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18
00317 재회 %26 귀환 =========================================================================
공격으로 나온 이가인과 구원을 기다리는 부랑자 남성, 정현우.
공격으로 나온 다른 부랑자 여성, 신아영과 구원을 기다리는 이해인.
그리고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백서연.
게임은 시작됐다. 이가인이 이기면 정현우가 살 수 있고, 신아영이 이기면 이해인이 살 수 있다. 나는 흥미로운 마음으로 눈앞의 둘을 바라보다가 흘끗 백서연을 쳐다보았다. 입이 꽁꽁 막혔음에도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고 눈동자에는 핏발이 선 게 자못 살벌한 모습이었다.
괜히 대결을 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저렇게 팀을 짠 것에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백서연은 조금 특이한 부랑자였다. 단순히 ‘부랑자’라는 말 한마디로 놈들을 일반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놈들은 원래 끼리끼리 모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에 사용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情)이라는 감정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백서연은 적에게는 비정하리만치 잔혹한 면모를 보이지만, 자신을 따르고 의지하는 부랑자들은 끔찍이도 아끼는 부랑자였다. 어떻게 보면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그런 인간이었다.
나는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백서연은 독종이다. 이미 유혹의 눈동자도 실패했고 어떤 모진 고문을 가한다고 해도 자의로 정보를 뱉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신조작을 통해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그녀의 정신력이 예상외로 막강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백서연이 자살을 강제적으로 막으면서 그녀의 정신을 망가뜨려야 한다.
다행히도 백서연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였다. 이미 도시 습격에 성공한 상황에서 굳이 추적대까지 편성해서 쫓아온 것을 보면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녀의 정신을 망가뜨릴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우선적으로 백서연 주변의 부랑자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녀의 성격과 부랑자들간의 관계를 잘 비틀어보면 길이 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백서연을 잡은 것은 예상외의 수확이었다. 이 수확을 잘 이용할지 아니면 망칠지는 오롯이 내 손에 달려있었다. 급하게 갈 필요는 없다. 고연주의 말대로 천천히, 느긋하게 갈 생각이었다.
해서, 나는 제 3의 눈으로 아직도 서로를 멀거니 보고만 있는 둘을 응시했다.
1. 이름(Name) : 이가인(3년 차)
2. 클래스(Class) : 망상 마법사(Rare, Delusion Sorceress, Master)
3. 진명 · 국적 : 백치 미인(Beautiful Fool) · 대한민국
4. 성별(Sex) : 여성(22)
5. 성향 : 혼돈 · 우울(Chaos · Gloom)
(사용자의 마력 회로가 70% 가까이 손상된 상태입니다. 근래 몸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행운 능력치를 제외한 전 능력치가 하락했으며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영구적인 능력치 손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자체적인 회복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엘릭서 한 병 또는 최소 6개월 이상은 정양해야지만 완치할 수 있습니다.)
유혹의 눈동자를 통해 한가지 알아낸 사실은 이가인과 이해연은 백서연의 심복이라는 것. 이가인은 직접 부랑자로 만들었다고 했고, 이해연은 통과의례 시절부터 함께해온 사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둘을 찢어놓은 것이다.
누가 이기든 누가 지든 결과는 똑같다.
“3분 경과. 참고로 무승부 같은 건 없다. 저 둘이 죽으면 너네 둘도 똑같이 죽는 거야.”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극한까지 몰린 부랑자들이었다. 그런 내 말이 촉매가 되었는지 비로소 한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인 부랑자는 신아영이었다. 양다리는 그림자로 인해 꽁꽁 묶인 상태에서 팔로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가인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아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신아영은 이가인의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온갖 마이너스한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아영은 잠시 이가인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거세게 손을 휘둘렀다.
짝!
얼마나 세게 쳤는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이가인이 얼굴이 대번에 돌아갔다. 신아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이가인의 고개는 마치 굳은 것처럼 돌아간 그대로를 유지했다. 이윽고 이가인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입이 서서히 벌어질 즈음 다시 한 번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퍽! 퍽!
처음은 어렵지만 그 이후부터는 쉽다. 신아영은 첫 번째 가격 이후 거침없이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비록 현재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곤 해도 전투 경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신아영은 얼굴을 집요하게 노리며 양손을 휘둘렀고, 이가인은 그저 속절없이 당할 모양인지 때리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고개만 늘어뜨리고 있었다.
“읍! 으읍! 으으으읍! 으으으으으으으읍!”
한쪽은 때리고 한쪽은 맞는다. 이미 싸움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모양새였지만 그것은 점점 격렬함을 더해가고 있었다.
어느새 이가인의 볼은 벌겋게 부어 올랐고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서연의 비명에 가까운 소음이 들렸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고연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연주. 풀어주세요.”
“네? 백서연을요?”
“예. 다리는 여전히 구속해두시고 다른 건 모두 풀어주세요.”
“수현도 정말. 어지간하다니까요. 알았어요~.”
고연주는 헛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흘리고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백서연을 감싸고 있는 그림자가 일부 떨어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한 번 크게 들썩였다.
이윽고 백서연은 몸의 구속이 해제된 것을 알아차렸는지, 곧장 중앙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멍청한 자식아!”
백서연이 아무리 외쳐도 신아영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중앙에 도착하고 신아영을 거칠게 밀치고 나서야 게임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신아영! 너 미쳤어? 지금 저 새끼 말에 놀아나고 있는 거 몰라?”
백서연이 눈을 부라리자 신아영은 약간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가 고개를 따라 늘어지며 신아양의 얼굴을 감싸 들었다.
“정신 차려! 너….”
이윽고 백서연이 한차례 더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 사이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켜.”
“뭐, 뭐?”
“비키라고 이 씨발년아!”
“너 지금 뭐라고…?”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추적하겠다고 억지만 부리지 않았어도…! 내, 내가 지금 왜 이 꼴을 당해야 하는데? 다 너 때문이라고 이 씨발아아아아!”
신아영은 이제 거진 우는 목소리로 절규하고는 백서연을 거세게 밀치며 다시 이가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일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곧 신아영이 손이 다시 이가인에게 닿는 순간 백서연은 신아영의 머리채를 잡았고, 신아영의 얼굴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을 향했다. 그것이 바로 개싸움의 시작이었다.
“놔! 안 놔? 노라고!”
“너…. 그만해! 정신차려 이 미친년아!”
“그, 그만. 그만. 그만. 그만.”
신아영은 머리를 바동거리다가 이내 몸을 뒤집으며 백서연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제압하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똑같이 머리채를 붙잡히고 말았다. 서로의 머리를 쥐어뜯고, 뒹굴고, 얼굴을 치고, 볼을 할퀸다. 이가인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둘을 말려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말 그대로 진흙탕 개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킥.”
그 순간 어디선가 미약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자 아까 내가 붙잡은 여성 사제가 보였다. 사제는 이 광경이 그리도 우스운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가늘게 어깨를 떨고 있었다.
“재밌어요?”
담담히 말을 건네자 사제는 웃음을 뚝 멈췄다. 그리고 손을 내리더니 이내 당돌하게 느껴지는 눈초리로 대답했다.
“네. 너무 재밌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너무 통쾌하고, 너무 후련하고, 너무 속 시원해요. 미칠 정도로 말이에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곤란하네요. 저래서야 누가 이겼다고 보기엔 어려운데.”
“그냥 다 죽으라고 놔두면 안 돼요?”
“그건 안되죠. 이긴 사람은 살려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까요.”
“아이 아쉬워라…. 어머?”
사제는 뭔가 굉장한 것을 발견했는지 예쁜 목소리로 감탄했다. 다시 중앙으로 고개를 돌리자 뜻밖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만!”
백서연과 신아영의 꼴은 제법 웃겼다. 머리가 산발이 되었음은 물론이요 코피는 터져 흐르고 입술을 찢어져 피범벅이었다.
그리고 둘의 사이로,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이가인은 중앙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서로가 씩씩 숨을 몰아 쉬는 가운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우…. 우….”
단순히 우는 건지 아니면 흐느끼는 건지 미묘한 소리를 내던 이가인은 서서히 고개를 올려 나를 쳐다보았다.
이가인의 얼굴은 예의 멍청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결연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서로 눈을 맞춘 채로, 이윽고 내가 중앙으로 한 발짝 내디딘 순간이었다.
이가인은 잠시 고개를 돌려 이해인이 쓰러져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다시 보는 눈동자가 번쩍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이내 몸이 한 번 크게 경직되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낄 새도 없이 입이 서서히 벌어지고 그 안에서 진득한 액체가 왈칵 쏟아졌다.
“가, 가인아?”
“아….”
“가인아! 가인아!”
‘설마….’
혹시나 해서 사제를 대기시켜두기는 했다.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살짝 놀라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얼른 마음을 가다듬곤 재빨리 아래로 내려가 이가인의 상태를 살폈다.
바르르 떨리는 입을 억지로 벌려 안을 만져보자, 뜨끈한 핏물과 함께 절반 정도 잘라진 혀가 느껴졌다. 결국 이 상황을 견디지 못했는지 혀를 깨문 것이다. 나는 혀를 쯧쯧 차고 숙였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혀를 깨물었네.”
“가인아? 가인아! 가인아아아아!”
“야, 시끄러워.”
퍽!
“아악!”
백서연의 고함이 거슬려 세게 배를 걷어차자, 그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가인을 바라보았다. 몸을 간헐적으로 떠는 것을 보니 아직 살아있었다.
혀를 깨물어 잘랐을 경우에는 쇼크사, 과다출혈, 질식사로 죽을 수 있다. 지금 당장에는 죽지 않겠지만 이대로 놔두면 확실한 사망이다.
주변은 조용했다. 들리는 것은 오직 여럿이 내쉬는 숨소리뿐이었다. 나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백서연과 신아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걷어차인 충격이 남아있는지 복부를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신아영은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 문득 하나의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이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신속하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신아영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게임은 여기서 끝내도록 한다. 결과는, 백서연의 난입으로 무효다.”
“그럼….”
“죽는 거지 뭐.”
신아영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서린다. 나는 유유히 몸을 돌려 고연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흥이 깨졌네요. 고연주. 저는 야영지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남은 네 명은 알아서 처리해주시고, 이곳 좀 정리해….”
그렇게 돌아가려는 뉘앙스를 풍기며 발길을 돌린 순간이었다. 예상대로 누군가 내 발목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악착같이 기어왔는지 아직도 한 손으로 배를 잡고 있는 백서연이 보였다. 나는 가볍게 발을 털었다.
“그러게 누가 난입하래.”
“…….”
백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발을 이용해 그녀의 고개를 강제로 한쪽으로 꺾었다. 이해연은 서서히 한계가 다가오는지 이미 쓰러진 상태였다. 그리고 간신히 고개를 들고 있는 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쟤는 너 때문에 죽은 거야. 아니. 어쩌면 얘나, 얘나, 아니면 저기 남성이 살았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네가 반칙만 하지 않았다면 못해도 두 명은 살았을 텐데. 안 그래?”
“…살려줘.”
덜덜 떨리던 백서연의 입술에서 비로소 첫마디가 튀어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칠던 목소리는 한풀 꺾인 상태였다.
문득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묘하게 차오르는 의식의 정체는 바로 1회 차의 기억이었다. 엎드려있는 백서연의 모습에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들었다. 나는 천천히 발을 올려 그녀의 머리에 발을 올렸다. 백서연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살려달라고 말하는 주제에 너무 건방진데?’
“살려달라고 말하는 주제에 너무 건방진데.”
‘기회를 줄게. 어머나, 다시 한 번 말해봐. 텔 미~. 텔 미~. 꺄하하하!’
“다시 말해봐.”
“살려…. 주세요….”
나는 코웃음을 치곤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서너 발자국 정도 걸었을 즈음이었다.
곧 쿵, 하고 머리가 바닥을 찧는 소리가 들렸고 후들거리는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 들었다.
“게임…. 도중…. 난입한 것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동료들을 치료해주세요….”
“…….”
“제발…. 부탁합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신다면….”
이제는 애절함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은 백서연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 하기야 너도 난입한 죄는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싸우긴 하더라.”
“…….”
“좋아. 옆에 사제님도 네 난입이 재밌었다고 하시니 특별히 인심 좀 쓰지. 그럼 누굴 살려줄까?”
“뭐, 뭐라고…. 요?”
백서연은 떠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더 이상은 아무 말도 않은 채 그녀와의 거리를 줄였다. 그리고 품을 뒤져 미리 준비해놓은 치료 물약을 한 병 쥐어주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입을 열었다.
“한 병이기는 하지만, 질 좋은 거야. 한 명한테 사용하면 오늘 게임에서 입은 부상은 완치할 수 있을 거다.”
“…….”
“두 명한테 나눠 써도 일단 살릴 수는 있겠지만…. 그럼 그만큼 효과가 떨어질걸. 세 명은 말도 안되고.”
“그, 그런….”
“아무튼 살릴 사람은 네가 정하라고.”
나는 백서연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곤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일말의 미련도 없이 등을 돌려 걸었다.
이윽고 걷던 도중이었다. 한순간 고연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지금껏 조용히 구경만 하다가, 나를 보며 조용히 미소를 흘렸다.
“고마워요. 덕분에 좋은 구경했네요.”
“기대에 부응했다니 기쁘군요. 아무튼 저는 사제님과 함께 야영지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곳을 부탁합니다.”
“세상에 천하의 백서연이 저럴 줄이야…. 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걱정 말아요. 두 명만 처리하면 되는 거죠?”
“예. 백서연의 선택이 끝나면 해주시면 됩니다. 오늘 하루만 고생해주세요. 그럼 사제님, 가시죠.”
그림자를 다룰 수 있는 만큼 부랑자들의 감시는 고연주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나는 더 이상의 여지를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사제의 팔을 잡아 끌었다.
사제는 부랑자들을 한 번 쓱 훑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
“생각해보니까 그 여성은 참 불쌍하네요.”
“예?”
야영지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경쾌함이 느껴질 정도로 걷던 사제는 낭랑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맨 처음 싸웠던 부랑자요. 제일 열심히 싸웠는데 이제 선택을 기다리는 처지잖아요.”
“아아.”
“일부로 그러신 거죠?”
사제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않았다. 확실히 나는 고연주에게 두 명을 처리하라고 했다. 신아영은 죽을 만큼의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만일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녀에게 죽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 명을 죽이고 다른 한 명을 살리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불합리의 극치였지만, 아무런 마음도 들지 않았다. 상대는 부랑자였다.
“아, 불쌍해라. 지금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을까요? 깔깔.”
‘불쌍하다 라. 과연.’
사제의 불쌍하다는 말에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어쩌면 도시로 들어가기 전, 지금 이곳에서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말로는 살려준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럴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으니까.
이후 우리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야영지에 도착했고, 교대 시간까지 아무 이상 없이 불침번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예상대로, 부랑자들은 9명에서 7명으로 줄어들어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는 이가인과 이해인을 확인한 후, 나는 에덴을 향한 출발을 알렸다.
이제 도시는 금방이었다.
============================ 작품 후기 ============================
백서연은 정신력이 강하다는 설정입니다. 그런 만큼 일반적인 신체에 가하는 고문이나 성적인 고문으로는 굴하지 않는 여성이죠. 다만 누구나 그렇듯이 약점은 있고, 그 약점은 본문에 나온 백서연의 성격입니다. 다만 어느 분께서 그러셨듯이 백서연은 이미 포로로 잡힌 상태입니다. 약점을 세게 찔렀다고 해서 자의로 정보를 뱉지는 않겠죠. 그래서 천천히 정신을 흔들어나갈 예정입니다. 도시로 돌아가서도 그러한 과정은 이어지고, 방법 또한 많아질 겁니다.
그리고 오늘 아주 약간의 회상 내용을 넣었습니다. 내용 자체는 간단합니다. 요즘 시점 변환이 잦아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와 중간에 일부만 삽입했습니다. 추후 적절한 기회가 닿으면 해당 내용은 추가로 삽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개학이 다가오다 보니 제가 알게 모르게 마음이 많이 급해진 것 같습니다. 이번에 23학점을 신청했거든요. 아직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만, 쫓기듯이 쓰는 건 스스로 사양하고 싶습니다. 다시 예전의 차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리리플(315회) 』
1. 라무데 : 1등 하셨군요! 하하. 축하합니다. 🙂 이번 회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2. 킹슬레이 : 지적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완결을 앞당기려면 최대한 제 것을 지키면서 스스로도 조금 빨라질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느리게 쓰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하루 만에 고쳐지지가 않네요. 다른 작가님들께 조언은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생략과 압축을 공부하는 중입니다.(쫓겨서 하는 건 아니고, 스스로 필요하다 여겨서 하는 겁니다. 하하.)
3. 서비스 : 최대한 이용하고, 필요한 것들만 빼먹고 죽여야겠죠. 그게 주인공의 성격에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4. NinthSky : 음. 재미있는 생각이십니다. 저도 한 번 상상해봤는데, 잘 살고 있다가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서 죽어라 이 원수야 하면. 음. 하하. 조금 그렇네요.
5. 애독자C : 이제 해탈했습니다. 하하. 로유미든 로유나든 로유라든 뭐든 좋습니다.
『 리리플(316회) 』
1. 오어더주 : 오, 1등 축하합니다. 뭔가 익숙한 분들이 보일 것 같았는데 아니라서 놀랐습니다. 😀
2. 소비에 : 아마 제가 더욱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대한 지루함을 덜 느끼시면서 추후에 일어날 일에 뜬금없다고 느끼지 않으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많이 어렵겠지만요. 하하.
3. 천연천연 : 그분들에게는 제가 부랑자의 잔인함에 대해서 묘사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_(__)_ 아. 추후 백서연의 입에서 나올 정보를 기대해주세요! 🙂
4. 라티인형 : 한가지 힌트를 드리면. 하하. 아,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할까요. 힌트가 너무 크네요. 이번 전쟁 파트에 출현할 예정입니다.
5. 일렌 :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독자분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고 싶네요. 하하.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