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39
#1338.
실행하다 (3)
“이걸로는 제맛이 안 난다니까 그러시네!”
“사장님, 아시다시피 이게 대량생산이라는 게…….”
“대량이고 나발이고, 이렇게 기계로 볶아버리면 제맛이 안 난다니까요. 내가 이거저거 다 해봤는데, 결국에는 사람 손을 못 따라가요.”
황민수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강유환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은 새로 마련한 커피 공장에 와 있었다. 전국에 들어설 카페에 안정적으로 원두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자동화 공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거대한 암초가 황민수를 덮치는 중이었다.
‘무슨 놈의 똥고집이…….’
그러고 보면 이 말도 안 되는 똥고집을 이전에도 경험한 적 있던 것 같다.
‘부전자전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황민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여기가 무슨 전통 고추장 담그는 곳도 아니고, 카페에서 쓸 원두 볶는데 무슨 놈의 장인정신이란 말인가.
“사장님,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방법은 제가 찾는 게 아니지요. 그건 사장님이 찾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그도 맞는 말이다.
“제가 멍청하고 생각이 없어서 공장화를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아…….”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맛이 나지 않아요.”
“맛이 그렇게…….”
“안 중요하죠.”
“네?”
“안 중요하다구요.”
“…….”
황민수의 눈이 떨렸다.
이 사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강유환이 황민수의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 미묘한 썩소가 왠지 강진호와 닮아 있었다.
“커피 맛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프렌차이즈 커피보다 훨씬 더 좋은 맛을 내는 카페는 많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프렌차이즈를 좀 더 선호하죠.”
“그렇습니다.”
“편리하고, 인테리어 예쁘고, 시설이 깔끔하고. 사실 커피 맛 하나를 위해 굳이 개인 카페를 찾을 필요가 없죠.”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아니, 그러면 왜…….”
강유환이 미간을 좁혔다.
“대기업 프렌차이즈들과 승부할 요소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
“돈을 많이 들여서 인테리어가 끝내주는 것도 아닐 테고.”
푸욱.
“그렇다고 서비스가 대단한 것도 아닐 테고.”
푸욱!
“획기적인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푸욱!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비수로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이다. 사정없이 얻어맞은 황민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강유환이 시니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럼 뭔가 다른 특색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 카페는 커피 수준이 다르다고 광고 때려도 다른 곳에서 딴지를 걸지 못할 만큼은 되어야죠. 그런데 이런 기계로는 그냥 양산품이 나올 뿐이란 말입니다.”
황민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강유환을 바라보았다. 그냥 자신이 쌓아온 커피 맛에 자부심을 가지고 우기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강유환은 확실히 사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장님, 카페가 한두 개도 아니고…… 일일이 커피를 볶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품질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장님께서 그 모든 카페의 품질을 일일이 관리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황민수도 물러날 수가 없었다.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황민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납기와 일정이다.
품질과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건 일단 고객을 대면해야 발생하는 문제에 불과하다. 사업을 진행할 때는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계획을 다시 짠답시고 일정을 뒤로 미루다 보면 끝도 없는 기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벌써부터 문제가 생겨서는 안 돼.’
이 일정은 죽어도 맞춰야 한다. 적어도 강진호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놔야 그도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강진호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황민수는 여전히 자신을 용병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용병은 실적을 내어놔야 가족으로 인정받는 법이다.
“하면 생각하신 게 있습니까? 자체 기술력으로 다른 기계를 제작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그런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강유환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타협해야죠.”
“타협이요?”
“예.”
강유환이 커다란 커피 볶는 기계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원두의 배합이라든가 로스팅에 대한 건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계로는 그 미묘한 부분을 캐치할 수 없다는 거죠. 차라리 인력으로 하는 게 낫습니다.”
“이, 인력이요?”
“예. 사람이 대량으로 커피를 볶는 정도면 타협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사람만 관리하면 품질관리가 어느 정도는 되겠죠.”
“자, 잠시만요, 사장님.”
황민수가 기겁을 하여 강유환을 만류했다.
“이, 인력으로 이걸 한다구요? 그건 무립니다.”
“왜요?”
“로스팅이라는 게 그냥 구경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보아하니 사장님은 고화력으로 볶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던데, 그만한 열기를 견디면서 하루 종일 원두를 볶는 건 사람이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강유환이 미간을 좁혔다.
“그래요?”
“예. 그 열기하며…… 아무리 작업환경을 잘 조성해 준다고 하더라도 금세 나가떨어질 겁니다. 거기에 그냥 버틴다고 되는 일도 아니잖습니까.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고강도의 노동을 하루 여덟 시간 이상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실장?”
이현주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다행히도 제가 그런 사람들을 꽤나 알거든요. 하드한 작업환경을 버틸 수 있으면서 섬세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요.”
“예? 그런 사람들을 안다구요? 그것도 꽤나?”
“예.”
이현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수련 과정은 다 그러니까.’
총회의 무인들은 평생 동안 그것만 하며 살아왔다. 육체가 무너질 것 같은 가혹한 수련 중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무인의 수련법이니까.
일반인들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한 일이겠지만, 무인에게는 일상이다.
“진짜입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시켜주면 고맙다고 할 거예요. 대신 연봉은 어느 정도 보장을 해줘야겠지만요.”
“그야 당연하죠. 어차피 이거 기계 값도 만만찮고, 기계 돌리는 데 드는 비용도 엄청납니다. 고급 인력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손해가 나는 장사는 아니에요. 그런데 진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겁니까?”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황민수가 미간을 좁혔다.
‘일단은 용량부터 다시 정해야겠지만…….’
강유환과 의논해 로스팅에 드는 시간을 확인한 황민수가 대충 견적을 냈다.
“일단은 다섯 정도는 필요할 것 같은데…… 당장이야 한 명만 있어도 되겠지만, 물량이 금세 늘어날 테니까.”
“다섯 정도는 내일이라도 구할 수 있습니다.”
“…….”
황민수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인력을 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기업이나 쓸 만한 인재와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을 수급하는 건 항시 어려운 과제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실장이 허언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오래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이현주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파악했다.
그 말인즉슨…….
여전히 영문을 몰라 하는 황민수를 보며 이현주가 살짝 웃고 말았다.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황민수가 어찌 알겠는가.
이현주의 주변에 고릴라 이상 가는 완력과 낙타보다 끈질긴 지구력을 동시에 갖춘 사회성 부적응자들이 모래알처럼 널려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사태를 우려하여 강진호가 프렌차이즈 사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이걸로는 총회에서 나온 모든 이들을 구제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총회에서 무학만 익힌 이들은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하고, 그들 중에서는 매일 모르는 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애초에 사업 설명회에도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있고, 제안서를 받고도 포기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들에게 이 일을 제안한다면 서로 하겠다고 달려들 것이다. 일단 다른 사람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이 몸만 쓰면 되는 일이라면, 그들에게는 최적의 일자리다.
게다가 연봉을 충분히 맞춰 주고 공장 내에서는 내공을 사용해도 된다는 조건을 붙인다면?
무인 한정으로는 초우량 일자리가 완성된다.
‘경쟁률이 20대 1은 넘겠네.’
평범한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무인들에게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법이었다.
“진짜 가능합니까?”
“네, 사장님.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척 근면하고 성실히 일할 사람들입니다.”
당연하지.
굳이 강진호나 이현수, 그리고 이현주가 나서지 않더라도 이들이 제대로 일을 못해서 물량이 딸리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점주들이 직접 공장으로 쫓아올 것이다.
그러고는 지옥에서 온 간수들처럼 사람을 괴롭히겠지.
그 꼴을 보기 싫어서라도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
“그, 그렇다면야…….”
황민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가능하다면 이 방법이 최상이다. 퀄과 속도를 동시에 잡을 수 있으니까.
“그럼 내일…… 아니, 모레쯤 공장으로 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내일은 안 되나요?”
“준비할 것들이 있으니까요. 기계는 반납해 버리고, 전용으로 따로 준비해야죠. 당장 대형 볶음 솥을 주문한다고 해도 하루는 더 걸립니다. 게다가 화력이나 이런 걸 맞추려면 세팅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테니까.”
“그럼 모레까지 다섯 명, 출근시키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만 해주면 더 바랄 게 없지. 어떻습니까, 사장님?”
강유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성실하게만 일해주면, 나머지는 내가 가르치면 되겠지.”
“어?”
이현주가 탄성을 내지르자 황민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황민수가 의아한 눈으로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교육하는 사람이 아버님이라는 걸 생각 못했네.’
다른 건 다 문제가 없지만, 회주님의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일단 도망칠 이들이 태반을 넘을 것이다.
그래도 지원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안 되면 뭐, 강제집행해야지.’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레까지는 출근시키겠습니다.”
이현주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황민수와 강유환은 그 미소에서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잘해주겠지요.”
“그, 그럼요.”
강유환이 가만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들내미 주변 여자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무섭지?’
이것도 복이다, 복.
이제 삶에 더 바랄 것이 없는 강유환이다. 사근사근한 며느리 하나 얻어서 손주나 보는 게 말년의 유일한 바람이었건만, 그 바람이 영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앓느니 죽지. 끄응.’
강유환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