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12
01011 Omnibus – Queen Of Silhouette. =========================================================================
이번 회에는 후반부에 잔인한 내용이 있습니다.
상기 내용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꼭 생략을 부탁드립니다.
*
살문 로드의 발끝이 시커멓고 길쭉한 뭔가를 건드렸다.
시체, 사람의 주검이다.
정수리부터 오금까지.
세로로 쭉 찢겨 버려진 게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이었다.
죽기 전, 미처 감지도 못한 눈을 보고 있던 살문 로드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실수했나.’
살문의 총인원은 열여덟 명.
한데 여기까지 오면서 본 시체만 벌써 일곱 구째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까지 포함하면 승부는 이미 난 것과 진배없다.
‘도망쳤어야 했나?’
자신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방심한 것도 아니었다.
김수현을 고연주 이상의 실력자로 평가하고 일을 계획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하나의 가정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고, 그것은 완벽한 패인으로 다가왔다.
‘설마 놈이….’
보아하니 부하는 각개로 격파당한 게 분명했다.
암살자가 그렇게 당했다는 건 더 없는 굴욕 중의 굴욕이다.
하지만 살문 로드는 수하를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왜냐면 자기 자신도 감조차 못 잡고 있으니까.
그때였다.
“!”
불현듯 하염없이 천장을 보고 있던 두 눈이 번개처럼 왼쪽으로 내려갔다.
어디선가 사박사박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기다리자, 곧 이십 미터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누군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 붉은빛을 반사하는 단검을 든 채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는 사내는 다름 아닌 김수현이었다.
‘날 찾는 건가.’
이윽고 김수현의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살문 로드는 본능에 따라 어둠 속으로 동화했다.
숨소리까지 신경 쓰며 뒤를 밟았으나, 똑같이 모퉁이를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김수현은 보이지 않았다.
“?”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사방을 경계하자, 이번에는 정 반대편에서 아까처럼 두리번거리는 김수현을 볼 수 있었다.
‘함정인가?’
직감이었다.
하지만 알아차렸다 해도 변하는 건 없다.
함정이든 아니든,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였다.
살문 로드는 김수현이 가는 길을 유심히 관찰한 후, 벽을 사이에 두고 빠르게 미끄러졌다.
‘최악은 아니야.’
어쨌든 김수현의 소재는 파악했다.
물론 이번에도 사라져 있을 가능성은 다분-.
‘잠깐만.’
물 흐르듯 움직이던 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살문 로드는 뭔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직접 은신처를 설계했으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한데, 방금 김수현이 돌아간 곳은 아무것도 없는 꽉 막힌 지점이었다.
들어간 지 몇 분이나 지난 만큼 지금쯤이면 다시 나와야 정상일 터.
그런데 나오지 않는다는 건….
“그래도 넌 생각은 하네.”
등 뒤로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살문 로드의 몸이 급작스럽게 경직됐다.
잠깐 고민하는 동안 소리 없이 후방을 점거당해 버렸다.
부릅뜬 두 눈동자에 갈등의 빛이 스쳤다.
“…놀랍군.”
땡강, 양손에 쥐었던 단검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살문 로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양팔을 들어 올렸다.
저항 의사가 없다는 듯 손을 활짝 펼친다.
“호. 똑똑하기까지 한걸?”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뭐 이미 하기는 했지만, 항복하면 살려줄 건가?”
“글쎄. 일단 그 상태로 뒤돌아. 천천히.”
살문 로드는 순순히 머리를 주억거렸다.
주춤주춤 하며 느릿하게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내 삼 분의 이쯤 돈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살문 로드의 양 소매에서 새로운 단검 두 개가 벼락같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돌아서는 자세 그대로, 살문 로드는 필생의 힘을 담아 왼손에 쥔 단검을 힘껏 던졌다.
칼끝은 목표 지점으로 향해 빛살처럼 쇄도했고, 팔짱 끼고 서 있던 김수현의 심장을 꿰뚫는다.
그리고, 지나쳤다.
하릴없이 공기를 가르며.
“이…!”
대경하는 찰나, 왼쪽 무릎에 무언가 예리한 것이 푹 박히는 감각을 느꼈다.
몸의 균형이 어그러지는 와중에도 살문 로드는 이를 악물며 오른팔을 높이 쳐들었다.
다음 순간, 어디선가 전광석화처럼 쏘아진 붉은 단검이 그의 오른손을 정확하게 찍어버렸다.
퍽!
“크으으으!”
얼마나 강하게 던졌으면 살문 로드의 오른손이 터지다 못해, 몸 자체가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빙그르르 돌았다.
땅으로 쓰러지기도 전에 갑자기 복부를 세게 걷어차는 타격이 이어졌다.
“커헉, 쿨럭!”
목구멍에서 치솟은 뜨끈한 핏물이 기침에 섞여 번져 나왔다.
“기껏 위치를 노출해줬는데 말이야.”
벽에 처박힌 살문 로드의 몸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그늘졌다.
“정면 승부는 말도 안 되고. 암살도 힘들 것 같고. 그래서 선택한 게 고작 근거리 기습인가? 암살자 실격이잖아.”
명백한 비웃음.
위에서 떨어지는 뜨듯한 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그러자 겨우 숨만 몰아쉬던 살문 로드가 가까스로 눈을 든다.
어지러운 천장 아래, 한껏 치들 린 피에 범벅된 발이 무자비하게 내려꽂히고 있었다.
*
최후까지 믿었던 로드와 이어지던 실이 끊겼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살문 전원의 연결이 해제된 셈이다.
홀로 남은 늘설영은 무서운 속도로 살문 로드의 현이 끊어진 지점으로 내달렸다.
설령 위치가 노출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로드만큼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 살려야 했으니까.
그렇게 단단히 벼르며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늘설영을 기다리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허탈함이었다.
살문 로드도, 김수현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거라곤 벽에 큼직하게 적힌 글귀뿐.
메시지를 확인한 늘설영은 신음 같은 탄식을 흘렸다.
핏물이 덕지덕지 흘러내리는 벽에는 아주 간단한 전언이 적혀 있었다.
『돌아와.』
단 세 글자.
늘설영은 나는 듯 달렸으나, 돌아가는 길목마다 시체가 된 동료와 마주해야 했다.
목이 매달렸거나, 팔다리가 잘린 축은 오히려 양호한 편에 속했다.
몸의 절반이 우악스럽게 찢겼거나, 벽 문에 끼어 끔찍하게 짓이겨진 주검도 있었으니까.
김수현이 보란 듯이 전시해놓은 탓에, 늘설영은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둠 속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동료들.
그 뒤를 느긋이 따라가며 한 명 한 명 도살하는 김수현….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동료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훤히 보였다.
암살자가 치열한 전투를 한다는 건 웃기는 일이지만, 농락당하거나 학살당한다는 건 더더욱 웃기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원래 있었던 장소를 목전에 뒀을 무렵, 늘설영의 두 다리가 갑자기 멈칫한다.
“…….”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들어가는 통로에는 선혈로 이루어진 발자국이 천지로 깔렸다.
역하고 비릿한 냄새가 심하게 풍기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조금씩 내부 광경이 드러났다.
이내 완전히 안으로 들어섰을 때, 늘설영은 격한 헛바람을 들이켜고 말았다.
으으, 으으….
흐으, 흐으….
신음의 합창이 주위에서 허밍처럼 흐른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아직 살아 있는 동료 아홉 명이었다.
문제는 전원이 방 한가운데에 일렬로 꿇어 앉혀져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살문 로드도 포함해서.
전신에 새겨진 발로 밟은 자국과 각각 다른 방향으로 기괴하게 비틀린 두 팔을 확인한 순간 늘설영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겼다.
“관두지그래.”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온 목소리가 열 손가락을 쫙 펼치는 늘설영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초리가 왼쪽을 향한다.
돌로 만들어진 탁자에 김수현이 걸터앉아 있었다.
가볍게 낀 팔짱.
꼰 다리.
감은 눈과 입에는 연초를 문 채 살짝 머리를 숙인 상태였다.
뭔가 깊은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잠시 후, 김수현이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한쪽 팔을 뻗는다.
언제 되찾았는지 탁상에 세로로 꽂힌 무검의 칼자루를 살그머니 움켜쥐었다.
이윽고 반쯤 눈을 뜨더니 상대를 직시한다.
“내가 검을 잡으면…. 넌 그 자리에서 죽어.”
소슬한 음성이 귓전에 울려 퍼지자, 늘설영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저 무채색 한 눈동자.
생소한 감정이 전신을 휩싼다.
꼭 상어 떼가 헤엄치는 망망대해에 알몸으로 던져진 기분이다.
덤비는 순간, 죽는다.
결국에는 두 팔을 힘없이 늘어트리고 말았다.
“뭘…. 원해….”
“이제 좀 대화할 자세가 된 것 같군.”
김수현은 차분히 팔을 거뒀다.
그 손으로 턱을 괴며 다시 눈을 감더니 검지로 탁상을 톡톡 두드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원하는 거야 많지만…. 우선 의뢰인부터.”
“의뢰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숲에서 다 말한 거잖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황금 표국과의 악연 때문이라고! 연주 언니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흐음, 숨을 흘린 김수현이 탁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말했다.
“됐고, 게임이나 하지.”
“뭐?”
뭔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반문.
대답은.
쾅!
“깍!”
비명이었다.
김수현은 가까이 있던 한 여인의 뒤통수를 붙잡고 돌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이마가 깨졌는지 여인의 작달막한 얼굴과 바닥의 접합 면에서 핏물이 세차게 튀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탓에 늘설영은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김수현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말을 잇는다.
“게임 방법은 간단해. 네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하는 즉시, 게임은 멈춘다.”
통보하듯 말한 김수현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뒤통수를 잡은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으…. 으으…!”
압력은 순식간에 강해졌다.
연약한 피부와 두개골이 시시각각 우그러지고, 여인은 덧없이 두 팔을 허우적거린다.
이어서 안면이 바닥을 쪼개고 들어갈 정도로 심해지자, 돌연 우두둑하는 불쾌한 소리가 울렸다.
“끼이이이! 까아아아아아아아!”
사방팔방을 휘젓던 양팔이 이제는 바닥을 미친 듯이 두들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에 불과했다.
내구력이 한계에 달한 순간 뻑,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그와 동시에 단말마를 지른 여인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박살 난 머리통이 으깨진 뼛조각과 살점 섞인 뇌수를 울컥 토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는 계속 움찔움찔 떨린다.
하지만 그조차도 곧 조용해졌다.
탁탁 손을 턴 김수현은 다시 옆으로 이동해 사내의 어깨에 왼손을 얹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돋보이는 상당한 미남자였다.
“꽤 잘생겼는데.”
김수현이 오른손으로 그의 한쪽 팔을 잡으며 이죽거렸다.
그대로 잡아당기기 전, 힐끗 늘설영을 바라봤다.
“그래서, 의뢰인은?”
급격히 숨을 몰아쉬던 늘설영이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없다…. 했잖아….”
“그래?”
피식 웃은 김수현이 사내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순간적으로 살이 억지로 찢기는 소리가 나며 붉은 속살과 허연 뼈가 점점이 드러난다.
“크으으윽!”
사내의 머리가 뒤로 한껏 젖혀졌다.
다음 순간, 퍽 터지는 소리가 나며 혈액이 바닥에 흐드러지게 흩뿌려졌다.
팔을 강제로 한 바퀴 돌려 기어코 어깨와 분리한 것이다.
사내의 입술 사이로 허연 거품이 흘러나왔으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뜯은 팔을 어깨 뒤로 던진 김수현이 남은 팔은 물론, 두 다리까지 모조리 뽑아 버렸으니까.
결국, 남은 건 얼굴과 몸 그리고 엉덩이뿐.
김수현은 봇물처럼 피를 분출하는 사내를 손수 들어 올려 탁상에 철퍽 얹었다.
“이 정도면 밤의 거리에서 오나홀로 팔 수 있겠지. 변태 남색가들이 환장하고 달려들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설영은 여전히 답이 없다.
아니, 숫제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가슴을 추스르는 듯 가슴이 들썩들썩한다.
김수현도 어지간하지만, 늘설영도 독종이었다.
그때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던 김수현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쳤다.
“게임이 즐거운가 보지?”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이야.”
“계속 그러네…. 이번에는 이놈으로 해볼까?”
“……!”
찰나의 순간, 힘겹게 눈을 뜬 늘설영이 동요했다.
김수현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살문 로드를 선택한 것이 정답이었다.
“뭐, 계속 눈 감고 있으라고.”
그렇게 말한 김수현은 흐릿한 눈으로 손을 뻗었다.
“잠…!”
늘설영이 다급히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우악스럽게 파고든 손가락은 안구에 단단히 틀어박혔다.
단단히 쥔 채 쭉 뽑아내자,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간신히 의식을 붙잡고 있던 살문 로드의 몸이 펄떡거렸다.
뽀득!
안구에 붙어 딸려 나오던 붉은색 신경 섬유 줄기가 끊어지는 소리였다.
“흐.”
김수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제껏 물고 있던 연초를 뻥 뚫린 눈구멍 속으로 넣어 비볐다.
그 순간이었다.
“그만! 그만해!”
오열과 절규가 뒤섞인 비명이었다.
============================ 작품 후기 ============================
후기를 적으면서 생각이 드는 게 생각보다 너무 잔인하지 않았는지 걱정이 듭니다.
물론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독자님들도 계시겠지만, 반대로 눈살을 찌푸린 분들도 분명히 계실 테니까요.
상단의 경고 메시지는 그런 분들을 위해 적어놓은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다음 회에도 경고 메시지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잔인한 내용은 없지만, 성적으로 불편하실 수 있으니까요.
이번 옴니버스도 이제 거의 끝에 다다른 만큼,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_(__)_
PS. 살문 로드의 안구는 차후 회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