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86
#1185.
격멸하다 (5)
‘장난 아니네.’
이현수가 전장을 돌아보며 절로 감탄했다.
상황이 이쪽에 나쁘지 않다는 건 누구나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상식적으로 이쪽의 전력이 상대의 전력을 압도했다.
일단은 수가 훨씬 더 많다.
수는 굉장한 힘이다. 수가 많은 쪽이 적은 쪽을 상대로 더 강한 힘을 낸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 아닌가.
그리고 그 힘의 차이는 수의 규모가 벌어질수록 몇 배로 증폭된다.
백의 병력으로 오십을 상대할 때 적을 전멸시키는 대가로 이십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이백의 병력으로 오십을 상대할 때는 이십이 아닌 십의 희생자만 나는 법이다.
포진만 제대로 갖춰 전장에 가진 전력을 모조리 쏟아부을 수 있다면, 수의 차이는 기하급수적인 전력의 차이를 낳는다. 그리고 지금 총회는 상대를 둘러쌌다. 다수가 소수를 상대로 할 때의 가장 정석적이고, 가장 훌륭한 포진을 완성했다.
이건 바토르의 공이다.
총회는 이 전장의 승기를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한국 땅으로 파고든 일천의 병력을 무시하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서슴없이 항구로 밀어 넣었다.
만약 안으로 파고든 일본의 선발대를 견제하기 위해서 병력을 나눴다면, 절대 이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는 늘어났을 것이고,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확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상황만 본다면 그저 일방적인 학살을 벌이고 있지만, 바토르는 이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두 가지 위험을 감수했다.
하나는 등 뒤를 버린 것.
만약 일본의 선발대가 이 근처에 머물러 있다면, 뒤를 잡힐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상륙한 병력을 둘러싸고 있는 총회의 등을 친다면 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될 것이다.
포위진은 등 뒤의 공격에 대해서는 무방비나 다름없다. 역으로 포위된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또 하나는 일본의 선발대가 어디를 노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총회가 전혀 예상 못한 곳을 노린다면?
‘끔찍하지.’
총회는 이곳에 모든 병력을 투입했다. 마염들이 동해 쪽을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다른 상황에 대처하는 걸 바라기는 어렵다.
피해는 반드시 발생한다.
바토르는 그 사실을 감안하고도 모든 병력을 이곳으로 집중시켰다. 상대에게 턴을 내주는 대신 이곳에서 확실한 아군의 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현수가 전장을 응시하며 표정을 굳혔다.
‘그게 맞기는 한데…….’
이현수가 혀를 내두른다.
이길 거란 생각은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의 예상 이상이었다.
일본의 정예병들은 총회를 상대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이현수도 감히 짐작할 수 없던 일이다.
일본이 생각보다 약한가?
그런 건 아니다.
저들의 기파에서 느껴진다. 적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두고 봤을 때는 일본의 무인들이 총회의 무인들보다 확연히 강하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현수가 생각한 이유는 세 가지.
하나는 고수의 힘에서 그들이 확연이 앞선다는 것.
바토르는 인간 흉기나 다름없다.
강진호가 날뛰는 전장에서야 바토르가 보조의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여우가 왕인 법 아닌가. 그리고 바토르는 겨우 여우로 취급될 이도 아니었다.
적어도 불곰 정도는 된다.
그 불곰이 미쳐 날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대규모의 전장에서는 고수 하나하나의 능력보다 포진과 전열이 중요하다지만, 절대고수는 그런 전장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법이다.
바토르는 자신의 역할을 120%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위긴스와 방진훈도 확실하게 제 몫을 해주었다.
그러니 저들이 당황할 만도 하다.
두 번째는…….
‘어쩌면 이 전장을 지배한 건 바토르 님이 아니라 사부님일지도 모르겠군.’
다양성.
총회는 강진호 체제로 전환한 이후로 외부의 힘을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방진훈을 위시로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반발이 있기도 했지만, 강진호는 그 모든 반발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슈발리에들이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아 선봉에 서고, 바토르의 외공을 전수받은 이들이 탱크처럼 적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마법이 포격처럼 떨어진다.
이현수조차 이 조합이 이렇게 힘을 발휘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확실한 것은 슈발리에와 바토르계라는 전위(前衛)가 없었다면, 그리고 후방을 공격해 줄 수 있는 위긴스의 존재가 없었다면, 포위를 했더라도 평범한 힘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의 존재가 전장의 특이성을 낳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 새끼들도 당황스럽겠지.”
이현수가 이들을 처음 봤다면 대처할 수 있었을까?
절대 무리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저들도 한국 무인계에 대한 파악을 게을리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저들이 가지고 있는 총회에 대한 정보는 과거 이중걸 때의 정보다.
불과 1년 사이에 상전벽해처럼 변해 버린 총회를 완전히 파악하는 건 저들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장 총회에 몸담고 있는 이현수조차도 지금 상황에 입을 벌리고 있는데, 저놈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 세 가지 요소가 맞물려 지금 전장에서는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긴 잡았다!’
이현수가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실감이 난다.
총회는 강해졌다.
이현수의 가슴이 희열로 가득 찼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솔직히 제대로 실감하지는 못했다. 강함이라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강해지는 걸로는 충분치 않다.
총회는 이중걸 시절보다 몇 배는 강해졌다. 하지만 그 강해진 정도가 주변 타국의 성장 속도와 비등하다면,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 격차를 뛰어넘거나, 최소한 격차를 줄이는 데까지는 성공해야 강해졌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총회의 무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여기에 회주님이 안 계시다는 거지.’
강진호가 이번에 직접 선봉에 서지 않은 이유는 대충 짐작하고 있다.
총회는 강진호에게 극도로 의존하고 있다.
모든 전장에 항상 강진호가 있었다.
이현수가 기억하는 한, 총회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가될 수 잇는 전투는 지금까지 딱 세 번 있었다.
한 번은 영남회와 총회의 전투.
이 전투는 강진호 한 명과 영남회가 맞붙은 것이나 다름없는 전투였다. 강진호는 압도적인 능력으로 영남회를 완전히 복속시키고, 지켜보던 총회의 무인들에게 감히 강진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벌어진 홍왕과의 전투 역시 마찬가지다.
홍왕과 맞붙고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총회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그 대가로 마교를 성공적으로 한국 땅에 정착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탁에서의 전투.
그곳에서도 메인은 강진호였다.
다른 이들도 활약을 하기는 했지만, 실제 전투의 승부는 강진호와 엘더 나이트의 전투에서 갈리지 않았던가.
다시 말하자면, 총회의 명운이 걸려 있던 전투에는 항상 강진호가 있었다. 강진호의 활약이 없었다면 총회는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하자면, 총회는 강진호 없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총회가 더 발전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강진호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강진호가 없는 곳에서 승리하고, 강진호가 없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강진호의 의도를 정확하게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직접 나서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현수의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강진호의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강진호 없이 승리할 수 있다면, 총회는 한 꺼풀을 더 벗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전투에 참가한 이들은 자신감을 얻을 것이고, 자신들이 짊어져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제대로 실감할 테니까.
“나쁘지 않군.”
캐스팅을 지시하던 위긴스가 나직하게 목소리를 냈다.
이현수가 슬쩍 그를 바라보았다.
대규모의 마법을 시전하느라 살짝 지친 모습이지만, 그의 두 눈은 날카롭게 전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좀 뒷맛이 쓰기는 합니다만.”
“그렇긴 하지.”
사실 이 전장은 반쯤은 의도된 것이다.
신니치카이와 차이커창이 거슬리는 관동을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미끼로 던진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놈들도 이런 사태까지는 예상하지 못했겠죠.”
“그러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사람의 머리로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됐다면 완벽한 전술가를 가진 쪽은 항상 승리했겠지.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더냐?”
“그렇죠.”
“전장에서는 언제나 변수가 넘쳐 난다. 이기는 게 당연한 싸움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회주님이 있어도 말입니까?”
“…….”
위긴스가 입을 다물었다.
머리로는 안다.
강진호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할 수는 없다. 강진호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강한 건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강진호만큼 강한 이가 적어도 세 명은 있다.
홍왕, 청왕, 그리고 흑왕.
중국의 삼왕은 확실히 강진호에 비견될 수 있는 강자다. 그리고 드넓은 세상에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강자가 얼마나 더 있을지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지. 어쩐지 회주님이 있으면 지지는 않을 것 같단 말이야. 사람은 이성적이어야 하는데, 그분만 끼어들면 계산이 안 서는군.”
“동감입니다.”
“잡담할 시간이 없다. 여유가 있는 건 좋지만, 방심은 금물이지. 이제 그만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간이다.”
위긴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의 눈에 가즈히로의 앞을 막아선 방진훈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주인공이 나섰군. 기가 막힌 양반이야.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군.”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지금 전장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바토르다.
하지만 이 전장의 진짜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이는 방진훈이었다. 그는 총회가 강해졌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총회의 일반 무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다.
위긴스나 바토르 같은 외부인들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총회의 강해졌다는 증명은 되지 못한다. 애초부터 총회인이던 방진훈이야말로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총회가 더없이 강해졌다는 것을 선언하고 이끌 수 있는 사람이다.
“표정이 미묘해 보입니다만?”
“닥치고 지휘나 해라.”
“넵.”
이현수가 캐스팅을 시작하자, 위긴스가 가라앉은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거기서 지게 되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지. 얻고 싶다면 걸어야 할 것도 있는 법이네, 방 이사.’
방진훈이 가즈히로와 격돌하는 모습을 보며 위긴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방진훈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그도 정확하게 모른다. 이 전투의 결과가 나와봐야 그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