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60
00359 함정(1) =========================================================================
이어진 정하연의 설명은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통제실에는 근접 계열 등 마법에 대한 지식이 얕은 사용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배려해서 그런지 그녀의 해석은 마법사 특유의 난해함이 없었다. 오히려 전문 용어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단순하고 간략한 설명이었다.
그러면서도 정확한 사실과 핵심만 짚어주니, 이윽고 설명이 끝났을 때, 통제실의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찌됐든. 정하연의 말에 따르면 수호용 마력 차단 진의 특성은 총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체내 회로를 따르는 게 아닌, 마법 진에 그려진 독자적인 공정을 따라 마력이 발현, 유지된다.
2. 진이 유지되는 동안에 외부에서 생성된 마력은 내부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다.
3. 진이 유지되는 동안에 내부의 마력은 동결된다.
4. 진의 크기나 규모는 주문을 외운 자의 의지에 따라 임의로 조절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조건들은 어디까지나 마법 진 고유의 특성만을 나열한 것으로, 마력이 갖는 상대성은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내가 화정의 힘을 사용할 경우, 외부에서 생성된 힘일지언정 내부에 확실한 영향을 줄 자신이 있었다.
어느새 통제실을 가득 채웠던 열기는 서서히 잦아들고, 다들 골똘히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내비쳤다.
해석은 끝났다. 이제는 ‘왜 해당 마법 진을 설치했는가.’에 대해서 밝혀낼 시간이었다.
“푸른 달의 마도사.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그때, 익숙한 음색이 통제실을 나직이 울리는걸 들을 수 있었다. 설핏 시선을 돌리자 타로 카드 마술사, 선율이 손을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진이 유지되는 동안에 내부의 마력은 동결된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 추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저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있는 선에서는 대답해드릴 수 있어요. 어느 부분이 궁금하신데요?”
“외부에서 행사하는 마력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그리고 내부의 마력은 동결된다…. 이 두 조건의 정확한 차이점이 궁금해요.”
“그러고 보니 나도 그게 궁금했어. 왜 우리뿐만 아니라 자기들도 제한을 받을 수 있는 진을 설치했을까?”
선율의 질문에 몇몇 사용자들은 일견 타당하다는 듯 수긍하는 빛을 띠었다.
“그건…. 일단 보존의 차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내부에서는, 이미 발현된 마력에 한해서는 보존이 가능해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지, 정하연은 약간 고민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선율의 눈매가 대번에 가늘게 변했다.
“그 말씀은…. 설마! 차단 진이 생성되기 전 발현된 마법은, 진이 유지되는 동안 보존이 가능하단 말씀이신가요? 그래서 동결이란 표현을…?”
“맞아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 안의 범위에서 일뿐, 마력의 상대성을 벗어나지는 못해요. 수호용 마력 차단 진은 독자적인 해석이 8할 이상 들어간 고대의 마법 진이에요. 현대의 마법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죠. 즉 진의 파장과 맞지 않는 마법의 발현은, 보존의 효과를 받을 수 없어요.”
“후유.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래도 여지가 있는 만큼 불안하기는 한데….”
“현대의 마법 진이라면 몰라도, 고대의 마법 진은 그리 흔한 게 아니잖아요. 더구나 정식 명칭에서도 나와있듯이 마력 차단 진은 어디까지나 보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법 진이에요. 그와 반대되는 성향을 지는 진은, 설령 고대 마법 진이라도 해도 파장이 맞을 가능성은 극히 적지 않을까요?”
마지막에 정하연은 의문문으로 말을 끝내었다. 이 말인즉슨 방금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는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여기서 그것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정도까지 해석해준 것만으로도 사실 엄청나다고 볼 수 있었다.
“워프 게이트.”
그때였다. 지금껏 가만히 듣고만 있던 조성호(고려 클랜 외교 간부)는, 갑작스레 뭔가 생각났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바바라 안에 있는 보조용 고대 마법 진이라면, 워프 게이트가 있지 않습니까?”
그 순간, 머리 회전이 빠른 사용자들은(정확히는 마법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이들은.)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조성호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만일 둘의 파장이 맞는다는 가정하에, 워프 게이트를 활성화한 채 마력 차단 진을 발현하면 기능이 보존될 가능성이 있다. 즉 진이 외부의 공격을 차단하는 동안 최대한 안전하게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겠다는 말이었다.
“다른 도시에 조금 남겨두고 왔다고 해도, 지금 바바라에 못해도 일만 명 이상은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한꺼번에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름의 방법을 강구한 것이겠지요.”
“오호. 그렇다면 적들은 신세계 작전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이 되는군요!”
물론 조성호의 말도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하연과 선율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이 가설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잠잠했던 통제실에 다시금 활기를 띤 소란이 찾아 들기 시작했다. 적들이 전투에 앞서 도주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으로 살짝 결여되었던 자신감이 다시 제자리를 찾은 모양이다.
이윽고 고려 로드는 기다란 한숨을 내쉬고는 분연히 몸을 일으켰다.
“북부와 남부의 진행 상황은 어떻지?”
“현재 전 도시 동시 탈환을 목표로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도착하는 즉시 작전에 들어간다고 하니 나흘, 아니 사흘 안으로 경과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나흘, 아니면 사흘이라….”
고려 로드는 중앙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쭉 훑어보더니 이내 나직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워프 게이트가 끊겼을 때, 놈들의 반응이 궁금하군.”
*
바바라 평야의 새벽은, 차갑고 고요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풀을 지르밟으며 앞으로 진군하는 수천 명의 발소리뿐.
이윽고 바바라는 점차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서로 오늘밤은 푹 쉬자고 했던 주제에, 성벽에서는 제법 많은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오늘 새벽은, 바로 동부와 서 대륙 그리고 부랑자들간의 제대로 된 첫 격돌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일단 동부는 급할 필요가 없는 만큼 고려 로드는 서로의 화력을 교환하는 선에서 그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홀 플레인의 전쟁이 대부분 마법에 의해서 판가름 난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늘 전투야말로 차후 승패를 가를 척도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정지.”
고려 로드의 나직한 한 마디. 그러나 주변이 고요하고 음성 증폭 마법이 걸려있어서 그런지, 사용자들의 걸음은 일제히 멈추었다.
“진지 구축.”
1, 2, 3, 4제대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제대, 근접 계열 사용자들은 최전방에서 화살을 방어한다.
2제대, 궁수들은 저격을 위한 화살을 준비한다.
3제대, 마법사들은 화력을 퍼붓기 위한 공격 마법을 준비한다.
4제대, 사제들은 대규모 방어 신성 주문을 준비한다.
5제대, 암살자들은 대기.
바바라를 이백오십 미터 즈음 남겨두고 진형은 순식간에 구축되었다. 그리고 각 제대 장에 의해, 제대 별로 준비가 시작되었다.
“───. ───. ───.”
“───. ───. ───.”
“───. ───. ───.”
“───. ───. ───.”
그 중 가장 압권은, 바로 마법사들과 사제들이 있는 제 3, 4제대였다.
서문 부대의 인원은 약 5천명. 각각 주문은 다르겠지만. 약 1천명에 달하는 사용자들이 동시에 주문을 외우는 소리는 가히 엄숙하다고 봐도 좋을 만큼 웅장했고 또한 장엄했다.
이윽고 성벽과 평야가 이어지는 사이로, 서로간 엄청난 마력의 흐름이 교차한다.
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웅!
더 이상 평야는 어둡지 않다. 각자의 손 또는 지팡이에는 각기 오색찬란한 불빛이 휘감아 들어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질속(疾速) 영창을 익힌 사용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1차 공격을 위한 주문이 완료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인 또한 일단의 주문을 마쳤는지, 제 2제대를 맡고 있는 선율이 하늘 높이 팔을 들어올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한 장의 작열하는 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이윽고 선율은 들고 있던 카드를 주문을 외치는 것과 함께 훌쩍 놓아버렸다.
“증폭(Amplification)!”
화아악!
그러자, 허공을 나풀거리듯 선회하던 카드에 잠시 입체감이 생성되는가 싶더니 이내 네모난 각을 따라 연한 초록빛 장막이 허공에 펼쳐졌다.
“발사!”
그리고 “발사.”라는 소리가 들린 순간.
“!”
거대한 굉음과 함께 사용자들이 무기에 담고 있던 마법이 터져나간다. 수백 발의 마법이 일제히 하늘을 날자, 순간적으로 고막이 크게 울렸다. 그 여파가 어찌나 강렬한지 온몸의 살을 짜릿하게 찔러 들어온다.
문득, 입술이 가볍게 떨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직 전투의 도입부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가느다란 곡선을 그리는 마법들은, 선율이 펼쳐놓은 장막에 집중적으로 몰려들었다.
그때였다.
“가속(Acceleration)!”
다시 한 번 이어지는 선율의 외침.
쐐애애액!
그러자 장막 전까지만 해도 완만한 곡선을 그리던 마법들이, 장막을 통과하자마자 궤도를 달리한다. 잠시 장막에 머물렀던 마법들은 한순간 액셀레이터를 밟은 듯 재빠르게 성벽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완벽한 직각이었다.
수백 발의 마법은 깔끔한 직선 궤도를 그리며 성벽아래로 세차게 몰려들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폭우처럼 또는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처럼. 무수한 마법의 빗방울들이, 유성과 같이 성벽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물론 놈들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마력의 흐름이 일순 뚝 멈추었다. 과연 사 방향에서 쏟아지는 수천 발의 마법을 어떻게 대응할지. 나는 더욱 안력을 돋워 성벽을 응시했다.
펑! 퍼벙! 퍼버버벙!
그리고 그 순간, 놈들의 대응도 시작되었다. 내가 보고 있는 서문의 성벽에서도 가히 수백에 이르는 마법이 화려한 폭발과 함께 쏘아진 것이다.
그리고 그 마법의 목표는, 우리가 아닌 바로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화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건가?’
분명 저쪽에도 사제가 있을게 분명한데, 우리가 아닌 발사된 마법들을 겨냥했다. 이 말인즉슨 보유한 사제로는 막을 자신이 없으니 마법으로라도 화력을 감소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서로의 마법이 맞붙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내 텅 비어버린 허공에서, 두 세력의 마법이 맞붙었다. 비로소 본격적인 화력 겨루기의 시작이었다.
번쩍!
다시 한 번, 화려한 불꽃과 거대한 폭음이 화음을 이뤘다. 마치 성대한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허공에는 폭발의 여파로 인한 빛 줄기들이 사정없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고, 목표를 잃은 불똥들이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가 내려온다.
그리고, 첫 화력전의 결과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후우우우….
허공에 그려진 커다란 버섯송이 모양의 연기. 그리고 연기가 사방에 자욱이 퍼질 즈음, 그 사이를 뚫고 아까보다 확연히 줄어든 마법의 다발이 시야에 잡혔다.
그리고, 아직 힘을 잃지 않은 마법들은 그대로 성벽에 내리 꽂혔다.
꽝! 꽝꽝!
꾸릉, 꾸르릉!
짜작! 짜자작!
그때였다. 성벽 위 대규모로 펼쳐진 방어 마법이 난타당하는 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출현한 열 줄기의 벼락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내리 꽂힌다.
‘저것은…. 벼락?’
구름을 이용할 수 있는 형의 마법 특성상, 화망이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놈들 또한 설마 이렇게 시간차를 두고 들어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뒤이어 들어간 벼락은 확실히 먼저 들어간 마법에 힘을 보태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자욱했던 연기도 옅어졌다. 그리고 일단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놈들이 펼친 방어막은 처음 발사된 마법을 전부 방어한 듯 보였다.
그러나, 형이 노린 것은 방어막이 아니었다. 형의 가장 큰 장점은 무지막지한 능력치도 능력치지만, 무엇보다 정교한 마력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
우직! 우지직!
어느 한 군데 성벽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이곳 저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성벽은 그렇게 잠시 동안 버티는 듯 싶었지만, 이내 오른쪽 한편에서 성벽의 일부가 거친 소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쿵!
이 찰나의 순간, 형은 방어막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을 탐색하고 그곳에 정확히 벼락을 내려친 것이다.
“…….”
휘오오오. 휘오오오.
본격적인 공성전의 시작.
그리고 첫 날의 화력 겨루기는, 동부 사용자들의 우세로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아이고. 오늘 너무 늦었네요. 그래도 일일 연재를 지켰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하하. 아. 전쟁 파트는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요. 견제에 대한 내용은 생략에 들어갈 예정이고, 곧바로 단판 승부를 터뜨릴 생각입니다. 🙂
『 리리플 』
1. 데슈카르 : 1등 축하합니다. 하하. 예. 맞습니다. 1등은 데슈카르 님 것입니다.(?)
2. Dark설 : 헉. 그럴 리가 없잖아요. 시, 신상용 머리라니요. ㅜ.ㅠ
3. dbss : 아니요. 현은 부랑자 대장이 아닙니다. 수뇌부 중 한 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4. 천연천연 : 크크크크. 기대해주세요. 재미있으실 겁니다. 일방적인 흐름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발상의 전환이지요. 후후.
5. 아미슈 : 암 쏘 쏘리 벗 알러뷰 다 거짓말. ㅜ.ㅠ 죄송합니다!
6. 가입하기싫다 : 예. 유니콘은 신수입니다. 춤이라고 해봤자 그냥 발을 마구 휘젓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7. 멜리스 : 수정 완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8. 신참만세 : 네. 내용에 나와있지요. 지금 필드 효과는 해제한 상태라고요. 😀
9. 갸루루루루 : 사망 플래그까지는 아닙니다. 그러한 의도는 들어있지 않았어요. 🙂
10. 센서티브 : ! 허, 헐. 그런 이유라니요. 대단하세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