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7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 능운비는 몸이 잔뜩 달아 있었다.
어찌 가만히 있겠어?
이렇게 힘이 넘치는데!
본시 무인이라는 족속이 그렇다. 새로이 힘을 얻으면 어떻게든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더욱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힘이라면 참을 수가 없지.
다만!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니 참고 또 참다가 거처에 도착한 뒤에야 써 봐야 하는 것이다.
본능이 앞서는 짐승도 아닌데 그 정도 인내심은 있어야지.
그리고…….
“왕천.”
“예?”
“바쁜 일없어?”
“지금 가장 바쁜 일은…… 막 회복하신 공자님 수발드는 거 말고는 없는데요.”
“에헤이, 수발은 무슨. 난 괜찮다니까?”
“……”
“잘 생각해 봐. 뭐라도 있을 거 아냐? 그간에 못 하고 묵혀 뒀던…… 뭐 그런 거 있잖아?”
“딱히…….”
“떽! 생각해 보라고! 마냥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내가 이렇게 친히 기회까지 주잖아!”
“……”
능운비의 호통에 왕천의 눈매가 게슴츠레 해졌다.
불안하다.
딱 봐도 자신을 내보내고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표정이다.
“또 무슨 사고를 치시게요?”
“사고? 무슨 사고?”
“굳이 저를 내보내려 하시잖아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람을 어떻게 보고……”
“똑바로 본 것 같은데요?”
이놈 이거, 맹해 보이더니 제법 날카로운 구석이 있다.
하도 붙어 다녀서 그런지, 자신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놈은 반드시 떼어 내야 한다. 무공 수련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또 무슨 소문을 내서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지 모르니까.
“거, 사람 참. 믿기 싫으면 믿지 말게. 모처럼 기회를 줘도 난리야?”
“……”
“그래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난 좀 쉬어야겠으니까. 아이구 삭신이야.”
시치미를 뚝 땐 능운비가 허리를 부여잡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탁.
문까지 꼭꼭 닫아거는 그 모습에 왕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리 티가나서야.
뭐, 그래도 자신에게만 그러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연신 한숨을 내쉬던 왕천이 방문을 쳐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안 봐도 선하다.
방으로 들어간 능운비는 문고리를 잡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하아, 정말이지. 이러다 내가 늙지, 늙어. 안 그래도 흰머리가늘어서 걱정인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왕천이 이내 몸을 돌렸다.
그냥 뭐라도 하시게 놔두자.
오죽하면 교주님 앞에서 제자를 하지 않겠다는 미친 소리까지 하셨겠는가.
일백서른여섯 번.
능운비가 헤아리고 있을 리는 없지만, 주화입마에 빠지기 전까지 자신이 막아 낸 암습의 횟수였다.
불쌍하게도, 은밀하게 지켜 주는 교주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렇기에 금서에 손을 대 주화입마까지 겪은 것 아니겠는가.
강해지고 싶어서.
뒷배 없이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어서.
늘 그러한 중압감에 시달리다 보니,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을 대할 때면 항시 날을 바짝 세우고 계셨더랬다.
다행히 주화입마에서 깨어난 이후론 상대를 막론하고 성격이 바뀌셨다.
밝아졌고, 쾌활해졌다.
그걸 알기에 교주님께서도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무마해 주셨던 것이리라.
그러니 무슨 일을 벌이시든 잠시 내버려 두자.
답답한 속이라도 풀게끔.
지켜보다 너무 과하다 싶으면 그때 나서면 될 일이 아닌가?
욕은 좀 먹겠지만.
“그럼 도련님! 잠시 쉬시는 동안 어머님께 다녀오겠습니다. 한 서너 시진 걸릴 테니 찾지 말고 기다리세요.”
“……”
왕천이 일부러 소리를 질렀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방 안에서 한껏 웃으며 희희낙락하고 있을 터임을 아는 왕천은 피식 웃고는 거처를 벗어났다.
물론! 진짜로 갈 순 없고!.
휘릭!
멀어지는 척 발소리를 천천히 줄이던 왕천이 별안간 몸을 뒤틀며 뛰어오르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교에서 호위 임무를 수행하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은신술이다. 다만 지금의 능운비로선 알 수 없는, 아니 지금보다 훨씬 강해진다 해도 눈치챌 수 없는 수준의.
그렇게 왕천이 모습을 감추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끼이이익.
굳건히 닫혀 있던 능운비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피던 능운비는 아예 정신을 집중해 감춰져 있을지 모를 기척까지 세심히 살폈다.
“크흐흐흐, 갔구만. 갔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만족스러움에 괴상하게 웃던 능운비가 당차게 밖으로 나왔다.
“서너 시진은 족히 걸린단 말이지?”
나지막이 중얼거 리던 능운비가 마당의 중앙으로 향했다.
어찌나 맘 졸이면서 기다렸는지.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의 수련은 절대로 보여 줘서는 안 된다. 왕천이라면 필시 자신의 변화를 눈치를 채고도 남는다.
좀 가벼워 보여서 그렇지, 실력엔 전혀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껏 단한 번도 그의 경지를 정확히 읽어 내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왕천은 물론 다른 제자들의 호위장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교의 용종(龍種)을 지키는 자들.
언젠가 마교를 지배하게 될 이의 옆에선 이들이기에 아무나 선발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들 모두가 마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을 갖춘 고수다.
그리고 왕천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자다. 세를 등에 업지 않았기에 외부의 위협을 홀로 감내해야 했던 능운비를 위해 교주가 직접 선별해 붙여준 인물이니까.
이 모옥 역시 주화입마에 빠진 자신을 배려해 교주가 엄명을 내려 지키게 한 곳. 교주에게 모가지가 날아갈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왕천과 자신 외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왕천을 속여 내보냈으니, 앞으로 서너 시진은 자유가 된 셈이다.
즉, 마음껏 수련할 수 있다.
새로이 얻은 힘을 모조리 토해 내면서.
“후우.”
편안한 마음으로 마당의 중앙에 선 능운비가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역시…….
기가 막힘없이 흐른다.
이 충만함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내쉰 숨결을 따라 탁기가 빠져나가고, 들이쉰 숨에 폐부가 상쾌함으로 가득 차자 능운비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천천히.
내뻗은 발을 따라 다리가 움직이고, 이내 손이 뒤따른다.
가볍다.
몸짓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옷자락처럼 부드러웠다.
막혀 있던 무언가가 툭 하니 터진 것처럼 속이 후련해진 능운비가 점차 움직임에 속도를 더했다.
팍! 파팍!
내뻗은 손, 허공을 격한 발, 다시 땅을 디디는 몸짓까지.
동작 하나하나에 마기가 스미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극점에 다다르는 순간 시원스럽게 공기를 터트린다.
“좋구나!”
머릿속에 그린 동작이 몸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자 홍이 잔뜩 오른 능운비가 내친김에 목검을 쥐고 마당을 힘차게 달렸다.
쉬이익.
검 이 바람을 타고 흐른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공기 의 저항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평으로 그은 검은 원하는 만큼의 공기를 잘라 내고, 힘을 주어 당기니 사선으로 솟구쳤다 매끄럽게 아래로 그어진다.
곧이어 끌어 올린 마기가 소매를 부풀리며 팔을 타고 흘러 검에 담기니 충검(充劍)이다.
내가 기공을 익힌 자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나, 지금의 능운비처럼 자연스럽게 펼치기는 어려울 터였다.
파앙!
검극의 끝점에서 폭발하는 매서운 기운에 바람이 일었다.
“……담았으니 발현한다.”
끌어당긴 검의 기운이 검면에 어렸다 곧게 뻗어 나가, 검극의 한계를 넘어 길어진다.
담는 것은 충(充), 외부로 드러내는 것은 현(現).
나아가 이른바 각 지역을 대표한다고 할 만큼 명성을 쌓은 현기의 고수들이 사용하는 기예, 검기.
취리릭!
검에 부드럽게 덧씌워진 기운이 채찍처럼 늘어나더니, 검의 움직임을 따라 허공을 화선지 삼아 궤적을 그려 낸다.
스걱.
삼 장여 떨어진 수련용 목상의 잘린 단면이 너무도 매끄럽다.
쿵!
곧바로 뒤로 물러나며 뛰어오른 능운비가 목상을 향해 검을 힘껏 찔렀다.
퓻!
길게 이어졌던 검기가 뚝 끊어진 채 화살처럼 쏘아져 나간다.
탄(彈)의 경지.
빠가각!
잘려 나간 목상 조각이 땅바닥에 닿기도 전에 능운비가 쁨은 기운과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다.
여기까진 조금 버겁긴 하지만 전에도 가능했던 수준이다.
다음은 능운비의 몸으로는 가 보지 못했던 길이다.
오래전의 삶.
능운비는 꼭꼭 묻어 두었던 척월린의 기억을 떠올렸다.
탄의 다음 경지, 의(意).
숨 고르기를 끝낸 능운비가 눈을 감고 천천히 정신을 집중했다.
기운을 발현하고, 발출하는 것만으로는 어림없다.
어떤 무공을 쓰든 행위에 뜻을 담아야 한다. 살기를 담으면 살의(殺意)로써 대상을 상하게 하고, 활기를 담으면 활의(活意)로써 대상을 구하기도 하는것이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기운을 더해 뜻을 담아야 하고, 그에 능숙해져야만 무공이 진정한 위력을 가지게 된다.
능운비는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천천히 집중했다.
파라라락!
자연스럽게 일어난 기운에 바람이 일어 옷자락이 휘날린다.
투둑.
과하게 차오른 기운에 머리를 묶은 끈이 터져 머리칼이 부드럽게 흩날린다.
우우우웅!
능운비의 기운에 화답해 검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처럼 가늘게 피어오른 기운이 한 올씩 뻗어 나와 검 위를 덮는다. 기운의 가닥이 겹겹이 쌓여 종내에는 검면을 완전히 뒤덮고는 칙칙한 빛을 발한다.
“지금!”
능운비가 번쩍 눈을 뜸과 동시에 마당 한 켠에 우뚝 서 있는 바위를 향해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파가가각!
“……”
하지만 바위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손에 쥔 목검이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린 것이다.
“젠장……. 진검으로 할걸.”
바위를 잘라 내지 못한 아쉬움이 어린 말투였으나, 능운비의 입가에 떠오른 것은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바위? 그건 됐다.
뜻을 담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이게 전부 마령신단이 녹아 준 덕이다. 능운비는 기연을 만들어 준 한의겸에게 다시 한번 속으로 감사를 전했다.
이제 남은 일은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그렇게 의의 경지에 익숙해지고 나면, 어쩌면 과거에는 걸어 보지 못했던 강(?)의 경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의와 강의 사이에 있는 또 다른 자신만의 무공으로도 충분했다.
강의 경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에겐 시간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과거와는 시작점이 다르다. 시간도 충분하고.
그러니 한번 가 봐야지. 강이라는 곳에.
“……하지만 감추어야지.”
교주의 삼 격을 피하는 정도는 그 대상이 능운비라 놀라웠던 것뿐이다. 부상에서 회복된 것도 모자라 힘을 되찾고 있다는 증거 였으니까.
하지만 의기는 다르다.
강으로 가는 첫 걸음, 누군가 알게되면 소문이 날 터고 안 그래도 견제가 심한 판에 아귀 같은 는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모든 준비가 끝날 때까지 드러내지 않은 채 열심히 연마한다.
머릿속에 각인처럼 새겨진 마교의 무공에 더해 과거 자신의 무공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면?
“마교 대 탈주! 영원히 사라지는 거지. 크흐흐흐.”
다시 한번 자신의 목표를 상기한 능운비가 손잡이만 남은 목검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는 다시 방 안으로 사라졌다.
흥분이 목까지 차오르는 듯했지만 과한 수련은 금물이다.
아무리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해도, 마령신단의 기운으로 새로운 힘이 몸에 넘쳐흐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후유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충분히 쉬며 완벽하게 회복해야 한다.
탁.
방문이 닫히고.
드르렁, 푸우…….
바로 곯아떨어진 듯 요란한 코골이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참 뒤.
“거, 검사라고?”
멀찍하게 떨어져 모습을 감춘 채 능운비를 감시하던 왕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탄기의 경지도 겨우 펼쳐 내던 능운비가 별안간 검사(劍絲)를 펼쳐 내다니? 그것도 완벽에 가까운 검사를!?
몇 번이고 눈을 비벼 가며 다시 봤다. 분명 능운비였다.
하지만 생판 남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정말 의기에 오르신……. 이렇게 갑자기? 별안간?”
왕천은 너무 놀라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맙소사!
아무리 교주의 제자요, 재능이 충만했다지만 고작 열여덟 살에…….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지 못했을것이다.
별안간 지금껏 능운비가 버텨 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크흡!”
지난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라서 였을까?
“삼공자님……”
눈에 차오른 물기가 줄기를 이루어 흘러내렸다.
“어흑흑흑, 장하십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제가 이럴 줄 알았지요. 암요! 공자님이시라면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이로써 제 미래가 정말이지 창창…… 아니, 공자님의 미래가……”
속에 감춘 검은 속내를 드러내었다가 급히 정정한 왕천의 눈매가 매서워진다.
“이럴 게 아니지. 당장에 소문을……낼 필요도 없지. 암!”
일전엔 그저 가진 게 없는 상황이라 과시용으로 소문을 퍼트렸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가진 것을 뭣 하러 소문낸단 말인가?
이젠 감출 때다.
필살기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내야 빛을 발하는 법이 아니던가?
다만, 몇몇에게만큼은 알려야 한다.
능운비의 변화를 기다려 온 그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삼공자님, 기대하십시오.
이 왕천이 옆에 붙어서 입신양명……이 아니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후대의 교주가 되시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