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5
00085 一瀉千里 =========================================================================
대지를 쪼갤듯한 기세로 휘두른 검은 정하연의 옆을 지나, 땅속 깊숙히 박혀 들어갔다. 대지에 검을 쑤셔 넣은후 나는 그 상태 그대로 마력을 주입했다. “쿵!” 소리와 함께 검이 꽂히 대지 주변이 울컥 솟아 오르고, 미묘한 균열이 일어났다.
놀란 토끼 같은 눈동자로 나를 보던 정하연은 이내 땅 위로 비죽이 새어 나오는 핏물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고마워요.”
“별 말씀을.”
그대로 검을 한번 비틀어 뽑아낸 후 가볍게 턴다. 촥 소리와 남과 동시에 검에 묻어있던 핏물이 바닥에 비산했다. 신상용은 내가 검을 들고 덤벼들자 처음에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차분히 나와 대화를 주고 받는 정하연을 보고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안현과 유정은 서로 누가 더 많이 죽이는지 경쟁을 할 정도로 열심히 뛰어 다니고 있었다. 솔직히 서있는 놈들도 말 그대로 서 있는게 고작이라 전투라고 할것도 없었다. 그저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는 과정이었다.
“내가 열두마리.”
“내가 열네마리. 와. 이겼다.”
“칫.”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하는 안현과 부루퉁한 유정을 보며 나와 일행들은 웃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제대로 된 사용자들이 치르는 전투였다. 물론 평범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정하연과 신상용은 손을 많이 맞춰본 경험이 있고, 그만큼 수준 있는 전투를 보여주었다.
그동안 항상 주먹구구로 싸우던 애들도 이런 전투 방식은 생소한지 다들 대단하다는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안현의 눈동자에 불타오르는 하나의 감정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분함이었다. 왜 그런지 대강 짐작이 간 나는 그의 어깨를 두어번 다독였다.
불모지는 랜드몰들의 천국이었다. 사용자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몬스터들도 이곳에서 사는걸 거부하고 떠날 정도로 척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오직 땅 밑 지하에서 사는 랜드몰들만 서식할뿐. 그런만큼 불모지는 랜드몰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백미였던 전투는 단연 랜드몰 100마리와 싸운 전투를 꼽을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랜드몰들을 학살하며 오자 꼴에 놈들도 열이 받은듯 단체로 모여 습격한듯 싶었다. 그것도 우리들이 노숙하는 도중에.
그러나 그정도로 대부대가 이동하는데 못 알아차릴 사용자는 없었고, 나 또한 항상 감지를 활성화 시킨 상태였다. 날이 어둡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만큼 이번에는 정하연과 신상용도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처리할 수 있지만, 시야가 제한되는 만큼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 이번에는 내 아이(…….)들이 힘을 발휘했다. 자는 도중 일어나 전투하는건 몇번 훈련시켰기 때문에 다들 0년차 사용자로는 생각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게 대응했다. 순식간에 방진을 구성하고, 서로 연계하며 마법사들과 사제를 보호하는데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중 그 어느때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은근히 낮에 보여준 그들의 실력 행사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비비앙의 키메라 마수들이 후방을, 내가 전방을 담당함으로 현과 유정의 방어 범위가 좁아졌지만 그것만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 이었다. 우리들이 선전한 만큼 마법사들과 사제들이 더욱 편하게 주문을 외울 수 있었다.
“놀랍네요. 정말 0년차 사용자들이 맞나요?”
전투가 끝난 직후 정하연이 맨 처음 물어본 말 이었다. 아직 모르고 있을테지만 애들은 이미 0년차 사용자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능력치로 보나 경험면으로 보나 탐험을 한번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타이틀은 왠만한 중견 사용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대단하군요. 이정도 방진을 만들고 유지하는건 쉬운일이 아닌데….”
그리고 순식간에 방진을 구성하고 서로 효율적인 연계를 하며 진을 유지한데도 높은 점수를 받은것 같았다. 정하연의 칭찬에 애들의 콧대가 조금 높아진듯한 착각이 들었다. 특히 안현은 헛기침을 하는게 아주 가관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만 해도 꽤나 기분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꼭 약방의 감초처럼 끼는 유정이 또 끼어들고 말았다.
“언니. 우리 아빠가 가르쳐 줬어.”
“응? 아빠?”
유정은 가만히 나를 보고, 이내 몸을 돌렸다. 정하연은 담담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더니 뜻모를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흔들었다. 다만 그후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게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왜 그렇게 보시는 거죠.”
“…과속 운전을 하셨군요.”
“…….”
“호호. 농담이에요.”
시체 가득한 곳에서 더이상 잠을 자는건 이롭지 못하다 여겨 우리들은 장소를 옮겨 못 잔 잠을 보충했다. 애들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칭얼거렸지만 내일 활동에 지장이 없기 위해 억지로라도 자라고 얼렀다.
자장가를 불러주면 자겠다는 유정이의 머리를 기어코 한번 쥐어 박은후, 서럽게 울어재끼는 그녀를 뒤로한채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자 역시나 울음 소리는 뚝 그쳤고 곧이어 “쳇.” 이라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날. 그러니까 3일째 되는 날 이었다. 이미 내가 점 찍었던 장소에는 도착한 상태였다. 그리고 당연히 폐허의 연구소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또 진로 결계가 있는지 제 3의 눈을 활성화 시켰지만, 이번에는 결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내 범위가 닿지 않는 장소에 꽁꽁 숨어있다는 소리였다.
결국 조금 더 나아가기로 한 나는 앞으로 나뉘어진 여러 갈래길을 보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안솔. 어디가.”
갑작스레 들린 유정의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어느새 솔이 주섬주섬 배낭을 메고 사잇길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막 멍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던 솔은 이내 정신을 차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어?”
“어?는 뭐가 어?야. 어?”
“아야아. 아파요오.”
“그러다 길 잃으면 어떡할라고 개인 행동을 하려고 그러니.”
“하우우…그게 아니라아….”
유정에게 붙잡혀 쭉쭉 늘어진 볼을 문지르던 솔은 퉁퉁거리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솔의 말은 아주 간단했다. 그말인즉슨, 그냥 아무 느낌 없이 이 길로 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배낭을 메고 걸음을 옮겼다는것.
그녀의 말에 일행들 대부분 싱거운 웃음을 지었지만 나와 안현은 아니었다. 안현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형.”
“그래.”
물론 겉으로는 나 또한 이 길로 가는게 낫겠다고 생각해 솔이 택한 길로 행군을 했지만, 행운도 엄연한 능력치중 하나였다. 이미 내가 들고온 정보로는 최대한 근접하는게 다였다. 그렇다면 내 맘대로 찍는것보다는 행운 능력치 100포인트를 신뢰하는게 더 나을수도 있었다. 최소한 내 범위가 닿는 근접하게라도 가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가는 도중 전투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딱히 다들 전투에 지치거나 한건 아니었다. 보급도 부족하지 않고, 중간에 휴식도 충분히 취하면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랜드몰 100마리와 전투한 후 애들의 실력이 한계단 오른것 같았다. 다들 몸놀림이 점점 더 좋아지고들 있었다.
불모지를 어느정도 벗어나 이제 다시 녹빛이 물든 대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좋아할 일들은 아니었다. 불모지는 랜드몰들만 상대하면 될 일이지만 여기서부터는 다른 몬스터들도 출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말 그대로 미개척 지역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지도로 따지면 미개척 지역은 훨씬 더 위로 표시 되어 있고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 또한 다른 사용자들이 왔다간 흔적들은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왔다 갔을 뿐이지 들어간 자국만 있고, 나온 자국이 없는것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아직 뮬이 개척된지 2개월이 채 안된만큼 이곳 또한 미개척 지역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어느새 솔이는 나와 함께 대열의 맨 선두에 있었다. 조금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뭐가 그리 좋은지 솔이 답지 않게 탐험중 연신 헤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갈림길이 나올때마다 솔이를 앞에 세웠고, 솔은 가만히 한쪽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신상용은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이었고 정하연은 조금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안현의 안솔의 감에 대한 고찰과 애들의 목숨을 구한적도 있다는 내 보증이 들어가자 그때서야 새삼스런 눈길로 안솔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미개척 지역인만큼 온길만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면 어딜 가든지 다 똑같았다.
솔직히 나도 솔을 이런 용도로 쓸지는 몰랐지만, 만약 폐허의 연구소를 발견하게 되면 핑계거리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길을 인도한건 어디까지나 내가 아니라 솔이니까. 행운 포인트가 높다고 말은 못해도, 초심자의 운이 이어진다고 적당히 둘러댈 아주 좋은 핑계 거리였다.
해가 저물즈음,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솔직히 숲이라 부르기도 민망한게, 이미 불모지를 벗어났을 때부터 주변은 온통 녹빛 일색이었다. 현대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광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입구에 뭔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물론 다른 방향으로 가는 오솔길도 보였지만 솔은 자꾸만 입구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나는 이때즘 제 3의 눈을 활성화 시킬 때라 여기고 재빨리 마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순간 나는 입구에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숲의 입구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게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입구였다. 나는 흥분된 기색으로 입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은 잠시 후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걸었던 울퉁불퉁한 대지가 아닌 아주 조금이지만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는 도중 오랜만에 망키 한무리와 맞딱 뜨렸지만, 통과 의례에서 질리도록 사냥한만큼 상대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애들은 오랜만에 보는 망키를 반가워하며 순식간에 처리했다.
이전에는 보통 속도로 행군을 했지만, 이번에는 빠른 걸음으로 행군을 유지했다. 그리고, 옆에서 내 손을 꼭 붙잡고 달리던 솔의 입에서 단내가 날때즈음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나는 조용한 눈동자로 전방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토록 사용자들이 찾아 헤매던 폐허의 연구소가 눈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군데군데 낡고 녹슬은 부분들이 보이고 수풀들로 뒤덮여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감에도 건물은 아직도 제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폐허의 연구소는 소도시 뮬과 3일 거리에 있었다. 도대체 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도록 발견 되지 않았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아까 입구에서 느꼈던 기분을 생각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그냥 단순히 숲의 입구로 보고 연구소 건물이 여기에 있을리가 없다고 여겼었다. 아마 입구에 대한 위화감이나 솔이 자꾸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숲 안에 이런식으로 건물을 지어놨다니, 고대 거주민들은 확실히 대단한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폐허의 연구소를 발견 했습니다.”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일행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행들은 눈 앞에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는 연구소를 보며 다들 할 말을 잃은 얼굴이 되었다. 특히 신상용과 정하연은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는건 아무리 그들이라도 조금 무리가 있던 모양이다.
“마…말도 안돼. 아무리 초심자의 운이라고 해도. 이, 이건….”
“하. 조금…놀랍네요.”
이윽고 정신을 차린듯한 정하연은 멀뚱한 얼굴로 서있는 안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살짝 웃고는 솔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허리에 양손을 짚었다.
“우리 솔이는 정말 복덩이구나.”
자신의 몸에 손이 닿았음에도 솔은 아무런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순진한 눈망울로 내게 고개를 돌렸을뿐.
“저는 복덩이에요?”
“암. 그렇고말고. 우리 솔이는 정말 최고다.”
그때서야 내가 칭찬을 하는걸 알았는지 솔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그대로 솔이를 번쩍 안아 들고 위아래로 몇번 흔들며 비행기를 태워 주웠다.
“와아. 와아.”
솔이 또한 신나는지 양 손을 번쩍 들고 조신한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그런 솔이를 잠시 바닥에 내려 놓은 후 다시 몸을 돌렸다. 뮬을 떠난지 3일째, 우리들은 폐허의 연구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후기는 아침 이후로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2013년 2월 16일 후기 업데이트 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일단 후기 작성 후 바로 다음회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회에 적겠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을 추천해주신분들 고맙습니다. 읽은것도 많지만 안읽은것도 굉장히 많네요. 하하하. 요즘 읽을복이 터졌나 봅니다.
『 리리플 』
1. 쌔드 : 하하하. 1등 축하 드립니다. 굉장히 기쁜 말씀이네요. 앞으로도 더욱 알찬 내용으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2. 그로인 : 하던 일을 그만두니 조금 시간이 여유가 남습니다. 새로 일을 구하게 되면 다시 일일연재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
3. 타락한비둘기 : 오. 생각해보니 그 포지션도 좋네요. 음식도 잘하고. 한번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4. 나는나일뿐 : 주인공은 고자가 아닙니다. 왜 이러세요. ㅜ.ㅠ
5. 슬피우는영혼 : 헐.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북유럽신화 연참을 학수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른 20연참을…( –).
6. Lizad : 헐. 음. 음. 음…. 도망입니다. (ㅌㅌ!)
7. GradeRown : 정답은 땅 밑에 있는 랜드몰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작품 추천 감사합니다. 🙂
8. 아마벨 : 와우. 굉장히 긴 코멘트군요. 개인적으로 한별을 좋아하시는 분이 생기셨다니 저도 참 기쁩니다. 하하하.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인 아이거든요. 그런데 너무 미움을 받은터라. ㅜ.ㅠ 다음편은 아마 30분내로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9. 압권 : 그렇죠. 그 작품 정말로 재밌죠. 저도 다음회가 언제 나오는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하하.
10. [priest]프리스트 : 아. 쿠폰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감상 하셨다니 저 또한 기쁘네요. 다음회도 부디 즐겁게 감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바로 86회 초고 수정과 후기 작성에 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