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21
2부 63화
아예 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케일로서는 파괴하는 불과 관련하여 딱히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음.’
케일은 말없이 자신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제국 사람들의 시선에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그간 여러 경험 해봤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상대하는 경험.
그건 꽤 유익한 경험이었고, 사냥꾼 가문을 앞으로 어떻게 상대해야 좋을지에 대해 많은 힌트를 얻게 해 주었다.
“물론 이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일은 다시 이 세계에서 벌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얻은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냥꾼들에 대한 정보도 꽤 얻고.
화이언스 가주와 혈교 7호를 잡아들임으로써 앞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피도 안 토하고, 기절도 안 했지.
‘상황이 잘 풀렸어.’
케일은 생각보다 쉽게 처리된 상황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휴.”
케일은 고룡의 깊은 한숨 소리에 그를 쳐다봤다. 에르하벤은 케일을 쳐다보지 않고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메리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최한은 묘하게 하고픈 말이 많은 얼굴로 케일을 쳐다봤다.
하지만 케일은 나중에 들으면 되겠지 싶어 올리비아 황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1년은 힘들 것 같고, 될 수 있으면 머무는 동안에는 힘 되는 대로 정화를 해보죠.”
아직 10배의 효율이 나오고 있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정화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올리비아 황녀가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쓸수록 힘이 줄어들지 않습니까?”
“그렇겠죠?”
당연하다는 듯, 답한 케일은 덧붙였다.
“물론 일이 생기면 금방 떠날 수도 있습니다.”
곧, 레독 화이언스. 가주를 만나 정보를 얻을 작정이었으니까.
그 과정에 빨리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 세계는 떠날 작정이다.
우우웅—우웅–
그리고 조금 전부터 품 안에 넣어두었던 죽음의 신 신물. 거울이 계속 진동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리고 집에 얼른 돌아가야지.’
케일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비크로스와 론, 왕세자 알베르의 몰골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혈교로 의심되는 놈들도 똑똑히 기억 중이었다.
“…하.”
그때, 올리비아는 깊은 탄식을 흘렸다.
‘음?’
그 모습에 케일이 의아해할 때.
“오, 정화자시여.”
갑자기 교황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케일은 더 의아해졌고.
“정화자, 네 희생은 결코 잊지 않겠다.”
용병 제로가 비장한 얼굴로, 하지만 상당히 맛이 간 눈빛으로 말했을 때.
‘이상한데?’
케일은 왠지 모를 찜찜함이 아주 심해져 갔다.
“이럴 줄 알았어.”
마지막으로 고룡의 한마디에 케일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비아 황녀는 입을 열었다.
“곧 대륙 전체 회의를 집행할 예정입니다.”
그 자리에서 각 집단의 수뇌부가 모여 이 샤올렌을 앞으로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 논의할 예정이었다.
“잠시.”
케일은 설명을 하려는 올리비아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저한테 일일이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케일은 조금 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솔직하게 말했다.
“저희는 떠날 사람이니까요.”
케일이 이 세계를 모두 정화할 것이 아니라면, 남은 해결책을 찾는 건 이들의 몫이다.
“이 세계에 관한 것은 이곳에서 살아가실 분들이 나눠야 할 이야기 같습니다.”
케일은 입을 다무는 올리비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말씀 드리려고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올리비아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나도 염치가 없구나.’
그녀는 케일이 떠날 사람이라고 말하는 순간, 섭섭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사냥꾼이라는 거대한 적과 싸우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을 여기에 남아달라고 할 수 없었다.
이들에게도 고향이 있으니까.
이들은 고향을 떠나 싸우고 있는 자들이 아니었던가.
‘이미 받은 것이 많다.’
화이언스 가문이 무너지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이 세계를 멸망시키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멸망을 막았다.
“그렇군요. 그대들은 떠날 사람이죠.”
올리비아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간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은 최대한 하겠습니다. 그대들이 떠나기 전에.”
고개를 끄덕이는 케일에게 올리비아는 말했다.
“이제 가봐도 좋습니다. 지금부터는 회의를 진행할 것이라서요.”
“그렇군요.”
축객령에 케일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 일어섰다. 오히려 축객령을 내린 올리비아가 케일과 그의 일행들을 미련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제가 배웅을 하지요.”
교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케일과 일행은 올리비아에게 인사하고선, 회의실 문으로 향했다.
그때.
“…멸망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 생각입니다.”
케일은 등 뒤로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잘게 떨렸지만, 막힘은 없었다.
“죽은 마나와 마나가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 겁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케일과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대들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올리비아는 메리의 앞에 서서 악수를 청했다. 메리는 잠시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메리는 올리비아의 손을 맞잡았다.
메리는 자신과 똑같은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메리. 내 이름입니다.”
“그래요.”
올리비아는 말했다.
“우리는 메리와 같은 강한 네크로맨서가 존재하는 세계를 만들 겁니다.”
그리고 메리의 손을 놓고 최한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최한입니다.”
“그렇군요. 우리는 최한과 같은 소드 마스터로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일굴 겁니다.”
“가능할 겁니다.”
최한의 말에 올리비아는 싱긋 웃으며 드래곤을 바라봤다.
“에르하벤.”
“네. 그-”
잠시 망설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에게 에르하벤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페를 설득하는 것은 네 몫이다.”
“그렇죠.”
현재 이 땅의 유일한 드래곤 아페.
그녀가 이 세계를 다시 바로 세우는 데 일조하게 만드는 것은 올리비아의 몫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새기며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
“…….”
올리비아는 말없이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케일이 약간 난감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황녀님, 그런데 벌써부터 작별하려는 분위기는 조금 이르지 않습니까.”
케일은 바람처럼 떠날 사람 보듯 저를 바라보는 올리비아를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아, 까먹은 거였나?
투명화한 라온의 음성이 머릿속에 들려왔다.
‘음.’
라온의 말대로 잠시 까먹었다.
“음. 황녀님,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잠시 까먹고 있던 일이 생각난 케일이었다.
“뭐죠?”
올리비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무심한 목소리가 툭 하고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조금 특이한 세계수가 있는데. 이곳에 심어도 됩니까?”
“…네?”
뭐라고?
올리비아는 자신이 순간 무엇을 들었나 싶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황도 용병 제로도 평소답지 않게 멍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들도 나랑 같은 걸 들었구나.’
깨달았지만,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 올리비아는 케일을 바라봤다.
“아.”
최한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감탄하는 것은 들리지도 않았다.
“음. 죽은 마나가 근처에 있어도 상관없는 세계수가 있거든요.”
그녀는 묘하게 가벼운 어조로 툭툭 내뱉는 케일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직 어린 세계수이기는 한데. 어차피 이 세계에는 세계수가 없으니까. 여기서 죽은 마나로 제일 심하게 오염된 지역에 심어두고, 이 세계수 보고 그 지역 죽은 마나를 관리하라고 하면 잘할걸요?”
몰든 왕국, 왕궁 지하 미로.
그 중심에 있던 가짜 세계수.
죽은 마나로 이루어진 강을 근처에 두고도 잘 자란 이 가짜 세계수는, 이미 몸부터 시꺼멓게 물들인 채 잘 자랐다.
“…네?”
올리비아는 멍하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얘는 대화가 통하는 녀석이라, 이야기를 잘 나누면 협조적일 겁니다.”
케일은 자신을 바라보는 샤올렌 사람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사실, 이 땅을 모두 정화시키면 네크로맨서나, 다크엘프, 흑마법사들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현 샤올렌은 모두 정화시켜도 문제였다.
“보니까, 황녀님도 두 가지 모두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 작정인 것 같은데. 물론 만들면 아주 강한 세계가 될 것 같더군요.”
메리 같은 네크로맨서가, 최한 같은 소드 마스터가 모두 공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세계.
어쩌면 샤올렌의 새로운 미래는 엄청날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 일에 이 세계수가 아주 도움이 될걸요?”
“자, 잠시만요!”
올리비아는 케일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이며 그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 정화자, 아니, 케일 씨.”
“네.”
“세계수를… 그, 이 세계로 모시고 오실 건가요?”
“아뇨?”
케일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답했다.
“가지고 있는데요?”
“…세계수를, 그러니까, 세계수를 가지고 계시다고요?”
“음. 보호 중이라고 보면 됩니다.”
가짜 세계수는 현재 포용의 힘을 사용하여 배지 속에 담겨져 있었다.
‘생각할수록, 이 가짜 세계수한테는 이 세상이 딱 맞아.’
일반적인 세계보다는, 샤올렌처럼 죽은 마나가 과하게 많은 세상이 이 세계수가 뿌리내리고 살기 좋을 터.
“아, 물론 이 세계수가 이 세계에 머물기 싫다고 하면 심지 않을 생각입니다.”
“안 돼요!”
“네?”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놀라는 케일의 모습에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었다.
“그, 그 세계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못할 것도 없죠. 하긴, 당사자들끼리 대화를 해보면 좋겠군요.”
“네! 제발 대화할 기회를 주세요!”
케일의 말대로 그런 세계수가 존재한다면, 샤올렌에 정말 딱 어울리는 새로운 세계수였다.
‘만약 세계수가 새로이 이 세상에 나타나고, 드래곤 아페가 우리를 돕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이 샤올렌에 살아가는 인류와 이종족들은 다시 한번 일어설 힘을 가질지도 몰랐다.
300여 년 전을 상징하는 두 존재가 돌아왔으니까.
비록 그 모습은 300여 년 전의 세계수, 드래곤과는 달랐으나.
달라진 샤올렌에 알맞은 모습으로 찾아온 귀한 존재들이었다.
“그러죠.”
케일의 담백한 대답에 올리비아를 비롯한 샤올렌 사람들이 안도할 때.
-인간아, 가짜 세계수는 이 세계에 정착하려고 할 것 같다!
케일은 라온의 말에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가짜 세계수는 하얀 별의 지배 아래 엘리스네에게 조종을 당하며 지하 미궁 속에서 자라왔다.
더불어 저를 죽이려고 오는 엘프들을 맞이해야 하기도 했다.
그런 세계수에게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이 세상은 꿈꾸던 곳일 터.
“그럼 이만 가보죠.”
“…그래요. 조만간 뵙죠.”
“네.”
케일과 일행은 회의실을 떠났다.
올리비아는 닫힌 회의실 문을 잠시 동안 바라봤다.
용병 제로가 입을 열었다.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군.”
“그러게요.”
올리비아는 수긍하다가 덧붙였다.
“어쩌면, 감히 판단해서는 안 될 존재일지도 모르죠.”
“그쪽이 맞겠군.”
용병 제로는 헛웃음을 흘렸다.
“흐흐, 세계수를 보호하고 있는 인간이라니. 그런 존재가 어떻게 인간일 수가 있지.”
“…인간일 수도 있죠. 인간이라고 해서, 한계를 정해두면 되나요?”
올리비아는 저를 바라보는 제로를, 수뇌부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 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울 존재들인데. 한계를 정하면 안 되죠.”
“하!”
제로는 짧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우리야말로 한계를 정해선 안 되겠지.”
“맞아요.”
아직 올리비아를 비롯한 수뇌부들은 이 세계를 케일 없이 어떻게 정화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그 방법을 명확하게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멸망단에는 수많은 이종족이 있어.’
그리고.
‘정화의 불 교단은 정화의 불 힘을 일부라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
또한.
‘제국에는 누구보다도 죽은 마나에 해박한 마법사와 관련인들이 많아.’
이외에도 샤올렌 곳곳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아직 살아가고 있을 터.
그들이 모두 합심하여 머리를 맞대면, 분명 방법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회의를 진행하죠.”
올리비아의 말을 시작으로, 회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한편, 교황은 회의실이 있는 궁 앞에서 케일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정화자시여, 교단은 이제 이단에서 벗어났습니다.”
“잘됐군요.”
담담한 대답에 교황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곳으로 가시는 겁니까?”
“네.”
교황은 살짝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부디 원하시는 바를 얻으시길.”
“그럴 겁니다.”
케일은 그리 답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황제궁 지하에 위치한 지하 무덤.
에르하벤이 한번 탈탈 털었던 그곳이었다.
* * *
원래라면 수많은 강시들이 존재했을 거대한 공동.
그 중심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케일은 입을 열었다.
“잘 있었어?”
그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세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아직 멀쩡하네?”
혈교 7호.
레독 화이언스 가주.
시종장.
그렇게 세 사람이 케일 앞에 간격을 두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오늘도 멀쩡할 수 있을까?”
케일이 여유롭게 질문을 던지고 혼자 생글생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