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26
01025 Omnibus – Sovereign Of Sword. =========================================================================
Omnibus – Sovereign Of Sword.
세라프에게 들은 결과, 천사가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은 인간과 비슷한 점도 있으나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했다.
첫 번째는 기간.
인간이 출산까지 걸리는 시간이 열 달이라면 천사는 두 달에 불과해 상당히 빠르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과정.
과정이란 좀 포괄적인 단어인데, 천사는 임신 후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아이가 아니라 알의 형태로 출산한다.
거기서 또 한 달이 지나면 아이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다.
좀 더 정확히 말해보면 처음 한 달은 세라프가 어미로서 경험과 지식을 전해주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달은 아이가 어미에게 전수받은 것을 받아들여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즉 아기 천사는 어느 정도 지성을 갖췄을 때 세상에 나오게 된다.
나오자마자 부모를 알아보고 심지어 의사 표현도 한단다.
들어보니 요정이 출산하는 과정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보라면 내심 아쉬운 감도 없잖아 있었다.
부모로서 애를 키우는 재미가 반감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애초 어쩔 수 없는 일이거니와, 태초로부터 정해진 법칙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 태어나든 내 자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세라프가 내 애를 잉태한 지 이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와 세라프는 마침내 대망의 파각(破却)을 눈앞에 두게 됐다.
약 일이 주 정도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세라프가 알을 낳은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나고 발생한 일이었다.
“또 움직인다.”
장소는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옥상.
난 천사의 날개에 덮인, 세라프가 품고 있는 순백색의 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좌우로 한들거리는 알의 크기는 가로 이십오 센티미터, 세로 오십 센티미터.
타조 알보다 약 두 배에 달하는 부피다.
물론 처음 낳았을 때부터 이 정도로 거대하지는 않았다.
세상에 나오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점차 크기가 커진 건데, 세라프는 아이가 지식을 잘 흡수하고 있다는 방증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잠깐 눈을 떼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중천에 걸린 해가 보였다.
파각의 조짐이 보인지 어언 두 시간은 흐른 것 같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움직임이 꽤 격렬했지만,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흔들림은 현저히 잦아드는 중이었다.
심지가 다 타버린 촛불이 서서히 사그라지는 것처럼.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아이는 나오고 싶어 무지 애를 쓰는 것 같은데, 껍질이 단단해도 너무 단단하다.
어떻게 구멍이라도 하나 뚫어준다면 좀 더 수월하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현.”
나도 모르게 팔을 움직인 찰나, 손은 마주 뻗어진 고운 손에 붙잡혔다.
세라프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말은 한 건 아니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다.
아이 스스로 깨고 나오도록 놔두라는 거다.
난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손을 거둔 세라프는 알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표면에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작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힘을 내세요. 실라프. 저도, 당신의 아버지도, 그리고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두가 건강하게 태어날 실라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세라프의 속삭임에 알의 움직임이 멈춘 것도 잠깐.
다음 순간, 강한 소음과 함께 툭툭 껍데기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알의 상단.
비록 손톱만 한 금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균열이었다.
세라프도 봤는지 두 눈이 이채를 뗬다.
그러더니 아차 하며 날 돌아봤다.
“수현!”
“왜 그래? 뭐 잘못되기라도 한 거야?”
“아닙니다. 지금 바로 내려가셔서 한 명만 데려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 명만?”
이상한 말이었다.
현재 옥상에는 우리 둘뿐이다.
세라프가 요청한 것으로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를 혼동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지성을 갖추고 태어난다고는 하나, 알고만 있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옥상에 출입 금지 지시를 내린 거고.
그런데 갑자기 한 명을 데려오라고?
“누구?”
세라프는 잔잔히 미소 지으며 데려올 사람을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균열은 조금씩 커져서, 난 곧바로 몸을 돌려 옥상 문을 열어젖혔다.
전속력으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니 일 층에서 웅성웅성 모여 있는 클랜원들이 보였다.
힘껏 달려 내려오는 날 보더니 모두 놀란 기색을 짓는다.
일부러 굉장히 다급한 체했다가, 서둘러 표정을 고쳤다.
흔들의자에 앉아 배를 쓰다듬던 안솔이 지팡이를 쥐고 급히 일어섰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기적을 사용할 기세였다.
거기다 신상용도 엘릭서를 비롯한 온갖 물약을 꺼내기까지.
“아니, 아니야. 같이 갈 사람이 있어서 데리러 온 거야.”
얼른 용건을 꺼내니 전원의 행동이 멈췄다.
“오라버니! 뭐 잘못된 건 아니죠?”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안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전 또…. 그런데 데리러 오셨다고요?”
“응. 미안. 설명은 나중에 할 게.”
양해를 구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중학생 정도의 용모에 세라프와 같은 머리카락 색을 지닌 이는 머셔너리 클랜에 흔하지 않았다.
아니, 한 명밖에 없다.
“가자.”
“어…. 아, 아버지…?”
우악스럽게 잡아끄니 소녀는 당황하면서도 끌려왔다.
난 마르의 손을 굳게 잡은 채로 도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이윽고 옥상 문을 열었을 때, 품 안의 알에 집중하고 있는 세라프가 보였다.
갔다 온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균열은 그새 엄청나게 번져 있었다.
표면의 절반을 뒤덮었을 정도였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태어나는 걸 못 볼 뻔했다.
“어머ㄴ…. 아, 세, 세라프 님.”
뭐라 말하려던 마르는 엉겁결에 입을 가리며 은근슬쩍 말을 고쳤다.
세라프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다행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 하지만! 제가 이곳에 있으면…?”
우직!
그 순간이었다.
세라프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연 찰나, 문득 알의 절반이 부스럭거리며 윗부분이 아랫부분과 살짝 어긋났다.
이내 금이 간 대로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조각난 껍질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잠시 후,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 알에서 무언가 작달막한 것이 불쑥 솟구쳤다.
“아!”
짧게 소리 지른 마르는 내 등 뒤로 황급히 숨었고, 깨진 알을 바라보는 세라프의 미소가 짙어졌다.
난 알에서 튀어나온 작은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햇빛을 반사하는 눈부신 은발이었다.
상반신은 한 십오 센티미터가량 될까?
새하얀 등에 돋아난 한 쌍의 흰 날개는 손바닥만 할 정도로 작고 귀여웠지만, 확실히 천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
흰 눈이 내린 듯한 하얗고 통통한 볼살, 앙증맞지만 또렷한 콧날, 체리를 갖다 붙인 것 같은 매우 연한 분홍빛 입술, 무엇보다 세라프를 똑 닮은 신성하면서 사랑스러운 연록 빛 눈동자….
그러니까.
저 아기 천사가 내….
“으응.”
그때 아기 천사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정수리에 붙은 껍질의 잔해를 털어냈다.
올망졸망한 눈동자도 두어 번 깜빡깜빡.
이내 자기를 안고 있는 세라프를 빤히 올려다보며 방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뉘 집 애이길래 저렇게 똑 부러지게 말하는 거지?
아니, 말을 했어?
갓 태어났잖아?
분명히 지성도 있고 의사 표현을 할 줄 안다고는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세라프는 당연하다는 듯이 인사를 받았다.
“그래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실라프.”
“실라프…. 예쁜 이름 지어주셔서 고마워요. 어머니.”
“세라프라고 합니다. 나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진심으로 수고했습니다.”
“네. 정말 힘들었는데…. 중간에 아버지랑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너무 너무 보고 싶어서….”
평온하게 대화하는 엄마 천사와 아기 천사.
지금 나만 혼란스러운 건가?
흘끗 뒤를 돌아보니 마르는 양손을 꼭 붙잡은 채 세라프와 실라프를 정신없이 보는 중이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낯에 어딘가 모르게 부러워하는 기색이 서린 듯했다.
그러고 보니….
잠시 후, 세라프는 실라프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었다.
조심스레 안아 올리며 날 돌아봤다.
“수현. 딸입니다.”
“딸?”
“실라프? 인사하세요.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와!”
실라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작은 날개를 팔락팔락 힘차게 날갯짓하더니 날 향해 고사리 같은 손을 내뻗으며 날아온다.
“아버지!”
“어, 어?”
나도 모르게 품으로 파고드는 실라프를 받아들었다.
엉겁결에 시선을 내리자, 가슴에 찰싹 붙어서 환하게 웃는 아기 천사가 보였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감촉이 신기하고도 따뜻하다.
“나, 나?”
“네! 아버지!”
기쁜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실라프.
“아, 알아보는 거니?”
“그럼요! 확실하게 느껴지는 걸요? 주무실 때마다 항상 저 쓰다듬어 주시고, 또 얼른 보고 싶다며 다정한 말씀도 해주셨잖아요.”
확실히 그러기는 했다.
그럼 알의 형태였을 때, 내가 했던 행동이나 들었던 말까지 기억한다는 건가.
“그렇구나….”
실라프는 마냥 좋은지 방실방실 웃으며 얼굴을 문질렀다.
도저히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난 괜스레 보들보들한 등만 토닥거렸다.
하지만 곧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실라프는 천사의 피가 섞인 아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아이와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일 터.
게다가 태어나자마자 날 보고 한숨 쉰 수나도 있는데.
실라프는 양반이지.
그때였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세라프가 내 뒤로 손을 뻗었다.
뭘 하는가 궁금해 봤더니 옥상에 올라왔을 때부터 계속 내 뒤에 숨어 있던 마르를 붙잡는다.
“괜찮습니다. 이제 나와도 됩니다.”
“어…. 하지만….”
쭈뼛쭈뼛 끌려 나온 마르는 내게 안겨 있는 실라프를 보고 숨을 삼켰다.
실라프도 마르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보니까 꼭 자매 같다.
“예쁘다….”
“웅…. 어머니. 이 아름다운 분은 누구예요?”
말하는 것도 비슷하군.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세라프는 품위 있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실라프. 인사하세요. 제 딸입니다.”
“네에!?”
갑작스러운 소개에 마르가 펄쩍 뛰었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열세 쌍의 요정 날개 또한 사정없이 팔락거렸다.
평소 마르의 성격이나 행동을 보면 저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다.
실라프가 입을 열었다.
“언니…. 제 언니인 거예요?”
“네. 맞습니다.”
“와, 정말요?”
“어, 어머ㄴ, 아, 아니!”
마르는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나와 세라프를 번갈아 봤다.
반사적으로 마르에게 실라프를 내밀었다.
마르는 사뭇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실라프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줏단지 모시듯 아이를 받아 들고 불안한 빛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꼭 거절당하면 어쩌지 고민하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언니.”
하지만 그 애타던 얼굴은 실라프가 명랑하게 인사한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르의 눈이 크게 떠졌다.
파르르 떨리던 입술이 살그머니 벌어지고 두 눈동자는 글썽거린다.
감동, 그리고 놀라움.
이 두 단어를 제외하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실라프는 해맑게 말을 이었다.
“저요. 예쁜 언니가 생겨서 너무 좋아요.”
“아….”
“언니 언니. 저 앞으로 많이 예뻐해 주세요. 네?”
“아…. 아…!”
시종일관 탄성만 지르던 마르가 돌연히 바닥에 주저앉는다.
가슴이 벅찬 걸까.
실라프를 꼭 안는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감사합니다….”
“응? 언니? 울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어…. 어머니….”
“언니…?”
마르는 소리 죽여 중얼거렸다.
그러나 목이 메는 듯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아, 그런가.
이래서 세라프가 마르를 데려오라고 한 거였구나.
이제야 아까 마르를 데려오라고 뜻을 알 것 같다.
세라프는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메시지를 마르에게 보냈다.
둘이 사이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제 겨우….”
“다시 말해주는군요.” 라고 덧붙인 세라프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고개 숙인 마르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르의 눈을 닦아주는 실라프를 같이 끌어안았다.
그녀의 등에서 활짝 펼쳐진 커다란 날개도 셋을 부드러이 감싸 안는다.
그리고 난 조용히 한 발짝 물러났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끼어들 때가 아닌 것 같았으니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창공을 가로지르는 드높은 해는 축복하듯 옥상에 따사로운 햇볕을 비춘다.
맞대어진 세 은발은 햇살을 머금어 한층 찬란한 빛을 뿜었다.
“…….”
난 제자리에 서서 서로를 위하는 세 모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질리지도 않고, 계속해서.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평화롭고 포근한 풍경이었다.
============================ 작품 후기 ============================
김수현 옴니버스, 시작하겠습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