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491
00490 새로운 식구. =========================================================================
『이브의 혈통을 사용합니다.』
『이브의 혈통을 사용할 조건을 설정해주세요.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네 가지입니다.』
“네 번째 조건으로 하겠다.”
『이브의 혈통, 네 번째 조건을 선택하셨습니다.』
『체력이 92포인트에서 90포인트로 하향됩니다.』
『하락한 포인트 수치의 2배인, 4포인트가 새로이 생성되었습니다.』
『기준은 하향된 90포인트로 설정됩니다. 이 4포인트는, 91미만의 포인트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브의 혈통을 사용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몸이 약간 화끈해진 걸 빼고는 딱히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싫은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러는 편이 더 좋다. 생각해보면 화정의 1차 각성도 전쟁을 치르는 도중에 이루어졌고, 그렇게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힘을 발현함으로써 정신을 잃기는 했으나,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후딱 각성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정리한다. 그리고 축제를 적당히 즐기면서 사용자 정보를 확인한다. 그러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체 않고 사용자 정보를 개방했다.
1. 이름(Name) : 김수현(3년 차)
[근력 96(+2)] [내구 94(+2)] [민첩 98] [체력 90(+2)] [마력 96] [행운 90(+2)]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6(Free)포인트와, 4(Terms)포인트입니다.)확실히 체력이 딱 2포인트만큼 하락한걸 확인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포인트를 쏟아 부으려다가, 잠시 멈칫하고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큰 실수를 저지를뻔한 것이다. 이대로 올리면 자유 능력치가 먼저 적용되니 추후 조건 포인트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적용 순서를 변경해야 했다. 조건 포인트를 먼저 적용하고, 그 다음으로 잔여 능력치를 적용하면 된다.
1. 이름(Name) : 김수현(3년 차)
[근력 96(+2)] [내구 94(+2)] [민첩 98] [체력 100(+2)] [마력 96] [행운 90(+2)]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그리고 나는, 마침내 체력 100포인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 100과 101의 차이를 생각하면 아직 화정을 다루기 한참 부족하지만, 70포인트로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사실 약간 허탈한 마음도 없잖아 있기는 했다. 10포인트라면 못해도 두 개는 101, 102를 찍을 수 있는 포인트였다. 예전에 잠시나마 그 힘을 느껴본 바 있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는지는 몸으로 체감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이상,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강철 산맥을 공략하면 무조건 1포인트를 얻는다. 그러면 3차 각성을 이룸과 동시에, 화정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된다.
이미 102 능력치보다 화정의 힘을 상위로 생각하는 만큼, 이번 결정에 후회는 없었다.
아무튼, 이제는 2차 각성만이 남은 건가?
‘화정? 화정!’
나는 곧바로 화정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 어쩌나 머리를 갸웃할 무렵, 나는 곧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허공으로 익숙한, 그러나 예전과는 조금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화정(火正)의 각성 2단계, 염안(炎眼) –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은.”가 시작됩니다.』
1단계는 영역 선포, 태고의 격으로 명할지 어니.
2단계는 염안,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은.
이때, 갑자기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예전에 겪은 적이 있는, 마치 온 세상이 멈춘듯한 기분이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리고 심장이 거세게 고동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전에도 그랬듯이, 세상은, 시간은 멈춘 게 아니었다. 주변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이따금 바람이 불어 풀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다만 그 속도가 마치 저속으로 되감기를 하는 것처럼, 매우 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었다.
화륵, 화르륵!
눈앞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이 붉게 변한 건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갑자기 시야가 붉은색 일색으로 변했다는 것. 조금 전까지 각양각색을 보이던 정원의 풍경이 이제는 모두 붉게 보인다.
그때였다.
화륵!
일순간 눈앞이 번쩍 튀는가 싶더니 돌연히 눈동자에 화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큭!”
나는 반사적으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웬만한 통증에는 면역이 돼있다 생각했는데, 이건 차원을 달리하는 고통이었다.
“크악! 크아아악!”
뜨거운 불에 녹인 쇳물을 그대로 부으면 이런 느낌이 들까? 흡사 눈동자가 녹아 내리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정말이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화륵, 화르륵!
그렇게 한동안 눈을 쑤시는듯한 통증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불길이 재차 터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삽시간에 주변이 뜨겁게 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시선을 돌릴 여유도 없다. 그저 주변에서 전해오는 감각에 겨우 상황을 인지할 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눈을 감았다가 떴다를 반복한다.
“크으으으으으으으!”
결국 시시각각 차오르는 고통을 참지 못해, 지면에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동시에 약간이나마 후회하고 말았다. 1차 각성과 크게 다를 건 없다고 여겼는데, 찾아든 고통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처음 화정을 받아들였을 때처럼, 나는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화륵, 꽝!
화르륵, 꽈꽝!
이윽고 거센 폭음이 귓가를 울릴 무렵. 나는 모든 감각이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하얗게 변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시야뿐만이 아니라, 머릿속에도 말이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현상.
그러니까, 이제 곧 기절하게 되는 건가.
그러자 내 생각이 맞는다는 듯, 이내 눈앞에 셔터를 내리듯이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모든 감각이 끊겼는지 더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잠시 후.
실처럼 뜬 눈 사이로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붉어 보이는 세상과 허공에 춤추듯 일렁이는 불꽃. 그러다 문득, 불꽃 사이로 한 줄기 기다란 불길이 뻗어 나와 내 눈을 덮은 것이었다.
그것이 마치 얼른 눈을 감으라는 듯 쓸어 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
“오라버니! 괜찮아요? 오라버니, 오라버니!”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으로 잔뜩 걱정하는 얼굴을 한 안솔이 보였고, 주변으로 비슷한 눈초리를 보내는 클랜원들도 보였다.
세상은, 여전히 붉었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아무래도 식당인 것 같다. 반사적으로 창문을 쳐다보니 어둡고 붉은 밤 풍경이 보였다. 그렇다면 기절한지 그리 오랜 시간은 지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갑자기 까닭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으음.”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러자 안솔이 나를 보며 외쳤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응?”
“눈이, 눈이 이상해요! 붉은색이 번뜩이는 게…!”
“붉은색이라.”
나는 우선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힘을 주자, 생각보다 가뿐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더없이 개운한 기분이 느껴졌다.
과연. 이게 체력 100의 영향인가? 그러면 각성 중 겪은 과정은 도대체 뭘까?
해답은 한 명만이 알고 있으리라.
‘화정?’
– …으응.
화정은 다행히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인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어떻게 된 거지? 말해줄 수 있어?’
– …2차 각성은 무사히 완료됐어. 그리고 눈이 그렇게 된 거는…. 단순히 첫 각성의 영향에 불과해. 아마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그러니 그때까지만 참아….
‘너…. 괜찮으냐?’
– 안 괜찮아. 간만에 현신해서 엄청 피곤해…. 그러고 보니 다 너 때문이잖아? 괜히 선물을 준다고….
‘선물?’
–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나 지금 너무 졸려. 아무튼 잘못된 건 없으니까, 이상한 걱정은 하지 말라고…. 여차하면 이 몸이 책임져줄게.
‘책임? 뭘 책임져? 화정? 화정!’
화정은 뜬금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당최 이해하지 못해 몇 번을 불러보았으나, 화정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기야 목소리에서도 깨나 피곤하다는 걸 느꼈는데, 정말로 잠이 든 모양이다.
“오라버니….”
그때, 문득 안솔의 조용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식당에는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고, 클랜원들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들 병을 하나씩 들고 있는 걸 보아하니, 본의 아니게 축제를 망친 모양이다. 더구나 한동안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으니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으리라. 그러자 조금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차 각성에 대해서는 내일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은 이 자리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거,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즐거운 분위기를 망쳤나 보네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오….”
“몸을 말하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잠깐 사소한 실수였을 뿐입니다.”
“…….”
나름 해명은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시선은 거둬질 줄을 몰랐고, 특히 대부분이 내 눈동자에 꽂혀있었다. 이게 그렇게 이상해 보이나? 색 눈동자를 가진 사용자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화제를 돌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흘끗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곧, 아주 좋은 화제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식당 한쪽 구석에 비비앙이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양손을 든 채로.
그러고 보니, 원래 비비앙을 찾으러 나간 거였지.
턱짓으로 가리키자 누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허준영이었다.
“내가 잡아왔다. 네가 나가고서 한참 동안 들어오지 않아 나가보니, 정원에 쓰러져 있더군. 그래서….”
“…설마, 내가 비비앙한테 당한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럴 가능성은 0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뭐, 겸사겸사 가져간 성과를 되찾을 생각도 있었고.”
“아, 아니야! 성과는 가져갔지만, 김수현은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허준영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비비앙이 억울해하는 얼굴로 외쳤다. 그리고 나는 한숨을 흘렸다.
“후. 맞아. 비비앙이 그런 건 아니야. 내 실수였어.”
“그, 그렇지?”
“하지만.”
“힉!”
“…너.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지?”
“그, 그게…. 미안…. 보자마자 정신을 빼앗겨서…. 나도 모르게 그만…. 정말 미안해….”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비비앙은 곧바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도 자기가 잘못한 건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성과를 아무 말도 않고 가져갔다는 사실은 이대로 절대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즉 선례를 남기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옜다.”
철그렁, 철그렁!
툭!
무언가 검은색 물체가 휙 허공을 날더니 무릎 꿇은 비비앙의 앞으로 툭 떨어졌다. 비비앙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나는 잠깐 눈을 깜빡이다가, 놀란 마음에 허준영을 돌아보았다. 허준영이 비비앙이 가져간 성과를 도로 줘버린 것이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허준영은 무심한 얼굴로 비비앙을 응시하더니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주는 건 아니야. 어차피 연금술사인 이상 나중에 어떻게든 받아낼 건 있겠지. 그리고….”
“…그리고?”
나는 일단 허준영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불쾌한 빛을 떠올린 허준영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구즈 어프레이즐을 봤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더군. 매혹 마법이 걸려있었어. 특히 저 치녀는 절대 피할 수 없는 매혹이….”
“매혹 마법?”
“그래. 그리고 어차피 나한테는 쓸모도 없는 성과야. 아니, 가지고 싶지 않은 성과라고나 할까? 간만에 아주 더러운 것을 봤어. 저런 건 차라리 가져가주는 편이 나아.”
“…아무리 그래도.”
도대체 뭔가 싶어 시선을 돌렸으나, 비비앙은 이미 성과를 품 안에 넣은 상태였다. 그것도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그리고 이내 정말 고마워하는 얼굴로 허준영을 바라보았으나, 나는 이를 갈았다. 그런 기색을 느꼈는지 허준영이 내 어깨를 톡 치며 말했다.
“김수현. 이 자리에서는 그냥 적당히 넘어가주면 안되겠나? 괜히 나 때문에 얼굴 붉히기는 싫은데.”
“그러지 못하겠다면?”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적어도 이 장소에서는 말이다. 얼마 전 안현도 그렇고…. 이 좋은 자리에서, 괜히 피곤해지기는 싫다.”
“…쯧.”
허준영은 조심스레 안현을 들먹였다. 나는 혀를 찼다. 내가 갈등하는 걸 느꼈는지, 비비앙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허준영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것 같았고.
결국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나 물론, 한 마디 하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비비앙. 너 나중에 꼭 한 번 나 좀 보자.”
“으, 응. 정말로 미안해.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이윽고 비비앙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성과 사건은 일단락됐다. 허준영의 부탁대로, 일단 이 자리에서는 말이다.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나는 시선을 돌렸다. 테이블에는 이제 일곱 개의 성과가 남아있었다.
나는 두어 번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성과는 오롯한 사용자 허준영의 소유입니다. 법칙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만일 원하는 성과가 있다면 소유주와의 대화를 통해 얻으시면 됩니다.”
한 마디로 거래를 하라는 소리였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라 클랜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웅성거리는 소리가 식당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불타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일단 화제를 돌렸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제 적당히 허준영을 축하해주는 분위기로 몰아가면 축제는 계속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에, 나는 있는 힘껏 기지개를 피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축하한다. 허준영. 아까 잠깐 봤는데, 좋은 것들 많이 나왔던데?”
“음. 그렇더군. 뭐, 원하는 거라도 있나? 너와 안솔한테는 조금 양보할 생각도 있는데.”
허준영은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아무튼 아직 다 본 건 아니라서….”
“아니마 오라티오?”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막 테이블로 걸어가려던 것을 멈추고 도로 허준영을 돌아보았다.
아니마 오라티오. 정확히 맞췄다.
“원한다면…. 못줄 것도 없는데.”
허준영은 나를 흘끔 살폈다. 그러자 기분이 착 가라앉음을 느꼈다. 허준영의 눈에서, 무언가 기이한 열망이 스쳤다.
“…아무래도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우선 말이라도 해봐.”
허준영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음미하는 얼굴로 입을 움직이고는 목울대를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러더니, 이내 차분히 술잔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어빌리티. 네가 사용하는 어빌리티 중, 하나를 배우고 싶다.”
*
시간의 흐를수록 밤은 깊어졌고 정원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8층까지 올라간 건물의 1층에서는 여전히 환한 빛을 비췄고, 떠들썩한 소리들이 즐겁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정원의 한구석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사방이 칠흑 같았고, 오직 밤하늘의 달만이 찬연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물에 비해 이 정원의 구석이 외로워 보이는 건 아니었다. 쓸쓸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건물에 흐르는 기운과는 조금 다른, 훈훈한 기운이 일대를 감돌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가 아가를 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따뜻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한 기운의 근원은, 풀 사이로 웅크리고 있는 어떤 하얀 것에 있었다. 온몸을 덮은 은백색 털. 이제 제법 비죽이 솟아오른 뿔. 하얀 것의 정체는 바로 아기 유니콘 유미였다. 아니, 이제 아기라는 말은 적당치 않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유미도 성장해, 이제는 망아지라고 부를만한 정도는 되는 것이다.
달빛을 받으며 조용히 잠들어있는 유미의 자태가 약간은 불편해 보인다. 예전처럼 편하게 드러누워 자는 게 아닌, 무언가를 품은 듯 한없이 움츠러든 모습이다.
그것은, 아니 그것들은 길쭉하고 둥근 타원형으로, 알과 아주 흡사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하나는 한 점의 티도 찾을 수 없는 깨끗한 백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진한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말인즉슨, 유미는 두 개의 알을 품은 채 잠들어있었다.
하지만 유미가 푹 잠들어있는 것에 반해, 알들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불편한 자세를 감수하며 밤의 추위에 지켜주려는 것도 모르고, 이따금 살짝살짝 들썩이거나 이리저리 움직이는 등, 오만 방정을 다 떨고 있었다.
뀨르르르….
그러자 유미도 뭔가 이상함을 느낀 탓일까. 살그머니 고개를 들더니, 비죽 혀를 내밀어 움찔거리는 알들을 핥는다. 하지만 그건 알들의 이상함을 확실히 인지했다기보다는, 잠결에 본능에 따라 핥은 것처럼 보였다. 이내 알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자, 유미는 도로 품에 안으며 고개를 묻었다.
어쩌면, 유미가 가물가물하게나마 눈을 떴다면. 그랬다면 이 변화를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지금 알들의 겉면에 은은한 빛이 스며들어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표면에 미세한 금이 생겼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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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요. 글은 업데이트가 되는데, 정작 보려고 하니 페이지가 뜨지 않습니다. 지금 저만 이런 건가요? 참고로 데스크 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