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5
#134.
행동하다 (4)
“영기가 왜?”
“빠,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진호는 장재환의 말에 두말없이 안으로 달렸다. 강진호가 뛰어오는 모습을 본 장재환도 기다리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심장이 덜컥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장재환의 파랗게 질린 안색이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안 돼.’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상이 자꾸 밀려온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평소에는 짧기만 하던 복도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화장실 안으로 뛰쳐 들어가는 장재환을 본 강진호가 지체 없이 들어섰다.
“여, 여기!”
강진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전투화 끈으로 목을 맨 채 화장실 변기 옆에 주저앉아 있는 주영기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이런 씨발!”
강진호 입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뭐해, 새끼야! 끈 풀어!”
“예! 예!”
어리바리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장재환이 주영기에게 달려들었다. 강진호도 바로 달려들어서 주영기의 목을 조이고 있는 구두끈을 잡아 끊어버렸다.
“이런 미친 새끼야! 사람이 이러고 있는 걸 봤으면 사람부터 살려야지, 그 와중에 나를 데리러 와?”
“죄,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강진호가 주영기의 코에 손을 댔다.
‘안 느껴져.’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다.
강진호는 지체 없이 주영기의 다리를 잡아 변기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고는 그 위에 올라타 주영기의 심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인공호흡!”
“예?”
“호흡하라고! 인공호흡!”
“예, 알겠습니다!”
사람이 둘이니 2인 1조로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 맞았다.
“움직여!”
장재환이 인공호흡을 하고 나서 머리를 떼는 것을 확인한 강진호가 주영기의 심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지?’
응급처리 파견을 가 최우수상을 수여한 강진호이건만, 지금 이 순간만은 순서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람이 죽는 것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가. 이 순간만큼은 그의 안에 있는 적천마존이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지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무력한 강진호라는 인간뿐이다.
그들의 소리를 듣고 화장실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앰뷸 불러!”
강진호가 소리를 질렀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앰뷸런스 부르라고! 빨리, 이 새끼들아!”
강진호가 목에 핏대가 서도록 외치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이들이 행정반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제발!”
강진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냥 흉부 압박을 해서는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을 지나 버렸다. 강진호는 심장을 누르는 동시에 뇌기를 끌어 올렸다.
“손 떼!”
“네?”
“손 떼고 물러나라고!”
“예!”
장재환이 뒤로 물러서자 강진호는 냉정을 되찾기 위해 애썼다.
‘어느 정도지?’
뇌기로 자극을 하면 심장박동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현대 의학을 통해 배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충격을 줘야 하는 것일까?
뇌기가 강하면 심장이 타버릴 것이고, 약하면 효과가 부족할 것이다.
‘어찌해야 하지?’
그가 의사가 아닌 이상 이런 것을 배웠을 리가 없다. 그가 배운 것들은 책과, 그리고…….
드라마!
강진호는 살짝 눈을 감았다. 군 생활을 하면서 강제로 시청해야 했던 드라마 중에 분명 의학 드라마도 있었다.
‘한 방에 하는 게 아냐. 약한 전류부터 천천히 올린다.’
이게 정말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의심이 든다. 드라마에서 본 것이 실제로도 통용되는 지식인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주영기는 죽는다.
‘약하게, 천천히.’
두 손으로는 압박을 하면서 진기는 조심스레 끌어당겨야 한다. 한 번에 그 두 가지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은 해내야 했다.
강진호가 가만히 주영기의 가슴을 눌렀다.
파직!
순간, 강진호의 육체에서 뻗어져 나간 뇌기가 안으로 파고들어 주영기의 심장을 타격했다.
들썩!
주영기의 몸이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너무 강했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흡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인공호흡!”
“예!”
대기하고 있던 장재환이 달려들어 숨을 불어넣는다.
“물러서!”
“예!”
장재환이 후다닥 뒤로 물러나고 나자 강진호가 주영기의 심장을 압박하다가 뇌기를 쏘아냈다.
들썩!
주영기의 몸이 다시 한 번 들썩였지만, 역시나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점점 초조해져 갔다.
주영기가 이곳에서 이러고 있던 것이 언제부터일까?
십 분? 이십 분?
호흡이 끊긴 지는 얼마나 됐을까?
“앰뷸 불렀어?”
“지금 불렀습니다! 바로 오겠다고 합니다!”
“의무는?”
“저, 저 말씀이십니까?”
의무병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강진호에게 다가왔다.
강진호는 그의 질린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애초에 100명도 안 되는 수가 기거하는 독립부대다. 제대로 된 의무실이 있을 리 없고,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무병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안 돼.’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힘이 다 빠질 때까지는 해봐야 한다.
“저…… 강진호 상병님.”
“아무 말 하지 마.”
“……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강진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생각으로 그쳐야 한다.
“아직 뜨겁잖아! 안 식었어!”
체온이 식었다면 모를까, 손끝에서 아직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죽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번 더! 인공호흡!”
“예!”
장재환도 강진호처럼 포기하지 않았는지 달려들어서 숨을 불어넣었다. 주영기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는다.
“물러서.”
“예!”
장재환이 뒤로 물러서고 나자 강진호가 주영기의 가슴에 힘을 주었다.
‘그냥은 안 돼.’
지금처럼은 안 된다. 강진호는 뇌기를 더 끌어모았다.
‘한 번에!’
강진호가 주영기의 가슴을 꽉 누르면서 뇌기를 흘려 넣었다.
“일어나! 새끼야!”
그 순간, 주영기가 몸을 들썩이더니 컥컥대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고는 아주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가슴에 귀를 대보니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호흡도 돌아와 있었다.
“하아…….”
강진호는 긴장이 풀려 주저앉았다.
최악의 상황은 넘겼다. 뇌로 산소가 얼마나 공급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면 살아날 확률은 충분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후유증이 남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나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강진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인파 속에서 질린 얼굴로 주영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김학철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김학철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번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김학철.’
강진호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강진호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안심하지 말아야 했어.’
뭐가 최악은 피했다는 거냐! 뭐가!
강진호가 이를 갈았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한다. 주영기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직 시간이 있다는 안일함에 젖어 있었다.
어제.
어제만 움직였어도.
그게 아니라도 오늘이라도 주영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제기랄.”
그때, 현관 쪽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들것을 든 군의관들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디야?”
그리고 그와 동시나 다름없게 연락을 받은 포대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 들어왔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강진호는 그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희극이다.
이건 잘 짜여진 희극 같았다.
부대는 완전히 뒤집혔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부대에 온갖 상급 부대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사병들은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한 채 생활관에 격리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성태호는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멀쩡하던 애가 목을 매서 실려 가고, 부대에는 조사관들이 드글드글하니, 그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전역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게 뭔 일이래, 진짜.”
입으로는 전역 타령을 해 대고 있지만, 성태호의 얼굴도 수심이 가득했다. 한 부대에서 같이 생활을 하던 이가 목을 맸다는데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영기 상병님이 왜?”
“그러게 말입니다.”
1생활관에서 가장 먼 5생활관이라 그런지 대부분이 어리둥절해하는 얼굴이었다.
“강진호 상병님, 뭔가 아시는 것 있으십니까?”
“…….”
강진호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이들도 동기인 강진호는 뭔가 알고 있을 거라는 듯이 그에게 묻고 있었다. 그 말은 강진호가 평소에 얼마나 주영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는지를 말해주는 것과 같았다.
“영기는 어떻대?”
“일단 목숨은 건졌답니다. 그런데 후유증이 얼마나 남을지는 모른다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누가 그래?”
“의무가 그러지 말입니다.”
“그 돌팔이 새끼가 뭘 안다고 후유증이 어쩌고 그런 말을 처 씨부려!”
성태호가 역정을 냈다.
“얼마나 호흡이 끊겨 있었는지는 모르는데, 뇌에 산소가 공급 안 되고 5분 지나면 뇌손상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5분은 얼어 죽을.”
성태호가 불안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진호야.”
“상병 강진호.”
“영기가 네 앞 근무였잖아.”
“예.”
“그럼 네가 돌아오고 재환이가 발견했으니까. 총기 반납하고 그런 시간 따져 보면 얼마 안 됐을 거잖아. 그렇지?”
“아마 그럴 겁니다.”
“에이…… 그럼 일찍 발견했을 거야. 괜찮을 거야.”
“그럴 겁니다.”
강진호는 영혼 없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급한 와중이라 뇌가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실제로 기로 그게 확인한지도 의문이고.
“그런데 이 새끼, 대체 왜…….”
성태호가 안타깝다는 듯 말을 흐렸다.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어디 가냐?”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어, 강진호 상병님. 삼포반장님이 아무도 나가지 말라고 하셨…….”
“됐어! 인마!”
성태호가 후임의 말을 잘랐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얼른 다녀와라.”
성태호가 문을 열고 나가는 강진호를 보며 혀를 찼다.
“씨발. 새끼야, 상황을 보고 말을 해! 하나뿐인 동기가 목을 맸고 자기가 그거 발견했는데, 지금 속이 속이겠냐?”
“삼포반장님이 자리 비웠다가 걸리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말입니다.”
“지가 어쩔 건데.”
성태호는 강진호가 나간 문을 보며 혀를 찼다.
강진호가 자대 배치를 받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저렇게 얼굴이 굳어있는 표정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강진호를 향한 것인지, 주영기를 향한 것인지 모를 안타까움이 자꾸 새어 나왔다.
“진짜 아무 일 없어야 하는데…….”
동시에 이유 모를 불안함이 자꾸만 밀려왔다. 강진호의 등을 본 이후로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