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96
#1295.
논의하다 (5)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어 이리 두 분을 모셨습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가만히 김명찬을 바라보았다.
딱히 압박하는 게 아니다. 살기도 싣지 않았고, 상대를 짓누르고자 하는 의도도 없다.
다만, 상대가 이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건 굳이 강진호가 고려할 필요 없는 일이다.
“조금 전…… 음, 아, 죄송합니다.”
김명찬이 말을 살짝 더듬고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한 김명찬이 억지로 목소리를 내리눌렀다.
“이미 이 실장님에게는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혹시 들으셨습니까?”
“대충은 들었습니다.”
“아, 그럼 굳이…….”
“하지만 당사자에게 듣는 것과는 다르겠죠.”
김명찬이 강진호를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대한민국에 퍼진 신종 마약에 대해 조사하는 중이었습니다. 급작스레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미 벌어진 범죄에 대해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예.”
“여러 가지 일이 있긴 했지만…… 조사 결과, 귀 회의 인물들이 이 마약을 유통했다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김명찬과 시선을 마주했다.
먼저 시선을 돌린 건 김명찬이었다.
살짝 시선을 내려 테이블을 응시한 김명찬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회주님, 저희는 무인계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동안 무인계에서 벌어진 범죄들을 어느 정도는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회주님도 그 사실은 잘 아시지요?”
“예.”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릅니다.”
김명찬이 단호하게 말했다.
“마약은 나라를 좀먹는 암입니다. 그리고 그 마약의 폐해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지게 됩니다. 저희는 이 사실을 묵과하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김명찬이 살짝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윗분도 이 일에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윗분이라…….’
김명찬 위에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세상에는 불문율이라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문율이 지켜지는 것은 기존의 법과 상식을 위반하지 않을 때의 일입니다. 불문율과 법이 상충한다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상식적인 말이었다.
문제는 이현수나 강진호가 이 질문에 그렇다 라고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면 됩니다.”
강진호가 김명찬의 말을 끊어냈다.
김명찬이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말을 회피한다는 건 불리하다는 걸 인정한다는 의미다.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을 벌인 이들에 대한 신병의 양도를 요구합니다.”
“어렵습니다.”
강진호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순식간에 대답을 마쳤다.
김명찬의 미간이 좁아진다.
“회주님?”
“오해는 사양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을 거부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인이라는 이상한 탈을 쓰고 살아가기는 하지만, 총회의 회원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그 법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일부…… 아니, 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인의 특성상 평범한 세상에서는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건 저희의 일입니다.”
이현수가 끼어들었다.
“아니요.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
“예, 총리님. 지금까지 무인들이 경찰에게 체포된 경우가 없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무인계의 협조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총을 위협용으로만 들고 다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경찰들은 사실상 무인들을 검거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그에 따른 대책은 이쪽에서…….”
“그리고 설사 검거를 했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정 시설로는 그들에 대한 수감이 불가능합니다.”
“…….”
“쇠창살로는 무인을 가둘 수 없습니다.”
“무인의 무공을 폐쇄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해결책은 아닙니다. 총리님은 지금 이빨을 뽑은 호랑이를 평범한 수형자와 함께 가두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설사 발톱까지 뽑는다 해도 앞발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사람은 죽습니다.”
“으음.”
“호랑이는 감옥이 아니라 우리에 가둬야 하는 법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독립적인 교정 시설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플로렌스 수형소 같은 곳 말입니다. 만들 수 있으십니까?”
김명찬이 쓴웃음을 지었다.
가능할 리가 없다.
평범한 교정 시설의 인권 문제도 제기되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런 곳에 비밀 수감 시설을 따로 만든다?
누군가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라가 뒤집어지고도 남을 것이다.
“무인을 수감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단전을 터뜨려 폐쇄하고, 팔다리의 힘줄을 끊어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김명찬이 눈을 찌푸렸다.
너무도 잔인한 말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어렵지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경찰이 범죄자를 구타했다는 것만으로 옷을 벗고 경찰청장이 사과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범죄자의 힘줄을 자른다?
‘상상하기도 싫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뿐이었다.
“심지어 경지에 오른 무인일 경우, 팔다리의 힘줄이 끊기고 단전이 폐쇄되어도 웬만한 격투기 선수는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무인이 무공을 잃을 경우, 발톱을 잃은 맹수 이상으로 난폭해진다는 걸 감안한다면…….”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희도 무인들을 자체적으로 처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도 먹어야 살지 않습니까. 감시하는 인력에, 그놈들 밥값만 해도 돈이 꽤나 들어갑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김명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수에게 투입되는 세금은 어느 나라에나 딜레마였다. 사회에 해악을 끼친 이들을 수감하기 위해서 사회의 세금이 쓰인다는 건 꽤나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총리님.”
그때, 강진호가 이현수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예, 회주님.”
“이런 사실을 모를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진호가 정곡을 찌르고 들어왔다.
‘언제나 적응이 안 된다니까.’
대화에는 흐름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흐름에 따르지 않았다. 언제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단번에 찔러 넣어버린다.
의도한 건지, 아니면 성향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본심을 감추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에 익숙한 김명찬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화법이었다.
“요구할 수 없는 걸 요구한다는 건 결국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죠.”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뭘 요구하실 건지.”
김명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판을 다 깔았더니, 테이블을 걷어차 버리는군.’
이현수 하나만 있다면 상대할 만하다. 강진호만 있다고 해도 그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현수와 강진호가 동시에 있으면 상대하기가 정말 난감했다.
한 사람쯤 그를 도와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총회의 문제는 함부로 여러 사람에게 노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김명찬 개인적으로도 이 자리에 부를 만한 사람이 없다. 그는 저만한 신뢰 관계를 가진 친인이 없었으니까.
“회주님.”
“예.”
“총회의 법의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그 안에서 법을 당연하게 위반하는 이들이 있다면, 법치국가라는 말이 무색해지지 않겠습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강진호 역시 생각하고 있던 문제다. 무인계는 그 특수성을 이유로 실정법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이건 언제고 파탄을 드러낼 문제였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권이 엮여 있어 무인계를 건드리지 않는 경향이 크다고는 하지만, 세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 부분은 저희도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총회에서 자력구제를 했다고 해서 검경이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자력구제도 법에서는 금지하는 사안이 아닙니까?”
“현실적인 문제요.”
“그 현실의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게 지금까지의 총회지요.”
“그건 나라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강진호와 김명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살짝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채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강진호가 손을 들어 이현수를 막았다.
그러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회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평범한 이들에게 피해를 준 점, 사과드립니다.”
“아,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대표로 사과를 받을 입장은 아니니까요.”
“총회 자체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보상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노력으로라도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더 고려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회주님.”
김명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국가라는 겁니다.”
강진호가 김명찬을 빤히 바라보았다.
“후…….”
생각 같아서는 그냥 바라는 걸 이야기하라고 윽박질러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강진호도 알고 있다.
김명찬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존중해서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상,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 뽑은 그들의 대표자를 존중해야 한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룰이다.
“그럼 저희가 대가로 뭘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으음…….”
김명찬이 슬쩍 이현수와 강진호의 눈치를 봤다.
이제 익을 만큼 익었으니 슬슬 본론을 꺼내겠다는 뜻이다.
“꼭 이걸 말씀드리려 온 건 아닙니다만, 그리 말씀을 해주시니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합니다.”
“어떤?”
“사실은…….”
김명찬이 조금 머뭇대다가 입을 열었다.
“굉장히 곤란한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한데…….”
이현수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윗분과 상의가 된 내용입니까?”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윗분은 이 일을 모르십니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생각한 일이지요.”
“하지만 윗분께서 진노하셨다고.”
“화가 나셨지요. 하지만 그 화는 저희 선에서 무마할 수 있습니다.”
이현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빤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런 거짓말을 해야 할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뜻이다.
‘혹여라도 문제가 생기면 제 선에서 안고 죽겠다는 건가?’
반응을 보면 볼수록 심상치가 않다.
“그래서 요구하고 싶으신 게 뭡니까?”
“으음…….”
김명찬이 어색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담배 한 대 하시겠습니까?”
분위기를 풀자는 뜻이다.
강진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서로 분위기를 조이는 단계는 지나갔다.
담배를 입에 물자 김명찬이 팔을 뻗어 불을 붙여준다. 그러고는 자신도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가 허공으로 흘러나왔다.
두어 모금 담배를 빨아 분위기를 환기시킨 김명찬이 조금 어색한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지?’
이현수가 미간을 좁힌 채 김명찬을 바라보았다.
나오지 않는 말을 억지로 밀어내듯 김명찬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이현수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한…… 사람을 제거해 주셨으면 합니다.”
강진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