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11
슈아아악! 퍼억!
공동파의 장로답게 홍문의 검은 매서운 예기를 머금고 있었다. 무당, 아미, 화산, 청성과 더불어 오대검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성에 어울릴 만한 솜씨였다.
또한 괜히 복마검(伏魔劍)이겠는가?
궤적 하나하나에 항마의 힘이 머무니, 마기를 가진 무인으로서는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스걱!
날카로운 궤적이 옷자락을 베고 살갗을 찢어 냈다.
“놈! 왜 그러느냐? 이전처럼 해 보지 그러느냐!”
자신의 검이 상처를 입히자 한껏 고무된 홍문이 구양휘를 비웃었다.
“이 간악한 마교 놈들! 내 오늘 네놈은 물론이고, 저년의 목까지 취해 중원의 의기를 세울 것이다!”
검의 궤적이 더해질 때마다 구양휘의 몸에 상처가 늘어 갔다.
하지만 구양휘는 선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홍문을 노려볼 뿐이었다.
애초에 구양휘의 무공 자체가 힘에 기반한 무공이었다. 하여 움직임이 빠르지 못했다.
그에 반해 변화가 많고 속도가 빠른 홍문의 검은, 어찌 보면 구양휘와는 최악의 상성을 가지고 있었다.
와중에 항마의 힘을 머금은 복호검이 아닌가?
변변한 대응 한 번 못 하고 상처만 늘어 가던 구양휘의 전면으로 달려들던 홍문이, 별안간 방향을 바꾸어 좌측으로 파고들었다.
결정적인 한 수였다.
“놈, 죽어라!”
살기로 빛나는 눈과 함께, 홍문이 구양휘의 목덜미를 노렸다.
푹!
한데 검이 꽂히는 순간 흥문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해졌다.
어깨였다. 정확히는 승모근.
자신이 노린 것은 목이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구양휘가 몸을 비틀어 버린 것이다.
“놈! 운이 좋았……!”
빗나간것을 운으로 치부한 흥문이 검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턱.
흥문이 당황하던 그때, 구양휘가 손을 들어 검날을 움켜쥐었다.
까드드득!
손을 베고도 남았을 예기를 머금은 검이 구양휘의 손안에서 그대로 우그러들었다.
구양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잡았다, 요놈.”
“뭐?”
“이따위 얕은 검격으로 날 죽이겠다고? 턱도 없다!”
구양휘가 검을 쥔 손을 쭉 뻗자, 당황한 흥문이 검을 손에서 놓고 다급히 물러났다.
일단은 그의 손을 피해,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울 생각이었다.
“도망가게 둘 줄 알아?”
“……!?”
손아귀에 잡히는 것을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구양휘의 몸이 세차게 휘돌았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따라 그의 손에 들렸던 나무가 힘차게 회전했다.
“이, 이런!”
피하기에는 늦었다.
원체 큰 나무가 아니던가. 회전 반경이 흥문이 한 번에 물러날 수 있는 거리보다 넓었다.
“젠장!”
어쩔 수 없이 몸을 바닥에 딱 붙여 엎드린 순간.
후욱!
횡격으로 휘둘러지던 나무가 흥문의 머리 위에서 멈춰 섰다.
엄청난 힘이었다.
저 거대한 나무를 파리채처럼 휘둘러 대는 것도 놀라운데, 휘두르던 중에 멈추다니?
당황한 흥문이 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리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미 늦었어!”
구양휘가 싸늘한 미소와 함께 나무를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콰아앙!
“크아악!”
머리가 깨지는 충격?
아니, 아예 머리가 목덜미로 파고드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 엄청난 통증에 흥문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구양휘는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압!”
쾅! 콰쾅! 쾅!
나무가 수도 없이 흥문을 내리쳤다.
그 나무가 반으로 쪼개지고 갈라져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구양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래, 공동의 도사였을 것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피떡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후우…… 이런 빌어먹을 새끼.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 캬악! 퉤!”
땀으로 이마가 번들번들해진 구양휘가 침까지 뱉으며 흉물스럽게 변해 버린 나무 조각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곧장 소선화를 향해 뛰어갔다.
“누이!”
“……”
“이제 그만하시오. 이러다죽겠소.”
“놔.”
“누이!”
자신을 뿌리치는 소선화의 양손을, 구양휘가 힘껏 움켜쥐었다.
그녀는 너무 무리하고 있었다.
만수영안을 극한까지 끌어다 쓰느라 눈동자의 실핏줄이 죄 터져 버린 지 오래고, 내력을 과도하게 끌어올린 탓에 입가에는 실낱같은 핏물마저 흘렀다.
“그만해요, 그만.”
“안 돼. 교주님께 약속했어. 섬서를 넘어 먼저 정무맹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나도 아오. 내 누니 마음을 모르지않소. 하지만 이리 무리하다가는 정무맹은커녕 섬서를 넘다가 죽겠소!”
“……”
“보시오. 이미 야수문과 천력탑의 무인들이 따라붙었소. 이제 저들에게 맡기면 된단 말이오.”
그 말에 소선화가 고개를 돌려 전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불러온 짐승 떼로 인해 혼란에 바져들었던 정사의 무인들이, 뒤늦게 합류한 야수문과 천력탑의 무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와중에 응보존자 충산마저 가세해 적들을 헤집고 다니니, 정사의 기세가 단번에 꺾여 버렸다.
파죽지세였고, 지리멸렬이었다.
“……그럼 잠시만 맡길게.”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소선화가 만수영안을 풀었다.
이지를 제압당했던 짐승들이 번뜩정신을 차리고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이제 상관없었다. 이미 짐승 떼가 없어도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소선화였다.
너무 과도하게 힘을 소진해 버린 터라, 꼿꼿이 서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다 결국 옆으로 쓰러졌다.
“누이!”
구양휘가 다급히 그녀를 받아 들자 소선화가 빙긋이 웃었다.
“고맙다.”
“고맙기는 염병. 이리 쓰러질 걸 뭐하러 그리 바득바득 고집을 부려요? 하여간, 뭔 놈의 사형제들이 쓸데없는 것만 닮아서는……”
“닥쳐. 너도 마찬가지야.”
“뭐요? 난 엄청 다릅니다.”
“킥.”
타박을 주고받던 구양휘와 소선화는 이내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잠시 숨을 돌리던 그때,
“야수문주님, 천력탑주님!”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여유가 생긴 충산이 황급히 뛰어왔다.
“아, 응보존자님.”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사천에 계실 줄 알았던 분들께서 어찌 이곳에……”
“교주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섬서를 도우라 하셨지요.”
“교주님께서요?”
“예.”
“한데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당가를 설득하고 계실 겁니다.”
“설득요?”
“예. 당가를 설득해서 호북성으로 간다고 하시더군요.”
“……”
구양휘의 말에 충산이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더라? 그러니까…… 에잇, 젠장! 뭐라고 하시긴 했는데 복잡해서 전 잘 설명을 못 하겠네요. 어쨌든 당가를 설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 예. 설득해야 하는군요.”
“그런가 봐요.”
구양휘가 설명하다가 짜증을 내며 머리를 긁적이자, 충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세세한 설명은 무리임을 모르는 이가 일월신교에 누가 있을까?
“야수문주님께선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괜히 걱정만 끼쳤네요.”
충산의 말에 구양휘의 팔에 안겨 있던 소선화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서 그래요. 쓸데 없이.”
“야!”
“어허, 아픈 사람이 막 소리 지르고 그러는 거 아냐.”
“이게 진짜!”
“……놓아버린다?”
“……”
구양휘가 눈을 샐쭉하게 뜨며 협박아닌 협박을 하자, 소선화가 뭐라 말은 못 하고 입술만 씰룩거렸다.
“허허, 덕분에 웃습니다. 두 분께선 여전하시군요.”
“아, 뭐…… 그런데 다른 곳은 어떻습니까?”
구양휘의 말에 충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상황은 비슷합니다.”
“밀리고 있군요.”
“적의 수가 원체 많은지라……”
“음, 서두릅시다. 속히 도와야지요. 교주님께 섬서를 넘어 정무맹에서 기다리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안 그래도 이미 군사께 전서를 보냈습니다.”
“……?”
“두 분께서 나타나셔서 전황이 유리해졌고, 속히 북진해 적의 측면을 치겠다구요.”
“그렇군요. 하면 바로 움직이면 되겠습니다.”
구양휘의 말에 충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군사를 만나러 가 볼까요?”
“예!”
구양휘의 답과 함께 충산이 휘하에 힘차게 명을 내렸다.
“전군! 북진하라!”
* * *
당가의 삼양전.
붕대로 온몸을 칭칭 동여매다시피 한 능운비의 앞에 당천익을 비롯한 당가의 장로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좀 더 쉬셔야 합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상처도 상처지만, 독에 중독되었었기에 기력이 온전치 못합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한동안의 실랑이에도 뜻을 굽히지않는 능운비의 모습에, 당천익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 당가에 있어서 정사마의 구분이 무의미한 인물이었다.
당가의 역사상 처음으로 천망을 뚫어 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또한 약속하지 않았는가?
당가의 천망을 뚫고 삼양전에 도착한다면 그의 손을 잡기로.
설사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한들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하면 당가의 철갑차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암요! 귀인께서 혹여 습격당하기라도 하면 곤란하지요.”
“의약당주가 모시도록 합시다. 가는 동안 교주님의 병세를 살펴야지요.”
“당연하지요! 보자…… 교주님의 상세를 회복시킬 만한 영약이 뭐가 좋을까.”
그 말에 장로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하나같이 눈에 온기가 넘치는 것이, 누가 보면 친인척이라도 되는 줄 착각할 것 같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능운비는 객을 넘어 동경의 대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당천익은 이내 마음을 굳히고 말했다.
“장로들 말대로 하시지요.”
“……?”
“일월신교는 이제 당가의 우방입니다. 설사 정무맹과 척을 지게 되는 한이 있어도 당가는 나아갈 것입니다.”
“가주님.”
“괜찮습니다. 이는 비단 일월신교와 손을 잡은 것에 따른 이득 때문만은 아닙니다.”
“……”
“방계 혈족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함이며, 또한 그 복수를 하기 위함입니다.”
당천익의 말에 장로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고, 능운비는 결국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당천익도 미소를 지으며 능운비가 내민 손을 잡았다.
“가야 할 길이 편치는 않을 것입니다.”
“압니다. 이미대비하고 있습니다.”
“예? 대비라니요?”
“교주께서 쓰러져 계신 동안 청성과 아미, 정무맹에도 이미 통보하였습니다.”
“벌써요?”
“예. 당가가 방계 혈족의 죽음에 대한 의심을 풀기 위해 정무맹으로 나아가려 하니, 이를 방해하는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당천익의 눈빛이 매섭게 빛난다.
“그럼 출발하시겠습니까?”
“예.”
능운비가 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당천익이 엄숙한 표정으로 장로들을 향해 외쳤다.
“병용당의 당주는 철갑차를 준비하라”
“예, 가주님!”
* * *
다음 날, 당가의 최정예 무인들이 출정 준비를 했다.
“이게 철갑차군요?”
“예. 당가의 모든 기술력을 동원하여 만든것입니다.”
당천익의 말에 능운비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당가의 철갑차. 여덟 필의 말이 이끄는 철제 마차다.
당천익의 말로는 근처에서 화탄이 터져도 내부엔 어떠한 피해도 없다고 했다. 또한 단번에 수천 발의 암기를 쏘아 내는 기관이 장착되어 있어, 외부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가히 움직이는 철옹성이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겠군요?”
“외인을 태운 것은 당가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영광입니다.”
“자, 오르시지요.”
“예.”
능운비의 뒤를 따라 당천익과 약재를 가득 챙긴 의약당주가 마차에 올랐다.
쿵!
마차의 문이 닫히자, 천독당주 당무린이 무인들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문을 열어라!”
당무린의 외침에 당가의 내성과 외성문이 동시에 열리고, 곧게 뚫린 관도가 하나로 이어졌다.
“목표는 정무맹이다! 출행한다!”
“예!”
당가가 움직였다.
흉흉한 눈빛을 번뜩이는 무인들이 앞서고, 당가 철갑차의 바퀴가 힘차게 구르기 시작했다.
바쁘게 달리던 수레처럼 전쟁 상황파악에 여념이 없었던 정무맹에 덜컥 제동이 걸려 버렸다.
예상치 못한 당가의 움직임.
한데 그 방향과 의도가 묘했다.
전선은 섬서인데, 그들은 정무맹으로 향하고 있었다. 또한 그 의도가 방계 혈족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미친!”
당가에서 날아온 서신을 받아 든 제갈민의 욕설이 대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규모는 어떠하다더냐?”
“가주 당천익을 필두로 당가 삼대가 모조리 투입된 대병력입니다.”
“당가 삼대? 전부를 끌고 움직였단 말이냐!”
“그 선두에 당가 철갑차가 있다고 합니다.”
“뭣이? 철갑차까지?”
군사부 학사의 보고에 제갈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철갑차라니?
말만 의혹 해소지, 이건 정무맹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는 뜻이 아닌가?
뿌드득.
제갈민이 이를 바득바득 갈아 대며 재차 물었다.
“그래서, 능운비는 어찌 되었다더냐?”
“그것이 당가 천망에 도전한 것까지는 알겠지만…… 원체 경비가 삼엄하였고……”
“쯧!”
혀 차는 소리를 내 우물쭈물하는 학사의 말을 끊어 버린 제갈민이 스산한 눈빛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화는 가라앉았고, 눈빛은 냉철해졌다.
어느새 정리된 제갈민의 머릿속에서 사천에서 벌어진 사태의 조각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추측할 수 있는 바다. 능운비가 당가 천망을 뚫은 것이 틀림 없었다.
당가는 놈의 편에 섰을 것이다. 천망을 뚫은 것은 역사상 유례없던 일이고, 일월신교의 편에 서는 것이 그들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 아니겠는가.
하지만 철갑차라…….
“능운비의 모습을 본 이가 있다더냐?”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철갑차에 타고 있겠구나.”
“아무래도……”
“아무래도? 멍청한 놈. 확실할 것이다.”
“……”
“능운비가 당가의 철갑차를 타고 온다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때, 군사부 대전 문이 벌컥 열리며 노기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 당가가 정무맹으로 향했다니!”
제갈천우였다.
당가의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온 것인지 얼굴이 벌겠다. 옷매무새마저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것을 보면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 제갈민이 보였던 반응과 다르지 않았지만, 제갈민은 담담한 얼굴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오셔? 네놈에게 전권을 맡겼거늘 일을 이따위로 처리해!?”
“일단 고정하십시오.”
“지금 내가 고정하게 생겼느냐!”
제갈천우의 노기가 불 쁨듯이 쏘아져 나왔지만, 제갈민의 표정은 무심하기만했다.
“이놈! 입이 있으면 어디 한번 지껄여 보거라!”
“……”
연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제갈천우를, 제갈민이 가만히 응시했다.
“많이 늙으신 모양입니다.”
“뭐가 어째!?”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에 대해 설명해 보랬더니 딴소리였다.
“이제는 보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뭐라? 이놈이 지금!”
“당가로 인해 무림의 분위기가 묘해졌습니다.”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으냐!”
제갈천우가 재차 소리를 질렀지만, 제갈민은 나지막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당가가 놈의 편을 들었으니, 모두가 생각할 겁니다. 이해에 밝은 당가가 선택했다면, 능운비에게 승산이 있는 모양이라고.”
“무슨 말이냐?”
“무림이 원래 그러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
“정의? 협의? 이 무림에 그따위 것이 있기나 했었습니까? 결국은 이득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법입니다.”
이합집산(離合集散).
헤어졌다 모이고, 모였다 흩어진다.
정이니 사니 구분하지만, 결국엔 이득을 좇아 움직이는 곳이 바로 무림이었다.
“그래서?”
“당가를 이용하려 했던 제 계략은 완벽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절반 정도의 성과는 본 모양입니다.”
“뭐라?”
절반의 성공.
그 말에 제갈천우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확신인가? 아니면 제 실수를 무마하기 위함인가?
“대전을 비우라.”
제갈민의 생각에 의문이 생긴 제갈천우가 화를 가라앉히고 명했다.
명을 받은 군사부의 학사들이 전부 빠져나가고, 대전에는 오직 둘만이 남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기분이 그렇지 못하다. 네 생각부터 밝혀라.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더냐?”
누그러진 음성으로 묻는 제갈천우를 바라보던 제갈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계 혈족의 죽음을 마교의 소행으로 몰고 간 것은 능운비를 당가로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안다.”
“당가의 분노가 능운비를 향하게 할 작정이었지요.”
“이미 실패했다. 그들은 지금 정무맹을 의심하여 다가오고 있다.”
“예, 그 전략은 실패했습니다. 하나 어떤 증좌도 없습니다. 죄를 묻기는 힘들겠지요.”
제갈민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그가 이토록 자신한다면, 당가에 덜미를 잡힐 만큼 허술하게 일을 꾸미진 않았을 것이다.
“실은 저도 능운비가 당가 천망에 도전할줄은 몰랐습니다. 의외였지요.”
“해서?”
“또한, 녀석이 천망을 뚫을 정도로 고강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계속하라.”
“하나 이제 그 실력을 알게 되었지요. 아무래도 놈이 제천을 뛰어넘은 모양입니다.”
“해서, 고작 놈의 실력이나 파악하고자 이따위 짓을 감행했단 말이냐? 당가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예, 매우 증요했으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당가가 적으로 돌아서면서 이미 아미와 청성이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압니다. 당가와 척지고 싶지 않을테지요. 불가니 도가니 해도, 결국은 자파의 손해를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교가 쳐들어와 중원이 풍전등화인데 말이죠.”
제갈민이 조소를 머금은 채 두 문파를 힐난했다.
“아마도 그들의 불참은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곤륜의 봉문.”
“예. 정말로 영악하기 짝이 없는 놈이지요. 그나저나 말이 길어지니 목이 마르는데…… 차를 준비해야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제갈민은 차를 우리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갈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곤륜의 봉문이 가져올 여파는 이미 알고 있었다.
능운비는 기존의 마교와는 다르게 걸어온 길에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않았다.
마치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 바람처럼.
이전과는 다른 그 분위기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그의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마교와 싸워야 하는가?
섬서야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벌어졌다곤 하지만, 사천의 경우는 다를 것이다. 당가가 마교의 편을 들어 버린 상황이 아니던가.
아미와 청성은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마교도 버거운데, 지독한 당가까지 상대했다가는 멸문을 면치 못할 것임을 알 테니까.
와중에 방계 혈족의 죽음을 내세운 당가였다.
상황이 그러하니, 그들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였다.
가만히 있으면 어떠한 피해도 보지않는다.
하여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리라.
능운비가 곤륜을 봉문시키며 심은 씨앗이 비로소 싹을 퇴운 것이다.
하지만 제갈민의 말이 마음에 턱 하니 걸렸다.
절반의 성공이라니, 누가 봐도 그의 계략은 실패임이 분명한데…….
하지만 너무나 여유롭지 않은가?
문득 제갈천우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제갈민이 자신의 예측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쪼르륵.
“차가 좋습니다. 드십시오. 뜨거운 찻물을 식히다 보면 홍분을 가라앉힐 수 있으실 겁니다.”
“……”
제갈민이 채워 놓은 찻잔을 바라보던 제갈천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항시 자신이 우위에 있다 여겼는데…….
지금 자신은 어리디어린 제갈민에게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새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로 자신은 늙어 버린 것인가?
제갈민의 말대로, 이제는 돌아가는 상황조차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는가?
제갈천우가 재차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해 보아라. 절반의 성공이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이더냐?”
그의 물음에 제갈민이 빙긋이 웃었다.
“능운비가 당가의 철갑차를 타고 오는 모양입니다.”
“당가의 철갑차? 그게 무슨…… 아!”
제갈민의 말을 곱씹던 제갈천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네놈, 설마?”
“중원 정벌을 위해 나선 일월신교의 수장이 모습도 보이지 않고 움직인다?”
“……!”
“상처가 중한 것이겠지요.”
제갈천우는 비로소 제갈민의 의도를 깨달았다.
“중요한 건 당가가 아니라 놈입니다.”
“허!”
제갈천우는 황당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제갈민에게 있어 당가는 애초에 버리는 패였던 것이다.
“네놈, 설마 이리되리라는 것을 전부를 예상했더냐?”
“그럴 리가요? 그저 운이었습니다.”
“운이라……”
“만약 능운비가 섬서에 머물렀다면, 굳이 당가를 버릴 이유가 없었겠지요. 그 자체로도 마교를 막는 엄청난 전력이었으니까요.”
“……”
“또한 능운비가 아무런 싸움 없이 당가의 마음을 얻어 냈다면, 제 계획은 완벽한 실패였을 겁니다. 아마 지금쯤 이 자리에서 자결했을 테지요.”
“dma……”
제갈민의 말에 제갈천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하나, 아직 상태가 나쁜 것이 확실한지 알수 없다.”
“그러니 확인해야지요.”
“확인?”
“철갑차 안에서 당가가 놈을 치료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닙니까?”
“당가의 철갑차를 공격하겠단 뜻이냐?”
“어차피 버리는 패였습니다. 마교와 손잡은 당가는 이미 중원의 죄인이니까요.”
“하나 철갑차를 내세운 당가의 전력은 만만치 않다.”
“압니다. 당가 삼대가 전부 움직였으니……. 다만, 치료를 늦출 순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정무맹에 도착할 때까지 완치가 안 될 수도 있겠지요.”
그 말에 제갈천우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섬서는 어찌할 생각이냐? 전황이 어려워졌다 들었다.”
“잠깐입니다.”
“잠깐?”
“예.”
“대책이 있다는소리구나?”
“제 부탁을 잊으셨습니까?”
“뭐?”
“종남의 진산, 화산의 독고성과 청진, 그리고 소림의 정화.”
“……”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하다고 분명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 그건……”
“녹림왕과 창랑은 몰라도, 그 넷만은 반드시 제 손에 쥐여 주셔야겠습니다.”
“……”
“설마하니 그들을 인질로만 이용하겠습니까?”
“봉문을 끝낼 생각이구나.”
“당연하지요. 무림이 이리 풍전등화인데, 구파의 일원으로서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
“하니 아직이라면 서둘러 움직여 주셔야 할 겁니다. 자칫 섬서가 무너질지도 모르거든요.”
“음…….”
제갈민의 말이 옳다. 그 넷이라면 봉문한 문파들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하다.
또한, 그들을 이용해 중상을 입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능운비를 잡을 함정을 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네놈은 기어이 나를 끌어내릴 요량이구나.”
“설마요?”
제갈민이 빙긋이 웃었지만, 제갈천우는 그 미소에 담긴 뜻을 모르지 않았다.
“좋다. 네 계략에 따라 주마.”
“……”
“하나 명심하거라.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함을.”
“명심하겠습니다. 하나 제때 움직여만 주신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것입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제갈민을 매섭게 노려보던 제갈천우가 홱 하니 몸을 돌려 대전을 나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제갈민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맺혔다.
“설마 제가 마교만을 위해 이 계략을 꾸몄겠습니까? 조부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능운비를 중원에서 내쫓을 때, 함께 무너뜨려 드리겠습니다.”
그간 정영회가 쌓아 온 수많은 치부. 윤안로의 죽음 이후, 제갈천우를 도와 그 모두를 지운 것이 바로 제갈민이었다.
그리고 그 치부들은 여전히 그의 손안에 남아 있었다.
권력이란 원래가 타인과는 나눌 수 없는 법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