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78
2부 120
혜선각.
총군사 제갈미려가 머물며 업무도 함께 보는 건물로, 그 혜선각의 은밀한 지하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교와의 협상을 위해 떠날 정파를 대표하는 이들.
때문에 케일은 없다.
케일은 공식적으로 ‘정파’ 소속이 아니었다.
“허허, 이것 참.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지금 허허 웃고 있는 사람은 무당의 도사 백산이었다.
무당의 장문인과 같은 항렬의 백자 배로, 장문인과 함께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사제였다.
“으음.”
그리고 침음을 흘리면서도 바짝 군기가 든 자세로 앉아 있는 이는 개방의 장로 중 한 명인 호송이 장로였다.
개방과 무당.
이 두 세력은 구파일방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마교와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백산 도사는 한 사람을 보며 말을 꺼냈다.
“이 자리에 남궁세가의 사람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안에는 칼날이 서려 있었다.
“······.”
백산의 시선을 받은 이는 현재 무림맹에서 머무는 남궁마희으로, 가주인 남궁마혁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미리 받은 서신이 있었기에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남궁은 김 공자님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이를 끝으로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더 할 말 없다는 표정이었다.
“끄응.”
그 옆에 하북팽가의 팽유가 답답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북팽가와 남궁세가는 긴밀한 사이로, 남궁세가에서 갑자기 연유도 알려주지 않고 구파일방이 주장하는 마교와의 협상에 긍정을 표했으나 덩달아 동의를 표한 상태였다.
“하!”
백산 도사는 남궁마희의 말에 기가 차다는 기색을 드러냈고, 호 장로는 그저 꼿꼿이 앉은 채 모든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어차피 남궁마희의 말대로, 김 공자만 따라다니면 돼.’
김 공자가 가는 길에 해답이 있으며, 평화의 길이 존재한다.
호 장로는 개방의 방주로부터 김 공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 오라는 밀명과 함께 이 협상 무리에 끼게 되었으나.
‘내 능력 밖이다. 그냥 나는 잡일이나 하면 돼.’
밀명 따위 무시하고, 그저 순응하며 지낼 생각이다.
“···도통 김 공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군요.”
백산 도사는 그리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그에 결국 그는 상석을 바라봤다.
“총군사. 답을 해줄 생각이 없는 것이오?”
“곤륜에 도착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의 답에 백산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혜선각. 총군사만을 위한 이 은밀한 공간에서도 섣불리 말을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발언에 백산은 툭 던지듯 물었다.
“무림맹 안에서 입을 조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오?”
“네.”
담백한 그녀의 대답에 백산은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면 조금만 더 참아보도록 하지.”
무당의 백산은 툴툴거리고 날을 세우는 모습과 달리 싸움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인내심도 길며 안정을 중시여기는 편이었다.
제갈미려는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대해 하나씩 다시 정리하며 회의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이 방을 제외한 혜선각 건물 안 곳곳에는 마교로 떠날 인원들이 안내를 받고 있었다.
“무림맹에서는 정의대와 협오대 전체, 그리고 참모부와 타 부서의 일부가 함께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으음.
팽유가 침음을 흘렸다. 백산 역시도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인원이 너무 많지 않소?”
마교의 중원 침공을 막기 위한 협상이 목적이다.
그런데 어째 그 규모가 웬만한 전투 부대 정도 되었다.
백산은 조심스럽게 총군사에게 물었다.
“···여차하면 싸울 생각인 것이오?”
제갈미려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교와 싸울 생각은 없다.’
오히려 맹주와 총군사는 혈교와의 싸움을 염려해, 나아가 생강시의 폭주를 막기 위해 전투대를 파견하는 것이었다.
‘협오대, 참모부. 총무부 등 생강시가 총 5명이 있었다.’
현재 무림맹에서 발견한 생강시 수는 5명으로, 모든 인원이 미래 주요 인재로 파악되던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마교 협상이라는 중요한 일을 위한 협상단에 이들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업무를 하느라, 아직 무림맹에 돌아오지 않은 인원 중에도 생강시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제갈미려는 지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생강시 한 명을 상대하려면 화경의 고수가 여러 명 있어야 한다.
그러니 5명의 생강시가 있는 협상단을 제어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의 고수가 필요할까.
때문에 맹주 고세범도 협상단에 포함할까 하다가, 혹시 더 있을지도 모를 무림맹 내 생강시를 막을 이로서 무림맹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협오대와 정의대를 포함시켰고.’
그 외에도 현재 무림맹에 머무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사람들 중에 그 연륜과 무공 경지가 뛰어난 이들을 설득해 협상단에 포함시켰다.
그 사람들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당의 백산 도사, 개방의 호 장로, 남궁마희, 팽유. 그리고 조용히 앉아 있는 벽선(劈善).
-총군사. 무엇을 걱정하는지 아오.
그때, 호 장로의 전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김 공자와 권왕 어르신, 검마가 있지 않소. 우리 김 공자님의 동료들도 다 강하오. 그러니, 생강시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보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생강시 쪽에서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을 제일 조심해야 하지 않겠소?
그의 말이 맞다.
제갈미려는 입을 열었다.
“마교 쪽에서 협상에 응했지만, 언제라도 곤륜산을 넘어 중원을 넘볼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비로서, 그리고 협상이 파토났을 때 곤륜을 돕기 위한 인원으로 이 정도는 준비해야 합니다.”
퍽 단호한 음성에 백산 도사는 신음을 흘릴 뿐 따로 반박하지는 못했다.
대신 벽선이 입을 열었다.
“그, 김 공자라는 쪽에서는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오?”
평소 말이 없는 이가 꺼낸 말이었기에 무게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의 내용에 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황가에서 무림의 속사정에까지 관여하려 하는 것이오?”
제갈미려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벽선, 백산, 팽유는 자세한 사정을 모른다.
“김 공자는 개인적으로 곤륜의 운선 도사의 초청을 받아 곤륜파로 향하는 것입니다. 황가에서 무림에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림맹 안에 지금 금의위가 존재하는 것은 그자 때문이 아닙니까?”
김 공자가 머무는 전각을 지키는 금의위.
그들은 하나같이 정예 중의 정예임을 드러내는 듯 살벌한 기세로 타인의 침입을 막고 있었다.
“금의위는 우리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소?”
“네. 김 공자님의 일행만이 우리와 함께 움직일 뿐. 금의위는 무림맹을 나선 이후부터는 함께 움직이지 않고. 그들에게는 따로 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믿을 만한 것이오?”
“네.”
“···김 공자라는 자는 우리의 협상에 관여할 생각이 없는 것이고?”
“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제갈미려의 대답에 벽선은 그제야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는 관을 싫어하는 대표적인 무림인 중 한 명이었다.
어릴 적, 탐관오리에 의해 집안이 무너질 뻔한 기억 탓에 관을 거의 증오하다시피 했다.
“괜히 귀한 황족이 끼어들어, 현실감각 없는 소릴 해서 망칠까 봐 걱정이었는데. 그럴 일은 없겠구려.”
사람 좋게 웃으며 벽선이 하는 말에 호 장로는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흥! 우리 김 공자님이 나서야 다 해결돼! 그리고 자그마치 자연경에 이른 김 공자님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줄도 모르고! 에잉, 쯧쯧.’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케일의 대변인이 되어 있었다. 제갈미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문이 많으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무림맹을 떠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저를 통해, 아니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따라주십시오.”
호 장로를 시작으로 모두 그녀에게 긍정의 뜻을 표해왔다.
총군사는 지금껏 실수를 한 적은 있어도 잘못을 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신뢰할 만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때, 하북팽가의 팽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왔다.
“마교도 마교지만. 요즘 저잣거리에서 나도는 소문 들으셨죠?”
순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백산 도사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혈교 말이오?”
“네.”
“그거 뜬소문 아니겠소?”
“그렇다기에는-”
팽유의 시선이 남궁마희에게로 향했다.
혈교에 대한 소문이 무림에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수백여 년간 보이지 않았던 그 집단이 다시 부활했으며.
남궁태위. 그가 혈교 소속의 검마에게 죽었다는 소문.
“······.”
남궁마희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살벌한 기세가 그녀에게서 피어올라 왔다.
“크흠. 큼.”
팽유는 황급히 입을 다물며 시선을 돌렸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고, 남궁마희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멸(滅) 혈(血).”
그 순간, 팽유를 비롯한 몇 명은 저잣거리의 소문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혈교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검마가 혈교 사람이며, 남궁세가의 사람을 죽였다.
곧 남궁세가에서 혈교를 멸살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알려야 된다.’
팽유를 시작으로, 이 정보를 자신의 문파에 알려야겠다 생각했다.
허황된 소문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그리고 이를 보며, 제갈미려가 은밀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지웠다.
호 장로의 호들갑스러운 전음이 들려왔다.
-모든 것이 우리 김 공자님 생각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군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입을 열었다.
“마교 다음은 혈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입니다. 혈교의 실체를 잡지는 못했지만, 이를 위해 조사대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제갈미려는 사실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
혈교에 대한 대응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졌으며, 그들의 실체를 김 공자에게 의지해야겠지만. 곧 김 공자 측에서 정보를 준다고 하였다.
총군사의 말에 굳어진 이들을 보며 호 장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김 공자님의 선견지명은 엄청나다니까!’
속 편한 호 장로와 달리, 굳어진 분위기 속에서 회의는 끝이 났다.
자의는 아니었다.
타의였다.
“총군사님!”
당황한 얼굴로 제갈은소가 제갈미려를 찾아왔다.
“왜 그러지?”
그녀의 물음에 제갈은소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사도련에서 련주 사마평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응? 사파?”
제갈미려를 비롯한 자리에 있던 이들이 그 말에 놀랐다.
“그 빌어먹을 놈이 갑자기 우리 맹에 사람을 왜 보내?”
벽선이 거친 말을 내뱉으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팽유 역시도 마찬가지로 표정이 험악해졌다.
제갈은소는 그에 굴하지 않고, 곧바로 제갈미려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말하면서도 그 표정은 영 납득이 되지 않는 듯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예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그쪽의 말에 따르면, 현재 무림맹에서 자신의 둘째 아들을 납치했다고 돌려달라고 합니다.”
말을 하는 제갈은소도, 듣는 제갈미려를 비롯한 무림맹 고수들도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헛!”
개방의 호 장로.
그는 저도 모르게 기함을 토했다가 제갈미려의 시선에 입을 꾹 다물었다.
“···호 장로님······?”
나직이 저를 부르는 제갈미려의 목소리에 그는 질끈 눈을 감았다.
***
“무슨 일이십니까?”
위 상선은 갑자기 찾아온 제갈미려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위 상선의 어깨 너머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공자님. 혹시 사마정을 납치하셨습니까?”
다급한 그 음성에, 당과를 먹고 있던 케일은 곧바로 답해주었다.
“네. 왜요?”
“!”
“문제 있습니까?”
“!”
계속해서 놀라는 제갈미려를 보며 케일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가둬두고 있습니다만. 왜요?”
너무 느긋한 물음에, 그리고 너무 놀란 마음에 제갈미려는 저도 모르게 그대로 답해버렸다.
“그 망나니 아버지가 돌려달라고 하던데요?”
“아, 그렇구나.”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됐네. 무한시로 오라고 하세요. 아들 보고 싶으면.”
오독오독.
케일은 당과를 먹으며 사마정에 대해 떠올렸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사마정은 신이 난 얼굴로 툰카와 막싸움을 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지기를 드디어 만났구나! 크하하하!’
‘나 역시 그렇다! 크하하하하! 더 덤벼라!’
‘좋다! 한바탕 하고 나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크하하하!’
‘크하하하하하!’
그 광경은 아주 미친놈들이 따로 없었다.
케일은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마교 가야 하니까, 그거 방해 안 되게 얼른 와서 데려가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