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74
00373 신상용 =========================================================================
“시몬.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시몬을 부르는 유리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청년을 보는 눈길은, 약간이지만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섞여 있다.
그것은 비단 유리나뿐만이 아니었다. 들판을 한창 달리던 도중 시몬이 갑작스레 걸음을 멈춤으로써, 일대의 사용자들 또한 달리는 것을 정지한 것이다. 그들의 시선 또한 하나같이 한 청년, 시몬에게 쏠려있었다.
“시….”
“쿠샨 토르가 죽었네요?”
그때였다. 보다못한 유리나가 한 번 더 입을 연 순간, 비로소 시몬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었다.
“그리고 정령들도 사라졌어요.”
이윽고 천천히 몸을 돌린 시몬이 살며시 얼굴을 드러내었다. 유리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살짝 뜬 실눈 틈으로 보이는, 마치 악마와 같은 새빨간 눈동자. 그리고 히죽 끌어올린 입 꼬리. 언제나처럼 싱글벙글한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슬아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비교적 오랫동안 최 측근으로 활동해온 만큼, 유리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시몬 그라임스의 심기가 매우 거슬린 상태라는 것을.
“씨발, 짜증나네요.”
이어서 툭 던진 한 마디. 평소 그의 언행을 비추어볼 때, 방금 전 욕설은 시몬으로써 굉장히 이례적인 언사였다.
“왜 우리가 고작 한 놈한테 쳐 발려야 하는 거죠?”
“시, 시몬….”
“왜 내가 짠 판이 그 한 놈한테 좌지우지되는 거야?”
“…….”
유리나는 간신히 꺼내려 했던 말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더 입을 열지 않기로 결심했다. 시몬이 이성을 포기하는 순간 원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가 드러난다. 그 모습을 한두 번 본 기억이 있어, 그녀는 더는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게 상책이라 여겼다.
이후,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것은 비록 몇 분에 불과했지만, 누군가 에게는 생명 줄이 될 수도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 에게는 이대로 흘려 보내기 아까운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그 동안 잇따라 숨을 가쁘게 내쉬던 시몬은, 이내 살얼음 같은 미소를 띠운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몬의 걸음이 향한 곳은 부랑자, 그 중에서도 수뇌부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
탁 트인 들판을 질주한다. 시꺼멓게 탄 시체들을 밟아 가로질러, 정령과 마수가 전투하던 지역마저 단숨에 지나친다. 그에 따라 나 또한 덩달아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 전 별 고생을 다하고 나서 겨우겨우 한 걸음 내디뎠던 게,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기세를 몰아 나는 더욱 거침없이 질주했고 이내 전장의 초입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전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 번 재빠르게 훑어본 결과, 상황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원래 이곳을 채웠어야 할 놈들이 전부 나자빠져서 그런지, 적들이 그다지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내 시선이 닿는 곳에 한한 말이었지만…. 아무튼 상황은 생각보다는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도착한 곳이 아직 초입에 불과하기도 했거니와, 이 정도로 적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곳으로 몰려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한숨을 쉬고 나서 고개를 들었고 저 멀리까지 샅샅이 훑었다.
‘있다.’
그리고, 이윽고 한 지점에서 언뜻 비비앙이 구축한 방어진을 발견했다. 비록 점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거대한 사티로스가 날뛰고 있는걸 보니 내 명령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득 방어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내 몸은 이미 다른 방향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단 한 걸음이라도 낭비하면 안 된다.’
아까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지금의 나에겐 쉴 틈 따위는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순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전쟁터란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을 지나쳐, 10분을 달리기만 했을까.
전장의 초입에서 내부로 들어가면서 나는 ‘전장의 가호’가 전해주는 정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번에 수천에 해당하는 위치 정보가 흘러 들었고, 그에 따라 머리에 현기증이 도는 것을 느꼈다.
‘설마…. 여기 있는 전원을 아군으로 판정한 건가?’
부단히 달리면서,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원하는 사용자들을 하나씩 떠올리자, 들어온 정보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가까운 곳에 위치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이제부터 그들의 위치를 하나하나 되새기고 이동할 경로를 계산해야 한다. 중구난방 식으로 가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경로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 자리에 머물러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었기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함이 앞섰다.
퍼벙! 퍼벙!
잠시 후.
미약한 폭음이 들리는 것과 함께 대지에서 미미한 떨림이 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눈앞으로 보이는 사용자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적들이 몰려든 곳으로 진입을 시작한 것이다. 그 증거로, 약하게 들리던 비명이 이제는 더욱 확실히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 죽어라! 이 개 자식들!
“으, 으아아악!”
그때였다. 한쪽에서 세게 터져 나오는 비명에 고개를 돌리니, 족히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적들이 살기등등한 얼굴로 휘젓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비로소 전쟁터다운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그것은, 어느 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이래서야 처음 초입 때 봤던 방어진 부근이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검에 베여 고통에 신음하는 자.
날아오는 마법에 바닥을 뒹구는 자.
쏘아진 화살에 그대로 몸을 허물어트리는 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제를 부르짖는 자.
상황은 초입과는 다르게 진정으로 엉망이었다. 사방팔방 중구난방 격으로, 이곳저곳에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쪽은 미친 듯이 몰아붙이고, 다른 한쪽은 미친 듯이 반항한다.
말 그대로 미친놈들이 벌이는 피의 축제였다. 심지어 아군 적군의 식별은커녕 그 무엇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한 와중에, 나는 안구에 마력을 가득 돋운 채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없다.’
육안으로나 ‘전장의 가호’로나 내가 아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그냥 통과. 나는 적들에 휩쓸리는 사용자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바로 그곳을 지나쳤다.
핑! 피핑!
그러나 지나치는 순간 어디선가 눈먼 화살이 등을 노리고 들어왔고, 나는 고개를 가볍게 돌림으로써 그것을 피해내었다. 그에 이어 마침 앞을 가로막은 적을 일수에 처리하고 달리자, 이번에는 거의 기백 명 몰려있는 적들이 눈에 밟힌다. 나는 지체 않고 있는 힘껏 대지를 박차 올랐다.
퉁!
배꼽이 쏠리는 느낌과 동시에, 몸은 포물선을 그리듯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몰려있던 적들을 간단히 뛰어넘어 곧바로 대지로 하강한다. 그렇게 발이 땅에 닿으려는 찰나, 나는 바로 착지하지 않고 약간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대로, 마치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것처럼 미끄러지듯 몸을 던졌다.
쭈르르르르르르륵!
파파팍! 파파파팍!
관성의 힘을 빌어 대지를 밀고 나가자, 뒤에서 뭔가가 거세게 박혀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 속도가 더 빨랐는지 쏘아진 화살은 터럭만큼도 나를 건들지 못했다.
전장은 넓다. 그런 만큼 적 또한 넓게 분포되어있다. 더구나 나 홀로 타깃이 아니라, 널리고 널린 동부의 사용자들도 같이 타깃에 포함된 상태였다.
수천의 적들을 돌파하고 집중 사격도 버텨낸 나였다. 그렇기에 이렇게 주의가 분산된 전장을 돌파하는 것은, 적어도 그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었다.
이윽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다 싶을 즈음, 나는 스프링처럼 몸을 일으켰고 다시 바로 달렸다.
아니. 달리려고 한 순간이었다.
『사용자 임한나에 대한 위치 정보를 갱신합니다.』
‘어?’
한순간 ‘전장의 가호’가 전해주던 정보가 갱신되었다.
방향은 북동쪽으로 45도. 거리는 90미터 남짓.
일순 ‘전장의 가호’의 자체 판정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비로소 첫 번째 구출을 시작할 지점을 정할 수 있었다. 우선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임한나를 구출하고, 그곳을 시작으로 최대한 겹치는 동선을 고른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려서 그런지 90미터의 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는 방향으로 임한나의 기운이 점차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그러더니 곧 한껏 상승한 시력에 임한나와 일단의 무리들이 잡히었다.
‘호.’
그곳에는 족히 스무 명은 넘어 보이는, 제법 많은 수의 사용자들이 모여있었다. 내가 벌어준 시간을 잘 활용한 모양이다. 그들은 천천히 이동하며 사용자들을 모으면서도, 자신들에 돌진하는 적들에게 거세게 반항하고 있었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그 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임한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한 번 손을 놓을 때마다 섬광이 번쩍이고, 그에 따라 한 명의 적이 여지없이 몸을 무너뜨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따금 쏘는 커다란 빛 줄기는 후방에서 지원 중인 원거리 계열들을 착실히 저격하는 중이었다. 비록 ‘찬란한 섬광, 라우라 필리스’의 힘을 빌렸다곤 해도, 임한나는 거진 세 배에 이르는 적들에 맞서 균형을 맞추는 존재감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아무 탈없이 구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더욱 빠르게 발을 놀렸다.
그러나, 그때였다.
퍼벙! 퍼버벙!
슈슉! 슈슈슉!
한순간 반대 방향에서 날아온 마법과 화살이 그대로 임한나와 사용자들을 휩쓸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향에 있던 적들의 지원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쾅! 쾅쾅!
“꺄악!”
“으아아악!”
어찌어찌 버티던 무리는 일거에 흐트러졌다. 마법이 휩쓸고 간 자리엔 쓰러져 신음하는 사용자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앞쪽 적들을 상대하기도 버거운 상황이었는데, 기습적으로 들어온 지원에 한순간 틈을 내준 것이다.
간신히 유지하던 전열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달려든 적들은 괴성을 터뜨리며 점령을 시작한다. 그것은 임한나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미모에 혹했는지 아니면 당한 게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의 주위로 특히 적들이 몰려드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한 놈이 비열한 웃음을 내비쳤고, 이내 휘파람과 함께 발을 들어 임한나의 가슴을 꾹 짓밟는다. 그녀는 분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감은 눈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는 순간, 나는 간신히 임한나를 사정거리 안에 포착할 수 있었다.
“임한나!”
혹시 모를 자살을 막기 위해 한 번 크게 소리친 후. 나는 바로 몸을 웅크렸다가, 궁신탄영으로 튀어나갔다. 내가 소리친 것을 들었는지 적들은 일순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었다. 그러나 나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나는 바로 ‘빅토리아의 영광’을 내리그었다. 첫 타깃은 임한나를 짓밟은 놈이었다.
푹적!
검은 정수리를 쪼개어, 헤 벌린 입까지 깔끔하게 파고들었다. 그대로 놈이 몸을 허물어트리는 것과 함께, 나는 힘껏 마력을 일으켜 빈 허공을 후려갈겼다.
뻥!
꿀렁!
순간적으로 허공이 크게 일렁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일렁인 허공은 마력의 파동으로 변해 주변에 있던 부랑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덮쳐 들었다.
콰콰콰콰!
내 공격 또한 기습의 일종이어서 그런지, 파동은 여러 명의 신체를 거침없이 자르며 들어갔다. 적들을 한 바퀴 돌고도 힘이 남아, 포착한 범위 밖까지 멈추지 않고 흘러나간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핏물이 왈칵 터져 나옴과 동시에 때늦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나는 운 좋게 살아남은 두 명을 재빠르게 처치한 후, 멍하니 올려다보는 임한나를 일으켰다.
“사용자 임한나. 괜찮습니까?”
“수, 수현씨!”
임한나는 짓밟힌 부분이 아픈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내 한 손을 가슴에 대곤 애틋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수현씨…. 아, 아니. 머셔너리 로드!”
임한나는 무척 고마우면서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나 또한 반가웠지만 상황이 급했다. 나는 해후를 나눌 새도 없이 바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설명은 나중에. 지금 상황은 알고 계시죠?”
그러나 내 다급함을 느꼈는지, 곧바로 얼굴을 가다듬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용자 임한나. 지금 이쪽 정면에는 적이 몰려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왼쪽 사선으로 빠지시고, 어느 정도 적이 보이지 않게 되면 다시 오른쪽 방향으로 달려가세요. 그곳에 방어진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서 합류하시면 됩니다.”
“네? 방어진이요?”
“비비앙과 제 형이 구축한 방어진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주변 사용자들도 제법 모아놨을 겁니다. 지금은 거기가 제일 안전해요.”
“네. 알았어요. 그럼 그쪽으로 가면 되는 거죠?”
확실히 상황을 이해하는 거나, 판단이 빠르니 마음에 들었다. 아마 눈앞 여인이 임한나가 아닌 안솔이었다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안솔.’
“예. 그럼 먼저 가있도록 하세요.”
“네, 네? 잠시만요! 같이 가시는 게 아니라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다른 클랜원들도 찾아봐야 합니다.”
“!”
아마 정하연, 신상용, 안현, 안솔, 이유정 등이었다면 내가 데려다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임한나는 궁수 사용자인만큼, 방향만 가르쳐줘도 혼자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사용자였다.
“그럼.”
“머셔너리 로드!”
임한나가 나를 붙잡는 게 들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애들의 걱정에, 나는 눈인사를 건네곤 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타깃은….’
탁탁탁탁!
그러나. 나는 잠시 달리는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등 뒤로 나를 따라오는 임한나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이없는 기분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사용자 임한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나도 갈래요. 같이 가요.”
“…네?”
“나도 머셔너리 로드…. 수현씨랑 같이 가겠다고요!”
임한나의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크게 눈살을 찌푸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싫어! 나보고 또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라고?”
“……?”
“이대로 또 잃느니, 또 지켜만 보느니…. 따라갈 거야. 이번만큼은 무조건 따라갈 거야!”
소리치는 임한나의 얼굴에는 사뭇 아련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평소에 보이던 상냥함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문득 예전 임한나가 한 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말 편하게 해주세요. 아. 저는 존댓말을 써도 될까요?’
‘제 운명을 개척해보고 싶어서요.’
“…….”
“…….”
이윽고 아주 잠시 동안, 나는 임한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꼭 깨물린 입술 위로 보이는 임한나의 눈동자는,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한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원래는 김수현에 이어 신상용의 시점을 넣으려고 했는데, 다음 회 내용과 일부 바꿨습니다.
후기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과제가 있습니다.
난 혼자죠. 비 내리는 오늘. 김태우의 하고 싶은 말 노래가 참 좋더라고요.
히히힣. 히히히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