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6
00016 반으로 갈라지다. =========================================================================
전에 한 번 말한 것 같지만, 데드맨은 홀 플레인에서는 괴물 축에도 들지도 못하는 놈이다. 능력이라고 해봤자 약간의 지능과 감염 능력만 있을 뿐이다. 자격 증명이 목적인 홀 플레인인만큼 쇠 파이프를 든 건장한 성인 남성은 8할 이상으로 데드맨을 처치할 수 있다.(물론 일대일로 가정하고 남성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면.)
안현은 장검과 방패를 장비했고 기초 능력치가 준수하다. 굳센 마음가짐과 무기를 다룰 줄만 안다면 지금보다 훨씬 성장할 수 있다. 데드맨은 가볍게 볼 정도로 말이다.
한 번 물꼬를 터주자 행동이 더욱 적극적으로 변하고, 휘두르는 참격은 거침이 없어졌다. 안현은 영리하고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아직은 일말의 불안함을 버릴 수 없는지, 방어를 우선하고 카운터를 치는 방법으로 데드맨을 공략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감이 더 생긴다면 장검만으로 서너 마리는 너끈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정면돌파를 택한 후. 우리는 신속히 숲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탈주로를 더듬던 도중 김한별은 오솔길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 길을 따라간다면 숲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에 따라 일행의 이동 속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그러나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데드맨의 출현 빈도가 더 잦아지는 건 피할 수 없는 노릇 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안현의 전투 경험을 쌓는다고 치기로 했고 실제로 전투의 대부분도 안현이 담당하고 있었다.
사람 냄새를 맡은 데드맨 네 마리가 듣기 싫은 울음을 울리며 입을 쩍 벌린다. 안현의 눈에 자신감이 가득한 게 호전적인 성향이 점점 드러나는 것 같았다. 바로 검과 방패를 드는 안현을 보던 안솔은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조심해….”
“응. 조금만 기다려. 형. 솔이랑 애들 보호를 부탁해요.”
“애들은 걱정 마. 내가 지키고 있으마.”
“누가 애들인데?”라고 외치는 이유정의 말에 잠시 웃던 그는 이내 거칠고 맹렬한 기세로 달려 나갔다.
두 마리는 한번에 처리했어도 네 마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석궁에 화살을 매기며 혹시 모르는 불상사를 대비하기로 했다.
자신을 보며 마주 달려오는 괴물들을 향해 안현은 약 1미터를 남겨두고 왼쪽 대각선으로 스텝을 밟았다. 인간의 몸은 유연하지만 괴물들의 몸은 유연하지 못하다. 당장에 물어 뜯을 기세로 달려오던 데드맨은 굳어버린 관절로 인해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옆면 대응에 취약한 틈을 노리고 머리에 검을 찔러 넣는다. 한 마리 아웃. 그와 동시에 검을 바로 빼어 나머지 세 마리를 견제한다.
그런 안현을 보며 참 물건은 물건이구나 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단순한 공격 방어 일변도가 아닌 상대의 약점을 노릴 줄 안다는 것이다. 데드맨들이 회전에 취약하다는 걸 알고 대각선으로 빠진 건 확실히 칭찬하고 싶었다.
무언가 뭉개지는 소리가 나며 괴물 한 마리가 몇 걸음 물러났다. 데드맨의 공격 수단은 이빨로 물어뜯는 것 하나 뿐이다. 방패로 타격을 주려면 가슴의 상단 위로 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그리고 안현은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스스로 터득하고 해나가고 있었다. 이빨이 덜렁이는 데드맨을 보며 안현의 검이 유성처럼 찔러 들어갔다. 푹 소리와 함께 나는 속으로 두 마리 아웃 이라고 외쳤다.
두 마리를 골로 보냈으니 이제 절반만 남은 셈이다. 앞선 괴물들을 비교적 쉽게 보낸 탓인지 왼팔에 든 방패가 처음에 비해 느슨하게 든 것 같았다. 한 마리가 어떻게든 한 입이라도 물어 뜯으려 덤벼들고 안현은 그런 괴물을 가만히 지켜보며 장검의 손잡이를 역으로 쥐었다. 그걸 보던 내 눈이 이채를 띠었다. 설마 한 손 발검술을…?
장검을 휘두르는 거리를 계산하고 타이밍을 조절한다. 발검술에 관해서는 꽤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원리 또한 알고 있었다. 입을 쩍 벌린 데드맨이 거리 안에 들어왔다. 동시에 장검을 쥔 안현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가는 게 보였다. 바로 지금이다.
스칵!
육질이 잘리는 섬뜩한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어설프긴 했지만 단 한번의 절묘한 호선 베기로 데드맨 머리통의 중앙을 날리는데 성공했다. 그의 얼굴에 희열 비슷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전투를 보던 내 눈이 처음으로 찌푸려졌다. 아직 괴물은 한 마리 남아 있었다.
앞의 데드맨이 허물어지는 순간 뒤에서 달려오던 데드맨이 바로 안현을 덮쳤다. 순발력으로 방패를 앞세운 건 좋았지만 느슨하게 잡은 터라 달려오던 데드맨의 힘을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재빠르게 장전한 석궁을 겨누며 둘의 충돌을 지켜보았다.
쿵!
“큭!”
예상대로 안현은 방패를 놓치고 말았다. 온 몸으로 충격을 받던 아까와는 달리 고작 왼팔로 충돌을 받으니까 그렇지. 아마 지금쯤 손이 저릿저릿 할게 분명했다. 아무튼 충돌하는 힘의 여파로 안현의 전방은 무방비가 되었고 그 틈을 놓칠세라 데드맨의 이빨은 뱀처럼 그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왔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바로 화살을 날렸다. 미안하지만 네 식사로 전락하긴 아까운 놈이라.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데드맨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막 안현의 목을 물려다 몸이 허물어지는 괴물을 보며 안현은 십 년 감수한 얼굴로 그대로 땅바닥에 앉아버렸다.
“후….”
“사장님. 나이스 샷.”
방금 전 상황의 위험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유정은 나를 보며 농담을 던졌다. 안현은 보이는 전투는 곧 잘해도 아직 한 수 앞을 읽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긴 지금만 해도 충분한데 그런 것 까지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멍한 얼굴로 자신의 목을 쓰다듬던 현은 나를 보며 안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덕분에 살았네요. 형 고맙습니다.”
“뭘. 겨우 한 마리 도와준 건데. 고생했다.”
내 너스레에 현은 고개를 젓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그렇게 공격이 들어올지 몰랐어요. 형이 쏜 화살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슬쩍 안솔의 얼굴을 보니 당장 울음을 터뜨릴 만큼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더 듣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 치는 안솔을 보며 안현은 말을 아꼈다.
“어쩔 수 없지. 들어오는 순간이 절묘하더라. 그런 경우는 최대한 내가 서포트…”
“으앙!”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솔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바로 눈물을 터뜨리며 오빠를 향해 달려갔다. 참 눈물 나는 남매 애였다. 괜히 머쓱한 마음에 나는 장전된 석궁을 풀고 화살을 다시 통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호전성 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유정은 그런 둘을 보며 은근히 부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기만 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칫. 나도 무기 하나 고를걸. 한별아. 너 무기 가진 거 없어?”
이유정의 말에 김한별은 잠시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짧은 소검 하나를 꺼냈다. 던지는 용도면 몰라도 소검으로 유효타를 먹이려면 거의 근접해야 하기 때문에 썩 효율적인 무기로 보기는 힘들었다. 나 같은 검의 달인이 쥐면 몰라도 평범한 사람이 휘두른다면 대갈통 찍으려다가 오히려 물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별 도움은 안될 것 같은데. 근데 너 그건 왜 가지고 다니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요. 험한 꼴 당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잖아요.”
“…네가 무슨 조선 시대 열녀냐….”
김한별의 덤덤한 목소리에 이유정은 질린 눈으로 고개를 흔들더니 이내 내 왼팔을 바라보았다. 내 왼팔에 장착된 석궁을 탐내는 눈으로 보던 이유정은 이내 다룰 줄 모르는 사실을 떠올린 듯 실망한 얼굴로 투덜대고 말았다.
“그 자식이 들고 있던 쇠 파이프 어디 없나. 한별아. 주변에 뭐라도 있나 한번 봐봐.”
“없어요.”
보아하니 김한별이 불편한 얼굴을 하는 게 이유정 멋대로 말을 편하게 하는 모양이다. 문득 박동걸 일행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 예전 통과 의례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진짜 편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처음 이틀은 정말 도망의 연속이었지. 지금 그들은 뭘 하고 있을까. 열심히 도망치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벌써 데드맨들의 뱃속으로 조각조각 나뉘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전투의 여파인지 아니면 안솔을 달래느라 그랬는지 몰라도 안현은 조금 힘이 빠진 걸음걸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형. 보니까 오솔길로 보이는 흔적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바로 움직이는 게 어때요?”
“응. 그러자고.”
나와 안현의 대화를 듣던 이유정은 무기가 없는 게 분한지 괜한 심술을 부렸다.
“치. 신났네, 신났어. 너 그러다가 훅 갈지도 몰라. 조심해.”
“가만히 잡아 먹히긴 싫거든. 이렇게라도 날뛰는 게 차라리 나아. 아무튼 빨리 내려가자.”
“알고 있어. 나도 이 숲이 지긋지긋해. 일초라도 빨리 나가고 싶다고.”
그렇게 데드맨 네 마리를 처리한 우리는 다시 빠르게 길을 따라 내려갔다. 확실히 이 길을 따라 간다면 숲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곽 지역에 미약하게 걸리는 데드맨들의 숫자가 마음에 걸렸다. 감지에만 걸리는 게 스물을 훌쩍 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네 마리와 스무 마리를 상대하는 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정면 돌파를 제외한다면. 탈주로를 여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 일행들을 설득할 말이 뭐가 좋을까 생각했다.
*
예상대로 숲 외곽은 데드맨들로 우글거리고 있었다. 언뜻 봐도 스물은 넘는 게 온 방향이 그르렁 울음 소리로 가득 찬 상태였다. 전방에만 보이는 숫자만 계산해서 그렇지 여기서 소란을 일으킨다면 왼쪽 오른쪽에서 튀어 나오는 괴물들의 숫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사람의 흔적을 탄 돌담이 보인다. 그걸 넘어서 보면 울퉁불퉁하긴 해도 길이라 부를 수 있는 대로도 끄트머리가 보였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이 숲을 나갈 수 있는데. 일행들도 그걸 알고 있는지 속이 바짝바짝 마르는 모양이다. 아무리 안현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스물이 넘는 데드맨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나기엔 왠지 아쉬움이 발목을 붙잡았다.
“미친…. 저기를 도대체 어떻게 뚫고 나가란 건데…?”
이유정의 허탈한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돌아서 가려고 해도 다른 데는 이렇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안현과 김한별도 딱히 좋은 생각은 없는지 묵묵히 땅만 보고 있었다. 결국 그 방법 밖에 없는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이번에 조금 나서주기로 결정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하나 있는데.”
내 말을 듣자마자 모두의 귀가 쫑긋 일어나는 듯 착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 작품 후기 ============================
1. 오타 및 문맥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