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042
01041 Omnibus – Sovereign Of Sword. =========================================================================
김수현의 떠나겠다는 선언으로 어느 정도 진정돼 가던 고성은, 또 한 번 들썩거렸다.
김유현과 제갈 해솔.
바로 얼마 전 똑같은 일을 겪은 만큼 받아들이는 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머셔너리 클랜원의 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놀랍기는 매 한 가지였다.
스마트 폰 사진으로 봤었던 남자는 그렇다손 쳐도, 제갈 해솔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고도 남는 존재였다.
실제로 그녀를 보자마자 무기를 꺼낸 클랜원도 적지 않았으니까.
김수현이 직접 나서서 설명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불상사가 일어났을 터.
그리하여 적잖은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김수연을 비롯한 연합 인원은 현재 상황을 가까스로 이해한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사가 물 흐르듯 넘어가기를 바라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관자놀이를 짓누르던 김수현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맞은편을 응시했다.
주위로 수십 명이 둘러싼 가운데, 김유현은 의자에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몹시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 옆에 앉은 제갈 해솔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눈을 돌리는 중이었다.
“당신은 또 어떻게….”
“재밌을 것 같아서요. 저도 따라가게 해달라고 떼 좀 썼죠.”
“뭐요?”
“아주버님이 제로 코드와 협상을 하셨거든요.”
제갈 해솔이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난 제로 코드가 그렇게 사정사정하는 거 처음 봤어요. 원래 전부 오려고 했는데, 뭐라더라? 일개 인간이 넘어가는 것과 신이 넘어가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라면서….”
제갈 해솔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즐기며 떠벌떠벌 말을 이었다.
김수현은 진짜냐는 얼굴로 형을 바라봤다.
그러나 김유현은 좀 전부터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
평소와 같은 태도는 아니다.
뭔가 내키지 않는 게 있다는 소리다.
김수현은 그제야 형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유현의 시선은 약간 옆, 그러니까 친동생에게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낀 김유연을 향하고 있었다.
“…….”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직감한 걸까.
김수현은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다는 듯이 볼을 긁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넌….”
한동안 입을 닫고 있던 김유현이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내가 온 게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구나.”
잔뜩 쉰 음성이었다.
은근슬쩍 팔을 빼던 김수현이 행동을 멈출 정도로.
“형?”
“왜 바로 돌아오지 않았지?”
“아,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
“사정? 여기는 다른 세계 아니었나?”
“어? 알고 있었어?”
“제로 코드한테 듣고 왔다.”
김수현은 궁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변명을 해도 형한테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뭣보다 정말로 마음만 있었다면 진작 돌아가고도 남았을 거라는 건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려고 했는데….”
“했는데?”
“이 세계에 흥미가 생겨서…. 그런데 돌아가려고 했어. 진짜야.”
“…수현아.”
김유현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건 네 의지가 아니니 굳이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중 우주 세계라는 건 말이다. 애초 간섭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세계야.”
자못 준엄한 꾸짖음에 김수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정곡을 찌르는 정론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작은 술렁거림이 일었다.
그 대단하던 김수현이 우물쭈물하는 광경이 자못 생소하게 느껴진 탓이다.
일각에서는 정말로 친형이 맞기는 맞는구나,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여인도 있었다.
김수연은 김유현이 입을 열었을 때부터 정신없이 바라보는 중이었다.
쳐다보는 눈길에는, 왜인지 부러워하는 감정이 완연히 드러나 있다.
왜냐면 김유연과 대칭되는 인물이라고 하나, 됨됨이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뭘 해도 항상 잘했다고 어르고 달래는 언니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었다.
꾸짖을 건 꾸짖고, 혼낼 건 혼내면서도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에 동생을 걱정하고 위하는 태도가 뚝뚝 묻어난다.
실은 사진으로 봤을 때 잠깐 남몰래 상상하기는 했었다.
그래.
저 모습은 그야말로 꿈에서나 그리던….
오빠, 라는 단어를 생각한 순간 김수연은 남몰래 뺨을 붉혔다.
만난 지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곧 떠날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강렬한 끌림이 느껴지는지 그녀도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왜 언니가 며칠 보지도 않은 김수현에게 그렇게나 죽고 못 사는지 조금이지만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멋있다….”
김수연은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 김유현은 계속 김수현만 바라보며 말을 잇고 있었다.
“난 그렇다손 쳐도, 네 여러 아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고 있는 거냐.”
“…….”
“제수씨들이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응? 자, 잠깐만. 이건 진짜 오해야.”
기함한 김수현이 허둥거리며 김유연을 가리켰다.
“이 누나는, 형이거든?”
누나가 형이다?
순간적으로 말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김유현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형도 안다고 했잖아. 다중 우주 세계인 거. 이 세계에 또 한 명의 내가 존재하듯이….”
“그러니까 저 여인이 나와 대칭되는 인물이다?”
말을 끊는 질문에 김수현은 빠르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반면에 김유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강한 불신의 빛을 드러냈다.
동생이 하는 말인 만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바로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설명이었다.
“하.”
제갈 해솔도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웃기고 있네. 저 여자가? 왜요? 당신도 여자라고 그러지 그래요?”
“맞아요.”
김수현은 담담히 긍정했다.
또 뭐라고 빈정거려줄까 고민하던 제갈 해솔은, 입을 딱 벌린 채 그대로 눈을 깜빡거렸다.
“…뭐라고요?”
“그렇다니까요. 쟤가 나와 대칭되는 인물입니다.”
두 남녀의 시선이 동시에 왼쪽으로 돌아갔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김수연은 김유현과 눈이 마주치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깔았다.
갑자기 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엄습했다.
그와 동시에 김유현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앞을 돌아보며 화난 듯이 쏘아붙였다.
“김수현! 왜 거짓말을…!”
그러나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억울해하는 김수현의 낯빛에서 한 치의 거짓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주변의 반응도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사실을 암암리에 알려주고 있었다.
“거짓말 아냐.”
“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도 놀랐다고. 그래서 흥미가 생긴 거고.”
“마, 말도 안 돼.”
김유현은 온몸이 떨리는 걸 참으며 간신히 말했다.
“나, 난 믿을 수 없어…. 도대체….”
말을 듣고 오기는 했지만,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
“…웃기지 마.”
이윽고 한 차례 머리를 세게 흔들더니 억지로 자기 자신을 진정시킨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길게 소리를 질렀다.
“웃기지 마아아아!”
그 정도로 충격이었던 걸까.
고함은 매우 커서 모여 있는 전원의 귀를 왕왕 울렸다.
“내 동생은…!”
김수현을 한 번 쳐다본 김유현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김수연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시시각각 빨라지는 걸음에 김수연은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곧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저…!”
잔뜩 힘을 준 눈으로 김유현을 직시한다.
“아, 안녕하세요.”
김유현의 걸음이 뚝 멎었다.
김수연은 긴장한 눈으로 앞의 미남자를 응시했다.
안 그래도 요즘 김유연이 김수현만 싸고돌자, 김수연은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와중 동생이 걱정된다는 명목에 출현한 김유현의 존재는 그녀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들어주세요. 저는 이 세계의 머셔너리 클랜 로드이자, 칠 년 차 사용자 김수연입니다.”
깨끗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게다가 고개까지 숙이며 다소곳하게 인사하기까지.
윤기 나는 머릿결이 사르르 흘러내렸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이에요.”
이윽고 숙였던 고개를 올리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머뭇머뭇 쓸어 넘기는 그 모습에.
“…….”
김유현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뻐끔뻐끔 입은 벌렸으나 말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 같았다.
“무슨…. 이건….”
망연자실한 얼굴로 더듬거리는 형이 안 돼 보였는지 김수현이 스리슬쩍 어깨를 짚었다.
그러나 김유현은 멍하니 그 손을 쳐낸 후, 동생을 뒤로한 채 눈앞의 여인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수현이와 대칭 인물…?”
“네….”
“즉…. 내…. 동생…? 여동생…?”
“네….”
“아니….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수, 수현이 고유의 요망한 느낌이 있는 건 인정하겠지만….”
“요, 요망하다니….”
초면에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수연은 칭찬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가, 감사합니다아….”
눈을 반쯤 내리뜨더니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두 손등을 빨개진 뺨에 살짝 붙였으니까.
“그, 그래도 너무 그렇게 보지 말아주셨으면….”
“……?”
“그냥…. 자꾸 기분이 이상해져서…. 모, 몰라요.”
“……!”
이제는 숫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몰라 몰라 하는 김수연을 보며 김유현은 숨넘어가는 신음을 흘렸다.
“여동생…. 이라고?”
그 소리를 들었는지 눈을 반짝 뜬 그녀가 갸웃한다.
“오…. 유현이 오빠…?”
그 순간이었다.
쉴 새 없이 뇌까리던 김유현이 벼락이라도 맞은 양 전신을 움찔 떨었다.
머리를 푹 숙이더니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
“형. 괜찮아?”
김수현이 불러도 대답이 없다.
혹시 정신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게 아닐까?
김수현은 설마 설마 하면서도 서둘러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김수연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행여 놀랄세라 김유현의 양팔을 살며시 쥐었다.
이어서 천천히 까치발을 들며 조심스레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 괜찮으세요?”
가냘픈 미성이 김유현의 귓전을 간질인 순간이었다.
등 뒤에 있던 김수현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불현듯 허공에 떠오른 두 개의 메시지를.
『사용자 김유현의 사용자 정보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 ‘동생 바보’ 진명이 ‘동생 바보(각성)’로 진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