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78
#1077.
찾아내다 (2)
“도통 알 수가 없군.”
김명찬 총리는 보고서를 읽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어쩌다 보니 총리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는 딱히 대단한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적당한 명예와 적당한 부를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총리 자리에 오르자마자 국내외적으로 사건이 수도 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마치 절대 김명찬이 평범한 임기를 보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리 바뀔 수가 있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 것은 별게 아니다.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에 불과했다.
유불리에 따라, 그리고 자신에게 떨어질 이득에 따라 포지션을 능수능란하게 바꾸지 못한다면,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정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입장의 문제다.
입장과 포지션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김명찬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져 나타나는 모습을 그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한국 무도 총회.
뱃속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마치 담석 같은 그 이름이 김명찬을 쿡쿡 찔러오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면 사람을 한순간에 그리 폐인처럼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거지?’
간밤에 그를 찾아온 석동수는 마치 총회의 의도가 먹히지 않으면 자신의 운명이 끝나는 것처럼 굴었다. 정계 입문 당시부터 총회의 지원을 받은 정치인이라 해도 저리 무대포로 총회의 편을 들지는 못할 것이다.
“총리님, 지금 그쪽에서 제안한 안건은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 줘야 합니다! 총리님! 제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예?”
‘겁에 질려 있었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석동수는 분명 겁에 질려 있었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 상기된 얼굴, 그리고 간절하기 짝이 없는 표정.
정치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얼굴이다.
“심지어…….”
김명찬을 더 놀라게 만든 것은 석동수가 완벽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에서 그가 느끼는 압도적인 불안함이 생생하게 전달되었지만, 그 눈빛과는 반대로 그의 말은 조리가 있었다.
결코 정신이 나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차라리 석동수가 헛소리를 늘어놓았다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좀 더 쉬웠을 것이다.
총회의 무인들에게 붙들려가서 고문이라도 받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석동수의 몸에는 어떤 고문의 흔적도 없고, 석동수 역시 질려 있기는 하지만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중국의 지시를 받고 총리인 그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던 석동수가 아닌가.
그러던 그가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서 총회 프리패스를 외치고 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사람을 그리 바꿔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꾸욱.
김명찬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새하얘진 손바닥이 지금 김명찬의 심정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일이긴 하지.’
중국이 개입해 온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특히나 이런 식으로 한국의 정치인을 뒤흔들어 온다는 건 대처하기 난감한 일이었다.
그 끔찍한 상황이 이리 쉽게 풀렸다는 건 반겨야 할 일이었다. 석동수 개인으로야 좋다는 말을 절대 할 수 없겠지만, 국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명찬의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최악에 가까웠다.
‘이 일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모든 일에는 그 이면이라는 게 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 일에서 중요한 건 석동수가 자신의 입장을 바꾼 덕분에 일의 진행이 쉬워진 것 따위기 아니다.
바로 총회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정치인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김명찬이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렀다.
‘그토록이나 막고 싶어 한 일이건만…….’
권력은 필연적으로 재력과 폭력에 영향을 받는다.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힘과 돈이기 때문이다. 굳이 무인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직 제대로 국가의 체계를 확립하지 못한 국가들은 군벌이나 범죄 조직의 지배를 받고 있다.
군벌들의 난립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아프리카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완연한 국가의 체제를 갖췄다고 여겨진 멕시코마저 마약 카르텔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은가.
정치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폭력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비된 국가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가장 우수한 국가라 인정받는 미국조차도 군수산업계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돈의 힘을 정계에서 분리하지 못하고 있고, 일본의 정계는 야쿠자와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 뒤에서 암약하는 무인계를 들먹이기 시작하면, 과연 이 세상에 저들과 완전히 분리된 국가가 있을지 의심하게 되는 처지까지 가버린다.
그나마 한국은 지금까지 나름 청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인계의 힘이 강대하지 못했고, 군사정권 탓에 암흑가가 감히 정권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석동수의 행동 탓에 무인계가 직접 정계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 말았다.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다. 석동수를 제 식대로 처리한 이상, 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저들은 더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자연히 정계는 무인계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저 중국이 저토록 강대한 힘을 가졌음에도 무인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빌어먹을.”
절로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병신 같은 놈.’
이게 모두 석동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김명찬이라고 해서 저 총회 놈들이 뭐가 예뻐 그들의 편의를 봐주려고 했겠는가. 어차피 무뢰배에 불과한 놈들인 것을.
사나운 개를 길들이는 방법은 목줄이 아니라 먹이와 간식이다. 배가 부른 개는 주인을 물려 하지 않는다. 배를 채워주지 않고 몽둥이를 들이대면 그 이빨이 주인의 목을 물어뜯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인가.
그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김명찬이 고개를 들었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들려온다.
“총리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김명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시도록 하세요.”
“예.”
김명찬이 손을 뻗어 반쯤 식어버린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목이타고 침이 마른다.
‘여기에서 끊어내야 한다.’
김명찬이 살짝 긴장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이내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젠들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총리님. 한국 무도 총회의 이현수입니다.”
“어서 오세요. 여기로 앉으세요.”
“예, 총리님.”
사내의 인상은 무척이나 좋았다.
뭐랄까…….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직장인 같달까?
하지만 김명찬은 눈앞의 사내가 결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저 사내는 승냥이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그의 목을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승냥이.
“총리님의 귀한 시간을 빼앗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불렀는데 그런 말을 들으려니 민망합니다.”
이현수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저자세다.
하지만 김명찬은 이 사내의 자세가 낮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편견이겠지.’
알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상으로 이 사내가 고압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그저 그가 총회에 가지고 있는 인상이 이 사내에게 덧씌워지는 것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석동수 장관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성격으로 따지자면 석동수가 총리보다 배는 더 급한 것 같은데, 온화한 얼굴로 핵심을 찔러온다.
“뭐라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저도 뭐가 어떻게 됐는지를 잘 몰라 드리는 말씀입니다.”
“모른다?”
김명찬이 미간을 좁혔다.
그런 것도 모르는 이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것에서 느끼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현수는 김명찬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저뿐 아니라 총회의 어느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회주님께서 직접 나서는 일은 언제나 그런 식입니다.”
“……귀 회의 회주가 직접 나섰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이현수가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
“회주님은 뭐라 설명드리기 어려운 분입니다. 무인이라는 특성이 있어 설명드리기가 더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회주님이 석 장관을 만나고 온 이상, 앞으로 석 장관이 총회의 일에 반기를 들 일은 없다는 겁니다.”
김명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사내는 지금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고 있는 건가?
김명찬이 느끼기에 이건 명백한 협박이었다.
문제는 이자가 그 사실을 자각하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실수로 흘리는 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럼 일단 석 장관의 일은 접어둡시다.”
“예, 총리님.”
“총회에서 처리를 원하는 부분은 삼 일 내로 마무리를 지어주죠. 다시는 이 문제 때문에 골치 썩을 일이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이건 여당 내부의 문제고, 야당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는 그쪽에 적지 않은 선물을 줘야 할 겁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접선하고 있습니다.”
“……빨라서 좋군요.”
김명찬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관련된 사안은 다 끝난 거겠죠?”
“처리만 끝난다면 그렇습니다.”
“그럼 한 가지 짚고 넘어갑시다.”
이현수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김명찬이 살짝 입술을 축였다.
이런 애송이를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긴장되는 게 아니다. 그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이 애송이가 등에 업고 있는 총회라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왜 그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무인계의 손길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하는지 알겠군.’
이현수를 앞에 두고서야 알 수 있었다.
무인계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공포스러운가를.
보라.
눈앞에 있는 사내는 무척 평범하게 생겼다. 살짝 날카로운 얼굴이 인상 깊긴 하지만, 저 사내를 보고 ‘폭력’을 느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평범하게 생긴 사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김명찬의 목을 잡아 부러뜨릴 수 있다.
그 누가 다가오기도 전에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총회가 나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면, 세상 누구도 막아줄 수 없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벙커에 들어가 세상과 격리되지 않는 이상은 저들의 접근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저들이 접근하는 순간, 그의 생사는 저들에게 달린 것이다.
사회에서 격리되는 순간, 정치인은 그 생명을 다한다. 더 이상은 정치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총회를 떨쳐 내기 위해서는 정치인이 아니어야 하고, 정치인으로 살아간다면 총회를 격리할 수 없다.
이 극심한 아이러니.
국가가 가지고 있는 힘은 명백히 저들을 압도하지만, 집단은 막을 수 있어도 개인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강대한 힘을 가진 권력자들이 저들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는 거겠지. 언제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니까.
하지만…….
김명찬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총회는 정계에 개입할 생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