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5
2. 건물주(1)
“악기를 하더라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해. 이번에는 손가락이나 손목마저 망가질까 걱정된다.”
“그래서 취미생활을 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누나는 지금 ‘청춘노트’라는 미니시리즈 찍고 있죠?”
“IMF 직후의 젊은이들을 그린 이야기, 막장도 들어가고 신파도 들어가는 멜로물이야. 약간 시대극이기도 하고. 이제 다섯 편 정도만 더 찍으면 크랭크아웃이지. 생각보다 연기가 어려워.”
이제 막 4회까지 방영이 되었는데 촬영은 종반인 것 같았다. 절반 정도 사전제작이라 10회 정도의 여유가 있어 보였다.
“16화?”
“아니 20화, 원래는 16화인데 4화 2주 연장하기로 했어. 찍다보니 내용도 어중간하고 초반 반응도 좋아 바로 연장했어.”
힘든 표정이지만 한편으로 뿌듯한 기색이라 괜히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도 잘 할 자신이 있는데 못하니 안타까웠다.
“대박나세요. 여전히 인기절정인 것 같아요. 올해도 대상 후보일 것 같아요. 작년에 최우수상 받았죠?”
“SBC에서 받았는데 올해는 KDS에서 받아야 하는데 모르겠다. 항상 2등을 하는 것 같으니.”
성지은은 매번 상은 받는데 대상에서 세 번이나 미끄러져 상복이 없다는 말을 듣는 실정이었다. 드라마의 인기가 좋으면 같이 출연한 사람이 선배여서 양보하는 상황이고 단독 주연일 경우에는 시청률에서 조금 뒤떨어져 대상을 받지 못했다.
“올해는 대상을 받을 것 같아요. 이번 드라마 조짐이 좋잖아요. 이제 겨우 4회 방송했는데 올해 드라마 중에 최고 시청률을 갱신 했다던데.”
“너는 사귀는 사람은 없어?”
칭찬을 하니 쑥스러운지 화제를 바꾸는 성지은이었다.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동안 군대에 있었는데 그럴 시간도 없었죠. 누나는요?”
“나도 그래. 귀찮기만 하고. 누구 사귀려고 하면 뭔가 좋지 않은 말부터 돌고. 슬슬 만날까도 하는데 쉽지 않아.”
성지은도 이제 결혼을 생각할 나이였다. 하지만 여자 연예인 특유의 상황 때문에 짝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보통은 제대로 사귀기도 전에 스캔들이 나서 진척이 없고 설사 진지하게 만나더라도 이상한 편견 때문에 쉽지 않았다.
“제대 축하하고 나중에라도 내가 도울 것이 있으면 연락해.”
“나중에 봐요. 누나나 시간 나면 연락해요. 나야 백수로 한동안 지내니 남는 것이 시간일 것 같아요.”
박재선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지은도 촬영을 하다 잠깐 나온 상황이니 바로 돌아가야 하는 것 같았다.
2. 건물주
박재선은 성지은을 만난 후에 시간이 남아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획사 대표인 유희성에게 연락을 하여 만났다. 샤이닝로드의 활동 시절 일종의 경연프로그램인 ‘전설을 노래하자’에서 알게 된 연예계 선배였다.
보컬과 프로듀서로 만나 두 달 정도 한 팀으로 활약을 했던 사이라 꽤나 친분이 있었다. 몸이 망가지기 전이라 꽤나 괜찮은 성적을 냈고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던 사이였다.
현재의 상태를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특히 악기 연주와 작곡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했다.
“악기 레슨은 너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네 귀와 실력이라면 따라 치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그냥 연습실 하나 잡고 하루에 두 시간 정도씩 무작정 연습하는 것이 좋을 거야. 대신 실력이 늘었는지 살피는 것이 좋은데 그건 내가 봐주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 스튜디오에 와라.”
귀찮지만 직접 살펴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피아노, 건반악기는 키보드나 신디사이저 조작법까지 익혀두어야 할 거야. 당연히 그런 것을 배우면 편곡도 배울 수가 있어. 그리고 작곡 프로그램은 쓸 줄 알지?”
“그거야 기본적인 것은 배웠죠. 학교 과제도 내야 해서.”
출석 대신 리포트를 내야 했는데 그것이 실용음악과라서 과제물 제출로 대신 했고 작곡과 관련이 있어 일종의 편곡이나 습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에서 대신 해준다고 하지만 박재선은 최대한 본인이 직접 해결했다.
대신 해 줄 경우 회사에 약점을 잡힐 것 같았다. 대리 출석이나 대리로 과제를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약점을 잡히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컸다.
박재선은 유희성의 지시에 따라 그의 작업실에 있는 신디사이저나 키보드를 조작하기도 했다. 간단히 연주를 하기도 했다. 고가의 장비인 전자오르간은 사용해 보지 않아 헤매기도 했다.
“매일 비트와 멜로디를 찍는 훈련을 해. 그리고 명곡이라는 것과 현재 나온 곡을 최대한 많이 편곡해 봐. 하루에 이것도 한 세 시간 정도씩. 듣고 그대로 MR도 만들어 보고. 피아노, 작곡, 기타 순으로 연습을 해.”
유희성은 꾸준히 작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하면 뭔가 감이 잡힐 거야. 그러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랑 같이 점검을 해보자. 잘 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봐주면 좀 낫기도 하니.”
유희성은 따로 배우지 말고 독학을 하라고 했다. 이미 기초는 있기에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었다.
“연습실은 제대로 만들어. 아니면 적당한 것을 구하는 것도 좋아. 숙식까지 가능한 곳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야. 그런 설비가 있는 곳도 찾아보면 있을 거야. 아니면 기획사에서 쓰던 곳을 찾는 것도 방법이야. 별도의 설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스튜디오로 쓰던 곳도 매물로 나오는 경우도 많아.”
“남이 쓰던 곳을 인수하면 싸게 먹히겠군요.”
방음 설비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게 비용이 든다는 말이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망하는 기획사도 많아. 터가 안 좋아서 망했다고 기피하는데 그건 미신이고. 불난 곳 들어가면 장사 잘 된다는 말이 왜 나왔는데? 그거야 그런 곳이 안 나가니 그런 말로 해서 찝찝하지 않게 해주려고 하는 말이잖아.”
유희성은 혹시라도 망한 회사가 쓰던 건물은 터가 좋지 않아 망했다고 기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여 부언했다.
“저는 그런 것 따지지 않아요. 청담동이나 합정역 근처를 살피면 연습실을 구할 수도 있겠네요.”
“돈 있으면 아예 건물을 하나 구해. 임대료 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으니. 그런 다음 맘 편하게 틀어박혀 연습에 열중해. 그리고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줄어들 것이니.”
유희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것을 당부했다. 게을러도 문제이고 너무 혹사를 해도 문제이니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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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은 시나리오를 들고 구걸을 하러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다들 재미는 있는데 제작은 어렵다고 퇴짜를 놓았다. 그러니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잘 생각했어. 넌 역시 로판이 제격이야. 이번에 현대물 로판을 쓴다고? 이거 다들 긴장해야겠는데.”
여성 취향의 로맨스 소설은 순수 로맨스 소설과 로맨스 판타지, 여기에 현대물 로맨스 판타지로 분야가 갈렸고 유지은은 계속 로맨스 판타지를 고집했다. 그런데 현대물 로맨스 판타지로 방향을 바뀌었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유지은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지만 다섯 살이나 나이가 많은 박민아가 그렇게 말을 했다. 둘은 같은 작가사무실을 사용하기도 했고 로망스 룸이라는 로맨스 소설 전문 작가 에이전시의 공동대표이기도 했다. 그들은 4년 전에 작가사무실을 만들면서 에이전시도 겸하고 있었다.
“작품을 발표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제는 일반인 월급만큼도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더 늦기 전에 작품을 발표해야죠.”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지 않으면 수입은 점점 감소했다. 그리고 일정 시간, 1년 정도가 지나면 잊힌 작가가 되었다.
“너야 그동안 저축한 것도 있잖아. 집에 이 건물 절반까지.”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이제 다시 글을 쓸 것이니 그렇게 알아요. 앞으로 두세 작품은 뽑을 이야기도 있고요.”
작가마다 전문 분야가 있는데 그것도 서너 작품이지 많아지면 자기복제현상이 벌어졌다. 천편일률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장르와 배경이 바뀌면 캐릭터의 행동방식이 달라지기에 그런 경향이 줄어들었다. 물론 독자도 달라지는 것도 좋았다.
사실 유지은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도 자기복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였다. 처음에야 무시할 수 있지만 점점 그런 말이 돌면서 대세가 되어갔다.
“참, 네가 좋아하는 박재선 제대했더라.”
유지은은 공부도 잘하고 발표한 작품도 많아 다른 유명한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에 진학할 수도 있지만 중위권 대학인 서울문화예술대학에 입학한 이유가 1년 선배인 박재선이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책상 주변에 박재선의 사진이 코팅이 되어 붙여져 있었다. 3년 전에 샤이닝로드가 해체되었지만 유지은에게는 현재 진행형 아이돌이었다.
“알아요. 인터넷 뉴스에도 짤막하게 나왔고 길거리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 그런데 조용하다. 이제 별로 관심 없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좋아하는 것에 불과하죠. 앨범 나오면 앨범 사고 음원 나오면 스트리밍 하는 정도이죠. 사인회나 콘서트 하면 티켓 구할 수 있으면 가는 거고.”
유지은은 욕을 먹는 사생팬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팬클럽에 가입했지만 방송국에 방청을 가지는 않았다. 학교 다닐 때도 그냥 멀리서 지켜보았고 우연히 마주치자 사인을 받고 사진을 같이 찍은 정도가 고작이었다.
물론 그 사진은 인화를 하여 액자에 넣어 책상 정 가운데에 세워져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애인과 찍은 사진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물론 노래가 좋아 가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였는데. 너 같은 작가마저도 그러다니. 너도 그렇게 좋아하는 독자나 팬들이 있지 않아?”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사실 엘프의 여왕이 좋아하는 배우 이재선이 바로 박재선을 모델로 삼아서 만든 캐릭터이지?”
엘프의 여왕은 차원이동에 환생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렇기에 엘프의 여왕이지만 외모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처음에는 차원이동만 다룰까 했는데 주민등록부터 국적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많아 결국은 영혼만 이동시켜 한국인으로 환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도 있지만 그저 모티브 정도이죠.”
“나중에 박재선을 이재선 역으로 캐스팅해. 그러면 성덕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제작을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유지은은 시무룩한 어조로 대답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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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성과 한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 무렵에 외삼촌 최우철의 집으로 갔다. 건강 때문에 술도 먹지 못하니 유희성과 오래 있을 상황도 아니었다.
“형, 제대 축하해.”
대학에 다니는 외사촌 최경진이 문을 열어주면서 인사를 했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상황이니 이제 스물둘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다.
“너도 일찌감치 군대 가는 것이 좋지 않아? 나이 먹고 가는 것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더라.”
스물다섯에 가서 스물일곱에 전역한 박재선의 말이었다. 나이 먹고 가서 서너 살 아래 고참들에게 시달리다 온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직접적인 구타나 가혹행위는 없지만 언어폭력은 피할 수가 없었다.
나이 어린 고참이 던지는 반말 자체가 거슬리기 일쑤였다. 적응이 되다가도 막상 돌아서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올해 2학년이에요. 내년에 가려고요.”
다섯 살 차이니 3학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재수하여 2학년이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왔으니 그럴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일단 제대 축하한다.”
악수부터 하자면서 최우철이 손을 내밀었다. 평소에도 만나면 악수하자고 손부터 내밀었다.
“오늘 낮에 재판이 하나 있어서 시간을 내기 그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시골에 있으면 답답하지? 이말 하면 그렇지만, 나도 거기 가면, 하루 지나면 심심해 더 있기 힘들더라고.”
“그렇더라고요. 그제 내려갔는데 어제 오후 되니 좀이 쑤시는 것이, 참. 그래서 일단 서울에 올라오려고요. 거처를 구해야 하는데 거처 구하기 전에 연습실부터 구하려고요. 집부터 구했다가 근처에 연습실이 없으면 낭패라니 말이에요.”
“그건 그렇다. 목동에 집구했는데 북부지검 발령 받으면 생고생이지. 그러면 연습실부터 알아봐야지. 저번에 집 중개한 청담동 박 여사에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 어느 정도를 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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