛과 함께 뒷골목을 차지하던 이들이 사라졌다.
***
“미치겠군.”
탁!
알베르 크로스만은 의자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연신 두드렸다. 집무실에 홀로 앉아있던 그는 갑갑함을 참지 못했다.
“툰카에, 브렉 왕국 후계자에, 북부의 수호기사라고?”
타샤가 숨겨둔 영상통신구를 통해 이미 이방인들의 얼굴은 확인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래. 툰카까지는… 무시할 수 있다.”
위퍼 왕국은 곧 마법사 연맹과 비마법사 연맹 간의 내전이 벌어진다. 툰카는 그곳에 가야 할 것이니, 로운 왕국에 뭔가를 저지를 틈이 없을 터.
“…하지만 나머지 둘은 얘기가 달라.”
우선 로잘린은 브렉 왕국의 제1후계자로, 알베르는 그녀가 이곳에 왔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브렉 왕국이 어디던가?
로운과 바로 인접한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런 곳의 후계자가 몰래 로운에 잠입했다.
‘이건, 이건 정말로 쉬이 볼 사안이 아니다.’
벌떡. 알베르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집무실 안을 서성였다.
“…클로페 세카.”
로운 왕국에서, 아니, 알베르가 현재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은 북부의 3왕국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북단에 위치한 파에른 왕국. 그곳은 따뜻한 날씨를 가진, 얼지 않는 땅을 늘 갈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베르는 중앙 모고르 제국과 더불어 북부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출난 것이 없는, 힘이 없는 고만고만한 나라인 로운 왕국은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자들이 현재 로운에 몰래 왔다.
그것도 케일이라는 자를 찾으러.
“…데르트 헤니투스 백작에게는 수도로 오라고 했으니.”
왕세자가 찾는다고 말하며 데르트 백작을 은밀히 입궁하라 명해두었다.
부를 축적하는 일 빼고는 크게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백작이라 아는 바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눠봐야 했다.
케일이라는 자는 헤니투스라고 했으니까.
‘귀족 사칭일 확률이 높지만, 뭐든 정확한 것이 중요하지.’
알베르는 창문으로 걸어갔다.
촤르르륵. 커튼을 걷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좋지 않아.”
이제야 뭔가를 좀 해보려고 하는 때였다.
그런데 ‘케일’이라는 존재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며 상황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피식.
그는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그자는 찾을 수가, 볼 수가 없는 존재라고?”
클로페 세카. 그 고고한 척하는 놈이 누군가를 숭배하는 모습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신은 아니다.”
툰카가 친우라고 했으니, 사람일 터.
“하!”
알베르는 기가 찬 심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띠운 채 타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이 땅에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왜, 서대륙 곳곳의 떠오르는 강자들이 로운 왕국으로 온단 말인가! 하필, 왜 이곳을!
알베르는 이내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이건 내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군.”
든든한 외척 하나 없는, 변변한 군사력조차 없는 왕세자는 지금 이 정도의 일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 힘이 너무나도 모자라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바마마를 뵈러 가야겠어.”
힘이 없는 왕세자. 그가 로운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 소식을 최대한 빨리 국왕 제드 크로스만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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