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92
지난밤 개방에 하달된 정무맹의 명령.
‘악적 능운비의 흔적을 찾아라.’
개방 총타는 각 분타들에 신속히 명을 하달했고, 삼문협과 정주로 몰려드는 거지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는 또 다른 천라지망이었다.
그로 인해 삼문협 근교의 숲이 거지떼로 뒤덮였다. 타구봉을 든 개방의 거지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 잡듯이 숲을 뒤졌다.
“킁, 킁……”
이곳저곳을 기운 녕마를 입은 더벅머리 거지, 추일이 코를 벌름거리면서 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니가 개냐?”
옆에 있던 또 다른 거지, 흑묘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치만 진짜로 냄새가 난다니까?”
“지랄하네.”
“진짠데……”
“쯧, 쓸데없는 소리 말고 흔적이나 찾아.”
“쳇.”
흑묘의 핀잔에 추일이 입을 삐죽거렸다.
“아직 다른 놈들에게선 연락 없었지?”
“어.”
“그럼 분명 이 근처라는 소린데……”
흑묘가 자신들이 있는 숲 주변을 세밀하게 살폈다.
나무, 풀, 하다못해 돌맹이와 바닥의 흔적 하나까지.
“근데 너무 멀리까지 온 거 아니냐? 다른 조원들과도 꽤 떨어졌는데.”
추일이 동료들이 있는 방향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멀리 떨어져서 이제 육안으론 보이지도 않았다.
“내버려 둬, 그 멍청이들은 쓸데없는 곳이나 뒤지고 있게.”
“쓸데없는 곳?
“당연하지. 정무맹 전체가 뒤쫓고 있는 놈이다. 설마하니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이용하겠어?”
“그래서 여기냐?”
“어.”
흑묘의 대답에, 이번엔 추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조장이 니 말 안 들어서 삐진거지?”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냐? 조장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말이나 잘 들으라고 할 때 표정 다 봤다.”
“쳇.”
사실이 그랬다.
추적에 관해서만큼은 조장의 실력을 뛰어넘는 흑묘는 수색지가 잘못되었다고 말했고, 이를 고깝게 여긴 조장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를 질책한 터였다.
하지만 기어코 고집을 부린 흑묘는 제 생각대로 수색지를 옮겨 버렸고, 소화(小花: 어린 거지)였을 때부터 친구였던 추일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온 참이었다.
“새끼, 그래도 우리 조장인데 말을 잘 들어줘야지. 이렇게 단독 행동을 하면 되냐?”
“조장은 염병, 능력도 없는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이거 명령불복이라고. 그리고, 우리끼리 따로 행동하다가 능운비라는 놈을 만나 버리면 어떡하냐?”
추일이 불안한 듯이 주변을 살피던 그때, 흑묘가 땅바닥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멈춰 섰다.
“어?”
“왜?”
추일이 묻자 흑묘가 입꼬리를 광대까지 치켜올리며 웃었다.
“이거 봐라?”
“응?”
근처로 다가온 추일이 흑묘가 낙엽을 걷어 낸 땅 위를 보고는 똑같이 입을 쭉 찢으며 미소를 지었다.
낙엽 아래 드러난 것은 무언가에 짓눌린 희미한 흔적이었다.
“추일아, 너 발좀 들어 봐.”
추일이 한 발을 슬쩍 들어 올리자, 족흔을 세심히 살피던 흑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목이 우거져 해가 잘 들지 않는 땅은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축축하고 무른 땅. 그 위를 밟으면, 추일의 그것처럼 손가락 반 마디만큼 이라도 깊이가 생겨야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발견한 발자국은 거의 패어 있지 않았다. 그저 슬쩍 스치고 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발자국의 주인이 능운비라면, 경공이 생각보다 뛰어나단 뜻이겠지?”
“그래. 족적을 감추려고 애썼네. 일부러 낙엽 위만 골라 밟았겠지?”
“그런 것 같다. 아마 초상비쯤은 되는 모양이야.”
“그럼 생각보다 치밀한 놈이라는 소리지. 정무맹의 시선을 돌려놓았다고 생각했을 텐데도 흔적이 남는 것까지 신경쓴걸 보면.”
“하지만 아쉽게도 땅의 무르기까진 고려치 못한 모양이다. 이렇게 축축한 땅에선 낙엽 위를 밟아도 흔적이 남는데 말이야.”
“미친놈. 다들 너 같은 줄 아냐? 일부러 낙엽 위를 밟아서 흔적을 지운 것만도 대단하다고.”
추일의 말에 흑묘가 웃으며 말했다.
“흠, 그런가? 젠장, 이런 게 있을 줄 알았으면 좀 조심해서 밟을 걸 그랬네.”
“이거…… 보고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벌써?”
“그럼 안 하게?”
“그랬다가 능운비가 아니면 또 무슨 소리를 들으라고? 확실하게 확인한 뒤에 알려야 조장 놈 코가 납작해지지.”
“그건 그렇지만, 만에 하나 놈이 근처에 있으면……”
“일단 주변에 낙엽 좀 치워 봐라.”
“뭐?”
“혹시 또 모르잖냐? 다른 발자국이 있을지. 그래야 확신을 하든 뭐든 할거 아냐.”
“쳇, 지가 하면 되지 귀찮게 시키고 난리야.”
짜증을 부린 추일이 귀찮다는 듯이 아무렇게나 손을 휙휙 저었다.
그 손을 따라 은은하게 생겨난 경기가 바람을 일으키자, 땅 위를 덮고 있던 낙엽들이 훅 떠올라 날아갔다.
이럴 땐 손으로 하는 것보다 경기로 만든 바람이 나았다. 자칫 자신들의 손에 흔적이 지워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호오? 역시……”
넓게 드러난 땅 위 이곳저곳에서 희미한 발자국들을 발견한 흑묘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삼문협 방향이 이쪽이니까….”
흑묘는 발자국들이 이어진 방향을 따라가면서, 능운비의 이동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사실 발자국 모양만 봐도 그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걸음 폭이 대충 이 장 정도인가?”
“생각보다 넓네?”
“음……능운비가 맞는거 같지?”
“흠.”
추일과 흑묘는 남아 있는 발자국의 간격을 토대로 그들이 쫓고 있는 인물의 경공을 대충이나마 가늠해 보았다.
이 장 정도의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어 달리는 것은 자신들도 가능하다.
다만, 흔적이 다르다.
밟았다고 하기도 미묘할 만큼 옅은 흔적만을 남기며 이 장씩 달려 나간다?
능운비의 경공이 자신들은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마지막 발자국.
“……어? 여기서 끊어졌는데?”
“흠, 그러네. 여기서부턴 나뭇가지를 밟고 달렸나? 내가 한번 살펴볼게.”
고개를 갸웃거린 흑묘가 몸을 날려 마지막 발자국 근처 이 장여 범위에 있는 나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반면 추일은 무언가 미심쩍은 게 있는 듯 발자국의 형태를 세심하게 살폈다.
“어?”
순간 추일의 눈이 커졌다. 발자국의 모양이 이전의 것들과는 미세하게 달랐던 것이다.
족적이 희미해 명확하진 않았지만…….
“이건달려 나간게 아니라……뛰어오른?”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추일의 눈동자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쏟아지는 광경이 비쳤다.
“젠장!”
어찌 된 게 불안함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다.
퍼억!
“끅!”
그림자의 정체가 능운비일 거라 짐작했지만, 이미 얼굴을 얻어맞은 추일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에 놀란 흑묘가 허겁지겁 품에서 손가락만 한 피리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피리를 입에 물기도 전에 땅에 내려선 그림자의 굽혀졌던 무릎이 펼쳐졌다.
팍!
그들이 살피던 발자국과 똑같은 흔적을 남긴 발자국.
쩌어억!
“컥!”
그리고 어느새 흑묘의 복부에 주먹이 때려 박혔다.
“네, 네놈……”
흑묘는 그림자의 얼굴을 알아보았음에도 끝내 이름을 불러 보지 못했다.
“감이 좋은 새끼네.”
그림자, 능운비가 쓰러진 흑묘와 추일을 쳐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얼마 전, 맹진과 언사의 연락소를 공격해 향이와 삭월대에게 시간을 벌어준 능운비는 곧장 서쪽 산길을 향해 달렸다.
목적지는 삼문협.
그곳에서 향이와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일부러 정무맹을 공격하겠노라고 선언까지 해 놨으니, 놈들이 정주 인근을 뒤질 동안 도망쳐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한데 삼문협 근처까지 왔을 때, 능운비는 사방에 깔린 거지 떼를 발견했다.
빌어먹을 거지 놈들, 태평성대라더니 뭔 놈의 숫자가 이렇게나 많단 말인가?
그러다 이놈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잠시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개방의 개떼……”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놈들은 개방의 흑견(黑犬)이 분명하다.
그들이 아니고서야 낙엽 아래에 있는 발자국까지 찾아낼 수는 없었다.
“염병할.”
거지들의 정체가 흑견임을 확신한 능운비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
그들의 무위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능운비 정도의 고수에겐 위협도 되지 않는다.
다만,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들보다 귀찮은 것이 없다.
개방이란 곳이 원래 남의 뒤를 캐는것을 취미로 여기는 놈들이다. 또한 말이 십만방도지, 거리에 떠도는 거지 패나 부랑자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감히 추산조차 되지 않는다.
괜히 개방을 정파의 눈과 귀라고 하겠는가?
그런 개방이 맘먹고 기른 게 바로 흑견이라는 놈들이다.
추적과 경공술. 오직 그 두 가지만 죽도록 가르쳐 놨으니, 그 능력은 굳이 거론할 가치도 없다.
“벌써 개방의 개떼들까지 동원하다니……. 이건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물론 놈들이 자신의 계략을 눈치챌거란 예상은 했다. 하지만, 최소 자신이 삼문협에 도착한 뒤일 것이라 여겼다.
한데 벌써 개방이 동원된 것도 모자라 흑견들까지 깔릴 줄이야.
능운비는 마음을 냉정하게 가라앉히고, 복잡한 머릿속을 찬찬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당황해서는 안 된다.
냉철하고 또 냉철해져야 한다.
상대는 제갈. 머리 좋기로는 세상에 따를 자가 없다는 놈들이다.
놈들이 자신의 행로에 개방을 풀어놨다면, 이미 양동계는 무의미해졌고 자신의 경로까지 어느 정도 예측했다는 뜻이다.
더하여, 둘 중 진짜가 자신임을 알았다는 뜻.
하면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향이와 삭월대는 낙양을 빠져나와 삼문협으로 오고 있을까?
그리고 윤안로는?
자신보다 하루 일찍 뱃길에 올랐으니, 지금쯤 삼문협을 지나갔을 시간이다.
물론 그 또한 전부 자신의 예상일뿐,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개방의 거지들이 벌써 이곳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면,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마하니 강 위인들 안전하겠는가?
“결국, 직접 확인해 보는 수 밖에…….”
능운비가 이를 악문 채 삼문협 쪽을 바라봤다.
개방이 나섰다면, 자신의 흔적이 남은 모든 곳을 들쑤시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맹진에서 어선 하나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거지 놈들이 좀 치밀하던가? 작은 정보 하나 놓치지 않는 놈들이다.
그 사실까지 밝혀지면, 북쪽 물길마저 막힐수 있다.
길이 막히면…… 고립이다. 중원을 빠져나갈 방법 따윈 없을 것이다.
상황을 알자면 삼문협으로 들어가봐야 했다. 하지만 이미 개방이 잔뜩 진을 치고 있으니…….
“뭐, 굳이 내가 갈 필요는 없지. 여기 혹견이 두 놈이나 있는데.”
한때는 그랬다. 어째서 흔적을 지웠음에도 자신을 그리 쉽게 찾아내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나중에서야 흑견 때문임을 알았다.
개방이 길러 낸 추격자들.
그러니 여기 두 놈도 돌아가는 상황 정도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니들이 협조 좀 해줘야겠다.
적극적으로다가.
처맞다가 뒈지기 싫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