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48
#1247.
찾아오다 (2)
“……그러니까, 마법사들이 투신 의사를 밝혀왔다는 소리냐?”
“네.”
위긴스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로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일을 어떻게 내가 아니라 네가 알고 있는 거지?”
“그야 간단하죠. 아버지 쪽으로 연결된 채널은 모두 감시받고 있으니까.”
“…….”
“원탁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영국 무인계에서 아버지는 제명당한 사람이잖아요.”
“그렇지.”
“그러니 당연히 자체적으로 감시하겠죠. 어설프게 아버지 쪽으로 컨텍을 시도했다가는 발각될 위험이 높은 거죠. 그러니 아버지 주변에 있으면서 연락이 되는 채널을 찾으면?”
“네가 나오겠군.”
반쯤은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하지만 너로 이어진 채널도 안전하지는 않을 텐데?”
“정보원 이야기가 먼저 나온 이유가 있는 거죠. 젊은 정보원들끼리는 상부에 들키지 않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그렇게 마법사들이 정보원들을 통해 접촉해 온 거죠.”
“연락할 수 있는 방법?”
“네. SNS요.”
“…….”
위긴스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정보원들이 SNS를 한다고?”
“네.”
“……말세인가.”
위긴스의 얼굴이 일순 멍해졌다.
정보원이란 타인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직업이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타인에게 노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정보원이 SNS질이라니.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서로 메시지 날리고 그런 거 아니니까요. 정확하게는 몇 가지 계정을 파서 그 계정에 올리는 암호들을 조합했을 때,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대체 왜 그런 과정을?”
“정보원들은 각지에 흩어져 있으니까 어떻게든 뒷담을 깔 창구가 필요했죠.”
위긴스의 얼굴이 더욱 암담해졌다.
상사 뒷담을 까려고 이런 체계를 만들어내다니, 아무리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지만…….
“음, 그건 그렇다 치고…….”
위긴스의 얼굴이 다시 조금 심각해졌다.
“총회에 투신하겠다고?”
“그렇다더라구요.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꽤나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까지 넘어올 생각인 모양이에요.”
“어째서?”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은 마법을 연구하기에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닐 텐데?”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죠. 일단은 지금 영국의 상황이 말이 아니라는 게 첫 번째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영국의 상황이 끔찍해진 책임의 9할 정도는 위긴스에게 있다. 원탁은 각국의 시스템을 나이트 중심으로 고착화시켰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나이트 하나가 국가 무인계 시스템의 5할 이상은 관장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위긴스는 후계자도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이트의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그의 후임으로 나이트가 된 이는…….
‘죽인 건 조금 과했나?’
갈 곳 모르는 손이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조국에 준 피해가 너무 크다. 거기에 원탁의 혼란마저 겹쳐 버리니, 지금 영국의 무인계는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두 번째로는 아무래도 총회가 기세가 좋고, 원탁이 힘을 잃었다는 거겠죠.”
“으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레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지는 본인이 만들어놓은 인망을 너무 무시하는 측면이 있어요. 딱히 다른 이유가 없어도 아버지를 따르겠다고 총회로 넘어오는 이들도 적지 않을 거예요.”
“나를?”
위긴스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나를 따른다고?”
“뭐가 이상해요?”
“이상하지. 나라면 절대 나를 따르지 않을 테니까. 재수 없고, 자기밖에 모르고, 부하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는 리더를 누가 따른단 말이냐.”
엘레나가 감탄했다는 듯 박수를 쳤다.
“완벽한 자기 객관화시네요. 보통 그렇게 자신을 적나라하게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녀석이 애비를 놀리는구나.”
엘레나가 피식 웃었다.
“말씀하신 그래로예요. 그런데 사람은 꼭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따르는 건 아니거든요. 능력 있는 사람, 앞서 나가는 사람,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사람…… 뭐, 그게 아니더라고 일단 잘나 보이는 사람이면 따르는 경우가 많죠.”
“기이하군.”
“그럼 이렇게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아버지가 나이트를 그만두고 영국의 상황이 막장이 되어서 차라리 아버지가 있을 때가 나았다는 정서가…….”
“듣다 보니 기분이 이상하구나. 거기까지.”
위긴스가 말을 잘랐다.
“그 콧대 높은 귀족 놈들이 나를 따르겠다고?”
“아, 오해는 하지 마시오. 지금 아버지를 따라오겠다고 하는 쪽은 거의가 가족도 없는 진성 마법사들이니까요.”
“…….”
“가족과 배경을 버리고 한국까지 올 의리는 없다는 거죠.”
“현실적인 이야기군. 그래서 더 부담이 되고.”
위긴스가 가만히 턱을 긁었다.
재미난 듯 이야기했지만, 이건 확실히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였다. 조금 전, 그가 엘레나에게 한 말을 곱씹는다면 일단 거절부터 하는 게 옳겠지만…….
‘이건 물지 않을 수 없는 먹이란 말이지.’
육성이 오래 걸리는 마법사들이다. 숙련된 마법사들을 영입할 수 있다면 마법 부대의 전력을 단숨에 급상승시킬 수 있다. 그리고 전력도 전력이지만, 아이들을 육성하는 데서 위긴스가 손을 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마법사는 연구를 도와줄 제자들이 필요한 법이고, 총회의 마법 수련생들은 좀 더 많은 지식과 관심을 쏟아줄 스승이 필요하다. 영입만 해낼 수 있다면 윈윈이다.
그리고…….
“세력이 필요하잖아요, 아버지?”
엘레나가 또 돌직구를 던져 왔다.
“……무슨 소리냐?”
“모르는 척하지 마시구요. 총회는 달라지고 있잖아요. 바토르 이사님도 자신의 제자들을 키우고, 방진훈 이사님은 한국의 무인들을 자기 휘하에서 확실하게 세력화시키고 있어요. 장민 장로님? 마교가 있으시죠.”
“총회는 오로지 로드의 지배를 받는 곳이지.”
“네, 그렇죠. 하지만 회주님을 제외한 사람들은 서열이 없나요?”
“…….”
“착한 척을 하시려는 건지, 아니면 속내를 감추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딸한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은데? 내가 그동안 네게 준 용돈과 선물은…….”
“이상한 걸로 말 돌리지 마세요.”
“…….”
엘레나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받아들이셔야 해요, 아버지. 설사 아버지가 권력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해요. 중립은 힘 있는 사람만 지킬 수 있는 법이거든요.”
“그건 맞는 말이지.”
위긴스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철부지인 줄 알았더니, 이제는 제법 상황을 볼 줄 안다.
“조금은 계산을 해봐야겠지.”
“계산은 짧고 간결하게 끝내주세요.”
“그래, 그러자꾸나.”
의자에 등을 기대며 위긴스가 생각에 잠겼다.
‘득인가, 실인가.’
지금 총회에서 위긴스가 맡고 있는 역할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회의 운영에 관해 강진호에게 조언하는 역할. 이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없다. 언제든 이현수가 그를 대처할 수 있으니까. 이현수가 채우지 못하는 걸 그가 채울 수 있긴 하지만, 굉장한 차이는 아니다.
둘째는 마법사와 서양 무학을 전파하는 역할.
이건 위긴스 외에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원탁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이다.
‘세 번째가 문제지.’
영국의 마법사들을 끌어들이면 어쩔 수 없이 원탁과는 관계가 조금 경색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서양 무학의 전파는 용이해질 것이고, 또한 그가 부릴 수 있는 무인의 수도 확 늘어나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이득인가.
‘어렵군.’
사실 이건 득과 실의 문제라기보다는 방향성의 문제에 가까웠다.
총회 전체를 생각하다면 원탁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쪽이 옳다. 하지만 총회 내 위긴스의 입지를 생각한다면 저들을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낫다.
그렇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딱 하루 전에만 이 말을 들었어도 결과는 빤했을 텐데 말이야.’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엘레나.”
“네, 아버지.”
“저들의 대표를 한국으로 소환할 수 있겠느냐?”
“한국까지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제삼국에서 만나는 정도는 가능하겠죠.”
“그럼 최대한 빠르게 약속을 잡아보거라.”
“결론이 나신 거예요?”
위긴스가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고는 조금 피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도 잘 알아두어라.”
“네.”
“내가 저들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네가 말한 것처럼 시시한 세력 싸움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너희는 오해하고 있어.”
“뭘요?”
“총회는 세력 싸움이 벌어질 수 없는 곳이야. 설사 내가 세력을 모아 바토르 님을 완전히 밀어냈다고 치자. 그럼 그걸 보고 로드께서 뭐라고 하시겠느냐?”
“…….”
“식구끼리 쓸데없이 싸운다고 짜증을 내시겠지. 그럼 끝이야. 절대자가 존재하는 곳에서의 서열 싸움은 세력으로 하는 게 아니다. 누가 더 강한가, 누가 더 유능한가의 문제다. 이해하겠니?”
“네. 무슨 소린지 알겠어요.”
위긴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더 유능하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내게 할당된 일들을 조금 줄일 필요가 있다. 영국의 마법사들은 유능한 실무자이자 훌륭한 교수들이지. 그들을 영입할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엘레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할게요.”
“그래. 커피 좀 더 안 마시겠니?”
“괜찮아요. 일이 있으면 빨리 정리해 두는 성미라…… 이따 뵐게요.”
엘레나가 바쁘게 자리를 뜨자 위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식어버린 커피를 입가로 가져갔다.
‘저 아이들마저 권력을 신경 쓰는군.’
나쁜 징조?
그렇지는 않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권력을 탐하고 자신의 이익을 좇는 존재다. 그리고 자신의 소속을 나누고 규정화하는 존재다.
개인적인 경쟁이 인간에게 목표를 부여하듯이 세력 간의 경쟁도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점점 비대해지고 있는 총회라면, 이건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이게 너무 과하면 원탁처럼 되어버리겠지만…….
‘로드가 계신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 버린 위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그럼 마스터를 달래기 위해서 또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까?”
총회의 권력이고 나발이고, 당장 노발대발할 마스터를 생각하니 앞이 깜깜해진다.
이번에는 좋은 술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빼오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해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위긴스나 총회가 무엇을 주어야 마스터가 만족할 것인가.
“흐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될 것도 같은데…….”
위긴스가 몸을 돌려 계단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강진호와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총회의 이득이기도 하니까, 회주님이 좀 나서주시는 쪽이 합리적이지.’
위긴스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