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40
유일하게 비 하나 젖지 않은 그의 모습에서는 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섬을 바라보며 말했다.
“출발하지.”
해안가에 정박해 있던 수백여 척의 크고 작은 배.
전선, 상선, 어선. 수군과 상단, 어부 등등 가릴 것 없이 모든 곳에서 빌려오고 구매한 수백여 척의 배가 동시에 바다로 나아갔다.
그 속도는 아주 빨랐다.
“역시 스승님이시구만.”
사마평이 끌끌 웃음을 흘리며 제 손에 들린 것을 바라봤다.
제일 후미에 자리한 가장 큰 배에 올라탄 사마평.
그의 배에서부터 바람이 휘몰아치며 앞선 배들이 더 빨리 나아갈 수 있게 했다.
배의 갑판 전체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으며, 사마평은 그 마법진의 중심에 쉴 새 없이 손에 들린 마정석을 하나씩 올려두었다.
라온이 미리 준비해둔 안배로, 바람 마법이 펼쳐졌다.
배들은 마치 아무것도 태우지 않은 듯, 바람을 타고 빠르게 바다를 가로질러 해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크고 작은 수백여 척의 배 위는 빽빽하게 무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사마 각 세력의 최정예들이 각자의 무기를 손에 쥔 채 점점 가까워지는 푸른 불빛들을 응시했다.
“이제 좀 싸워보겠네.”
그중 해남으로 가지 않았던 케일 일행.
툰카는 어깨 근육을 풀며 연신 입맛을 다셨다.
그때였다.
피우우우—–
해남섬 절반을 차지한 푸른 불빛이 쏟아지는 땅.
그 반대편에서 빨간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위 상선. 그가 해남성주와의 이야기를 모두 끝내고, 해남의 일반 무인들을 끌어모았다는 신호였다.
“이야.”
툰카가 이를 보며 툭 내뱉었다.
“잘 풀리네.”
계획했던 대로, 케일이 진법의 핵을 부수어서 바다가 잠잠해지고 혈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 위 상선이 해남의 나머지 사람들도 잘 끌어들였다.
그리고 정사마 무인들이 해남으로 향한다.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다.
이를 느낀 툰카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이상하게 잘 풀리네.”
그리고 스스로 놀랐다.
“그렇네? 이상하게, 너무, 잘 풀리네?”
흐음.
그는 일단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몰라. 그냥 싸움만 할 수 있으면 됐지!”
깊은 생각은 집어치우는 툰카였다.
그러면서도 찝찝했다. 그간 케일 헤니투스와 함께한 적이 몇 번 없었지만, 있을 때마다 희한하게 계획과 다르게 일이 어마무시하게 커지는 경우만 겪어봤던 툰카로서는 한 가지 생각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소소한데.”
옆에 있던 사파의 망나니 사마정이 뭔 헛소리를 하냐는 듯 툰카를 바라봤지만, 툰카는 진지했다.
“흐음. 뭐, 별일 없겠지.”
물론 더 이상의 생각은 귀찮아서 그만둔 툰카였다.
대신 목소리를 높여 요구했다.
“더 속도를 높이자고! 빨리 싸우러 가야지! 크하하하하!”
그저 싸우고 싶은 툰카였다.
그런 그의 입가에 곧 미소가 맺혔다.
“…빠르네.”
해남섬에서 푸른 불빛을 매단 배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혈교이리라.
툰카의 바람대로,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다.
* * *
“인간아, 나 잘했나?”
“어.”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장본인, 라온이 통통한 배를 쭈욱 내밀며 건넨 말에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건넸다.
물론 신호탄을 쏘아 올리느라 커다란 구멍이 생긴 지붕은 외면했다.
라온은 케일이 핵을 진법에서 빼내자마자 바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인간아, 핵 안 부수나?”
라온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동시에 문지기의 분노에 가득 찬 외침이 들려왔다.
“이놈들이! 내놔라!”
그러고는 라온이 만든 방어막을 바로 부숴버렸다.
콰아앙!
오. 역시 현경 후반.
케일은 그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여유롭게 툭 내뱉었다.
“더 다가오면 부순다?”
문지기가 멈칫했다.
기다란 백발 수염을 지닌 노인은 움직임을 완전히 멈췄다. 케일이 한 말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백 노가 그런 말을 했다면 노인은 무시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부수기 전에 빼앗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지기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 갔으며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어, 어떻게-”
갑작스럽게 이곳을 침범한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진법의 핵을 훔쳐든 놈이-
어찌하여 이렇게 강대한 기운을 뿜어낼 수가 있는 것이지?
‘이건 무공의 기운이 아니다.’
존재. 저 인간 자체가 뿜어내는 격이다.
문지기는 오래전 자신을 뛰어넘은 제자, 혈마를 자연히 떠올렸다.
무공이 자신보다 부족했을 때에도 그 타고난 기운과 기세만큼은 혈교의 미래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들었다.
그 압도적인 분위기는 그가 문지기로서 이곳에 평생 처박혀 살아도 불만이 없게 했다.
그런데-
‘그에 버금간다.’
저자에게서 나오는 기운은 지금 절정에 이른 혈마에 밀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저게 다가 아니야.’
지금 뿜어내는 저 기운도 그저 겉핥기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만큼 상대는 여유로웠다.
‘누구지?’
문지기로 이곳에서만 지내왔던 그는 도통 눈앞의 정체불명 침입자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백 노가 왜 배신을 했는지도 납득이 되었다.
‘이런 기운을 가진 자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
필히 패한다.
하지만 문지기는 곧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걸 부순다고?”
하!
기가 차다는 듯,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케일이 이번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이 문지기 뒤에서 틈을 노리고 있는 백 노인에게로 향했다.
백 노인은 멈칫하며 외쳤다.
“그걸 부수면 진법 장치는 사용을 못 해! 그건 확실해!”
괜히 찔려서 소리를 높이는 그를 문지기는 비웃었다.
“흥. 웃기지도 않는 소리!”
문지기는 케일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그마치 그건 한 세계의 보물에서 떼어낸 물건이다. 애시당초 부술 수 있는 물건이 아냐! 네가 아무리 강한 자라고 하여도, 그걸 부술 수는 없다. 또한 그 물건에 얼마나 강대한 힘이 담겼는지 아느냐?”
케일은 핵에 집중하느라, 새삼 자신이 들어섰던 진법을 쳐다봤다.
10각형의 진법은 지금 보니 바닥뿐만 아니라 천장에도 존재했다. 둘 다 십각형으로 그 테두리는 같았으나, 각기 다른 내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두 진법 사이에 핵이 떠 있었던 듯싶었다.
문지기가 외쳤다.
“조만간 넌 그 핵에 담긴 힘에 짓눌리고 말 것이야! 나조차도 그 핵을 잠시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 기운에 짓눌려 혈도가 뒤틀리는 것 같거늘. 너 역시 인간이니 똑같이 되겠지!”
그는 비웃음을 참지 않았다.
“크흐흐! 어떠냐, 지금도 그 기운에 숨이 막히지?”
신녀와 문지기조차도 쉬이 만질 수 없는 진법의 핵.
심지어 혈마도 저 핵을 다루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것을 저 정체 모를 자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변수라면, 옆에 있는 용이다.’
저 어린 용.
아피토유, 그 보라 피 놈들과 같은 용이니 조심해야 한다.
‘어리지만 용은 용이니. 저 비열한 종족 놈이 핵을 가지게 해서는 안 돼.’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문지기가 슬금슬금 다시 케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쿠웅-!
청천향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진법이 힘을 잃어가는구나!”
등 뒤로 백 노인이 밉살맞게 외쳐댔다.
삐이이——
뒤이어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혈교 전역에 울려 퍼지는 이 소리는 분명 진법 장치가 멈추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경고일 터.
곧 혈교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문지기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찌하여 혈마께서는 오시지 않는 것이지?’
벌써 그녀가 당도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인데!
하지만 문지기는 그녀에게도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닫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밖에서 연신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혈마가 질 리는 없다.
다만, 그녀의 걸음을 막는 방해물이 꽤 끈질긴 것일 터.
‘그것도 저 침입자의 동료겠지.’
문지기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용이 핵을 가지기 전에, 저자의 손에 들린 핵을 뺏어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겠다.
‘분명 저 핵 때문에 저놈의 기운이 뒤틀리는 순간이 올 터이니. 그 찰나를 이용하면-’
그걸 이용하면-
문지기는 침입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운?”
케일은 의아했다.
‘아무 기운이 안 느껴지는데?’
손에 들린 보라색 핵은 원석과 비슷한 형태였다.
솔직히 좀 이쁜 돌멩이를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별로 안 위험한데?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건넨 말대로 케일은 멀쩡했다.
툭툭. 괜히 진법 핵을 두드려 보는 케일이었다.
“어, 어찌-”
그리고 그 멀쩡한 모습에 문지기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얼른 먹자!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다그침이 들렸지만, 케일은 문지기의 멍한 얼굴을 응시하며 핵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여기서 바로 먹으면 위험하고.’
나중에 필요할 때 쓰든가 아니면 부숴야지.
문지기는 못 부순다고 했지만, 케일은 왠지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그런 직감이 들었고, 대개 이런 직감은 정확하게 맞는 편이었다.
“아, 안 돼-”
케일의 품으로 사라지는 핵을 보고 문지기가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백 노!”
케일은 백 노인을 불렀다.
“문지기, 네가 책임지고 붙잡아!”
“어?”
백 노인이 멍하니 되묻는 때.
케일은 작게 속삭였다. 가까이 있는 누군가만 들을 정도로.
“부수자.”
그 말과 함께 케일이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이를 라온은 아주 찰떡같이 잘 알아들었다.
“좋다!”
그 말과 함께 검은 마나가 라온의 앞발에 솟구쳐 올랐고, 라온은 그 두 앞발을 모아 쥐더니 고대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신녀 찾으러 가야지.’
케일은 그 구멍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라온의 마법이 있으니 착지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안 돼!”
아래로 떨어지는 그에게 문지기의 절박한 표정이 보였다.
“안 돼!”
덩달아 뒤에서 똑같이 외치며 문지기를 잡으려고 진강시들을 움직이는 백 노인도 보였다.
‘노인네들끼리 알아서 잘 치고받고 싸우겠지.’
케일은 관심 껐다.
왜냐면-
“한 층 더.”
9층을 지나 8층까지 바닥을 부수고 내려가는 케일과 라온. 두 존재는 어느새 투명화 마법을 펼쳐 모습을 다시 감춘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케일은 둘의 기척이 들킬 일은 없다고 여겼다.
“무, 무슨 일이야!”
“여기서 우왕좌왕할 때가 아니다! 당장 위로 올라간다! 문지기님께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이미 청천향 내부는 난장판 중에서도 엄청난 난장판이었으니까.
분명 평소에는 우아하고 위압감이 넘쳤을 것이 분명한 모양새를 지닌 건물 안이었지만. 지금은 갑자기 부서지는 천장과 진법 장치에 생긴 문제로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 속에서 우리 둘을 찾기는 힘들지.’
케일은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라온과 함께 신녀 찾기를 시작했다.
‘혈마는 아직 다른 사람들이 잘 막고 있는 것 같고.’
콰아아앙—
콰앙—–
끊임없이 들려오는 굉음만 보아도, 동료들이 잘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물론 혈마를 상대하다가 동료들이 다치는 꼴은 보기가 싫으니, 최대한 빨리 청천향을 훑고 신녀나 오르세나 공녀들이 없으면 바로 혈마에게로 갈 작정이었다.
-서두르자!
라온도 마음이 급해 보였다.
케일처럼.
‘근데 이상하네.’
케일은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찝찝함이 생겼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쉬워.’
진법의 핵을 너무 쉽게 가져왔다.
물론 그게 라온이 용이고, 자신이 용의 힘을 지녀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러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이 진법은 혈교를 위해 존재한다.
그들의 은신처를 숨기고 나아가 은신처로 오는 길을 조종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니 신녀라는 존재와 함께 이곳에 모시며 문지기까지 두었을 터.
‘그런 귀중한 걸 지키는 결계가, 진법이 단순히 용이라고, 용의 힘을 지녔다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면 돼?’
당연히 안 되지.
‘그리고 혈교도 그런 걸 원하지 않았을 건데.’
그렇다면 어찌 된 일일까?
누가 그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답은 쉬이 예상 가능했다.
‘…아무래도 용들이 벌인 일 같은데.’
아피토유.
그 세계에 사는 보라 피 가문.
그 가문의 사냥꾼인 용들이 저렇게 진법과 결계를 만들었을 것 같다.
‘진법의 핵을 용들이 준 물건이니까.’
이 진법 장치 자체가 용의 협력으로 만들었으니, 어떤 수작을 부렸다면 용들이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음.’
케일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인간아, 안 가나?
라온의 보채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한 가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각 가문들은 협력을 하면서도 경쟁 상태였다.’
절대신을 만들기 위해 여러 세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냥꾼 가문들.
그들은 서로 협력하면서도 묘하게 서로에게 경계심을 품으며, 더 나은 업적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는 샤올렌에서 마주한 화이언스 가문이 혈교나 다른 가문에 대해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흐음.’
그런데 보라 피 가문의 용이 푸른 가문인 혈교를 도왔다고?
그리 귀한 핵을 주면서?
물론 거래를 했을 수도 있지만, 보라 피 가문은 자그마치 하나의 세계를 지금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예상되는 집단이다.
그런 곳에서 과연 경쟁 상대에게 좋은 일을 해주었을까?
‘아, 이거-’
이거 아주-
‘느낌이 안 좋은데?’
그 순간이었다.
쿠웅-
다시 한번 청천향이 크게 진동했다.
진법 장치가 멈춰져서 그런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이 진동이 건물 아래 저 땅 깊숙한 곳에서 피어올라 오는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다시 확인해야겠어.
케일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지금이 6층이니까.’
빠르게 신녀만 확인하고 한 번 더 진법을 보자.
물론 다른 동료들의 상태도 확인하고.
‘곧이야. 신녀는 5층에서 머문다.’
백 노인에게 들어둔 정보를 바탕으로, 5층까지 도달한 케일은 멈칫했다.
고개를 들었다.
콰앙! 쾅!
위층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점점 더 가까이에서.
‘문지기가 백 노인을 뿌리치고 오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