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69
#1268.
조사하다 (3)
부두.
을씨년한 바람이 불어오는 선착장에 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춥다.”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떤 사내들이 연신 불만을 토하며 부두 안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 그래도 추워 죽겠는데, 꼭 이렇게 밤에 해야 하냐?”
“그럼 대낮에 하리?”
고민성이 핀잔을 주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무인이라는 새끼가 무슨 놈의 추위야. 가오가 있지.”
“가오는 얼어 죽을. 이 새끼야, 너도 칼 맞아 봐라. 쪽발이 새끼들한테 맞은 자리가 아직도 쑤시다. 찬바람이 들어가면 다시 칼로 쑤시는 것 같다니까?”
“니가 약해 빠졌으니 칼 맞는 거지.”
“뒈질라고.”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 오늘 처리해야 돼.”
“쯧.”
고민성이 가볍게 주변을 살폈다.
이 시간의 부두는 비어 있다. 경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고민성들을 발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매번 하는 일이라 해도 할 때마다 긴장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지금 나누는 의미 없는 대화도 긴장을 푸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저쪽 같은데.”
손에 든 서류를 확인한 조영화가 앞쪽을 가리켰다. 고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두에 선 조영화를 따랐다.
“매번 이렇게 불편하게 해야 하냐?”
“그럼?”
“그냥 지들이 가지고 오라고 하면 안 되냐?”
“야.”
“응?”
“숨은 왜 쉬냐, 미친 새끼야. 귀찮으면 숨도 참지.”
“그거랑 같냐고.”
“자꾸 쓸데없이 주둥아리 털면 그 주둥아리 다시는 놀리지 못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이 다 뽑히고 싶지 않으면 이제 주둥아리 닫아라.”
“……에이, 씨발.”
조영화가 투덜거리며 앞으로 휘휘 걸어갔다.
세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중간중간 플래시를 들고 경계를 서는 경비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세 사람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경비들의 눈을 완벽하게 피해냈다.
“매번 이런 식이네.”
조영화가 눈을 가늘게 뜨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을 살피더니, 한쪽으로 걸어갔다.
“저거다.”
조영화가 가장 아래쪽에 있는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오늘은 원숭이 짓 안 해도 되겠네. 웬일로 제일 밑에 있대?”
“빨리하고 가서 쉬라는 거지.”
고민성도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쪽에 있는 컨테이너라고 해서 오르지 못할 일은 없었다. 그들에게 컨테이너를 타 올라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서 컨테이너 안에 실려 있는 물건들을 빼내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까딱하며 5층 높이에서 맨손으로 짐을 날라야 하는 사태도 생긴다.
다행히 이번에는 운 좋게도 가장 아래 그들의 목표가 있었다.
“문 열어.”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살펴봐.”
“벌써 살펴봤어. 야, 경호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누구 오는지 확인해라.”
“예.”
슬쩍 뒤를 돌아본 조영화가 조심스레 컨테이너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굳게 잠겨 있는 자물쇠를 열었다.
딸깍.
자물쇠를 빼낸 조영화가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컨테이너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이이익!
녹이 슨 쇠가 마찰하는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조용히 좀 열어.”
“지가 소리 나는 걸 나보고 뭘 어쩌라고?”
“알았어, 새끼야. 흥분하지 말고.”
“쯧.”
조용화가 문을 열자 고민성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쯤 되면 이제는 신중보다는 신속이 필요한 때다. 컨테이너 안쪽에 나무로 봉합된 박스들이 보인다. 조용화가 지체 없이 박스의 위쪽을 뜯어냈다.
박스 안에 비닐로 포장된 작은 상자들이 들어 있다.
조용화가 그 광경을 보더니 눈을 찌푸렸다.
“아니, 이 새끼들…… 처음 보낼 때는 위쪽에 다른 걸로 덮고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그냥 포장만 해서 보내네?”
“몇 번 해봤는데 안 걸렸다는 거지.”
“이러다가 걸리면 다 골로 간다는 거 몰라서 그러나? 미친 새끼들.”
“걔들은 피해 없잖아.”
“여하튼 짜증 난다니까.”
고민성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단속에 걸린다고 해도 화물은 해외로 빠지는 물건이기에 딱히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조사하든 간에 그들을 찾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단속이 된다면 물건을 압류당하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친 새끼들, 이 컨테이너 하나에 돈이 얼만데.’
고민성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빨리 물건 빼고 가자. 더 늦으면 곤란해.”
“오케이.”
조용화와 박경호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와 박스들을 움켜잡았다. 성인 남성 하나가 한 박스를 겨우 들 수 있을 만한 무게지만, 무인인 그들은 한 번에 대여섯 개의 박스를 들어 올리고도 여유가 있었다.
이대로 두어 번만 왕복하면 컨테이너 하나를 비울 수 있을 것이다.
“가…….”
‘가자’고 말하려던 고민성이 순간 입을 닫았다. 컨테이너 안쪽으로 긴 그림자기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네모나게 열린 입구.
그 안으로 긴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를 따라 고개를 든 고민성의 눈에 역광을 받은 한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
고민성이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역광 때문에 얼굴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얼핏 보아도 경비는 아니다. 복장부터 경비와는 달랐다.
“안 갈 거…….”
조용화도 상황을 이해했는지 입을 꾹 닫았다.
고민성의 머리가 순간 복잡해졌다.
어떻게 하지?
달아나나?
‘안 돼.’
달아나는 건 무리다. 달아나려면 이 물건을 놓고 가야 한다. 억지를 부려 손에 든 박스는 들고 달아난다고 해도 아직 옮겨야 할 물건이 반이나 남아 있었다.
큰 박스 하나에 앰플 열 병이 담긴 작은 박스가 백 개씩 들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한 박스에 앰플이 천 개.
‘돈으로 따지면 한 박스에 10억이 넘어.’
열다섯 박스를 두고 가면 150억이란 돈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민은 짧았다.
고민성이 천천히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주먹을 움켜쥐고 발을 옮겼다. 앞을 막고 선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숨 값이 150억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원망…….”
“왜? 죽이려고?”
고민성의 발이 멈췄다.
물론 그건 고민성의 의지가 아니었다. 나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발이 그의 의지를 배반하고 저절로 멈춰 버렸다.
‘뭐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순간적으로 고민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서라. 그러다가 죽는다.”
싸늘하게 말을 내뱉은 사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컨테이너를 향해 다가왔다. 이윽고 역광이 가려지면서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니들이 아니라 내가 죽어. 위험하게 주먹질하지 말고, 말로 하자, 말로.”
고민성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사내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고민성은 10초도 지나자 않아 눈앞의 사내의 목을 뽑아버릴 자신이 있었다. 아니, 채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주관적으로든 객관적으로든 저자는 고민성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고민성이 공포에 질리는 이유는 눈앞의 사내가 애초부터 일신의 무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찰칵.
사내가 가만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세상 다시없을 싸늘함을 두 눈에 담고 고민성들을 노려보았다.
“사람이란 게 참 우습다니까.”
이현수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컨테이너 안에 있는 이들은 차마 그런 이현수를 마주 보지 못했다.
약해 빠졌다.
그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현수는 닭 목 하나 비틀지 못하는 범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약한 이를 상대로 제대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
“누가 봐도 당연한 상황이지. 그러데 사람이라는 게 여기까지 오는 그 순간에도 미련이라는 걸 버릴 수가 없더라고. 아니겠지, 아니겠지. 뭔가 오해가 있었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그동안 꽤나 편히 산 모양이다. 그렇지?”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현수의 눈을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그가 총회에 들어오기 전.
영남회의 악마라 불리며 모두의 두려움을 사던 그 시절의 눈빛이다.
더는 누군가를 증오할 필요도 없고, 더는 누군가를 지옥에 밀어 넣을 필요도 없기에 잊고 있던 모습. 그 모습이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고민성은 이를 악물었다.
영남회 출신인 고민성은 이현수가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이현수는 영남회 내에서도 경원당했다. 상급자임에도, 그가 회에 얼마나 큰 이득을 주는지 모두가 알면서도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이현수였다.
지금이야 예전에 비하면 나사가 풀린 듯이 살고 있지만, 살면서 겪은 인간 중 가장 소름 끼치는 사람을 꼽으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성은 주저 없이 이현수를 꼽을 것이다.
그런 이현수가 지금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여야 돼.’
도망친다는 생각도 머리에서 사라졌다.
이현수를 적으로 돌리고 달아난다는 것은 평생을 공포 속에서 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죽여야 한다. 여기서 이현수를 죽여…….
그때였다.
저벅, 저벅, 저벅.
나직한 발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이내 이현수의 주위로 검은 정장을 입은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시야에 들어오는 컨테이너 입구가 무인들로 가득 찼다.
“아, 오해는 하지 마라.”
이현수가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그리 멍청하지 않으니까. 뒤를 뚫든 위를 뚫든, 컨테이너 밖으로 나간다 해서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 마라.”
고민성이 슬쩍 고개를 위로 올렸다.
얇다면 얇고, 두껍다면 두꺼운 컨테이너의 천장 너머로 살기가 느껴진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여기는 완전히 봉쇄됐다.
하기야.
이현수가 직접 움직였는데 허술할 리가 있겠는가.
이현수를 잘 알면서도 순간 헛된 꿈을 꾸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흐르는 고민성이었다.
“잡아.”
“예!”
“물건 전부 회수하고, 저 새끼들은 살려서 끌고 간다. 반항하면 적당히 뭉개도 괜찮다. 다만…….”
이현수가 씹어뱉듯 말했다.
“목숨은 꼭 붙여놔라. 죽여도 내 손으로 죽인다.”
“예!”
무인들이 컨테이너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체념한 듯 고민성들은 순순히 무인들의 손에 잡혔다. 하나하나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무인들이 수십 명이나 왔는데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끌려가는 고민성이 허망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봤다. 이현수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고민성을 마주 보았다.
“움직여, 새끼야!”
고민성이 질질 끌려간다. 이현수는 끌려가는 고민성들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눈에 컨테이너를 반쯤 채우고 있는 박스들이 보였다.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이현수가 이를 악물고 박스 하나를 그대로 걷어찼다.
쾅!
박스가 부서지며 컨테이너 벽에 처박혔다.
“……씨발.”
욕지기를 내뱉은 이현수가 깊게 담배를 빨고는 꽁초를 컨테이너 바닥에 던져 거칠게 짓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