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80
#1279.
협력하다 (4)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제야 조폭들은 지금 그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실감했다.
영남회의 악마.
그의 눈 밖에 난 사람치고 멀쩡한 이는 단 하나도 없다. 죽거나 병신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상황이 여기까지 온 건, 이현수의 모습이 예전과는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눈빛만으로 사람의 심장을 멎게 만든 그 독기와 살기가 사라지고 유들유들해졌다.
그렇기에 긴장을 푼 대가가 이거다.
“꺼져. 다 죽여 버리기 전에.”
남은 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지금 명령을 거부하고 이곳에 남는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십중팔구는 그렇게 될 거다. 이현수는 그런 남자니까.
하지만 이렇게 돌아가서 보스에게 이 말을 전해도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그럼 어떡하라는 말인가.
그때, 유범영이 천천히 일어나 술병을 잡았다.
그러고는 이현수에 앞에 놓여 있는 잔에 조심스레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쪼르르르.
이현수는 가만히 술잔이 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람이 사람다우면, 이렇게 안 살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그런 놈들 모여서 지내다 보니 눈치도 없고 생각도 없습니다. 실장님이 너그럽게 한 번만 이해해 주십시오.”
“너그럽게?”
이현수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도 유범영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보스들 온다고 뭐가 잘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말귀도 잘 못 알아먹는 영감님들 아닙니까. 그 양반들이 설명 듣고 오면 될 일도 안 됩니다.”
“…….”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마음 푸십시오. 야, 박종구. 뭐 하냐?”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박종구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순간 정신이 나가서…….”
“쯧.”
이현수가 나직하게 혀를 찼다.
말 그대로 사람 같지 않으니 이리 사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먹고사는 이유는 기본적인 처세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유범영처럼 말이다.
박종구도 일말의 감정 없이 바로 머리를 숙였다. 강한 자에게 대항하지 않는다. 힘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해하기에 가능한 대처였다.
“앉아.”
“예!”
박종구가 일어나서 자리에 와 앉았다.
“줘봐.”
이현수가 유범영에게서 술병을 받아 들고는 비어 있는 잔들에 따랐다. 상황을 살피던 이들이 황송하다는 듯 잔을 들어 이현수가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얘들아.”
“예, 실장님.”
“나도 새사람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너희가 좀 도와줘라. 무슨 말인지 알겠냐?”
“예!”
상황이 어느 정도 풀린 듯하자 그제야 식은땀을 흘리는 유범영이었다.
‘진짜 죽을 뻔했다.’
생각 같아서는 박종구를 끌어내 갈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잇속 챙기는 것도 상황과 상대를 봐가며 하는 것이다. 이현수가 있는 자리에서 잇속을 챙기려 들다니, 목숨이 열 개라도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영남회의 이현수를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절대 이따위로 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사람까지 바뀔 리가 있나.’
그의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은 조폭들에게 좋은 세상이다.
과거, 총회를 이중걸이 지배하고, 영남회를 김석일이 움직이던 때에 그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살았다.
무인계의 존재를 모르는 어중이떠중이들이야 그때도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지만, 무인계의 간섭을 받는 이들은 그저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나긴 이중걸과 김석일의 치세가 끝나면서 이제야 좀 숨을 쉬고 살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총회의 회주인 강진호는 그들에게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대외적인 총회의 성향 역시 무척이나 온건해졌다.
덕분에 그들이 지금 이현수를 마주하고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다. 과거였다면 그들이 앉은 곳은 의자가 아니라 바닥이 되었을 게 빤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파들파들 떨고 있었겠지.
‘사람은 잘해줄 때 알아서 잘해야지. 미친 새끼가 잘해준다고 기어오르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일단은 내심을 감추고 미소를 짓는 유범영이었다.
“잇속은 니들끼리 있을 때 챙겨라.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제대로 잇속 챙겨볼 테니까.”
“아닙니다, 실장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방법은 니들이 알아서 해. 대신…….”
이현수가 얼굴을 굳혔다.
“회주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사건이다. 어설프게 처리하면…….”
이현수가 말없이 네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만으로 충분하다.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다. 그 눈빛만으로 네 사람이 동시에 이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벽하게 처리해야겠다고 결심했으니 말이다.
“마셔.”
“예!”
고개를 돌리고 술을 털어 넣은 이들이 조심스레 술잔을 내려놓았다.
“원칙적으로는 우리가 너희 쪽에 지시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만, 이건 너희가 이해를 해줘야 한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그 놈들에게 직접 개입해야 해. 너희도 그걸 원하지는 않잖아?”
“물론입니다!”
박종구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동시에 유범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제발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하라고.’
군대 고문관을 보는 것 같다.
“……그래, 안 원하겠지. 그런데 이번에 너희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 한 번 깨진 원칙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는 너희도 알겠지?”
박종구가 대답하기 전에 유범영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마약이 한국에 들어오는 걸 원하지는 않습니다. 칠성파가 총회분과 관련이 있다는 심증이 없었으면 저희가 먼저 정리했을 겁니다.”
“그래.”
“허락이 떨어졌으니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칠성파 정리하면서 공급책 맡은 조무래기들도 적당히 손 봐줘. 대신 그놈들은 어차피 이용당한 거니까 너무 심하게 하지 말고.”
“예. 걱정 마십시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십니까?”
“내가 있으면 니들이 밥은 먹겠냐? 야, 너. 이름이 뭐지?”
“유범영입니다, 실장님.”
“네가 대표로 처리하고, 중간 보고해.”
“예. 맡겨주십시오.”
이현수가 방 안의 네 사람을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번에 사업체 정리할 때, 너희가 힘쓴 것 알고 있다. 그 부분은 고맙다. 이번 일만 잘 정리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내가 적당한 보상을 찾아보지.”
“아닙니다, 실장님.”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 이후에도 이번처럼 특별한 사항 아니면 회가 개입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이번 건은 확실하게 처리해. 알았어?”
“예!”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네 사람이 일제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금세 방 안에 매캐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씨발, 못해먹겠네.”
그래도 나름 목에 힘주고 사는 이들이건만, 사단장을 만난 병장 꼴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총회가 마음만 먹는다면 조직이 공중분해되는 데 세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폭력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총회는 감히 범접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존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이 쓰리다.
“야, 유범영이.”
“왜?”
“어떻게 할 거야? 씨발, 너희가 다 처먹겠다고?”
“어.”
“아니, 이 새끼가!”
유범영이 피식 웃었다.
“그럼? 니들이 거기 관리할래? 중간중간 우리 구역으로 택시 타고 지나가면서?”
“그래도 상도의가 있지, 새끼야.”
“지원해. 너희들 구역으로 가까운 데 있는 사업장들 넘겨준다.”
“…….”
박종구가 눈을 찌푸렸다.
“얼마나?”
“그거야 저쪽에서 얼마가 떨어지느냐에 따라서 다르지. 먹었는데 별거 없으면 우리만 손해 아냐. 십 원짜리 한 개까지 계산해서 제대로 나눌 테니까, 주접 떨지 말고 기다려.”
“으음.”
박종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 없기는 해도 유범영은 나름 믿을 만하다. 그가 이리 확언한다면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얼마나 지원해야 하는데?”
“전부.”
“뭐라고?”
“끌어모을 수 있는 애들 다 끌어모으라고. 경찰까지 막아준다는 건 제대로 일 벌이라는 뜻이잖아. 한 놈이라도 빠져나가면 우리가 죽는 거야. 모르냐?”
“…….”
“나는 이런 식으로 개죽음당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니들도 날 맞춰서 보낼 수 있는 애들 다 보내. 내가 그 칠성파 새끼들, 이번 기회에 아주 갈아버릴 테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경상도를 중심으로 하는 영남회에 있을 때도 이현수는 그들을 종종 불러모았다.
하지만 이현수가 총회로 옮긴 이후로 그들을 모두 모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현수와 총회가 이번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절대 소홀함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니들 중에 약에 손대는 놈들 있으면 빨리 접어라.”
“미친놈 아니면 그런 짓 하겠냐?”
피식,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웃지 못했다.
“…….”
박종구의 표정이 미묘해지는 걸 본 유범영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아, 진짜 죽이고 싶다. 눈 딱 감고 그냥 죽여 버리고 싶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간절히 바라게 되는 유범영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조직째로 거덜나고 싶어? 너 씨발, 저 양반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면서도 약에 손대고 있었냐?”
“아, 아냐. 뭔 개소리야! 그게 아니고…… 그냥 접촉하는 애들이 있어서 그래. 짱개 새끼들이 그냥…… 아니, 내가 아직 받은 게 아니라니까!”
“그 짱개 새끼들 쑤셔 버리고 당장 손 털어, 이 병신 새끼야. 피바다 보고 싶지 않으면!”
“알았다고!”
룸 안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서로 욕을 해 대던 네 사람이 겨우 진정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좋게 넘어가자. 나는 이중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이러다가 저쪽에서 야마 돌아서 예전처럼 관리 들어온다고 하면 나는 아마 스트레스로 3년 내에 죽을 거다.”
“마찬가지야, 새끼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칠성파 놈들에 대한 증오심이 들끓었다.
왜 마약 같은 거에 손을 대서 사람을 이 꼴로 만드는가.
아무리 총회 쪽 사람이 먼저 접근했다지만, 칠성파에서 호응하지 않은 이상 절대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네 사람이었다.
“여하튼 최대한 빨리 준비할 테니까, 너희도 애들 미리 챙겨서 대기시켜 놔. 중간중간 협조 들어가면 도와주고.”
“알겠다.”
유범영이 담배를 깊게 빨았다.
‘씨발, 니들이 뭘 알겠냐.’
아마도 그냥 평소처럼 총회가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유범영은 이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했지만, 저들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이현수가 직접 나섰다. 그리고 회주를 언급했어. 그 말은…… 이건 총회가 재편된 이후로 처음으로 회주급에서 떨어진 지시라는 뜻이야.’
그걸 제대로 처리 못한다면?
유범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상하기도 싫다.
저 악마 같은 이현수를 개처럼 부리는 것만 봐도 지금 회주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이의 눈 밖에 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낫다.
‘절대로 실수 없이 처리한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유범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