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2
00062 Mage and Alchemist(Rare) =========================================================================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나도 이럴 수 밖에 없었거든.”
“미치지 않았어.”
“나를 아직 믿는다고? 정말? 나를 믿어?”
“정말 믿는다면…믿고…내 창에 맞아줘. 부탁해.”
“죽어…주겠어?”
*
“어엉…엉….”
안솔은 연신 내 품에 안긴채 눈물을 쭉쭉 흘리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안현은 잔뜩 열받은 얼굴로 유정을 뚫을듯 노려 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없었다면 당장 손에 든 창을 휘둘렀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는지 현이 입을 달싹였지만 이내 꾹 닫은채 씨근거리고 말았다.
“솔아. 오빠가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옳지. 착해요. 눈물 뚝.”
“흑…흑…정…오빠…나…미끼….”(정말 오빠가 나 미끼로 쓰라고 그랬어요?)
히끅이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지만 솔이 전하고 싶은 말의 의미는 대충 알것 같았다. 나는 바로 고개를 흔든뒤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대강 눈치는 까고 있었지만 유정이 나한테 사실대로 말을 하지는 않은것도 있으니까.
내 대답을 듣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그때서야 솔은 울음을 멈추었다. 물론 여전히 딸꾹질에 훌쩍였지만 이정도면 됬겠다 싶어 머리 쓰다듬는걸 멈추고 몸에서 떼어내려 하자 바로 울상을 지었다. 나는 황급히 다시 안으며 머리를 쓰다 듬었다. 얼굴에 눈물 자욱이 선하고 눈물을 슥슥 닦는게 너무나 안쓰럽게 보였다.
유정은 솔이 앞에 무릎을 꿇은채 두 손을 들고 있었다. 참 던전 안에서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한다는 생각에 뭔가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나 또한 애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일단 안현의 분노가 너무도 컸기에 그냥 모른척 하고 있었다.
유정은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와 안현 두명의 얼굴이 둘다 심상치 않았고 주변 분위기가 매우 무거웠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실컷 까불딱 거리지만 정작 이럴때는 눈치를 살살 보는게 영락없는 고양이었다.
“그럼. 변명이라도 해봐.”
안현의 서슬퍼런 말에 유정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가 다시 싹 들이밀었다. 유정은 솔이를 한번 보더니 이내 주저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내가 왜 그랬냐면….”
“아부부부….”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연신 내 품에 얼굴을 비비는 솔이를 보듬었다. 그리고 그걸 본 유정의 눈에 다시 불꽃이 튀는게 보였다. 그러나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애꿎은 이만 까득 깨물고는 다시 반성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솔이가 감이 좋다매. 구멍이 네개가 있으니까…그…감으로 안전한 구멍과 위험한 구멍을 구별할 수 있을것 같아서….”
구멍 앞에 데려다 놓은 진짜 이유는 그거였나. 흠. 아예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턱을 괸채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나 그 순간을 못참아 안에서 꼼지락 거리며 칭얼대는 솔이를 느끼고 다시 아기 달래듯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내가 지금 정말로 뭐하고 있는걸까?
행운은 능력치중 가장 연구가 되지 않은 분야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해봤자 물리력 행사보다는 마법력 행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 하나 뿐 이었다. 그 외에 자잘한한것 몇개가 더 있긴 했지만 다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했다.
안현의 얼굴은 애매했다. 그러나 이내 납득했는지 고개를 주억이곤 창 끝으로 유정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저거 은근히 기분 나쁠텐데 유정은 딱히 반발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럼 진작 그렇게 하던가. 미끼가 뭐냐 미끼가.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형. 형도 유정이한테 뭐라고 좀 해주세요. 형이 맨날 유정이만 예뻐하고 오냐오냐 하니까 쟤가 이렇게 버릇이 없는 거잖아요.”
“미…미안…뭐?”
안현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와 유정은 기가막힌 얼굴이 되었다. 쟤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지? 유정이 또한 심히 억울한듯 입을 착착 다시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도 일단 유정이 명백히 잘못했고, 솔이 또한 무언가 열망 어린 눈동자를 나를 빤히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난감함을 느꼈다.
*
한동안의 소란을 수습한 후 우리는 겨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발갛게 눈이 부은 솔과 시무룩한 유정이.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현을 보며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기껏 기세를 올려놨다 싶더니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 뭔가 느낌이 괜찮은데.”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두번째 구멍을 선택했다. 일단 한번 시도는 해보자는 의미로 솔이를 네개의 구멍 앞에 전부 세워 봤는데, 결과가 정말 확연할 정도로 달랐다. 첫번째 구멍에서는 몸을 덜덜 떨었고, 두번째 구멍에서는 미묘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번째 구멍 앞에서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며 네번째 구멍 앞에서는 바로 도망치고 말았다.
제 3의 눈과 감지로 대충의 상황 파악을 하고 있던 나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사제인 이상 마력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1 포인트만 행운에 투자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운 100 포인트로 불안하지만 제 3의 눈과 일부 비슷한 효과를 내는걸 보니 슬며시 마음이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내 칭찬이 들렸는지 옆에서 걷고 있던 솔이의 허리가 빳빳해지는게 보였다. 희고 가느다란 목도 오롯이 세우는게 눈은 퉁퉁 부어서 저러니까 솔직히 엄청 웃겼다.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감지했다. 예감상 이정도 걸었으면 한번 더 몬스터들이 나올 즈음 이었다. 곧이어 역시나 감지에 뭔가 걸리는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애들은 흠칫한 얼굴이 되었다. 걸음을 멈출때마다 거진 전투를 치렀으니 자연스럽게 긴장하는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조심하는게 좋겠다.”
내가 묘한 얼굴로 뜻모를 소리를 내뱉자 애들의 얼굴 또한 덩달아 굳어갔다. 지금 눈 앞에 걸리는건 총 두종류의 몬스터들 이었는데, 개체수는 단 세개에 불과했다. 생명체 반응 하나, 그리고 석상 둘. 대충 속내를 짐작한 나는 애들이 혼란에 빠지기 전 나는 미리 언질을 줄 필요를 느꼈다. 다시 걸음을 걸으며, 여지껏 기고만장해 있는 솔이를 보며 나는 자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아.”
“네에.”
나에 대한 화는 다 풀렸는지 평소의 나긋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나를 보며 헤실대는 미소를 짓는 솔이를 보며,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을 이으려는 순간 이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우리 주변의 공기를 거대히 울리는 한 여린 목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막 설명에 들어갈려는 찰나 놈이 선수를 친 것이다. 예상대로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현과 유정의 안색이 급변했다.
“형. 아무래도 아까 만난 사용자가 말한 다른 사용자들 같은데요.”
“아무래도 이 주변으로 납치….”
“그만. 나 말하는 도중 이잖아.”
유정의 말을 끊고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애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다들 초조한 얼굴로 왜 빨리 구하러 가지 않는가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나는 쯧쯧 혀를 찬 후 막 말을 이으려는 찰나였다.
“누구 없어요! 부탁 드려요! 제발 도와주세요!”
“…….”
역시나 꽤나 영악한 놈 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짜증도 솟구쳤다. 솔직히 방금전 애들과 구멍 앞에서 시간을 허비했을 때부터 열불이 났는데 내 책임도 없잖아 있어 그냥 꾹 참고 있었다. 그리고 애들한테 화풀이 하기 뭐한감도 있었고. 하지만 더는 못 참겠고 이대로 가다간 슬슬 예전 성격이 나올것 같았다.
나는 검을 빼들어 전방을 향해 가볍게 휘두른 후 다시 검을 집어 넣었다. 애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마력을 담은 검파를 쏘아 보낸것이다. 아마 지성이 충만한 놈이면 그만 입좀 다물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살려주…키에에에!”
내 검파가 놈의 오른팔을 가볍게 자르고 지나간걸 확인한 후 나는 한숨을 뱉었다. 애들은 그저 멍한 얼굴이었다. 눈치채지 못할만큼 고도의 컨트롤 어빌리티 묘리를 부렸으니 아마 후반부에 들린 끔찍한 괴성 소리로 인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것 같았다.
“흠흠. 다시 한다. 솔아. 혹시 라믹이라는 몬스터에 대해서 알고 있니?”
“에…라믹이요? 우웅….”
골똘히 생각에 빠진 솔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주요 몬스터로 구분되지 않는 만큼 떠올리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는 모양 이었다. 그러나 대답은 엉뚱한 방향에서 날라왔다. 그동안 풀이 죽은 얼굴로 단검만 만지작거리던 유정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린 것이다.
“오빠. 라믹은…그 도플갱어의 변종 아냐?”
“흠?”
나는 의외라는 눈길로 유정을 바라 보았다. 계속 해보라는 신호를 담은 눈짓을 보내자 유정은 용기를 얻었는지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플갱어처럼 완벽하고 오랫동안 모습을 변하게 할수는 없어도 목소리는 흉내낼 수 있다고 들었어. 원래 신체 능력은 그닥 뛰어나지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숙련된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거니 신규 사용자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특히 함정을 파놓고 사용자의 감정을 자극해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니 절대로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정답이다. 그런데 어떻게 안거야? 라믹은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는 않았을텐데.”
“그냥 우연히.”
혀를 쏙 내밀며 대답하는 유정이를 나는 대견하다는 눈길로 응시했다. 안솔이 입을 삐쭉이고는 “나도 알고 있었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안현은 뜨악한 얼굴로 머리를 흔들더니 이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형. 그러면 설마 방금전에 들린 목소리가 라믹이 낸 목소리라는 건가요?”
“그렇지. 아마 침입한 사용자 한명의 성대를 먹고 목소리를 흉내내는 걸거다.”
역시나 상황 판단과 머리 회전은 안현이 제일 이었다. 저기다 기본 지식만 조금 첨가하면 정말 금상첨화일 텐데. 내가 아쉬워하는 사이 안현은 재빨리 창을 유정에게 겨누었다. 순간 내 눈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똥이 튀었다.
차캉!
핑그르르! 퍼석!
내가 번개와 같은 손놀림으로 검을 꺼내 창을 후려치자 안현은 앗할새도 없이 손에서 창을 놓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창은 거친 회전을 하며 날아가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애들 모두가 얼어붙은 얼굴로 입만 뻐끔거렸다.
특히 안현은 커다란 충격을 받은것 같았다. 그는 나와 창을 한번 번갈아 보더니 이내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혀, 형. 그냥 장난으로….”
“무슨 장난.”
“그…유정이 혹시 라믹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서….”
평소라면 당장 나설테지만 내 서슬퍼런 기세에 눌렸는지 유정이 또한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칠흑의 숲부터 꾹꾹 눌러 참아온 울화통이 드디어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고의든 아니든 아군을 향해 창을 겨누는건 내 트라우마였고, 가장 싫어하는 행동중 하나였다.
“안현. 안솔. 이유정. 정신들 놓고 아주 놀러 나왔네들. 자꾸만 이럴거니? 이러고 싶어?”
“…….”
내 비난에 애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쏘아 붙였다.
“그냥 좋다 좋다 웃고 봐주고 넘어가니까 만만해? 할때는 해야 할거 아냐. 언제까지 널널한 기분에 젖을건데. 그리고 안현. 장난? 장난으로 유정이한테 창을 겨눠? 너마저 이러면 어떡해?”
“아, 아냐. 오빠. 나도 솔이한테 그랬는걸. 괜찮아. 나 화 안났어. 그러니까 화풀어~응? 오빠~아~.”
“형. 죄송합니다.”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는 유정과 바로 허리를 숙이는 현이 보였지만 내 화는 풀리지 않았다. 놀면서 하는것도 좋지만 그것도 적당히였다. 렌가들과의 전투 이후 애들의 태도는 급격히 풀어지고 있었다. 자고로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긴장해야 하는데, 어떻게 얘들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본인들도 칠흑의 숲에서 내가 당부했던 말들을 떠올린다면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지나쳤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세상에 이런 캐러밴이 있다는건 듣도 보도 못했고 설령 있다고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안현을 일갈했다.
“솔이한테 건 장난은 심했지만. 그래도 나름 일리가 있었고 허용 범위 안이니 넘어갈 수 있다고 쳐. 그런데. 지금 던전 안으로 들어와서. 다른것도 아니고 실전중인데. 같은 아군한테 무기를 겨눠? 그게 지금 제정신으로 한 짓이라고? 장난? 나도 한번 장난으로 똑같이 해봐?”
일전에 여관 안에서 내 위압에 당한 전력이 있는 현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얼굴에 반성하는 기색이 어린게 대충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은것 같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지만 나는 사늘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안현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는 주섬이 창을 챙겨 들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솔은 목젖을 한번 크게 꿀떡이고는 지팡이를 움켜 쥐었다.
한동안 세명을 보며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보낸 나는 이내 크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
지금 잠깐 졸다가 일어나서 올리는 거라, 머리가 혼란스럽습니다.
제대로된 후기 및 리리플은 오늘 내로 수정 업로드 하겠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