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507
00506 하룻강아지들, 범 무서운지 모른다. =========================================================================
그렇게 특별 교관 신고를 마친 후, 나는 홀로 손장난을 하고 있는 안솔을 데리고 사용자 아카데미로 향했다.
입구는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안현의 사건 때 안면을 익혀 놓은 터라, 예전의 엄격한 확인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또한 오늘 특별 교관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이미 숙소 또한 배정된 상태였다.
“후후후후후후. 드디어 오라버니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날이 왔네요.”
또다시 헛소리를 시작한 안솔을 나는 지그시 응시했다. 그리고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얘는 도대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그리고 맹아라와 붙여놓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왜 저를 그렇게 쳐다보시는 거예요? 설마…. 야한 생각 하신 건 아니죠?!”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솔은 고연주 표 눈웃음을 치며 살살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도발하는 건가?
“글쎄. 과연 네 생각대로 될지. 아무튼 기대하마.”
“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오라버니의 보조라고요, 보조. 일반적으로 교관과 보조는 같은 방을 사용하도록 되어있어요.”
“누가 그래.”
“교관용으로 배부되는 사용자 아카데미 안내 기록에요.”
어디서 책 좀 읽었는지 눈을 똑바로 뜨며 대꾸한다. 사실 안솔의 말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였다. 무조건 같이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예외도 있다.
그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 아이는, 책에서 읽은 조항을 조목조목 들이대며 같은 방을 써야 한다 나를 설득했다.
…얘는 꼭 이럴 때만 논리적이 되더라. 아무튼 신기해, 참 신기해.
쉴 새 없이 짹짹거리던 안솔의 부리가 닫힌 것은, 앞으로 내가 사용할 숙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앞서 사용자 아카데미에 들어와있던 클랜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총 교관 겸 교육 교관인 신재룡, 보조 김한별.
생활 교관 안현, 보조 이유정.
하연은 교육 교관이었으나 따로 보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안솔이 들어가자 총 7명으로, 그다지 작은 공간이 아님에도 방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다들 모여있었네요.”
“오늘이 5주차 주말 마지막이잖아요. 다들 교육도 없겠다,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죠. …어머?”
하연은 새근새근 잠든 마르를 받아 들더니 작게 감탄했다. 동시에 발목을 두어 번 툭툭 털자 도도가 발라당 나동그라지는 게 느껴졌다. 도도는 “삐삑?!” 거리며 득달같이 달려들었으나, 나는 발로 적당히 밀어내며 자리에 걸터앉았다. 이내 도도가 분하다는 듯 빽빽 울어 젖히자 한별이 금세 다가와 품으로 안아 들었다.
왜인지 흐뭇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클랜원들을 보며, 나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첫 타자는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신재룡이었다.
“총 교관 역할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재미있는 자리는 아닐 텐데.”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냥 경험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앞으로 꽤나 껄끄러우시겠는데요.”
“아. 전혀 요. 특별 교관은 교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격을 갖는지라, 저도 함부로 하기 힘든 자리입니다. 하하하.”
어찌 보면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신재룡은 되레 껄껄 웃으며 부드럽게 받아넘겼다. 물론 나 또한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기에 부담 없이 웃어줄 수 있었다.
“아무튼, 요즘 아카데미 생활들은 어떤가요? …너는 어때? 조금 힘들어 보이는데.”
마지막 말은 안현을 겨냥한 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안현은 정말로 힘들어 보였다. 쏙 들어간 볼하며 얼굴은 수척하기 그지없다. 흡사 피로에 찌든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윽고 볼을 긁적인 안현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요즘 좀 피곤해요.”
그와 동시에 방안으로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신재룡은 대놓고 껄껄 웃었고 유정도 탁자를 탕탕 치며 깔깔거렸다. 심지어 한별이마저도 입을 가린 채 웃는 중이었다. 가만히 있는 사용자는 나와 안솔뿐. 도대체 왜들 이렇게 웃는 걸까?
“아. 이렇게 웃으니까 너무 좋다. 꼭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이윽고 실컷 웃었는지, 유정이 차분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렇기도 하다. 현재 여기 있는 클랜원은 거의 대부분 나와 초창기를 함께한 이들이었다.
나 또한 옛날 생각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이내 곧바로 지워버렸다. 고작 옛날을 회상하려고 특별 교관으로 들어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사용자 아카데미에 들어온 목적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하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연. 우리가 마지막으로 클랜원을 받은게 언제쯤이지요?”
“클랜원이요? 으음…. 한 1년? 아니 8개월? 그 정도는 된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최소 6개월은 새로운 클랜원을 받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물론 나름 바쁘기도 했고 내부를 다듬는다는 나름의 명분은 있었지만, 클랜원을 새로 충원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소수 정예를 지향한다고는 해도, 현재 머셔너리 클랜은 인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이번 사용자 아카데미는, 그런 느낌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매우 좋은 기회였다.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한 번 말한 적도 있는 만큼, 이번 사용자 아카데미의 중요성은 다들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에 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최소 한 명 이상 새로운 사용자를 충원할 생각입니다.”
“…….”
“하지만 저는 방금 들어온 터라, 현재 사용자 아카데미 내 돌아가는 사정을 조금도 모르는 상태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어떤지. 다른 클랜의 교관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이번 병아리들의 수준은 어떤지. 그리고 어느 병아리가 눈여겨볼 만한지.”
“그래서 제가 준비한 게 있죠.”
말을 마친 순간 하연이 타이밍 좋게 받아주었다. 이내 마르를 유정에게 조심스럽게 넘긴 하연은, 탁자 아래서 두툼한 기록 뭉치를 꺼내 올렸다. 탁, 약간 쌓인 먼지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자. 앞으로 너희가 싫어하는 지루한 얘기가 시작될 거니까, 다들 나가있으렴. 아. 신재룡씨는 앉아있으세요.”
명백한 축객령. 그래도 애들은 군말 않고 일어나….
“에? 하지만 저는 앞으로 오라버니와 이 방에서….”
지는 않고, 역시나 안솔이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
그러나 유정의 눈에 쌍심지가 돋치는 순간, 안솔의 항의는 소리소문 없이 사그라졌다.
“아, 아니. 그러니까요. 그게요….”
“조금 전 말…. 언니가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렇지? 응?”
“…느에에에.”
“호호호. 그렇구나. 언니가 잘못 들었네. 걱정 마! 방은 많으니까!”
결국 한별이와 같은 방을 쓰는 것으로 결정이 난 안솔은, 부뎨에에 울며 짐을 챙겨 나가버렸다. 그래도 꺼이꺼이 우는 걸 보니 속으로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다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 안현. 차희영은 잘 지내고 있나?”
막 방을 나서려던 안현은 순간 몸을 흠칫했다. 그리고 삐걱거리듯 머리를 돌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희, 희영이요?”
“음. 언제 한 번 같이 시간 좀 내봐. 식사라도 하자고 그래.”
“하, 하지만 교관은….”
“홍보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저번 사건 때문에 그래. 그래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만큼,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할 자격 정도는 있잖아?”
딱히 할 말은 없는지 안현은 떨떠름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한 번 말은 해볼게요….”
이윽고 힘없이 중얼거린 안현은 비틀거리듯 방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둘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무튼.
어차피 곧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해, 나는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탁자에는 여전히 두툼해 보이는 기록이 뭉치로 쌓여있었고, 하연은 뿌듯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그시 신재룡을 돌아보자 ‘이건 정리 벽입니다.’이라 입 모양으로 말해주는 신재룡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한숨을 흘렸다.
“수현을 위해 특별히 정리해놓은 기록들이에요. 제가 교육 교관 직을 하면서, 이번 병아리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적어놓았거든요. 아마 적잖은 도움이 되실 거예요.”
…아니. 그냥 제 3의 눈으로 보면 되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뜻은 가상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별 도움도 안 되는 일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기껏 고생한 하연에 면전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 나는 태연히 웃으며 기록을 두드렸다.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이걸 지금 전부 볼 수는 없으니, 요약해서 듣고 싶네요. 이번에 병아리들의 수준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대단해요. 아주.”
하연은 단호한 목소리로, 딱 잘라 대답했다. 그것도 아주 라는 말을 붙여서. 하연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거의 최대한의 찬사를 보낸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자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여러 가지 의미로요. 역대 급이라고 보셔도 좋아요. 통과의례의 괴물을 잡고 왔다는 말도 있고, 시크릿 클래스도 한 명 들어왔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전부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응력이 굉장히 높아요. 이제 겨우 5주차를 마친 병아리들인데, 하는 행동들을 보면 기존의 사용자들과 거의 비슷할 정도에요.”
이건 조금 의외였다. 아무리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 겨우 5주차 사용자들이 기존의 사용자들과 비슷하게 행동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병아리들은 확실히 범상치 않다는 소리였다.
하연의 말이 이어졌다.
“또 사용자 아카데미 내 자신들의 가치를 잘 아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병아리 같지가 않아요.”
“이제 겨우 5주차가 그렇다는 말은 조금…. 혹시 교관들이 그럴만한 행동을 보여 빌미를 주지는 않았습니까?”
그러자 하연은 신재룡을 응시했다. 아마 총 교관인 만큼, 그런 사정을 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내 나 또한 시선을 돌리자, 팔짱을 낀 신재룡은 약간은 수심에 젖은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빌미라고 보기도 그렇고…. 사실 교관들 중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제라뇨?”
“…으음. 클랜 로드. 혹시 공찬호, 그리고 진수현이라는 사용자를 알고 계십니까?”
“공찬호, 진수현?”
나는 의아한 기분으로 반문했다. 근력 101의 사용자와 마법사 사냥꾼. 둘이 교관으로 있다는 사실은 이미 하연에게 들어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계속 말해보라는 의미로 머리를 끄덕이자, 신재룡은 기다란 한숨을 흘렸다.
“그게 말입니다. 사용자 공찬호와 사용자 진수현은 둘다 교육 교관입니다. 그런데, 둘의 사이가 무척 좋지 않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다.”
“예. 정확히는 공찬호 쪽에서 진수현을 공공연하게 비방하고 다닙니다. 자격 없는 놈이 교관으로 들어왔다, 낙하산이다 하며 말이지요. 심지어 병아리들 앞에서도 그런다고 들었습니다.”
“참가권은 운 좋게 얻어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되는데요. 혹시 싫어하는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신재룡은 가만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정도가 너무 심해서 따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딱히 이유는 없다고 하더군요. 아. 그러고 보니 그냥 수현 그놈 자체가 싫다고 말을 듣기는 했는데….”
수현 그놈 자체가 싫다 라.
돌연히 뭔가 짚이는 바가 있어,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공찬호가 머셔너리에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습니까?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말씀해보세요.”
그러나 이번에도 신재룡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교관 얘기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현재 사용자 아카데미 내 머셔너리의 인지도는, 선두를 달리는 중이라 보셔도 됩니다.”
“호.”
나는 차분히 턱을 매만졌다. 확실히 희소식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의문감도 들었다. 인지도가 높다는 게 좋긴 한데, 이제 겨우 5주차에 불과한 만큼 아직 인지도를 운운할 때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신재룡이 괜한 말을 꺼냈을 리는 없을 터. 나는 설명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런 내 기색을 느꼈는지, 신재룡은 잔잔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차희영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하하하. 예. 머셔너리의 인지도가 이리도 높아진 건, 모두 안현 덕분입니다.”
============================ 작품 후기 ============================
이럴 수가. 여러분. 제가 3일 연속으로 자정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3일 연속 자정 업데이트라니! 내가 3일 연속 자정 업데이트라니!
독자님들. 독자님들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요?
저는 바로 지금입니다!
Reader : 닥쳐.
네.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드립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용서해주시길. _(__)_
아. 많은 분들이 물으시는데요, 예. 이번 사용자 아카데미는 원래 2부의 거의 마지막 파트였습니다. 원래 4부가 3부로 줄어들고, 3부가 2부로 줄어들며 회수도 줄어들었습니다. 예전에 강철 산맥만 공략하면 완결이 눈에 보인다 말씀드린적이 있었죠? 그게 이런 의미에서 말씀드린 거예요. 🙂
사실 사용자 아카데미 하면 걱정부터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저지른 죄가 있으니 조금 찔리네요.), 이번 사용자 아카데미 파트는 독자 분들이 재미있게 느끼실 만한 부분을 많이 넣으려 노력했습니다. 수현이 신위를 보인다거나, 예상치 못한 좋은 사용자들을 발견하는 것 등등이요. 물론 김유현과 한소영에 관한 에피소드도 있고요. 최대한 노력해보겠으니, 많은 기대 부탁해요!
PS. 리리플을 요청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럼 다음 회에 한 번 할까요? 전부는 무리고요, 예전처럼 10명만 랜덤하게 선발하는 식으로 진행할까 합니다. 물론, 1등은 무조건 첫 번째 답변으로 넣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