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06
“저, 정영회?”
당천익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잘게 떨리는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능운비는 담담함을 유지한채 찻잔을 비웠다.
물론 당천익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거대한 중원을 움직이는 이들 중 한 명이고, 누구보다도 이해에 밝은 사람이니까.
“무(武)라는 것은 본시 힘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에, 그 쓰임에 따라 정의하기도 하고 불의하기도 하지요.”
“……”
“칼 든 자가 힘을 쥐었으니,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폭도로 돌변하니 말입니다.”
“……”
“하여 정영(正影), 스스로 그늘진 곳을 자처하여 이끄는 자가 독패하여 엇나가지 않도록 자제하려 만들어진 회합이었습니다.”
“으음…….”
“구파와 일방, 오대무가. 처음에는 뜻있는 자들이 모여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을 탐하지 않도록 경계하였으니, 더 나은 결과를 도출했을 테지요.”
능운비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당천익은 굳은 얼굴로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어찌 그늘에 숨은 채로 뜻하는 바를 중원 전역에 두루 미치도록 할수 있겠습니까?”
“……”
“하여 만들어진 곳이 정무맹. 올바른 자를 선출해 맹주로 삼고, 그 뜻이 사해만방에 전해지도록 하였지요.”
“……”
“하나 탐(貪)이라는 것이 요물인지라 시간이 흘러 대를 이루는 동안 정영의 뜻은 퇴색되고, 몇몇 이가 정무맹의 행보를 좌지우지 하게 되었습니다.”
“……”
“당가주라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정의라는 이름을 내세워 지금껏 어떤 짓을 저질러 왔는지.”
“으음…….”
당천익이 이를 악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역시 능운비의 말을 모르지 않았다.
정영회, 그리고 정무맹.
처음에는 무엇보다 이상적인 관계였다.
정영회는 정무맹의 주인 된 자가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였으니까.
항시 아래를 먼저 살피고, 항시 힘없는 자들을 도왔으니까.
하나 이상은 이상일뿐, 결국은 사람의 욕심이 문제였다.
탐욕스러운 자들에 의해 높은 뜻은 퇴색되었고, 정영회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를 맹주로 세워 중원을 휘두르게 되었다. 정무맹은 그저 정영회의 수족 내지는 껍데기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하나 당천익은 그것을 알고도 모르는 체했다. 가문의 이득을 위해선 그게 옳은 결정이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당대에 이르러 정영회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기득권이 되어 중원을 제멋대로 주무르기 시작했습니다.”
“……”
“다행히도, 그들의 무도함을 두고 볼수 없어 그들이 탐해 온 권력의 아성을 부수려는 이가 있었지요.”
“이옥상 맹주를 말하는 겁니까?”
“진산, 화산의 청진, 소림의 정화.”
……그리고 윤안로.
능운비의 말에 당천익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무맹의 발표가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구려.”
“……예. 저는 그들의 뜻에 동참했습니다. 아니, 동참하려 했습니다.”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그러했다.
윤안로를 만나 자신이 척월린임을 밝힌 뒤에 다시금 그를 돕고자 했으니, 자신이 정파를 전복시키고자 했다는 정무맹의 말은 사실이 되는 것이다.
“교주.”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게요?”
“……”
“나는 당가의 주인이오. 그대가 심중에 품은 뜻이 무엇이든, 또한 정영회가 어떤 짓을 하고 있든 내게 중요한 것은 당가의 부흥이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지키고, 후대에게 똑같이 물려주는 것이 나의 임무란 말이오.”
“압니다.”
“내 이미 오래전부터 정영회의 뜻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해 온 짓거리들도 어느 정도 짐작한 바요. 하나 그들에게 대적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당가가 나아가는 길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 또한 알고 있습니다.”
능운비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래전에 조사를 마쳤으니까.
당가는 여타의 무가들과 달리 정영회와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그저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고, 불의에 눈을 감았을 뿐이다.
“교주……”
“말씀하십시오.”
“길을 열어 달라 하면, 열어 드리겠소. 검증된 바는 없으나 내 이미 그대를 통해 사제분의 결백을 알았으니……. 하나, 그 이상은 바라지 말아주시오.”
“……”
“또한 방계의 자손을 죽인 것이 의심한 바대로 정무맹의 소행이라면, 당가가 직접 손을 쓸 것이오. 마도에게 힘을 보태 당가의 복수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이해합니다.”
“그러니 그저 지나가시오. 당가는 잠시 눈을 감을 터이니……”
단호히 선을 긋는 말이었지만, 능운비는 고개를 저었다.
“예, 처음에는 저도 그러고자 했습니다. 잠시 길을 비켜 주는 것만으로 사천을 범하지 않겠다 한것은, 그것이 당가에 충분한 이득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
“하나, 이리 당가주님을 뵙고나니 생각이 바뀌는군요.”
“그게 무슨?”
“함께 가시지요.”
“예?”
“눈 감고 모른 척해 온 것이 심중에 남아 있지 않으십니까.”
“교주!”
“제가 잘못 본 것입니까?”
“……”
“더는 두고 봐선 안 된다 생각하고 계시지요? 그들의 힘이 언젠간 사천을 위태롭게 할 터니까요.”
능운비의 말에 당천익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그의 말이 옳다.
이미 벌어지지 않았던가?
마도를 막기 위해 당가의 혈족을 죽일 정도로 자신들을 우습게 여기고 있음이다.
“확증할 물증은 남겨 두지 않았겠지요.”
“……”
“하나 이번이 끝일까요?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한 번은 어려우나 두번, 세 번은 너무도 쉽겠지요.”
“……”
“후대에게 그런 당가를 물려 주려 하십니까? 정영회의 눈치나 보고 그들에게 휘둘려야 하는 당가를?”
능운비의 말에 한참의 시간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당천익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교주.”
“예.”
“나는 이미 내 뜻을 전했소.”
“……”
“길을 열어 주는 것만으로도 당가는 중원의 모든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오. 그런데 한편이 되어 달라니?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러합니까?”
“당연하오. 지금은 그대의 힘이 강성하여 중원을 정벌한다 할지라도, 그 힘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소?”
“……”
“그대가 제자를 잘 두어 관리한다면 이대까진 가겠지. 하나 언제나처럼 중원이 들고 일어나 마도가 밀려나면……당가는 역사에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오. 마도에 중원을 팔아먹었다는 이유로.”
그 말에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에 길을 열어 주는 것은 당천익의 대에 욕을 먹고 말 일이나, 함께 정무맹을 공격한다면 당가는 대대로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떠안게 될 것이다.
“물론 제 목표는 천하 군림입니다.”
“능히 꿈꿀 만한 힘을 갖추었음을 알고 있소.”
“다만, 제가 천하 군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통치가 아닙니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천하 군림을 말하는 자가 통치를 하지 않겠다니?
“허허, 하면 무엇을 이루고자 한단말이오?”
“융화입니다.”
“융화?”
“예.”
“……”
“정사마, 그저 좇는 이념의 차이로 인해 배척받지 않고 자유롭게 전 중원을 오갈 수 있는 세상. 그 소속이 아니라 행동의 올바름으로 평가받는 세상. 집안이나 뒷배가 아닌 능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 죄지은 자는 합당한 처벌을 받고, 공을 세운 자는 합당한 상을 받는 그런 세상을 이루는 것이 제 천하 군림의 목표입니다.”
능운비의 말에 당천익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하나 이상에 불과하다.
정영회라는 집단이 처음 꿈꾸던 것과 똑같은…….
“허허, 교주. 그대의 말은 듣기에는 좋으나 이미 정영회와 같은 우를 범하고 있음을 모르겠소? 당장에는 교주께서 큰 뜻을 품어 나아간다 해도, 언젠가는 정영회와 똑같아질 게요.”
“압니다. 그럴 테지요. 모두가 제 마음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나아가려 하시는 게요?”
“예.”
“어째서?”
“고인 물이 언젠가는 썩는다고 하여 방치하면 악취만 더 심해질 것입니다. 누군가는 고여 있는 곳에 흐름을 만들어 주어야지요. 또한 제가 만든 세상이 다시 고여 나아가지 않게 된다면……필시 누군가 나타나 다시 흐르게 할 것이라 믿을 뿐입니다.”
“음…….”
“지배만이 군림은 아닙니다. 군림은 곧 나의 뜻이 천하에 두루 미치게 하는것. 그것이 제 목표입니다.”
“……”
“또한, 그 뜻이 이루어지면 마도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능운비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당천익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찌해야 하는가?
만약 그가 정영회를 벌하고 원하던 세상을 이루어 낸 뒤 돌아간다면, 당가는 그들을 도와 역사의 현장에 발자국을 남길수 있다.
군림의 뜻이 옳은 것만을 향해 있으니, 당가는 그들을 도와 고여 썩어 가는 물에 물꼬를 터 준 것만으로 세상의 찬사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저 자신을 설득하려는 말뿐이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비록 그의 표정과 말에 진심이 가득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본시 가지기 전과 가진 후가 다른 법 인데…….
한참을 고민하던 당천익의 얼굴에 결심의 빛이 어렸다.
거절해야 한다.
정무맹이 이길지, 능운비가 이끄는 일월신교가 이길지 가늠키 어려운 상황, 또한 그의 이상은 너무나 지고하여 실현 가능성이 부족하다.
자신은, 그리고 당가는 아직 방관자로서 남아야 했다.
“후우…… 교주, 그대의 뜻은 더할수 없이 높아 이루기 어렵소. 나는 그대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으나, 가문 전체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할 듯하오. 당장에 그대 사제의 죄를 무마하는 것조차 힘에 부치오.”
“그렇습니까?”
“그러하오.”
“하면, 제가 가주께서 당가를 설득할 기회를 만들어 드리면 되겠습니까?”
“설득할 기회요?”
“예.”
“아니, 대체 어찌?”
“당가가 이득만을 좇는다 하나, 근본은 무가입니다. 그 속성은 변하지 않지요.”
“……?”
“무인은 말이 아닌 무로써 대화하는 법입니다.”
“그게 무슨?”
“당가 천망(天網)에 도전하겠습니다.”
“……!”
능운비의 말에 당천익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가 천망이라니?
“교주! 그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아는 게요?”
“……”
“당가 천망은!”
“압니다.”
“뭐, 뭐요?”
“그리하면 움직이겠지요?”
“……”
“제가 당가 천망을 뚫어 내고, 당당히 가주전 앞에 선다면……”
“미친 소리! 그대의 무가 입신에 이르렸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당천익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능운비는 그저 웃기만 했다.
당가 천망.
그것은 당가가 가진 최악의 형벌이자, 죄인을 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당가타의 입구에서부터 당가의 가주전인 삼양전까지.
무려 십 리에 달하는 길을 홀로 지나와야 한다. 당가의 모든 전력이 투입된 암기와 함정, 독진을 뚫고…….
“천망을 뚫고 온 자는 당가에 어떤죄를 지어도 용서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능운비의 말이 옳다.
하지만 애초에 뚫을 수 없는 길이다.
하늘을 가득 채워 쏟아지는 만천화우보다 훨씬 더 독한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만약 능운비가 그 길을 뚫고 온다면, 당가는 그의 손을 잡게 될 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려는 것이오? 그저 지나가기만 하면 될것을……”
그 말에 능운비가 빙긋이 웃었다.
강자서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이미 마도의 진격이 꽤 지체되었다. 하여 그저 지나가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당가의 힘을 얻는다면, 섬서에서 싸우고 있는 일월신교의 무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당가를 이용하려 하던 이들에겐 크나큰 충격이 될 것이고.
나아가 그들에게 깨우쳐 줄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변덕이 심해서 그렇습니다. 왠지 당가와 함께 가고 싶어졌거든요.”
“허!”
“그리고, 제가 제천의 후계임을 잊으셨습니까?”
히죽 웃는 능운비의 모습에 당천익은 힘이 쪽 빠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스쳐 지나가지 않고 뛰어넘으려 하고 있었다.
곤륜에 이어 당가마저.
마치 중원의 모든 하늘을 부수고 제천의 이름을 얻은 그의 스승처럼…….
“어느 쪽도 당가에는 이득일 것입니다. 천망에 도전한 제가 죽게 된다면 마도의 발호를 막은 역사의 영웅으로, 성공한다면 정영회를 무너뜨리고 중원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도운 협사의 가문으로 기록되겠지요.”
능운비의 말에 당천익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교주께선…… 제게 물러날 곳이 없는 제안을 하시는군요. 품은 뜻은 정의가 분명한데, 그 모든 곳에 이득이 있다하시니.”
“가신들을 설득하는데 필요할 듯하여.”
능운비의 웃음에 당천익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주, 먼저 가서 가주전을 데워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반드시 찾아오시길 염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