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23
긴 세월 중원의 심장부로 존재해 온 정무맹.
굳게 문을 걸어 잠근 그곳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지키려는 자와 부수려는 자.
제각기 칼을 겨누고는 있으나, 아직은 별다른 충돌 없이 그저 서로를 노려보며 긴 대치를 이어 가고 있었다.
“밀어붙입시다.”
일월신교의 깃발을 내세운 곳.
구양휘가 걷어진 천막의 입구 너머로 보이는 정무맹의 정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휘.”
“뭐요!”
“앉아.”
“이런 젠장! 어차피 이미 다 끝난 전쟁 아니오!?”
“앉으라고.”
단호한 소선화의 말에 구양휘가 짜증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이유가 뭡니까? 이유가!”
“교주님의 명이다.”
“썩을! 명은 무슨 놈의 명이란 말이오?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 한 것이 누군데!”
구양휘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자, 군사 강자서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천력탑주님.”
“뭐요?”
“정무맹은 중원의 자존심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요!”
“화산, 종남, 소림, 그리고 수많은 문파가 우리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하나 그 뜻은 여전히 다를 것입니다.”
“뜻이 달라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도 이미 정무맹을 버렸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예, 버렸지요.”
“……?”
“하나 그들은 스스로 정무맹에 묻고자 하는 것이지, 일월신교와 뜻을 함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어느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강자서의 말에 구양휘가 언짢은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파의 일원들은 일월신교와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섬서의 전선을 넘어온 일월신교보다 먼저 정무맹에 도착했음에도.
“함께 걸었으되, 뜻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정무맹을 공격하면, 저들은 되레 우리를 막으려 할 것입니다.”
“……”
“스스로 무너뜨릴지언정 남의 손에 짓밟히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지요. 교주님도 그걸 알고 계시기에 멈추어 기다리라 명하신 걸 겁니다.”
“대체 언제까지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교주님이 오고 계시니까요. 싸우든 싸우지 않든, 모든 것은 교주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강자서의 말에도 여전히 꼬인 심기가 풀리지 않은 듯했으나, 구양휘는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그라고 왜 모르겠는가?
다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마도가 목표를 앞에 두고 걸음을 멈춘다는 것이…….
* * *
“일월신교의 분위기가 흉흉하구만.”
신교의 무인들이 자리한 곳을 힐끗 쳐다본 화산검선 청진의 말에 진산이 웃으며 답했다.
“달리던 말이 멈춰 섰으니 홍분이 쉽게 가시겠는가?”
“음…….”
“하나 문을 넘게 할수는 없지.”
진산의 말에 소림승 정화가 이어 답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정무맹이 아닌가?
비록 그들 역시 정무맹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찾아온 걸음이었으나, 일월신교에게 짓밟히게 둘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능운비와 손잡으려 한 것도 그 힘을 빌려 정무맹을 바꾸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저 멈추어 달라는 것.
그들이 원한 것은 그뿐이었다. 무언가를 바꾸고자 한다면 스스로 바꾸어야만 하니까.
“그래도 능 시주, 아니 일월신교의 교주가 우리를 배려한 것 아니겠는가?”
“알고 있네.”
정화의 말에 청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으로 짓밟고자 했다면 그럴 만한 능력이 차고 넘치는 인물이었다. 와중에 당가가 그들의 편에 서 있다.
당장에 정사를 막론하고 정무맹을 지키려 하고 있지만, 능운비와 함께 올 종리강과 막청주가 나타나는 순간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사파의 무인들이 그들의 손을 들어 줄 테니까.
즉, 이미 진 싸움이었다. 화산과 종남, 소림이 힘을 모아 일월신교에 대항한다 한들 정무맹이 무너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정화의 말대로 모든 것이 능운비의 배려인 것이다.
“후우, 그가 무리해 나아가지 않아주어 다행일세.”
“아미타불.”
정화가 나지막이 도호를 외던 그때.
“스승님!”
밖에서 운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능 교주가 정주의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알겠다.”
무거운 목소리로 답한 청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나가보세.”
“그러지.”
청진을 따라 진산과 정화가 밖으로 나왔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목을 길게 뺀 채 정무맹의 초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무인들이 가득 진을 치고 있었기에 행인조차 없이 비워진 관도로 들어서는 일련의 인물들이 보였다.
선두에 능운비가 있었고, 당가의 가주 당천익, 종리강과 막청주가 그 뒤를 따랐다.
한데 의아한 광경이 목격되었다.
“관?”
두 마리의 말이 끌고 오는 수레에 관 세 개가 실려 있었다.
“저게 대체……”
모두가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때, 일월신교 쪽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능운비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의 주인이 왔으니 마중을 나가는것이다.
“청진, 정화. 우리도 속히 가보세.”
“음.”
고개를 끄덕인 청진과 정화가 진산을 따라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 * *
“교주님!”
“선화, 휘.”
“드디어 오셨군요!”
“다들 고생했다. 먼저들 와 있었구나.”
“예,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래.”
소선화와 구양휘의 반가운 인사에 능운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
이어 왕천과 주승을 비롯한 일월신교의 인물들이 차례로 그들의 교주를 맞이했다.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애썼다.”
“별말씀을……. 다만 천력탑주께서 조바심을 내시는지라 막는 것이 힘들었을 뿐입니다.”
강자서가 웃으며 말하자 능운비가 구양휘를 쳐다보았다.
“아니, 군사! 내가 언제……”
“아니었습니까?”
“그게…… 죄송합니다, 교주님.”
무어라 변명을 해 보려던 구양휘가 입을 댓 발이나 내밀고 사죄를 청하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죄송은 무슨, 좀이 쑤셨을 텐데 참아 주어 고맙다.”
“예, 뭐.”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능운비의 모습에 구양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흠, 정무맹은 여전히 문이 닫혀 있구나.”
“예. 한데 저 관은……?”
강자서의 물음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묻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대별산에서 일어난 싸움에 대해 듣지 못했을 테니.
“설명은 조금 뒤에 하자꾸나. 반가운 손님들이 더 오실 모양이니까.”
능운비의 말에 일월신교의 인물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한 떼의 사람들이 있었다.
“능 교주!”
“오랜만입니다, 진산 어른.”
“핫핫! 이거 높은 자리가 좋긴 좋은 모양이오. 교주가 되더니 신수가 훤하시오.”
“그리되었습니다.”
“내 진작에 교주가 될 재목임을 알고있었지, 암.”
진산이 호탕하게 웃었고, 능운비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 뒤에 선 자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청진 도장, 정화 대사님도 그간 잘 계셨습니까?”
“무량수불. 오랜만이오, 능 교주.”
“아미타불.”
“그간 세 분께서 저로 인해 과한 고초를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고초는 무슨? 교주께선 너무 마음쓰지 마시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가 대강 마무리되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리강과 막청주가 툴툴거렸다.
“쳇, 사파라고 인사도 안 건네는구만.”
“그러게나 말일세. 하여간 정파 놈들은 버르장머리가 예나 지금이나 개판이지.”
둘의 투덜거림에 진산이 능글맞게 웃었다.
“아이고, 두 분 형님. 설마하니 일부러 그러기야 했겠습니까? 멀리서 찾아온 객부터 맞이하고 맞으려 했지요.”
“흥!”
“그래, 쫓겨 다니느라 고생깨나 하셨다지요?”
“뭐야?”
“봉문했어도 이미 다 들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이게 꼭꼭 숨어 계셨다면서요?”
“이놈이!”
장난기 가득한 진산의 말에 종리강이 눈을 치켜떴다.
“어이쿠, 또 주먹질이시네. 이러니 무림 삼재라고 하지, 쯧쯧.”
“이 빌어먹을 놈이!”
진산의 너스레에 과장되게 발끈하는 종리강.
그 모습에 일행 사이로 웃음이 번지며 분위기가 한층 가벼워졌다.
“당가주께서도 잘 지내셨소?”
“아, 청진 도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능 교주와 함께 온 길이 녹록지 않았다 들었소. 고초가 심했겠소.”
“별말씀을요.”
비록 가주지만 다른 이들보다 다소 어린 나이인 당천익이 청진과 정화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희한한 광경이었다.
정과 사, 그리고 중원이 배척해 온 마교.
서로 가는 길이 다른 그 셋이 모여있었지만, 그들에겐 어떠한 구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무림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무림인이었다.
“한데 저들은……?”
진산이 넌지시 묻자 능운비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이내 그가 손짓을 보내자 관을 실은 수레가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관 뚜껑이 열리고, 드러난 세 노인의 모습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아, 아니 이분들은!”
좌중의 놀람이 가시기도 전, 갑자기 철갑차의 문이 열리며 향이가 한 인물을 부축해 나왔다.
“자, 자네…….”
그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본 청진의 눈이 부룹떠졌다.
비록 몹시 수척해졌으나, 한때 뜻을 함께했던 이의 얼굴을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맹주!”
“옥상!”
“허허, 잘들 지냈는가?”
당가의 도움으로 조금이나마 기력을 회복한 이옥상이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네가 어찌……”
“대별산에서 능 교주가 날 구해 주었네.”
“뭐라고? 구해 주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허허, 궁금한 것이 많을 줄 아네. 하나 이 자리의 화자(話者)는 내가 아니지 않겠는가?”
이옥상의 말에 모두가 능운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답을 재촉하는 듯한 표정들에 능운비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별산에서 정영회의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그, 그게 무슨소리인가?”
“제게 거래를 청하더군요. 손을 잡자고.”
능운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지난일을 설명하자 사람들 사이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청진이었다.
“제갈천우는…… 어찌 되었는가?”
“당가의 무인들이 뒤쫓고 있습니다. 곧 잡히겠지요.”
“음험한 자일세. 그가 또 어떤 음모를 꾸밀지……”
“압니다. 하나 일단은 이쪽 일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저리 서로 칼을 겨눈채 노려보고들 있으니……”
“음…….”
능운비의 시선이 정무맹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문.
그리고 그 앞을 막고 선 정사의 무인들.
“나는 능 교주에게 맡겨 보려 하네.”
“옥상, 맡기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어찌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무리 능 교주의 뜻이 옳다고는 하나, 그는 일월신교일세.”
이옥상의 말에 청진이 대번에 반박하는 뜻을 내비쳤다.
“허허, 검선. 아직 모르겠는가?”
“모르다니?”
“이곳 어디에 구분이 있는가?”
“……”
“그래, 나도 한때는 그리 생각했지. 다른 이의 손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야만 하는 일이라고……”
“……”
“하지만 말일세, 결국 무림의 일인데 누가 바꾸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일월신교라 해도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이 옳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 않는가.”
“옥상, 하지만……”
청진이 재차 입을 떼려 했지만, 진산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청진.”
“……”
“맡겨 보세. 귀천하신 현천 사숙께서 괜히 자네도, 운학도 아닌 능 교주에게 평생의 심득을 전하신 건 아니지 않겠는가?”
“아미타불, 빈도 역시 같은 생각일세. 다만 옆에서 지켜보면 될 것이 아닌가?”
진산에 이어 정화마저 거들고 나서자, 청진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어차피 목표는 같았다.
그저 그 길을 걷는 이가 다를 뿐, 그 걸음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던가.
“뜻대로 하시게.”
그 말을 끝으로 청진이 물러나자, 능운비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그의 걸음이 문을 굳게 닫아건 정무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