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81
00280 조금 쉬세요, 제발 =========================================================================
“머셔너리 로드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 드립니다.”
“별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모니카의 신전에 방문하자마자 여성 신관 한 명이 나와 백한결을 맞이해주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미리 연락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확실히 뮬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권한’을 부여 받은 여성은 여느 거주민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퀭한 눈에 창백한 인상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굉장히 사무적인 태도라는 것. 시선에 따라서는 싸가지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런 부류들은 적어도 맡은 일 하나만큼은 꼼꼼하게 처리해준다.
사용자들로 북적이던 입구와는 달리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부는 점차 한산해졌다. 이윽고 신관이 안내해준 테이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실 거라도?”
“괜찮습니다. 바로 보고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들어보죠.”
백한결은 한껏 주눅이 든 상태였다. 한기를 풀풀 날리는 신관의 태도에, 혹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전한 성격에 실소를 흘리자, 눈앞에 기록과 깃펜을 들고 받아 적을 준비를 하는 신관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구두 보고(약식)를 시작했다.
원정 보고는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다. 이 과정은 기록으로 남으며, 남겨진 기록은 도서관으로 이송돼 적합한 카테고리에 배치된다. 후에 섬망의 산이나 환각의 협곡에 가는 사용자들은 필수적으로 도서관에 들를 것이고, 내 기록을 읽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만일 기록에 잘못된 정보가 기재되어있다면, 그것은 사용자들의 목숨과 직결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원정 보고를 할 때 허위 보고는 절대로 지양해야 할 사항이었다. 괜히 실적을 높인답시고 뻥튀기를 했다가, 조사단에 의해 거짓이라는 점이 밝혀지면 빼도 박도 못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나름 명성 있는 클랜들도 허다하게 실패한 게 환각의 협곡 공략이었다. 그런데 D Zero에 랭크된 클랜이, 그것도 신생 클랜의 사용자들이 공략을 해낸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꽤나 꼬치꼬치 캐물었겠지만 웬일인지 여신관은 차분히 내 말을 받아 적기만했다. 아마도 이스탄텔 로우의 입김과 지금쯤 신전 어딘가에서 치료받고 있을 사용자들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백한결은 안절부절못한 듯 보였지만 나는 나름대로 훈훈한 기분을 느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유니콘들은 우리를 통곡의 평야 끝자락에서 내려주었고, 도시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윽고, 약 1시간에 걸쳐 원정 보고를 끝마칠 수 있었다. 슬쩍 시선을 내리자 빼곡히 채워진 기록들이 가지런하게 쌓여있었다. 그 정도 썼으면 손이 아플 법도 한데, 조금의 찌푸림도 없이 처음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깃펜 끝을 물고 조용히 입을 오물거리던 그녀는 이내 크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후. 잘 들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이게 제 일인걸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중간에 몇 개 납득할 수 없는 게 있기는 한데….”
“어떤 부분인지요?”
“아니요, 보고하실 때 이미 해당 사항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시더라고요. 몰이를 당한 것 같다고 하셨죠?”
나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관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깃펜을 휙 돌렸다.
“다른 건 이스탄텔 로우의 증언과 살아 돌아온 사용자들이 있으니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희들이 통과한 경로에 흔적들이 남아있을 겁니다.”
“거짓말이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그만큼 가벼이 넘길 수가 없다는 소리죠. 그리고 머셔너리는 이스탄텔 로우의 일을 위임 받아 간 클랜이에요. 그런 분들에게 몰이를 했다는 것은, 모니카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소리에요. 안 그래도 요즘….”
신관은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 건에 관해서는 제가 따로 조사를 해보고, 이스탄텔 로우에 보고하겠어요. 물론 머셔너리 로드님께도 연락을 드릴게요.”
“아, 아니.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이스탄텔 로우에서는 머셔너리 클랜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되요.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니까요. 아무튼 임무 달성 및 원정 성공은 축하해요. 조사단은 빠르면 오늘, 늦으면 내일 안으로 창설할거예요. 이 정도의 실적이라면 조사가 끝난 후를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말이 되게 빠르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박진감 넘치게(?) 넘어가니 약간이지만 허탈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어찌됐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기분 좋은 관심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었다. 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는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결아, 일어나.”
“잠시만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찰나, 신관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나를 따라 의자에서 일어나던 백한결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멈칫했다.
“오늘 아침 이스탄텔 로우에서 연락이 왔어요.”
“네.”
“혹시 시간이 되시면, 머셔너리 로드의 방문을 원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알겠습니다.”
어차피 한 번은 찾아갈 필요가 있다. 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조금이지만 신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을 보니 평소 이스탄텔 로우와 신전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따로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 내일쯤 제가 직접 그곳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
원정 보고를 마치고, 나는 백한결을 데리고 주점 ‘날아라 병아리’로 들어갔다. 원래는 그냥 길거리 음식을 사서 클랜 하우스 내부를 구경하며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원정 보고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는 바람에 이른 저녁을 먹기로 결정한 것이다.
척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내부 구조에, 흡사 서양의 집사를 연상케 하는 종업원들. 백한결은 이런 곳은 또 처음 오는지 연신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 이윽고 남자 웨이터가 주문한 음식을 갖고 와 테이블에 정중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팁으로 은화 하나를 던져준 후, 우리들은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안현이랑 유정이가 네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
“헤헤, 형님도…. 아. 죄, 죄송해요.”
“괜찮아. 너도 이제 우리 식군데 뭘. 둘만 있을 때는 형이라 불러도 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런데 너 아까 보니까 되게 얼어있더라. 신관이 그렇게 무서웠어?”
백한결은 따뜻한 빵을 찢어 수프에 찍다가, 이내 여성 거주민 신관이 생각났는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처음 봤을 때 이유 없이 소름이 돋더라고요. 태도도 고압적이고.”
“하하. 원래 권한을 부여 받은 거주민들이 그렇지 뭐. 단순한 태도로 그들을 평가할 수는 없어. 어찌됐든 우리들은 도와주는 존재임은 분명하니까.”
“그래도 그런 태도를 계속 유지했다가는 사용자들이랑 마찰을 빚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 하지만 웬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기는 힘들걸? 우리는 거주민들이랑 땔래야 땔 수 없는 사이거든. 친하게 지낼수록 활동하기가 더욱 편해져. 그러면 그 반대는 어떨까?”
“불편해지겠죠.”
‘물론 쓸모 있는 녀석들에 한해서지만.’
나는 뮬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백한결은 볼을 불룩 이며 고개를 끄덕끄덕 주억이고 있었다. 간만에 나와 둘이 있자 아카데미 생각이라도 났는지, 머셔너리에 합류한 이후 볼 수 없었던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백한결은 예쁘다. 문득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은하수 같은 눈망울에 오뚝한 콧날, 참해 보이는 외모. 거기다 분홍빛 입술을 달싹이며 음식을 오물오물 씹는 모습까지. 심지어 웨이터가 흘끔흘끔 쳐다보며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헤헤. 맛있어요 형.”
“응? 아, 많이 먹어.”
“네. 형님도 많이 드세요.”
내가 굳이 백한결을 데리고 나온 것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늦게 들어왔고, 오자마자 힘들었던 원정을 떠나야만 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만 아직 지구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있을 터였다. 내상이 없을 리가 없다. 내색하지 않으려는 속내가 기특하긴 해도, 망가지지 않도록 한두 번 보듬어줄 필요는 있었다. 무엇보다 녀석은 발전 가능성이 아주 많은, 각성 시크릿 클래스 ‘신의 방패’니까.
“그래…. 그나저나 클랜에 들어오니까 어때? 뭐 힘든 건 없어?”
“네. 괜찮아요.”
“안 괜찮은 거 아니까 말해봐. 형 앞에서는 다 말해도 괜찮아.”
“으응….”
부드럽게 타이르자 백한결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슬쩍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게, 확실히 뭔가 걸리는 것은 있는 모양이다.
“그게…. 꼭 힘들다기 보다는….”
“조금 서운하네. 한결이가 형 앞에서 숨기는 게 있을 줄이야.”
“아, 아니에요 형님! 그냥 제가 괜히 분란만 일으키는 것 같아서….”
“그걸 해결하는 게 내 일이기도 하지.”
백한결은 여전히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한 번 두 번 계속 채근하자, 결국 한숨을 폭 쉬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실은….”
*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백한결을 먼저 돌려보냈다. 일을 다 보기는 했지만, 러브 하우스로 바로 돌아갈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만큼 중간에 클랜 하우스에 한 번 들러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클랜 하우스 앞에 도착하자, 들어가는 정문부터 바뀌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의 녹슨 문이 아닌 결 곱고 윤기가 반드르르 흐르는 나무문이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름드리 나무와 꽃, 풀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자연의 일부를 뚝 떼어 가지고 왔다고 착각이 들만큼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풍경만 좋은 게 아니었다. 거주, 이동을 세심히 고려해 설계했는지 여러 갈래로 길이 트여있었다.
건물 또한 예전과는 달리 말끔한 외관과 세련된 위용을 내뿜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자연 그 자체 같기도 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정원 위에 세워진 휴양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부로도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문에 휘장이 쳐진 상태였다. 아직 내부 개축 공사는 끝나지 않은 모양. 정원 한구석에 있는 깨끗한 물이 채워진 연못을 보다가, 나는 문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용인들을 구하고 가구를 채워야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첫 시작임을 감안하면 매우 훌륭한 클랜 하우스였다.
하늘은 점점 어스레한 빛을 띠고 있었다. 원정 보고, 식사, 클랜 하우스를 돌아보니 그래도 시간이 꽤 흐른 상태였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나는 클랜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러브 하우스로 직행했다. 굳이 찾아보면 할 일들을 더 찾을 수 있겠지만 얼른 오늘 일을 마무리 짓고 몸을 쉬게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러브 하우스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문이 열리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1층에 있던 고연주가 바로 달려나오며 나를 맞이했다.
“수현!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네. 그런데 잠시만요. 이게 무슨….”
1층의 중앙에는 아까 내가 하연에게 지시했던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이번 원정에서 얻은 성과들은 물론 뮬에서 얻었던 성과들까지 가지런히 나열된 상태였다. 거기다 이미 구즈 어프레이즐(Goods Appraisal)을 대부분 끝낸 듯, 각 장비 위에 놓여진 주문서가 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야, 이 지팡이 옵션 좀 봐! 질서의 오르도? 장난 아니야. 크크크크.”
“이 옷은 뭐지. 너무 야한데?”
“응. 넌 입지 마라.”
“미친 새끼. 너 나 자꾸 건들래? 요즘 참으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1층은 굉장히 복작였다. 테이블은 모두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고, 클랜원들은 장비를 둘러싸고 한창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는, 러브 하우스에 거주하는 밤의 꽃들과 임한나.
“이걸 왜 1층에 깔아놓으셨죠.”
“그게, 수현의 방이 제일 크잖아요? 그런데 장비를 하나씩 놓으려니까 공간이 부족해서….”
“고연주.”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자, 고연주는 뜨끔한 얼굴로 혀를 쏙 내밀었다. 그러더니 눈동자를 한 바퀴 빙글 돌리며 말했다.
“실은 한나의 부탁이 있어서요.”
“임 마담이요?”
“네. 여기서 일하는 아이들 중에, 충분히 전투 사용자로서 나갈 수 있는 애들이 몇 명 있거든요. 그런 애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다고 하길래….”
“흠.”
‘그래 봤자 썩 괜찮은 애는 없던데. 임한나 빼고.’
생계형 사용자들 중 낮은 능력치에 지레짐작 포기하거나, 목숨이 아까워하는 이들도 있긴 있다. 그러나 이미 러브 하우스 내부의 인원은 진작에 제 3의 눈으로 살펴본 상태였다. 고연주의 말대로 노력하면 한두 명은 가능할지도 모르는 인원이 있지만, 솔직히 머셔너리에 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애초에 관심도 두지 않은 거고.
“아잉~. 수현~. 화내지 않을 거죠? 네?”
“…다시 올려놓으려면 제법 고생 좀 해야 할겁니다.”
고연주는 내 표정이 굳은 것을 봤는지 팔짱을 끼우며 애교를 피웠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리자, 밤의 꽃들이 나를 흘끔흘끔 보는 것이 느껴졌다. 몇몇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걸 보니, 그림자 여왕이 애교를 피운 사실이 자못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녀들 뒤로 가만히 서있던 임한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까닥인 후 장비들이 진열되어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뀨뀨!”
장비 사이를 거닐며 뛰놀던 아기 유니콘은, 귀신같이 내가 왔음을 알아채고는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녀석은 이 떠들썩한 분위기가 좋은지 무척이나 즐거운 얼굴이었다. 아기 유니콘을 안아 들자, 장비에 정신이 팔려있던 클랜원들이 그제야 한 명 두 명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 형!”
“김수현! 김수현이다!”
“오빠. 언제 왔어?”
“리더!”
안현, 비비앙, 이유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뭣 때문에 평소 차분한 신상용까지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내 품에 머리를 빛의 속도로 비비는 유니콘을 달래며 가까이 다가가자, 이내 클랜원들은 순식간에 나를 에워쌌다.
“형! 형! 장비들 좀 보세요! 완전 대박이에요! 질서의 오르도 이거 완전….”
“김수현! 나 저거 줘! 나 저거 갖고 싶어!”
“오빠~. 나 이제 스쿠렙프 돌려주면 안 돼? 그리고~.”
“알았다, 알았다. 잠시만. 잠시만 좀 보고 얘기하자.”
새 새끼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애들은 젖히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장비들이 있는 곳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정하연과 김한별이 열심히 남은 성과들을 향해 구즈 어프레이즐 주문을 외우는 중이었다. 둘은 나를 보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만류했다.
“죄송해요. 워낙 감정이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괜찮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고생해주세요.”
“네. 그럼 일단 물품 감정 먼저 끝내도록 할게요. 거의 끝났어요. 한별씨, 다시 시작해요.”
“네.”
둘 다 입이 부르트도록 주문을 외웠는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볼에 착 달라붙어있었다. 이윽고 다시 주문을 외우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감정이 완료된 장비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 살피는 척만했다. 제 아무리 구즈 어프레이즐이라고 해도, 제 3의 눈이 훨씬 정확하다. 해서 나는 곧바로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칼리고 아브락사스(Caligo Abraxas)』
(설명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고대 용사 로이드가 사용하던 검, 아브락사스 입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검이지만 일정 이상의 마력을 주입하면 본래의 진정한 위용을 드러냅니다. 전설에 따르면 봉인이 풀렸을 경우, ‘세계를 베어 갈랐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잠재되어있는 힘은 마왕을 쓰러뜨렸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다만, 지금은 사악한 마법사에 의해 강제적으로 타락한 상태입니다. 원래 이름은 신검 아브락사스였지만, 현재는 칼리고(Caligo : 어둠)가 붙어 마검의 성질을 띠게 되었습니다.)
『파라디수스 플레이트 메일(Paradisus Plate Mail)』
(설명 : 대천사의 축복을 받은, 윗몸에 두르는 흉갑 형태의 갑옷입니다. 착용자에게 가해지는 모든 ‘물리’ 데미지를 ‘마법’ 데미지로 변환시켜 반사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데미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20%입니다. 만일 흡수할 수 있는 충격을 넘어서는 데미지를 받았을 경우 반사 효과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로쓰로스 롱 부츠(Orthros Long Boots)』
(설명 : 아득한 과거 홀 플레인의 고대 왕국에 ‘별’이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것을 수상하게 여긴 왕은 떨어진 별을 궁으로 옮겼고, 당대 최고의 마법사들과 대장장이를 불러 별을 분석하고, 일부는 떼어내 장비들을 만들었습니다. 이 부츠는 별의 일부로 만들어진 부츠로서, 1000일째 되는 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완성되어 오로쓰로스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언뜻 보면 원석으로 만들어져 굉장히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지만, 경량화 마법과 사용자의 발에 맞추는 유연화, 자동 조절 마법이 걸려있습니다. 또한 고대 최상위 마법 래피드(Rapid)가 걸려있어, 착용자가 이것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명으로 래피드와 별을 합쳐 래피드 스타(Rapid Sta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찬란한 섬광(Brilliant Flash) : 라우라 필리스(Laura Phylis)』
(설명 :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활입니다. 축복받은 나뭇잎으로 촘촘히 감싸 요정의 호수에 100년 이상 담갔다가 꺼내어,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오며 하나의 ‘신기’를 품게 된 전설의 무구입니다. 시위도, 화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마력만으로 찬란한 빛으로 이루어진 화살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쏘아진 화살은 하나의 ‘섬광’과 같다 하여 ‘찬란한 섬광’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위그드라실의 나뭇잎을 이어 만든 옷(Yggdrasil’s Leaves Clothes)』
(설명 :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나뭇잎을 이어 만든 옷입니다. 일반 나뭇잎이 아닌, 10년에 한 번씩 피어나는 위그드라실의 꼭대기에 피어나는 나뭇잎으로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한 나뭇잎의 향기는 많은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 최고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정신 오염계열 마법에 강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수’ 계열 마법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단 한가지 단점이라면, 가릴 수 없는 부분은 방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리자 부츠(Rhiza Boots)』
(설명 :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잘라 만든 부츠입니다. 착용자의 몸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으며, 숲 안에 있을 시 그 효과가 더욱 배가됩니다. 만일 ‘요정’이 아닌 ‘인간’이 이 부츠를 착용했을 경우 요정과 비슷한 몸놀림과 점프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수현, 어때요? 괜찮은 것들이 많이 있죠?”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간신히 침음을 삼켰다. 옆에서 고연주의 황홀한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이런 장비들을 얻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갖게 되니 감회가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머리띠도, 정체불명의 단검 두 자루도, 클래스를 계승할 수 있는 것도, 마볼로의 연구실에서 얻은 성과들도 남아있다. 그리고 요정 여왕의 눈물도 잊으면 안 된다.
두근대는 마음을 추스르며, 나는 남은 물품들을 향해 제 3의 눈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으어어어. 장비 설명 부분을 적어보니 총 3KB더라고요. 최소 11KB를 올린다고 가정하면 장비 설명에 30%를 할애하는 건 좀 많은 것 같아 그냥 아예 분량 자체를 늘려버렸습니다. 다음 회는 장비 설명을 약 6개~7개를 해야 해요. 나머지는 굳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고요. ‘ㅅ’ 다음 회부터는 설명을 조금 줄이는 방향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비 하나하나에 전설, 기록을 넣다 보니…. OTL
PS. 영어는 추가로 넣었습니다. 소중한 조언 감사합니다. _(__)_
『 리리플 』
1. 미월야 : 1등 축하합니다. 장비 설명이 많아서 둘로 나누는 게 좋다고 여겼습니다. 남은 설명까지 들어가면…. 설명이 본 분량의 50%를 넘을 것 같아서요. ㅜ.ㅠ
2. 추락한날개 : 양해 부탁 드려요…. 연참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못하는 상황입니다…. OTL 시간이 남으면 리리플도 자정에 딱딱 올릴 텐데, 연재 분량도 간신히 맞추고 있어요…. ;ㅅ; 흑흑흑흑….
3. 불타는감자 : 에, 뀨뀨. 귀엽지 않나요? 뀨뀨야~. 하면 뀨~. 이러면 되게 귀여울 것 같은데요. ㅋㅋ.
4. 브리키오 : 오그라드는 것도 있지만 이상한 문장도 많더라고요. ㅋㅋㅋㅋ. 일단 통과의례에서 이상한 부분이랑 중간에 나오는 뜬금없는 개그 부분은 싹 다 삭제할거예요. 한별이랑 헤어지는 장면도 조금 부드럽게 바꾸고요.
5. 오피투럽19 : 오호라. 오피투럽19 님 말씀도 일리가 있네요. 안솔의 성향을 설정할 때, 그때는 성향이 되게 범위가 좁았거든요. 중간에 성향을 다양화시켰고요. 그 부분은 이북 교정 때 참고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 큐베개객끼 : 쿠폰 감사합니다. _(__)_ 네. 쿠폰을 작가 분들한테 주시면 작가 분들한테 원고료가 들어오고요, 큐베개객끼 님은 아마 노블 이용 기간이 늘어날 거예요.
7. 천냥보은 : 이북 교정이 쉽지가 않더라고요. ㅜ.ㅠ 솔직히 초반은 진짜…. ㅋㅋㅋㅋ.
8. 파르나르 : 음~. 아마 클랜 하우스 만들고, 영약을 먹으면 그 이후로 나오지 않을까요? 이번 휴식 + 자리 잡는 챕터 끝부분에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9. 난행복해 : 수정 완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
10. 유리켄느 : 엇? 마지막에 하신 말씀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정확하고, 자세하고, 상세한 설명을 요청합니다. 궁금해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