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21
쩌어엉!
“크으윽!”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황보문천이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나 시큰한 손목을 어루만졌다.
그 앞을 막은 능운비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휴우…… 다행이네. 당가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니가 와 줘서.”
“소림에 들렀다가 교주님을 돕기 위해 곧장 오는 길이 었습니다. 당가가 사방을 들쑤시고 있던지라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인 능운비가 담담하게 말했다.
“향아.”
“……?”
“내게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지금은 그냥 가라. 전 맹주부터 구해.”
“하지만……”
능운비의 말에 향이가 머뭇거렸다.
도제, 창제, 권제. 그리고 제갈천우까지.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는 하지만 한때 중원의 하늘이었던 자들이다. 제천조차도 그들 하나하나를 따로 상대했을 뿐, 모두를 상대했던 적은 없을 터였다.
“제가 돕겠습니다.”
능운비가 홀로 상대하기에는 무리라여긴 향이가 비수를 움켜쥐었다.
“향아.”
“예.”
“지금은 가야 해. 그게 날 돕는 거야.”
“교주님.”
“인근에 당가가 있다고 했지?”
“……?”
“전 맹주를 그들에게 인계해. 그리고 내 말을 전해. 대별산 전역에 포위망을 펼치라고. 그리고 다시 와서 도와.”
잠시 고민하던 향이가 이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 어서 가.”
“예!”
향이가 이옥상과 함께 몸을 날리려하자, 제갈천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도제!”
제갈천우의 외침과 동시에 도를 뽑아 든 팽위천이 높이 솟구쳤다.
향이 혼자라면 충분할 것이나, 이옥상을 안고 있으니 쉬이 피하지 못할 것임을 아는 능운비가 다급히 그를 막으려 했다.
“놈! 내가 그리 우습게 보이더냐!”
쿵!
황보문천이 능운비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곧장 주먹을 뻗어 왔다.
하나 그들의 움직임 정도는 능운비도 이미 예상한 바였다.
지금 그가 상대해야 할 이들은 모두넷이 아니던가?
“흥!”
능운비는 허리춤의 용작을 뽑아 팽위천을 향해 던지는 동시에, 다른 손은 주먹을 쥐고 휘둘렀다.
콰아아앙!
거세게 맞부딪힌 주먹.
“……!”
황보문천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응당 있어야 할 반탄력이 없었다. 마치 허공을 때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흔들리는 그의 눈에, 쾌속하게 물러나는 능운비가 보였다.
“이, 이런!”
그제야 능운비의 노림수를 깨달은 황보문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의 움직임을 막으려 한 것을.
하여 되레 자신의 힘을 이용해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맨 처음 던진 용작 역시 계산된 행동이었다.
위천은 제게 날아드는 용작에 순간 주춤했고, 찰나였지만 향이를 향하던 공격이 지체되었다. 능운비는 그 틈을 노린 것이다.
쿵!
황보문천의 권력에 삼무보까지 더한 능운비는 단번에 팽위천에게 닿았다.
“합!”
능운비가 뻗은 손이 자철석이라도된 것처럼 용작을 끌어당겼다.
텁!
그 손에 용작이 쥐어짐과 동시에 이어진 일검이 팽위천의 허리를 갈랐다.
별안간 반 토막이 나게 생긴 팽위천이 향이를 향하던 검의 방향을 틀어 용작을 쳐 냈다.
까아앙!
허공에서 부딪힌 검이 요란한 충돌음을 토해 내며 튕겨 나갔다.
“크윽!”
반탄력에 손아귀가 찢어질듯 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능운비는 이를 악물고 참아 내며 도제와 권제로부터 향이를 보호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더 있음을 간과하고 말았다.
쐐애액! 푹!
능운비가 내려선 곳을 향해 곧게 뻗어 온 창극.
“큭!”
옆구리를 관통당해 버린 능운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 쉴 틈이 없었다.
몸에 바람구멍을 만들고 물러났던 창끝이 재차 쏘아져 나왔다.
까드드득!
용작의 검면을 긁으며 궤도가 비틀렸던 창극이 수십 개로 나누어졌다.
퍽! 퍼퍽!
검을 열심히 휘둘렀지만,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나 계속 당할 수만은 없는 일.
“후웁!”
패왕수라결로 증폭시킨 기운이 응축된 능운비의 검이 힘차게 내리꽂혔다.
콰드득! 콰아아앙!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고, 검에실렸던 기운이 폭발한 지면의 잔해와 함께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젠장!”
졸지에 그 전면에 놓여 버린 세 무인이 방어세를 취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후우, 후우……”
막대한 내공을 쏟아부은 능운비가 땅에 박힌 검을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내력 소모가 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상대를 물려 냈고, 향이가 도망칠 틈을 만들었다.
“향아!”
능운비가 돌아보지도 않고 외친 말에 향이가 이를 악문 채 이옥상을 안고 도주했다.
멀리 사라지는 기척을 느끼며 능운비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자, 제갈천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
“어쩔 수 없군. 속히 물러나세. 도망친 년이 당가의 병력을 끌고 오면 우리에게 불리하니.”
제갈천우의 말에 능운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큭큭, 불리하니 도망을 가겠다? 조금 전까진 손을 잡자고 애원을 하더니…… 참으로 변덕이 심한 노인네구만.”
“홍! 마음대로 지껄이거라.”
피식 웃으며 뱉는 말에 제갈천우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네놈이 지금 시간을 끌어 볼 속셈인가 본데, 그런 얕은수에 우리가 걸려들것 같으냐?”
“시간? 웃기고 있네.”
“……”
“뭔가 착각을 한 모양인데, 내가 저녀석을 보낸 건 당가를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야.”
“뭐라?”
“말했지? 너희와의 악연이 오래되었다고. 난 처음부터 당신들을 죽일 생각이었어. 향이와 이옥상을 도주시킨 건 괜히 싸움에 휩쓸려 다칠까 봐서야.”
“뭐가어째?”
“사실은 나도 내 힘이 감당 안 되거든.”
“미친놈이로군. 이 마당에 허세를 떨어 보겠단 것이냐?”
“허센지 아닌지는 지금부터 보면 될일이고…….”
검을 뽑아 어깨에 걸친 능운비가 여유를 부리자, 제갈천우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노인들을 다그쳤다.
“이보게들, 사특한 혀를 가진 놈이네. 신경 쓰지 말고 속히 자리를 피하세. 서둘러야 하네. 망할 년이 당가를 이끌고 오기전에 이곳을 벗어나야해.”
제갈천우의 말에 능운비가 조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하아, 정말 입만 산 노인네가 따로없네. 제발 그만 좀 씨불여라.”
“뭐, 뭣이?”
“지가 싸울 것도 아니면서 주저리주저리 뭔 말이 그리 많아?”
“이놈이!”
제갈천우가 눈을 치켜뜨며 노려봤지만, 능운비는 그를 무시한 채 다른 세 명의 노인을 쳐다봤다.
“당신들도 참 딱해.”
“……”
“그 오랜 세월을 함께해 왔으면, 저 노인네 성격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알텐데 말이야.”
능운비의 말에 황보문천의 눈매가 서늘하게 변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무슨 말은? 그저 하도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예전부터 괜히 궁금하더라고, 대체 무슨 약점을 잡혔으면 저 말뿐인 노인네의 말을 그리 잘 듣는 건지.”
“……”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물고…… 이건 뭐 충견이 따로 없잖아?”
능운비의 말에 황보문천은 물론 다른 세 노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왜? 내 말이 틀려?”
“……”
“아니면 겁이라도 나는 거야? 셋이서도 나를 못 죽일까 봐?”
“놈…….”
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문 황보문천이 앞으로 나서려 하자, 제갈천우가 그의 옷깃을 움켜 쥐었다.
“문천! 내 말 못 들었는가!”
“……”
“저놈은 지금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란 말일세! 당가뿐만이 아닐세. 너무 지체하면 녹림왕과 창랑까지 들이닥친단 말이야!”
제갈천우가 발악하듯 외쳤지만, 황보문천의 시선은 능운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팍!
그러고는 끝내 자신의 옷깃을 잡은 제갈천우의 손을 뿌리쳤다.
“문천!”
“천우, 나는 무인일세.”
“이 사람아!”
“그간 자네의 말을 들어 온 것을 후회하진 않네.”
“……”
“덕분에 황보가가 번영을 누려 왔지. 비록 그릇된 길을 걸어야 했던 적도 있으나…… 나는 참으로 감사하네.”
“문천!”
“하나 나는 결국 무인일세.”
황보문천이 주먹을 움켜쥐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젠 늙었어. 마지막은…… 무인으로서 죽고 싶네.”
“이, 이런 멍청한! 저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서 그러나? 윤안로 그놈이 가진 우리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란 말이야!”
제갈천우가 주름진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지만, 황보문천은 귀를 막아 버린 듯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허허, 이거 참.”
“우량!”
“천우, 문천의 말이 맞네.”
“자네까지……”
“하긴, 저 어린놈의 기세에 피가 끓지 않으면 무인이 아니지.”
“……”
“나 역시 자네 덕에 가문을 크게 키웠지. 감사하네.”
서문우량이 창대를 움켜쥐고 황보문천의 뒤를 따랐다.
“이거야 원…… 못 말릴 친구들이군. 이리 나서면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위천, 자네마저……”
“그래, 자넨 이해하지 못하겠지.”
“무엇을! 내가 뭘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무인의 마음.”
“뭐?”
“제천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 말이야.”
“……”
“난 꼬리를 말아 버린 우리가 너무 싫었네.”
“그게 무슨?”
“죽더라도 싸웠어야 했거든. 자네의 손을 잡은 것을, 그리고 옳지 못함을 알면서도 행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네.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 셋 모두 가문의 부홍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었으니까.”
“……”
“하나 나 역시, 언젠가는 문천의 말처럼 무인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팽위천마저 능운비를 향해 걸어갔다.
“천우. 자넨 피하게. 어차피 도움이 안될거야.”
“이놈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 버린 세 명의 벗을 바라보며, 제갈천우는 이를 악물었다.
머저리 같은 놈들이다.
무인? 그따위 이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두고 봐라. 나는 네놈들과 다르다.
자신에겐 아직 마지막 한 수가 남아있지 않던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병신 같은것들……”
세 노인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제갈천우는 결국 발걸음을 돌려 도망쳤다.
“큭, 결국 그런 선택이군. 검제의 죽음 앞에서 제 놈만 살겠다고 도망친 손주놈처럼……”
하긴, 제갈민이 어디서 배웠겠는가?
“쫓지는 못할것이네.”
“……?”
“우리가 자네를 막을 참이니.”
황보문천의 말에 능운비가 시선을 돌렸다.
제갈천우의 말처럼 시간을 끌고자했다.
당가의 정예들이 포위망을 갖출 수있게.
그리고 당가의 본대와 종리강, 막청주가 도착할 때까지.
하지만 이제 상관없었다.
이미 그들의 관계는 과거와 달랐다.
쫓김과 쫓음.
과거의 능운비는 늘 쫓겨 다니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제갈천우가 쫓겨 다닐차례였다.
“뭐, 좋아. 나중 일은 나중에 해결하면 되지.”
능운비의 시선이 자신의 앞에 선 세노인에게 오롯이 집중되었다. 지금은 이쪽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전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 셋 모두 너를 애송이로 취급하지 않기로 했으니.”
“……”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 스승에게 무너졌으나, 한때 우리는 하늘이었으니.”
황보문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서문우량과 팽위천이 능운비를 둘러싸듯이 자리를 잡았다.
주먹이 움켜쥐어지고, 도와 창이 곧추세워졌다.
그 중심에 선 능운비는 피식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최선은 당신들이 다해야 할 거야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