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74
#1373.
돌아오다 (3)
“내가 변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시는군요.”
“내가 변했다고?”
김명찬이 노기를 숨기지 않았다.
어떤 모욕도 그를 흔들리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공직에 오른 이후로, 아니, 그전의 삶에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사익을 추구해 본 적이 없다. 그의 삶은 오로지 국가의 발전과 정의에 바친 삶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반이나 살았을까 싶은 애송이가 그의 삶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되는대로 지껄인다고 다 말이 아닐세.”
이종욱이 김명찬을 빤히 보고는 낮게 웃는다.
“총리님, 본인은 모르는 법입니다.”
김명찬이 가만히 이종욱을 노려보았다.
“그럼 말해보게. 내가 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의요.”
“……뭐라고 했는가?”
“정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혼란스럽다.
이종욱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정의롭고자 하는 게 사람을 변질시킨다고 말하는 건가?”
“비슷합니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천만에요.”
이종욱이 피식 웃어버린다.
“정의롭고자 하는 게 잘못일 수는 없죠. 그건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좋은 일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총리님은 지금 정의를 실행하고 계시겠죠. 적어도 본인은 철저히 그리 믿고 계실 겁니다.”
“…….”
“사람이 변하는 건 스스로가 정의를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걸 넘어 정의롭다고 믿어버릴 때입니다.”
김명찬이 멍한 눈으로 이종욱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정의라는 건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정의라는 말은 다른 모든 개념을 짓밟고 깔아뭉갭니다. 스스로가 가장 옳은 길을 가고 있다 믿는 이에게 타인의 의견 따위는 방해가 될 뿐이죠. 지금 총리님처럼 말입니다.”
“이보게…… 이군.”
김명찬이 허허 웃고 말았다.
“자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의 생각이 모두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저…….”
“배신했다고 하셨지요.”
이종욱이 김명찬의 말을 끊어버렸다.
김명찬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랬지.”
“제가 누굴 배신한 겁니까?”
“그야…….”
“저는 총리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총리님의 지시를 듣지만, 총리님의 말을 전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충성하는 건 총리님이 아니라 바로 국가입니다.”
김명찬이 입을 다물었다.
“제가 국가를 배신했습니까?”
“자네…….”
이종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국가를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총리님이 말씀하신 배신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겠죠.”
김명찬의 입이 몇 번이나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변명할 수 있다. 말을 돌릴 수 있다. 네 오해라고 넘길 방법이야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어떤 변명으로도 김명찬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총리님은 국가가 아닙니다.”
“…….”
“그리고 저는 총리님이 하는 행동이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했을 시, 총리님과 다른 방향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게 강진호를 돕는 일이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이 정권 전체가 그를 적대시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럼 일이 최악으로 흘렀을 때, 최소한의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당위성은 생기겠죠.”
이종욱이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김명찬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럼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건가?”
격한 목소리.
이종욱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김명찬의 흥분한 목소리였다.
“법을 무시하고, 국가 내에 사병을 키워내는 그들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그들의 힘은 이미 국가에 충분한 위협이 되고 있네! 그런 이들을 어찌 좌시하라는 말인가!”
김명찬이 이를 갈아붙였다.
“그들의 힘은 국가에 위협이 되네! 그리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들을 통제할 수조차 없어! 그러면 초법적인 힘을 이용해서라도 짓누를 수밖에 없는 것이네! 그렇지 않다면 그 피해는 평범한 국민들이 모조리 떠안게 될 테니까! 이런 내가 잘못되었다는 건가?”
짝. 짝. 짝. 짝.
이종욱이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누가 봐도 조롱의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이다.
“아주 정확합니다.”
“…….”
“그게 바로 총리님께서 과거에 그렇게나 싸워온 독재자들이 내세우던 논리였죠.”
“이…….”
김명찬의 어깨가 들썩인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총리님은 과거에 그 논리를 분쇄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악법을 없애고, 법을 넘어 휘두르는 권력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그런데 이제 본인이 그 자리에 오르시더니 방향만 바꿔서 그 논리를 그대로 읊고 계시네요. 이게 역사의 아이러니죠.”
“그 주둥아리, 닥치지 못해!”
김명찬의 고함 소리가 방을 울렸다.
똑똑.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김명찬이 자신의 실수를 알아챘다.
“아무것도 아닐세.”
문밖을 진정시킨 김명찬이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이군.”
“예, 총리님.”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네. 어쩌면 내가 과격한 방법을 썼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네도 알지 않는가,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말이야.”
“총리님.”
이종욱이 가만히 김명찬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게 정치인의 일입니다.”
“…….”
“방법은 언제나 있습니다. 더 나은 방법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빤하고 편한 방법을 선택할 거라면 정치인은 필요 없습니다. 아무나 그 자리에 앉혀놔도 그런 방법은 찾아낼 수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기를 포기하는 건 무능이죠.”
김명찬이 눈을 감아버렸다.
대화를 이어가는 의미가 없다. 어떤 말로도 이종욱은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정의라고 철석같…….
김명찬이 움찔했다.
정의.
스스로의 정의.
타인이 아무리 소리쳐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의.
그걸 가지고 있는 건 김명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자네는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제 와 뭘 어쩌겠습니까, 이미 끝나 버린 일을.”
김명찬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택으로 돌아가게.”
“……예?”
“내가 여길 나가면 자네는 풀려날 거네. 현직으로 복귀는 시키지 못하겠지만, 일단 자택연금 정도로 해두지.”
“이러신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설마 내가 자네에게 호의를 베풀어 상황을 바꿀 수 있겠다 생각하겠는가? 내가 아직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네.”
“…….”
“그저 자네 말도 맞다는 걸 인정할 뿐이야. 자네는 나를 배신했지, 국가를 배신한 적 없다는 말. 그래, 어쩌면 그 말이 맞겠지. 그럼 이건 사적 제재가 아닌가.”
김명찬이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다음에 보세나.”
“총리님.”
이종욱이 다급하게 김명찬을 불렀다.
김명찬이 슬쩍 뒤를 돌아본다.
“뭘 어쩌실 생각…….”
“자네가 내게 그랬지. 무능한 정치인이라고.”
“……총리님을 찍어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리 변명할 것 없네. 나도 인정하니까. 한때는 나도 내가 꽤 유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유능한 정치인이라면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오지도 않았겠지.”
김명찬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무능한 정치인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는 법이지. 그게 뭔지 아는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책임을 지는 일이네.”
이종욱의 눈이 떨렸다.
“총리님?”
“오해하지 말게. 강진호에게 목을 내밀고 용서를 구하겠다는 뜻은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믿네. 하지만 자네 덕분에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지. 내가 정의의 투사가 아닌 정치인이라면, 실패했을 경우에 어떻게 수습을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말일세.”
김명찬이 미묘한 미소를 입에 담았다.
“그게 내 역할 아니겠는가.”
“…….”
“몸도 편치 않은 사람을 쉬지도 못하게 했구만. 그만 가겠네.”
김명찬이 미련 없이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
이종욱은 김명찬이 나가 방문을 한참 동안 말없이 응시했다.
“이종욱은 풀어주게. 가택연금으로 전환하겠네.”
“총리님, 그럼 가택 주변을 지켜야 하는데…….”
“굳이 지키지 않아도 돼. 자신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석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만.”
“자네, 말이 많아졌군.”
“……죄송합니다.”
김명찬이 피식 웃고는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이럴 의도로 이종욱을 찾은 건 아니지만, 덕분에 뭔가 보이는 것 같다.
‘책임이라…….’
안고 죽는 것.
그게 지금 김명찬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종욱과의 대화 덕분에 새로 알게 된 게 있다.
‘그렇지. 방법은 언제나 있지.’
김명찬이 가만히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그의 입술이 번들거렸다.
‘방법을 찾아내는 게 유능한 정치인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아직 김명찬은 유능함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사방이 막혔다고 손을 놓고 소리만 지르는 것은 무능의 상징이다. 이종욱 덕분에 지금 그의 상황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차를 준비하게.”
“예.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큰집으로.”
“예!”
비서가 앞으로 달려 나가자 김명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군, 자네가 알고 있나 모르겠군. 책임을 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말이야.’
몇 마디 말에 벌써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면, 이종욱도 아직 어리다.
이종욱은 모른다.
그 칼날같이 살벌하던 시대에 권력에 항거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피해가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나방처럼 달려든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갔는지.
그때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인간이 얼마나 집요해질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과격해질 수 있는지.
그걸 보게 될 거다.
짙은 음영이 진 김명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강진호.
하나는 인정한다.
힘으로는 더 이상 그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김명찬은 알고 있다. 세상의 힘은 폭력만이 아니다.
재력, 권력, 그리고 여론까지.
그가 동원할 수 있는 힘은 무궁무진하다.
애초부터 강진호와 힘으로 맞서려 했던 게 실수였다. 상대의 장기로 싸워주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어디에 있는가.
김명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피곤함을 떨쳐 내고 본래의 표정을 회복한 김명찬이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커피 한 잔 준비해 주게. 더블 샷으로. 머리를 좀 깨워야겠어.”
“예, 총리님.”
엘리베이터를 탄 김명찬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차도살인지계 같은 게 먹힐 리가 없지. 결국은 내가 가진 힘으로 싸울 수밖에 없어.’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면, 이제라도 상황을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김명찬이 입술을 핥았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강진호가 한국으로 오는 게 기대되는군.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말이야.’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명찬의 기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