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02
쾅! 콰쾅! 콰콰쾅!
비연검에 맺혀 있던 검기가 특정 목표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지며 주변을 폐허로 만들어 놓았다.
“젠장! 왕천! 주승! 주변을 봉쇄해!”
“……예!”
외침과 함께 향이가 몸을 날리자 왕천과 주승, 삭월대가 싸움터의 주변으로 원을 그리듯이 펼쳐졌다.
고수와 더 고수의 싸움이다.
능운비가 저리 마구잡이로 검격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 주변이 성할 리 없었다. 객점은 진작에 내려앉았고, 그 주변에 있던 전각들도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람들이다.
부서져 흩어지는 잔해와 조각난 검기의 부스러기는 암기와 다를 바가 없다. 사방으로 쏘아져 나가는 그것들에, 무림과는 관계없는 구경꾼들이 다칠 수 있었다.
따아앙!
“크윽!”
사방으로 흩어지는 건물의 파편들을 쳐 낸 왕천이 이를 악문 채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검을 멈추진 않았다.
사람들에게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자칫 이 싸움으로 마교에 대한, 아니 능운비에 대한 악명이 쌓일수 있기에 사력을 다해 막아야 했다.
그 옆에서 종리강과 싸우는 능운비의 선전을 멍하니 바라보던 운학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간 간악하다 손가락질해 온 마교인들은 사람들의 안위부터 생각하는 판에 자신은 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니…….
“……무량수불.”
반성하듯 도호를 뇌까린 운학이 검을 뽑아 들었다.
파라라락!
거칠게 휘날리는 도포 자락과 함께 그의 검에 보랏빛 기운이 번졌다.
화산 무공의 정수, 자하(紫霞).
운학은 선대로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비기를 적을 쓰러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꺼내 들었다.
“왕 호위장! 이쪽은 내가 맡으리다!”
“……!”
운학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검을 높이 쳐들었다.
꼿꼿이 선 검이 여러 개로 나뉘는가 싶더니, 하늘을 보랏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내, 운학이 나지막이 옮조리며 검을 내리그었다.
“……내려앉아라.”
콰아아아아!
일제히 내려앉은 검이 운학의 주변으로 날아오는 모든 조각들을 차단했다.
“대총관님!”
“……음.”
호객의 부름에 탁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찌할 바를 묻는 것이다.
녹림과 마교.
싸움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한순간에 극명히 달라져 버렸다.
마교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막으며 싸우고 있고, 자신들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악명은 전부 자신들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하나, 움직이기에는 이미 늦었다. 마교와 화산 도사가 먼저 움직였으니, 자신들은 그들을 뒤쫓아 따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악명 (惡名)…….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어차피 자신들의 꼬리표나 다름없는 것인데.
“호객들은 자리를 지켜라!”
“예!”
명을 내린 탁추는 능운비가 쏟아붓고 있는 공격의 중심만을 응시했다.
가공할 무위고, 파괴력이다.
마교 교주의 제자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하지만 상대는 몇 안 되는 강기의 고수 중 한 사람이자, 녹림왕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설마하니 그가 질 리가…….
쾅! 콰쾅! 쾅쾅!
쉬지 않고 때려 붓는 공격의 안쪽.
탁추의 걱정스러운 눈동자에, 작은 궤적 하나가 먼지를 갈라 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궤적은 점점 더 범위를 넓혀 가며 모습을 드러내었고, 능운비의 공격을 모조리 쳐 내고 있었다.
“총타주님!”
그 모습에 탁추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럼 그렇지. 녹림왕이, 자신의 대형이 고작 애새끼의 공격에 당할 리는 없지 않은가?
까강! 깡깡깡!
공격하는 자와 쳐 내는 자.
그 길고 긴 싸움의 승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능운비의 공격은 어느 순간 둔화되었고, 이내 멈췄다.
“허억, 허억……허억……”
바닥에 내려서서 몸까지 들썩이며 호흡하던 능운비가 힘없이 검을 늘어뜨렸다. 그 모습이 모든 것을 뽑아낸 쭉정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허억, 염병…… 그리 쏟아부었는데……. 괜히 강기의 고수가 아니라 이건가.”
허탈한 웃음을 흘린 그의 시선에, 자욱한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종리강이 보였다.
풀어 헤쳐져 사방으로 날리는 머리카락, 갈가리 찢어져 버린 옷 사이로 드러난 우락부락한 상체.
하지만 비틀거림조차 없다.
……빈틈이라여겼는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두운 표정의 능운비를 바라보던 종리강이, 공격을 쳐 내며 생겨난 생채기로 가득한 곤을 어깨에 걸치고 말했다.
“아주 제법이었다.”
“씨부랄, 이 마당에 칭찬은……”
“아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네놈의 공격을 받아치느라 손이 다 얼얼해.”
“……”
종리강이 무심한 표정으로 능운비를 향해 말했다.
어째서인지 그 말투가 이전과 달리 누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이젠 뽑아낼 내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기에 취해서 너무 무리해 버린것이다.
빌어먹을 마기, 한번 취하면 정말 뒤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니까.
“약관에 이만한 실력이라…… 참으로 기특하다. 네 스승이 아낄 만해.”
“아끼긴 뭘 아껴? 맨날 주먹이나 드는 사람이야.”
“사랑의 매겠지.”
“지랄하네.”
더는 대항할 방법이 없다고 여긴 능운비가 애써 악다구니를 썼다.
힘으로 안 되면 입씨름이라도 이겨야할 것 아닌가?
“녀석…… 좋다. 네놈을 인정하마.”
“인정?”
“그래. 나를 상대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
종리강의 말에 능운비가 솔깃한 듯 귀를 쫑긋세웠다.
설마 너? 나를 살려 준다든가, 뭐 그런 뜻이냐?
희망이 싹트는 듯했다.
그래, 고수들께선 가끔 그런 행동을 하시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죽이기엔 네 실력이 아깝구나, 그리말하며 한 번쯤 아량을 베푸시는…….
아아, 녹림왕이여. 너도 그런 인물이었더냐?
미안하다. 내 너를 오해하였구나.
넌 참 멋진…….
휘릭.
“……?”
마음속에 감동의 물결이 밀어닥치려던 찰나, 종리강이 어깨에 걸쳐 두었던 곤을 내려 단단히 고쳐 잡았다.
응? 너 뭐 하는 거야?
봐줄 건데…… 그 자세는 뭐야?
능운비가 동그랗게 뜬 눈을 끔벅이자, 종리강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내가 가진 최강의 수를 받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
“이 일격에 나의 모든 것을 담을 것이다. 네놈이 명예롭게 죽을 수 있도록.”
한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능운비였다.
그럼 그렇지. 빌어먹을 산적 새끼에게 아량을 바란 내가 병신이지.
마보를 취한 종리강이 곤을 수평으로 움켜쥐었다.
우우웅!
잘게 떨리기 시작한 곤이 울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이내 그 울음이 천등처럼 커지고, 종리강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맺혔다.
“혈랑척(血狼刺). 너를 죽일 초식의 이름이다.”
“……”
친절하기도 하지. 굳이 어떤 초식으로 죽일지 설명까지 해 주고…….
능운비가 애써 허리를 세우고 종리강을 바라봤다.
검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휘두르긴커녕 제대로 들지도 못하겠다.
“시비님! 저, 저건……”
“막아야겠네. 삼공자가 죽는 건 곤란하니까.”
왕천의 말에 향이가 양손에 비수를 움켜쥐었다.
그의 명예를 위해 싸움에 관여치 않으려 했으나, 죽는 것은 곤란하다.
교주와 약속했으니까.
향이가 둘 사이로 뛰어들려는 자세를 취하자,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탁추와 호객이 그 앞을 막아섰다.
“누가 참견하라 하던가!”
“뭐?”
“녹림왕의 싸움이다. 절대로 끼어들게 두지 않겠다!”
“이것들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그들의 모습에, 향이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잡스러운 것들 주제에 나를 막겠다고?
“그럼 막아 봐라.”
“……!”
쉬이이이…… 파아앙!
가볍게 떼어진 향이의 발이 땅을 힘껏 짓밟았고, 뒤로 슬쩍 넘 어갔던 상체가 앞으로 기우는 순간 그 신형이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극한에 오른 궁신탄영(弓身彈影)이었다.
“흥! 내버려 둘 것 같으냐!”
하지만 탁추 역시 녹림 대총관 이전에 녹림의 열여덟 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똑똑한 머리 때문이 아니었다.
“합!”
탁추의 양손이 허리춤에 닿는가 싶더니, 엄청난 속도로 뿜어져 나왔다.
파파파파팍!
동전에 내기를 담아 암기처럼 날리는 전표술.
그의 독문무공이 향이의 앞길을 막았다.
“치잇!”
수없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동전들을, 향이가 양손의 비수를 빠르게 휘둘러 쳐 냈다.
깡! 까가가가강!
빌어먹을 산적 새끼!
일단은 살려 주마. 지금은 삼공자의 목숨부터 구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 순간.
쿵!
땅을 힘껏 박차고 도약한 종리강의 곤이 힘차게 내질러졌다.
“제기랄!”
욕설을 뱉어 낸 향이가 속도를 한층 더 높였다.
그녀의 신형이 동전의 비를 뚫고 탁추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종리강의 곤이 향이의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한 치가 모자란다.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능운비에게 닿을 것만 같았다.
콰아아아아!
“……”
그 순간, 날아오는 곤의 정면에 선 능운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곤이 사라졌다. 아니,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분명 일직선으로 자신을 향해 뻗어오고 있을 터인데, 아무리 보려 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못 피할 듯싶었다. 삼무보라면 어찌 피할 수도 있겠지만, 마기에 도취되어 날뛰는 바람에 남은 내력이 거의 없었다.
그래, 어차피 뒈질 거라면 당당하게 죽자.
이미 한번 죽었었는데 뭐. 조금 더 살아서 마교를 경험 했었다고 생각하면 되지.
어느덧 그 마음이 포기에 이른 능운비의 손이 툭 떨어졌다.
“야, 이 빌어먹을 새끼야! 수련은 괜히 했냐! 눈으로만 보지 말란 말이야!”
“……!”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순간, 능운비의 귓가에 향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도 흐릿하게나마 보인다.
아마도 자신의 앞으로 파고들려는 것을 보면, 막으려는 것이 분명하다.
……진작에 좀 그러지.
근데 이미 늦었어.
그러니 너도 그만해라. 이젠 만사가 귀찮다.
능운비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마음을 놓아 버렸다.
죽음을 직면한 순간,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뛰어든 향이도, 구경하는 사람들도…….
죽음에 이르러 찾아온다는 주마등의 시간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리강이 뻗어 낸 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기의 고수가 최선을 다하면 주마등이 생기는 간격조차 뛰어넘는 것인가?
문득 웃음이 나왔고, 무심(無心)함이 능운비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소리가 들렸다.
단 하나의 소리.
쐐애애액!
무언가 공기를 꿰뚫고 날아오는 듯한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 이거……?
의문을 품는 순간, 눈앞에 희뿌연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다.
청각이 만들어 낸 형체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환한 빛무리처럼 심장을 향해 다가온 곤의 끝자락.
스옥.
능운비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위협을 감지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뻐어어억!
그리고 곤이 닿는다.
심장이 아닌 어깨에.
까아앙!
그리고 때마침 끼어든 향이의 비수가 종리강의 곤을 쳐 냈다.
그럼에도 충격이 상당했다. 어깻죽지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능운비의 몸이 거신의 망치에 때려 맞은 듯 튕겨 나갔다.
쿠드득, 쾅!
인근의 담벼락에 부딪혔고, 그대로 주저 앉았다.
아프다. 어깨를 맞았는데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런 제기랄! 왕천! 삼공자를 보호해!”
비수의 날을 세워 종리강의 앞을 가로막은 채 그를 노려보는 향이의 외침에, 왕천과 주승이 재빨리 능운비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종리강은 무언가에 놀란 사람처럼 멍하니 한곳을 응시했다.
그의 놀란 눈동자가 향한 곳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향이가 아니라 쓰러진 능운비였다.
피, 피했다고? 그 찰나의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