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57
00256 망상의 고원 =========================================================================
“흠.”
남자의 말이 끝나자 안 그래도 서늘했던 주위의 공기가 한층 더 싸하게 느껴진다. 나는 담담히 콧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말은 제법 흥미를 돋우어주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들었던 수정구를 다시 내리고, 모두가 잘 들을 수 있도록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클랜원들, 특히 애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수정구를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다.
(부디 제 말을 들어, 지금쯤 바로 몸을 돌려 내려가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까부터 분위기가 가라앉은걸 보니, 곧 있으면 그 놈들이 저를 찾아낼 것 같네요. 그러니 저는 바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 신분을 밝히자면, 저는 여울가녘 클랜의 4년 차 사용자 정성웅이라고 합니다.)
점점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지 남자의 말투는 힘겨운 기색을 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의 발단은 환각의 협곡으로 들어간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차분히 남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진 그의 이야기는 환각의 협곡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나열하고 있었다. 처음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별것이 없었다. 그저 협곡 안으로 들어서고, 이틀 만에 유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유적 안으로 들어선 원정대는….
(유적에 첫발을 들어선 순간 희희낙락해있던 우리들이 직면해야 했던 광경은, 바로 무수한 시체더미였습니다. 이곳 저곳에 곳곳이 널브러져있는, 반쯤은 썩어 들어가는 시체들을 보는 순간 뭔가가 잘못됐음을 직감적으로 느꼈죠. 그때 발을 돌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적에 눈이 멀어….)
‘응? 뭔가 조금 이상한데?’
계속해서 남성의 말을 듣던 도중이었다. 그의 말에서 나는 아직까지는 뭔지 모를,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일단 협곡 도시를 발견했다는 부분까지는 딱히 틀린 점은 없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전개 방식 자체가 미묘하게 초점이 어긋나고 있었다. 처음에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고서도 논리 정연해 보이던 말이, 가면 갈수록 앞뒤가 맞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은 하나의 도시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이상했던 점은 분명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정상적인 도시의 면모를 갖췄다는데 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도시 안으로 들어선 순간, 우리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의 내부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각자 무기를 빼어 든 상태로요. 바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부랑자들이었습니다.)
남성은 말을 하다 말고 다시금 기침을 시작했다. 한번 기침을 토할 때마다 입에서 핏물이 한 움큼씩 터져 나왔는데, 용케도 수정구에는 묻지 않고 있었다. 손에 살짝 힘을 줘 수정구 내의 마력을 느껴보니 잔존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 재생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올수록 힘겨워지는지, 한동안 괴로워하던 곧 남성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네요. 두서없이 말해서 죄송합니다. 마음이 급해서요. 아무튼 일전에 황금 사자 클랜에서 부랑자 말살 계획을 주도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들 대부분은 서쪽으로 도망갔다고 알려졌지만 일부는 다른 길로 도주한 모양입니다. 제 생각을 말씀 드리자면 비교적 사용자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환각의 협곡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걸로….)
‘부랑자라고? 놈들의 시체를 발견하게 아니라 살아있었다고?’
남성의 말에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우리는 감히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무조건 도망이라는 선택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동료들이 당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가장 후미에 있었고…. 부끄럽지만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기 때문에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도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하…. 하지만 동료를 버린 벌을 받았는지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네요.)
남성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라는 듯 쥐어짜낸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비록 얼마 안 남은 목숨이기는 하지만…. 부랑자들에게 잡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느니,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죽기보다는 최대한 흔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부디 이 수정구를 보고 계신 분께서는 재빨리 도시의 대표 클랜에 이 사실을 알려주십시오. 그럼 부디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Good Luck.)
그 말이 마지막이었는지 곧 수정구의 화면은 ‘팟’ 소리를 내며 꺼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본연의 번들거리는 빛을 내는 수정구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다들 어두운 그늘이 져있는 클랜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부랑자라….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수현. 어떻게 하실 건가요?”
조용히 수정구를 품 속에 넣고 입을 다물고 있자, 고연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클랜원들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나 내 말을 듣자 다들 서로를 돌아보는 게, 아무래도 돌아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고연주는 내가 그대로 강행하고 싶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간곡히 설득하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부랑자들이 모여있다면 솔직히 조금 꺼려지지 않나요? 그 수정구면 충분한 증거가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사용자 고연주. 한가지 묻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주변에서 원정대의 이어지는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고연주는 침착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네. 들어오고 나간 흔적은 확실하게 있어요. 조금 많이 섞여있기는 하지만요.”
“그럼 이 사용자가 정신 계열의 마법을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까?”
“네? 갑자기 무슨…. 그런 것까지는 알 수 없어요.”
“그렇군요.”
나는 허리를 굽혀 주변에 흐드러진 꽃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자, 곧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하나의 꽃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에 하나를 집어 든 다음 나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들어올렸다.
“이 꽃은 하이드 플라워라고 불리는 꽃입니다. 소량으로 지니고 있으면 냄새를 없애주고, 대량을 갖고 있을 경우 기척도 어느 정도 줄여주는 신비한 효능을 갖고 있죠.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요?”
“글쎄요. 주변을 배회하는 괴물들에게서 수정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요? 실종 당한 사용자들이 다잉 메시지를 남기는 방법들 중 하나니까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뭐, 자주 쓰는 방법은 아니지만 말이죠.”
“그렇죠. 그런데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한데요?”
남자의 말은 언뜻 들어보면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용자치고는 너무도 차분하고 침착하다. 물론 원래 그런 성격의 사용자들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에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의 이야기는 “구해줘.” 혹은 “도와줘.” 의 뉘앙스보다는 뭔가를 억지로 설명하려는 뉘앙스가 강했다.
내 기억 속의 부랑자들은 유적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남성은 놈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
남성은 간신히 도망쳤다고 했다. 하지만 부랑자들이 그를 그렇게 순순하게 놓쳤을까?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다고 했는데, 어떻게 다른 동료들이 잡히거나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그는 도망치는 도중 추적을 받았고, 결국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위중한 상처를 입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이든 플라워를 찾아 다니고, 자신의 시체를 보호하기 위해 수정구를 남겼다.
부랑자들은 과연 이 남자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이 남자의 품속을 한번이라도 뒤져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처음 구해달라고 들려온 통신은 도대체 뭐였을까?
아니 애초에….
‘망상의 고원, 환각의 협곡은 그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그리고 고작 부랑자 수십 명에게 그 놈이 당했다고 믿기도 어렵고. 나도 화정이 없으면 자신할 수 없는 상대인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물고,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힌다.
“저는 원래 계획대로 강행할 생각입니다. 머셔너리는 환각의 협곡으로 진입합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의문들 중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을 들어, 최대한 자세하게 일행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조금은 더 진입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었다.
다행히 몇 명은 내 의견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그래도 어두운 기색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그 반응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결국 마지막 수단을 꺼내 들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기로 하죠. 제 생각은 아까 전에 말씀 드렸듯이 계속해서 탐험을 진행하자는 쪽입니다. 여기서 각자의 의견을 듣고 돌아가자는 의견이 많다면 발길을 돌리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각자의 의견을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작은 사용자 고연주부터.”
“저는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부랑자 수십 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현과 제가 있다면 질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하지만 그쪽에서도 저희와 비슷한 인물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져요. 미안해요. 하지만 단순한 증거 확보에는 수정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연주는 즉각 대답했다.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제껏 주저하던 클랜원들이 한둘씩 의견을 꺼내기 시작했다.
“형. 저도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형 말은 공감하지만, 그래도 그 수정구가 있으니 소기의 목적은 이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반대해서 죄송합니다.”
“음.”
안현도 반대를 표했다. 생각보다 수정구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은지, 무리는 하지 말자는 쪽이 많은 것 같았다.
‘여기에 진짜 괜찮은거 많은데….’
정말 이대로 돌아가야하나 싶어 절로 씁쓰름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였다. 그때, 조용히 상념에 잠긴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한별이 가만히 눈을 뜨는 게 보였다.
“저는 찬성할게요.”
“응?”
“이대로 계속 원정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남성의 말을 가만히 들어봤는데…. 뭐랄까.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세히 말씀 드리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오빠 말씀대로 조금 더 탐험해볼 가치는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아. 그럼 2 대 2인가?”
나는 의외라는 눈길로 잠시 김한별을 바라보다가 한결 안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의 옆에 있던 이유정은, 내 반응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던 기색을 보이더니 곧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였다.
“저도 오라버니 의견에 찬성할게요오.”
“찬성 셋.”
“너, 너까지? 으…. 모르겠다. 난 그냥 오빠 말대로 따를게. 솔직히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껏 오빠 말을 들어서 손해 본 것은 없으니까. 아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흔적을 살피는 정도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찬성 넷.”
안솔이 찬성하고 나서자 그때까지 주저하던 이유정도 얼른 재청하며 나섰다. 이로서 찬성 넷, 반대 둘로 이미 사안은 결정이 나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직 한 명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은 클랜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미 결론은 났지만, 그래도 들어는 봐야지. 한결아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저, 저요? 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럼 기권?”
“네. 기권할게요. 아직 탐험도 감이 잘 안 잡혀서요.”
백한결의 기권했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반대를 표한 둘을 바라보았다. 고연주는 애초에 내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가도 안가도 큰 상관은 없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안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내 눈치를 흘끔 살피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내 의견에 반대를 낸 게 자못 마음에 걸리던 모양이었다.
‘돌아가면 얼른 클랜이 자리를 잡을 필요가 있겠군. 여러 가지 규칙도 만들고…. 그 동안 너무 혼자서만 이끌어왔어.’
나는 남성의 시체 위로 흐드러진 꽃을 대충 발로 쓸어 덮었다. 이윽고 어느 정도 시체가 가려지자, 이내 확정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찬성 넷, 반대 둘, 기권 하나입니다. 투표 결과로 일단 탐험은 계속하는 것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점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무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가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부담 없이 발을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목숨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여지를 주자 애들의 무거웠던 얼굴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걸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나는 흔적이 남아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클랜원들은 신속히 내 뒤에서 다시금 방진을 만들었다. 클랜원들은 아직 괴물들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대부분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정구 이후로 다들 바짝 긴장감이 드는 모양이다.
그런 그들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나는 곧바로 출발 신호를 알렸다.
*
나는 일부로 행군 속도를 높였다. 일단은 불안해질 분위기를 완화시킬 생각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곳을 얼른 벗어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체가 있던 곳을 벗어날수록 음습하고 끈끈한 기운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러나, 불쾌한 기분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앞선 기운이 벗어난 공간을 뭐라고 말하기 미묘한 공기들이 대신해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수현. 잠시만요.”
선두에서 걷던 도중 뒤에서 고연주가 행군 정지를 요청했다. 다른 사용자에 의한 중간 정지는 내가 머셔너리를 이끈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몸을 돌리자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는 안솔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안솔.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아…. 하아…. 죄송해요오.”
“힘들어서 그래?”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아…. 이상하게 아까부터 자꾸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요. 괘, 괜찮아요. 참을 수 있어요.”
‘아마도 거의 다 온 모양이로군.’
정심단을 먹일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직은 괜찮다는 안솔의 말에 지금은 행군을 재개하기로 했다. 대신 선두에 선 안현을 안솔의 옆에 보내, 그녀의 반응을 재깍재깍 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다시 산길을 타기 시작했고, 완만한 지형을 벗어나 다시 가파른 지형으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30분정도 지났을까. 뭔가 이상한, 형이상학적인 기운이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듯 다가오다가 이내 가볍게 풀리는 게 느껴졌다.
『잠재 능력 심안(정)(Rank : A Plus)이 발동됩니다.』
『잠재 능력 전장의 가호(Rank : EX)가 발동됩니다.』
나는 급하게 손을 들어 행군 정지를 알렸고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현재는 내가 가장 선두에 선 상태였다. 이 말인즉슨 방금 전 넘은 선을 기준으로 한층 강력해진 필드 효과가 발동됐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에서 누군가 풀썩 쓰러지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혀, 형! 안솔이…!”
“그래. 한결아. 가방 이리 줘.”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힘겨워한다는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섬망의 산, 망상의 고원, 환각의 협곡. 이 세 필드의 효과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안솔에게는 쥐약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나는 지체 않고 백한결이 들고 있던 가방을 건네 받은 다음, 안쪽에 고이 모셔둔 정심단이 든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채 온 몸을 부르르 떠는 안솔을 눕히고 억지로 입을 열자 옆에서 안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혀, 형. 어떻게 된 거예요?”
“야. 앞쪽으로 넘어가지마. 거의 다 왔으니까. 아무래도 안솔이 민감해서 그런지 조금 일찍 느꼈나 보다.”
“네? 그게 무슨.”
“그러니까. 이곳만 넘으면….”
나는 안솔의 입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정심단을 넣어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혀에 닿은 동그란 환이 침에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게 보였다.
곧이어 안솔의 떨리던 몸이 조금씩 잦아드는걸 확인한 후, 나는 차분히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망상의 고원에 도착한다는 소리야.”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간신히 시간에 맞췄네요. 다른 몇몇 작가 분들이 그러시는데, 한번 연재를 끊으면 계속해서 쉬고 싶어진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오늘 시험 끝난 기념으로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 늦게 집필을 시작했는데, 자꾸만 몸이 휴식을 요구하더군요. 하하. 다행히 오늘 새벽에 마신 레드불의 효과가 남아있는지, 집필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네! 시험이 끝났고, 망상의 고원 파트도 끝났습니다. 다음 파트 소제목 일부를 말씀 드리면, 환각의 협곡이 들어갑니다. 하하하.(본 진입은 망상의 고원이 다음 편부터 진행되지만, 본문 내용에도 나와있듯 환각의 협곡까지는 하루 거리입니다. 다음 챕터에 둘 다 나오고, 조금 빠르게 이으면 내부 진입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차후 내용은 완전히 맞추신 분은 아직 안 계시지만, 비슷하게 맞춘 분은 계시네요. 하하하.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시험이 끝나서 기쁘기도 하고, 간만에 푹 잘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PS. 다음 회부터 리리플 부활합니다! 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