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24
#1123.
전달하다 (3)
“가시죠.”
위긴스가 만족스러운 미소로 강진호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그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만족스러워 보이는군.”
“하하…….”
위긴스가 어색한 손동작으로 윗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어색함도 묻어 있지 않았다.
“동맹이란 결국 서로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득에 대한 부분이 빠진 동맹이란 허울일 뿐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그 이득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적절한 시점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시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답은 아니니까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그보다는 위긴스가 맡는 게 낫다. 그가 모든 것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영 기분이 그렇습니다. 본의 아니게 궁지에 몰린 마스터께 협박을 한 것 같은 느낌이라…….”
“본의시겠죠.”
이현수가 삐죽거리며 입을 열었다가 위긴스의 눈빛에 찔끔하여 시선을 돌린다.
“여하튼 잘 이야기했습니다. 받아들이겠다고 하시더군요.”
“다행이군.”
강진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여하튼 이걸로 원탁은 완전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자잘한 뒤처리는 마스터와 나이트 베슬리가 하겠죠. 원탁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나이트 벨링거와 크라머르를 제거해 버린 이상, 더는 마스터께 대항할 동력이 남아 있지는 않을 겁니다.”
“방심하지 마.”
포털을 향해 걷기 시작한 강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인간은 결국 적응한다. 그리고 적응하면 변화를 시도하지. 지금이야 모든 것이 평온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대항하고 바꾸려는 이가 나타나.”
“으음,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한동안은 아니겠지.
절대로.
위긴스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진호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포털이 있고, 아니, 설사 포털이 없다고 해도 강진호가 영국으로 넘어올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이상 불만이 있는 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이나 강진호가 나이트들에게 선사한 충격은 컸다.
강진호의 검끝이 결코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위긴스조차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그러니 그 검끝에 노출된 이들이 받은 충격이야 오죽하겠는가.
적어도 강진호가 죽거나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리고 강진호에게 반항할 수 없어진 나이트들이 교체되지 않는 이상, 마스터는 절대의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다.
‘그건 거꾸로 마스터의 목을 쥐게 되는 거지.’
마스터는 권력을 맛봤다.
나이트 베슬리에게는 그저 원탁의 발전을 위한 희생이라 설명했지만, 위긴스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나이트 베슬리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다른 방법이 없기에 수긍한 것뿐.
권력을 맛본 이는 계속 권력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스터는 자신의 권력이 강진호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스터를 그 자리에 앉히고 지배하는 것만으로 강진호는 제마음대로 원탁을 휘두를 수 있다. 귀찮고 복잡한 업무는 모두 마스터에게 떠넘기고 실리만 취할 수 있다.
‘이걸로 됐어.’
길고 긴 공작이 끝나는 순간이다. 위긴스는 한 줄기의 안도감과 함께 묘한 비애를 느꼈다.
“기분이 이상한 모양이군.”
“그런 건 아닙니다만…….”
위긴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네. 물론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어쨌든 원탁은 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니까요. 원탁에서 이탈하는 것조차 제게는 큰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원탁을 상대로…… 음, 여하튼 그렇군요.”
복잡한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아쉬운 건 아닙니다. 차라리 저는 마스터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실마리가 영 풀리지 않아서 말입니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
포탈을 향해 걸으며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위긴스가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는 것에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예. 결국은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모양입니다. 교차의 간격을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동시가 되지는 않잖습니까?”
“그렇지.”
“근본적인 한계를 마주해 버린 느낌이라 좀 암담합니다.”
“동시에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뇌를 두 개로 쪼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능한데?”
“……예?”
위긴스가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뚱하게 위긴스를 바라보다가 이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명을 자신에게 넘기는 게 맞는지 확인하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 이현수는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입을 열었다.
“제가 익힌 건 아니지만, 그런 무학이 있습니다. 양의심공이라고 하죠. 못 들어보셨습니까?”
“내가 동양 무학에 그리 정통한 게 아니라…….”
이현수가 고소를 머금었다.
“양의심공은 동시에 두 가지 무학을 펼치기 위해 고안된 심공입니다. 좌수와 우수로 서로 다른 무학을 펼칠 수 있으면 최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만들어낸 무학이죠. 지금은 거의 사장되었습니다만.”
“어째서?”
“아시지 않습니까. 동시에 두 가지 무학을 펼칠 수 있으면 유용성은 확실히 늘어나겠지만…… 다시 말하자면, 동시에 두 무학을 익혀야 합니다. 양의심공은 마음을 두 개로 나누어서 두 가지 무학을 펼칠 수 있게 해주지만, 무학을 익히는 속도를 두 배로 높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한 가지만 익힌 이보다 발전이 더뎌지겠군.”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 시간에 한 가지를 제대로 파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서 이제는 거의 익히지 않습니다. 양의심공 자체도 난해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위긴스의 눈이 떨렸다.
“……내게는 맞다는 거로군.”
“그런 것 같습니다.”
위긴스가 멍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고심하고 길을 찾으려고 했는데도 풀리지 않던 문제다. 그런데 이런 선문답으로 뜬금없이 답이 나와 버릴 줄이야.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으라던 강진호의 말과 주변을 둘러보라던 마스터의 말이 모두 맞아떨어졌다.
자신의 문제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양의심공이란 무학을 알았어도 익히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타인에게 묻지 않았다면 양의심공이란 무학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로, 로드, 그 양의심공인가 뭔가를 저도 익힐 수 있습니까?”
“가능하겠지.”
“무학의 체계가 다른데도?”
“내공을 이용하는 무학이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의심공은 마음의 공부에 가깝다. 기를 이용하는 게 아니야. 조금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체계가 다르다고 해서 익히지 못할 무학은 아니다.”
위긴스의 눈이 불을 뿜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위긴스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것은 결코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코 그가 더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다.
길을 찾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억눌러 온 욕망이 폭발했다.
“로드! 양의심공을 제게 알려주십시오! 반드시 익혀내겠습니다!”
“음, 자세는 좋아.”
“반드시 제가…….”
“그런데…….”
강진호가 위긴스의 말을 끊었다.
“문제가 있다.”
“……문제라시면?”
“내가 양의심공을 몰라.”
“……네?”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양의심공은 정공이다. 원래는 무당의 독문 무학이었지.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지.”
“…….”
아니,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더니!
위긴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이현수, 너?”
“저도 모릅니다.”
“…….”
이현수도 어색한 얼굴을 했다.
“저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아는 거죠. 제가 무학 구결 같은 걸 외우고 다니겠습니까? 제가 가진 것도 감당 못하는데.”
“이 쓸모없는…….”
“와, 회주님이 말할 때랑 태도 다른 것 좀 봐.”
빡침이 밀려 올라왔지만, 지금은 이현수와 드잡이질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럼 총회 내에 아는 사람이 있을까?”
“글쎄요. 워낙이 사장되어 버린 무학이라……. 예전 이사들 중에는 아는 이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사들은…….”
강진호와 바토르가 싸그리 저승으로 보내 버렸지. 그리고 위긴스도 거기에 한몫을 했다.
“…….”
“아, 전대 회주님은 확실히 알고 있던 것 같습니다.”
“전대 회주라면…… 방진훈 이사?”
“아니요. 이중걸 이사.”
“에라이!”
참지 못한 위긴스가 이현수를 걷어차 벽으로 날려 버렸다.
“죽은 사람 이야기는 왜 자꾸 해!”
벽에 처박힌 이현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래도 무인이라고 튼튼하기는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었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할 거 아닙니까! 사람 말을!”
“뭘 더 들어? 영매라도 부를까?”
“전대 회주의 무학을 계승한 이가 있잖습니까.”
“누구? 이성휘? 그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니요! 손녀요!”
“……엥?”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손녀? 이 부장?”
“네. 재능이 모자라서 이중걸만 한 무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배우기는 다 배웠으니까요. 현주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으음, 확실히 가능성이 있겠군.”
위긴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지요, 로드! 빨리 복귀해야 합니다.”
“그, 그러지.”
자신이 이현주의 남자 친구라는 것을 내세워서 사과를 받으려고 하던 이현수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위긴스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살기가 번들번들 묻어나는 눈빛을 보고 있자니, 어설프게 장난이라도 걸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다.
‘저리도 좋을까?’
항상 평정을 잃지 않던 위긴스다.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이야 몇 번 봤지만, 저렇게 정신줄을 집어던지고 발악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그만큼이나 그의 무학에 대한 욕망이 억눌려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서둘러 앞서가는 위긴스를 바라보던 이현수가 슬그머니 강진호와 보조를 맞췄다.
“회주님.”
“음?”
“……이사님도 강해질 방법이 있는데, 저도 강해질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한테 적당한 무학 같은 건 없을까요?”
“이 실장.”
“예, 회주님.”
“하던 거나 잘하자.”
“……눼.”
입을 삐쭉 내민 이현수가 포털을 여는 위긴스를 보며 표정을 바꿔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이지.’
위긴스가 강해질 수 있다는 건 총회에게도, 이현수에게도 좋은 일이다. 특히나 이제는 벌어지기 시작한 바토르와의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
조직에 이인자는 필요 없다.
강진호의 아래로 확고부동한 강자는 없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다.
“사부님이 양의심공을 익히면 얼마나 강해질까요?”
“글쎄.”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확하게는 말하기 힘들지만…….”
잠시 생각을 하던 강진호의 미소가 짙어진다.
“붙어볼 만은 해지겠지.”
강진호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굉장한 찬사라고 할 수 있었다.
“가시지요, 로드!”
“음.”
강진호가 열린 포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이현수는 포탈로 들어가기 전, 슬쩍 뒤를 돌아봤다.
어두운 복도 끝에 보이는 새하얀 빛이 미약하게만 느껴진다.
‘무운을 빕니다, 마스터.’
원탁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