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43
00742 Unpredictably. =========================================================================
–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이렇게나 쉽게….
– 흥, 이거 봐요. 제 말이 맞죠? 저랑 수인 군단만 있으면 쉽다고 했잖아요.
– 흐흐, 나도 믿을 수가 없다. 왕국 놈들이 이리도 허약하다니…. 고작 이런 놈들한테 핍박을 받았다는 건가?
– 아, 그건 틀려요. 왕국은 원래 강했어요. 그런데 왕권 다툼으로 제 살을 깎아 먹은 거죠. 아마 전성기 시절 때는~.
– 뭐야?
– 자자, 그만하시오. 어째 둘은 틈만 나면 싸우는 것 같구려.
– 사이가 좋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부부 싸움?
– 크아아아아아아앙!
– 아앙, 거칠어~!
– 허,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소. 그냥 같이 기뻐해 줄 수는 없는 거요?
신 대륙 아틀란타(북 도시 비밀 도서관), ‘빅토리아 왕조 실록 – 18대 황제(147 ~ 147)’ 中 ‘불타오르는 왕성 앞, 돌아온 폐 태자.’
*
그때였다.
스슥.
돌연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귓전에 잡혔다.
신기한 건, 청력을 제외한 그 어떤 기척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소리도 간신히 들었을 뿐. 아마 청력을 높이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나와 한소영, 허준영은 동시에 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임한나가 우거진 수풀을 ‘라우라 필리스’로 겨누고 있었다. 활줄은 없으나 찬란한 섬광의 화살이 어른어른 불타오른다.
이윽고 3초가량 수풀을 노려보던 임한나는 천천히 활을 내렸다.
“놓쳤어.”
“모습은?”
“빠르게 움직이는 그림자는 본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아.”
“방향은?”
임한나는 아무 말 없이 한쪽으로 난 길을 가리켰다. 울퉁불퉁 이어지는 길은, 우리가 가야 하는 남쪽 방향과 일치했다.
잠시 후, 동료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속행해야 하나, 아니면 하루 동안 정비를 할까. 시간 해 질 녘이나, 거의 도착하기는 했다.
한참 고민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갑시다. 모두 정렬하세요.”
*
이어지는 행군은 조용했다. 딱히 말을 꺼내지는 않았으나, 동료들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대부분 침묵을 지켰다. 물론 어디까지나 ‘대부분’이고, 그러지 않은 이도 있기는 했다.
제갈 해솔.
아주 동네 마실 이라도 나온 마냥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더니, 갑자기 심심하다면서 가져온 기록을 건네달라고 요구했다. 아마 내가 이따금 기록을 읽는 걸 눈여겨본 듯했다.
“아, 별로 재미는 없다.”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던 와중, 한껏 지루해하는 제갈 해솔의 음성이 들렸다. 이어서 크게 하품하는 소리까지. 그러자 옆에서 나란히 걷던 백한결이(안개를 벗어나고도 백한결은 내 옆에서 걷는 걸 고수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스리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혹시 내가 거슬려 하는 게 아닐까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속으로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응? 한결 씨? 왜 갑자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제가 어떤 잘못이라도 했나요?”
“아? 아!”
백한결이 펄쩍 뛰었다.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기록을 읽어본 소감은?”
“소감? 모르겠어요. 중간에 읽다가 말아서.”
“어디까지 읽었죠?”
“세 얼간이가 힘을 합쳐 왕위를 되찾는 부분까지요. 실록이라고 해서 조금은 기대했는데, 그냥 모험 소설 읽는 기분이네요.”
세 얼간이라. 주인공은 폐 태자, 야만의 왕, 마녀일 텐데. 제갈 해솔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좀 더 읽어보지 그래요. 후반부가 현재 원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데.”
“어떤 내용인데요?”
“마녀의 배신.”
“아, 뻔하네. 폐 태자가 약속을 안 지켜서 그런 거죠?”
“아니요? 폐 태자는 오히려 약속을 지켰죠. 아니, 지키려고 했죠.”
“흠?”
“말했잖아요. 마녀의 배신이라고. 모든 일이 끝난 후, 마녀는 야만 왕에게 고백을 빙자한 무리한 요구를 하죠. 야만 왕은 일언지하에 요구를 거절했고, 마녀는 꼴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나 봅니다. 그래서….”
“잠시만요. 더 말하지 마요.”
제갈 해솔은 급히 나를 제지했다. 그리고 팔락거리는 기록 넘기는 소리와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대관식을 앞둔 폐 태자는, 이후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하루아침 지도자를 잃어버린 야만 전사들은 폐 태자를 찾아간다…. 왕국의 새로운 군주시여. 이제는 약조를 지킬 때가 왔습니다. 약조? 예. 저희를 받아들여 주신다 했으니 이제 우리도 왕국의 신민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면 국왕 된 입장으로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소서. 정녕 그대가 왕국의 군주라면, 우리가 그대를 위해 흘린 핏물을 보답해주소서. 무슨 일인가. 말을 해보라. 마녀가 우리의 지도자를 납치하고 사라졌습니다. 무어라? 부디 우리의 왕을 구원해주소서. …그러나 신하 모두가 출정을 반대했다…. 두 세력 사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폐 태자는 결국 하나의 꾀를 내기에 이른다. 그건 바로 처음부터 자신을 따라온 부하와 수인을 합쳐, 수행 인원을 빙자한 14명의 용사를 선발한 것이다. 공식적인 대관식을 앞둔 상황에서, 모든 신하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폐 태자는, 산책을 하고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그대로 안개의 숲으로 떠났다….”
제갈 해솔의 혼잣말은 꽤 길게 이어졌다. 살짝 시선을 내리자 한없이 진지해진 백한결의 얼굴이 보였다. 침묵의 행군 속, 홀로 울리는 높은 톤 음성. 아마 모두 제갈 해솔의 말소리에 집중하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 앞쪽을 바라본 나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잠시 정지.”
“무, 무슨 일이에요?”
제갈 해솔의 음성이 뚝 끊기는 동시, 깜짝 놀란 백한결이 내 팔을 잡는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갑자기 흔적이 진해지는데….”
말을 들었는지 임한나가 곧장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수풀 돋은 땅을 세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방향은, 여전히 남쪽이었다.
“아까 느낀 기척의 흔적은 아닌 것 같아. 오히려 앞서 들어왔다는 캐러밴의 흔적 같은데?”
앞은 수풀이 특히나 심하게 우거져 있었고, 흔적은 그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행군을 재개했다. 제갈 해솔의 말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허리까지 올라오는 수풀을 억지로 헤치고 들어가자, 갑자기 너른 공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까의 공터와는 확연히 다른 장소다. 훨씬 넓기도 했지만, 흡사 운동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잡초 하나 돋지 않은 맨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터의 중앙에는 직경 60 센티미터, 높이는 8 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돌기둥 여러 개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윽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간 찰나, 어디선가 일어난 바람이 갑자기 불어왔다. 자연적인 바람이 아닌, 돌기둥 중앙에서 인위적으로 생성된 마력을 품은 바람이었다.
“조심!”
비단 나만 느낀 게 아닌지, 마력에 민감한 누군가가 외쳤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력의 바람은 그냥 스치듯이 지나갈 뿐,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계속 걸음을 내딛자 사방을 조심스레 살피던 동료들도 천천히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내 공터의 중앙에 다다른 후, 나는 부드러이 돌기둥을 쓸어 내렸다. 돌기둥의 수는 총 열다섯 개. 겉면에는 전혀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문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도착했네요.”
“도착했다고요? 설마 여기가 끝은 아니겠죠?”
선율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묘한 음성으로 투덜거렸다. 동료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하기야 깊숙한 숲에 둥근 공터, 그리고 덩그러니 놓여 있는 15개의 돌기둥.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이상하다 여길 만도 하다.
나는 말없이 돌기둥을 매만지다가 중앙을 응시했다. 돌기둥은 무언가를 둘러싸듯 둥그런 둘레를 그리며 서 있었는데, 가운데에는 기둥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크기의 석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석판의 존재를 발견했는지 정하연이 차분히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석판이 있는데요?”
가장 먼저 반응한 이들은 마법사들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닥닥 모이더니 석판을 보며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혹시 고어 해석 가능한 분 있나요?”
“성공은 하지 못했다.”
“응? 사용자 제갈 해솔? 갑자기 무슨….”
“아, 저 해석할 줄 알아요. 첫 줄에 그렇게 적혀 있네요.”
“설마…. 0년 차 아니었어요?”
“곧 1년 차 돼요. 그리고 고어를 모르면, 아까 이건 어떻게 읽었을까요?”
정하연의 물음에, 제갈 해솔은 아까 받아간 ‘빅토리아 왕조 실록’ 기록을 휙휙 흔들었다.
“대, 대단하시네요. 저는 절반쯤 익히다가 어려워서 중간에 포기했는데.”
옆에 있던 선율이 감탄하자, 제갈 해솔이 되레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응? 어렵다고요?”
“…네?”
“이상하네. 나는 쉽던데. 한 2주 정도 맘먹고 파니까 숙달되던데요?”
“…아.”
고개까지 갸웃하며 말하니 선율의 낯에 떠름한 빛이 스친다. 이어서 눈이 서서히 가늘어진다.
“미안한데 막말 좀 할게요. 당신 원래 그렇게 재수가 없나요?”
“괜찮아요. 이해해요. 그런 시기, 자주 받는 편이에요.”
“…….”
“아니면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죠 뭐. 여하튼 계속 읽을게요?”
이윽고 어깨를 으쓱 들먹인 제갈 해솔이 지그시 석판을 응시하자, 돌연 한기가 몰아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은근슬쩍 걸음을 물렸다. 왠지 여기서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제갈 해솔의 음성이 정적이 흐르는 공터를 울리기 시작했다.
“성공은 하지 못했다. 실패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의 추는 실패로 기울었다. 할 수 있는 건 상황을 멈추고, 영원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비록 어리석다 말할지라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호기심에 찾아온 자,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여기서 걸음을 돌려라. 그게 아니라면, 모든 것은 그때와 똑같을지니. 열다섯 순수한 영혼에 과거의 결심이 스며들면, 빛이 떠오르며 길이 열리리라. …가장 위대한 야만 전사이자 수인의 왕이었던, 친구의 무덤 앞에서.”
말을 마친 제갈 해솔은 흘끗 고개를 돌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머셔너리 로드. 혹시 그 찾아왔다는 소년에게서 다른 말은 듣지 못했나요?”
문득 한소영이 흘끗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예를 들면 이 기둥을 어떻게 이용했다던가.”
그 순간이었다. 나는 바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꿀꺽 삼켰다. 잘 생각해보면 소년은 그냥 들어갔다고 말했을 뿐, 상세한 방법까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한소영이라면 이 간극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하다. 나는 간신히 머리를 가로저을 수 있었다.
한소영은 심드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흐음.” 숨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네요.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제가 한 번 클랜에 연락해보겠습니다.”
이어지는 신재룡의 음성에 나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무튼, 석판의 내용은 그냥 난해한 말장난일 뿐이다. 실제 가동 방법은 허무하리만치 쉽다. 다만 통로를 열 조건을 맞추기가 약간 어이없을 뿐이지.
물론 나도 들어간 이후부터는 자세히 모른다. 알고 있는 거라고는 우리가 이미 조건을 만족했다는 것이다. 아까 느낀 마력의 바람은, 아마 길을 열 수 있는 자격을 충족하는지 일종의 시험이었을 것이다.
신재룡이 통신용 구슬을 꺼내는 동안 마법사들은 석판의 내용에 관한 열띤 토론을 재개했고, 머리 아픈 얘기를 싫어하는 이들은 돌기둥 주변을 어정어정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한 발짝 물러난 상태서 조용히 관전했다. 우선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영 정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때 나설 생각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열려라 참깨.”
양팔을 활짝 펼치며 소심하게 외치는 안솔과,
“으응….”
기둥에 코를 붙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백한결을 보고 웃을 무렵.
“아! 알았다!”
갑자기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한 손을 번쩍 들었다.
하늘을 향하는 손에는, 두툼한 기록이 쥐어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독자 님들. 들어보세요. 제가 정말 억울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BGM 사이트에 들어갔거든요? 뉴 에이지가 많아서 평소 애용하는 사이트에요. 예전에 후기로 독자 분들께 노래 몇 개를 추천 드린 적도 있고요. 그래서 오늘도 자주 듣는 노래를 들으려 접속했는데, 제가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이트 왼쪽에 노래를 재생하는 란이 있고, 그 옆에 그 노래에 관한 코멘트를 적는 칸이 있거든요? 그래서 대충 코멘트를 훑어보는데, 거기에 이런 코멘트가 있더군요. 그대로 복사해오겠습니다.
1. 로(리콘)유진 님의 추천을 받아서 온 메모라이즈 독자는 없나요? by 청x(예의상 뒷글자는 가렸습니다.)
2. 로(리콘)유진님의 소개 받아온 메모라이즈 독자입니다. 성지순례요 by 아xxx
제가 이렇게만 있으면 말을 안 합니다. 낯이 화끈해서 저도 모르게 다른 노래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 노래도 제가 예전에 추천 드린 적 있는 노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도 있더라고요.
1. (에)로유진 만세 by 손x
2. 로(리)유진 만세 by ㅇxx
…0ㅁ0.
…-_-.
아니, 독자 님들. 거기 이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 많아요. 좋은 노래에는 코멘트도 많이 달리고요. 그분들이 그 코멘트를 보면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나요.
사람 A : 응? 로유진? 로유진이 누구지? 로리콘에다가, 에로하고, 로리라고? 푸하하하!
이렇게 비웃으실 거 아닌가요.
아니, 괜찮습니다. 물론 그렇게 적으실 수도 있죠. 절대로 따지는 게 아니라요.
그냥, 아무튼 저 그거(?) 아니거든요. 아닙니다. 아 제발.
부탁 드립니다. 자꾸 신경이 쓰여서 그래요. 제발 삭제해주세요. 으어어어.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