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27
01026 Omnibus – Sovereign Of Sword. =========================================================================
“이야, 우리 실라프. 아침 일찍 일어났네? 잘 잤어?”
“네. 아버지도 간밤에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럼 그럼. 아, 배고프다. 밥 먹을까?”
“네, 좋아요.”
가족과 함께 하는 단란한 아침 식사 시간.
“아버지. 항상 맛있는 밥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라프는 식탁 의자에서 내려와 꾸벅 배꼽 인사를 했다.
난 은연중에 인중이 길쭉해지려는 걸 참았지만, 내심 흐뭇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생후 일 개월도 안 된 아이가 어찌 저렇게 예의가 바를까?
속을 썩이기는커녕 뭔 일을 하든 알아서 척척 한다.
하긴 괜히 머셔너리 클랜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아니겠지.
특히 육아에 지친 아내들한테는 더더욱.
“저….”
다시 자리에 앉으려던 실라프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아기 천사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머뭇거리는 모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왜?”
“아버지 아버지. 저도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안아달라고?”
“네. 저도 안아 주세요.”
아, 어제 수정이를 안고 우유를 먹이는 걸 한참 쳐다보더니.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건가?
굉장히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럼. 안 될 것 없지.”
두 손을 뻗자, 실라프는 환하게 웃으며 마주 손을 뻗었다.
“실라프.”
그러나 손이 채 닿기도 전에 고요한 음성이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내 옆에 앉은 세라프가 실라프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식사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리고 어리광부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네….”
실로 엄하기 그지없는 음성이었다.
실라프의 팔이 내려가고 고개도 시무룩이 숙어졌다.
팔락거리던 자그마한 날개도 축 늘어졌다.
“어서 앉으세요.”
실라프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거참, 너무하네.
애가 안아달라고 할 수도 있지.
“우리 딸, 맛있게 먹어?”
안쓰러운 마음에 챙겨주자, 실라프의 미소가 조금이지만 살아났다.
“네!”
방긋방긋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숟가락을 잡는다.
“실라프.”
그러나 이번에도 세라프의 불호령이 여지없이 떨어졌다.
“무엄합니다. 아버지가 수저를 드시기 전 아닙니까?”
“아….”
“분명히 가르쳐줬던 거로 기억합니다.”
“…깜빡 잊었어요.”
실라프는 아주 잠깐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양 뺨도 뾰로통해진 게 약간 불만이 있는 표정이랄까?
찰나이기는 했지만, 놓치지 않았는지 세라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실라프. 숟가락 놓으세요.”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수현…. 실라프? 따라오세요.”
“죄송해요. 어머니. 잘못했어요.”
당황한 실라프가 애처롭게 빌었으나 세라프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는 그녀를 실라프는 안절부절못하며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렇게 둘이 식당을 나가니 경직됐던 분위기도 풀렸다.
난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좀 너무한 거 같은데.”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아버지.”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있던 마르가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실라프는 이미 지성을 갖춘 채로 세상에 나왔잖아요. 자기 자신이 천사라는 주관이 뚜렷한 상태로요.”
“인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라는 말은 알겠다. 하지만 방금은 모로 봐도 아이의 행동이었어.”
“어쩔 수 없어요. 이미 만들어진 성정을 변화시키려면 사소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부디 어머니를 이해해주세요.”
“후….”
실라프의 육아는 세라프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는 했다.
난 천사에 관한 지식이 극도로 적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도 가볼게요.”
계속 식당 문을 바라보고 있자, 의자가 드르륵 끌리는 소음이 들렸다.
왜인지 멋쩍은 기분이다.
“미안해. 실라프 좀 부탁할 게.”
“그럼요. 언니 노릇 톡톡히 하고 올게요.”
오히려 기쁘다는 듯이 웃어 보인 마르는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졸지에 식탁에 혼자 남게 됐지만, 겨우 한 시름 놓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아에 관한 건 서로 하나씩 맞춰가면 되는 일이지만, 실라프의 상태는….
제 3의 눈으로 확인해본 결과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반천반신(半天半神).
그리고 One – Third.
삼 분의 일이라는 뜻이다.
뭔 의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연관성은 존재한다.
난 데미(Demi), 셀라프는 원-서드, 나머지 아이는 쿼터(Quarter).
각각 절반, 삼 분의 일, 사 분의 일을 뜻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
혼자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 소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문제였다.
그런데도 아직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는 것일 터.
더 끙끙 앓아 봤자 시간 낭비일 것 같고, 도움을 구하는 게 낫겠지.
결심이 서면 행동으로.
난 잠깐 들었던 숟가락을 도로 내려놓았다.
조언자로 생각한 여인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식당 복도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일 층 로비 탁자에 있었으니까.
색 붉은 생머리를 정갈히 늘어트린 화정은 탁자에 앉은 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
귀에 이어폰까지 꼽고서 굉장히 집중한 얼굴로 노트북을 보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저 노트북은 누구한테 받은 거지.
청순함과 날카로움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용모를 잠시 감상하다가, 가볍게 헛기침하며 걸음을 뗐다.
“오지 마.”
그러나 한 걸음 옮기기도 전에 화정이 말을 내뱉었다.
날 보지도 않은 채.
“가까이 오기만 해봐. 거리는 무조건 일 미터 이상 유지해. 내 몸에 함부로 손댈 생각하지도 마. 나 쉬운 여신 아니야.”
화정은 이 모든 말을 매우 빠르게 마쳤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톡 쏘는 음성이었다.
“…뭐 보는데?”
“이거? 아니 답하지 말라. BC 4000.”
처음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화정은 드물게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원하게 뻗은 다리를 앞뒤로 흔들기까지.
“선사 시대 원시인들의 일상을 꽤 코믹하게 보여주네. 생각보다 재밌어.”
그러더니 어여쁜 손을 들어 휘휘 젓는다.
요즘 왜 모습이 보이지 않나 했더니 드라마에 빠져 있었냐.
어쨌든 그건 그거고 난 지금 상당히 절박하다.
“도와줘.”
“?”
그렇게나 뜻밖의 말이었던 걸까.
화정은 비로소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상당할 게 있어서.”
“상담?”
새초롬한 눈동자가 실쭉해졌다.
“임신시키러 온 게 아니라?”
“야.”
꼭 말을 해도.
“아니, 얼마 전 광휘의 사제가 임신했다는 말을 들었거든. 아니면 됐어. 중요한 문제야?”
“나름. 이리저리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심지어 제로 코드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해서….”
“…뭐?”
그 말에 화정의 태도가 달라졌다.
곧바로 이어폰을 빼더니 일시 정지라도 하는 듯 노트북 키보드를 가볍게 터치했다.
이내 발로 맞은편 의자를 밀면서 말했다.
“뭔데?”
*
“흐아아아…. 응?”
겨우 애도 재웠겠다.
입이 늘어지라 하품하며 계단을 내려오던 제갈 해솔이 문득 눈을 게슴츠레 떴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로비 탁자에 앉은 두 남녀가 시야에 잡혔을 뿐.
화정이 무어라 말을 하고, 김수현이 가끔 머리를 끄덕거리는 게 자못 심각한 분위기였다.
“네가 게헨나의 생명력을 받아들인 게 몇 번이었지? 두 번? 세 번?”
“아마 그 정도 될걸. 그게 원인이라는 거야?”
“아니, 들어봐. 일반적으로 인간이 신의 생명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신으로 변하는 경우는 없어. 수천수만 번이라면 또 모를까? 고작 두세 번 정도로는 가뭄에 찌든 밭에 영양 만점 비료 한 봉지, 물 한 탱크 부은 정도밖에 안 돼. 아니면 돛 잃은 배에 잠깐 강한 바람이 불었다 지나간 정도?”
“그럼….”
“그런데 넌 좀 상황이 달라.”
“어떻게?”
무언가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 같은 분위기는 학구심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제갈 해솔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제갈 해솔은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화정의 말은 계속 이어지는 중이었다.
“방금 말했듯이 단발적인 기운 흡수는 네 근본에 아무런 영향도 못 줘. 하지만….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좀 많이.”
“으음. 미안해. 좀 쉽게 이야기해 주겠어?”
“멍청하기는. 네가 심장에 누굴 품고 있었는지 벌써 잊은 거야?”
“아…. 설마. 그럼 네가?”
이제야 감을 잡았는지 김수현의 낯빛이 심각해졌다.
화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확신하지는 못해. 하지만 이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어. 왜냐면 정황상 증거는 충분하니까.”
김수현은 무려 오 년이 넘게 화정과 일심동체였다.
체내에 품은 이상 일 초도 빼지 않고 화정과 함께 해왔다.
그뿐일까?
일 차, 이차, 삼 차 각성을 이루며 화정의 힘이 상승했고, 미치는 영향 또한 강해졌다.
거기다 화정과 강제로 일체화하는 염화 능력을 사용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 시점에서 게헨나가 생명력을 나눠준 것도 다르게 볼 수밖에 없어.”
그 말대로였다.
김수현의 몸은 가뭄에 찌든 밭이 아니라, 화정에 의해 조금씩 개간되던 질 좋은 밭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영양 만점 비료와 물을 붓는다면?
돛을 잃은 배가 아니라 돛단배에 강한 바람이 불었다면?
“뭐, 결론은 진명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는 거지. 너는 데미 갓, 실라프는 원-서드 갓, 나머지 자식은 쿼터 갓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거네. 물론 어디까지나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잠깐만. 장난하는 거지? 아니, 아닐 수도 있지?”
“안타깝지만, 아닐 가능성은 적어.”
“…….”
김수현이 말을 끊으며 물었지만, 화정은 단호히 일축했다.
“이쯤 됐으면 너도 알고 있지 않아? 증거도 있잖아. 애초 비정상의 극치를 달리는 네 사용자 정보부터가 이상해. 그 천사가 네 아이를 잉태한 거나, 아니면 게헨나 딸이 네 자식한테 잘해주는 거나.”
“앞에 두 개는 그렇다 치고, 수나는 왜?”
“바보. 그럼 걔가 괜히 태도를 바꿨겠어? 인간을 벌레 보듯 하는 애가? 다 어느 정도 쓸만한 구석이 있으니까 언니 노릇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러면 결국, 전부 내 탓이라는 건가.”
김수현의 얼굴이 조금이지만 일그러졌다.
“글쎄…. 내가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속단하기는 이르지 않을까?”
자책하는 음성에 화정은 모호한 기색으로 팔짱을 꼈다.
살짝 긴장한 두 눈은 상대의 의중을 살피는 것 같기도 하다.
“흐음 흐음.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죽고 싶다면 확실히 꿈 깨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난 반이나마 신으로 살아보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김수현이 뭔 말이냐는 얼굴로 힐끗 바라봤다.
“수명은 말할 것도 없고. 무력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을걸?”
화정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
“아마 지금이라면…. 게헨나나 날 상대로도 꽤 싸울 것 같은데.”
“뭐?”
“으스대지 마. 착각하지 마. 어디까지나 현신이 아니라 화신을 기준으로 잡은 거니까. 진심으로 하면 너 따위는 상대도 안 되니까.”
날카롭게 외친 화정은 다시금 조곤조곤 한 어조로 말했다.
“흠흠. 아무튼, 봐봐. 신의 그릇이라며. 말인즉 넌 이제 내가 없어도 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한 힘의 행사가 가능하다는 거야. 네 행동 하나, 휘두르는 칼질 한 번에 너 자신만의 격이 담긴다는 거지. 그건 신기 사용자와 비교할 바가 못 돼.”
“으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정의 음성은 살살 구슬리는 듯한 기색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었다.
김수현은 무거운 상념에 잠겨 있는 중이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잠깐의 공백 후, 화정이 살그머니 눈치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 나도 좋고. 신과 신의 인연이라면 내 위신도 세울 수 있고, 어깨도 으쓱할 수 있고….”
힐끔힐끔, 상대를 곁눈질하는 두 눈.
탁자 아래서 의미 없이 이어지는 손장난.
“어…. 뭣보다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 있을 수도….”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작아지다 못해 중간중간 흐려지기까지 했다.
그 탓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김수현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말했다.
“응? 뭐라고 했어?”
역시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대답이었다.
“…닥쳐.”
눈살을 찌푸린 화정은 홱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돌렸다.
============================ 작품 후기 ============================
이로서 김수현 무쌍의 밑밥은 확실히….(으헤헤헤.)
다음 편부터 이번 옴니버스의 주된 내용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예전 후기에서 말씀드렸듯이 평행 세계를 다룬 내용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독자분들은 유현아가 살아난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외전을 적을 때 참고하고 싶어서, 독자분들의 의견을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_(__)_
PS. 오늘 첫 강의가 10시인데 지금 완성을….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