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73
#1772.
울부짖다 (2)
마스터의 손이 얕게 떨렸다.
하지만 마스터는 자신이 손을 떨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몰입해 있었다.
비전.
언제 설치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비전 위로 상공에서 찍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
마스터가 덜덜 떨리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참아내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좋은 세상이지 않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창왕이 눈앞의 비전을 보며 옅게 미소 짓는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보려면 목숨을 걸고 가까이 접근해야 했지. 그런데 이제는 드론 하나 띄우는 걸로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볼 수 있단 말이야.”
그가 가볍게 자신의 턱을 어루만진다.
“물론 가격이야 좀 나가지만, 마왕의 전투를 지켜볼 수 있는 대가라면 거저나 다름없지.”
마스터는 도무지 이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걸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건가?’
비전에서 보이는 강진호의 모습은 말 그대로 한 마리의 악귀나 다름없었다.
저건 강하고 강하지 않고를 논할 일이 아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범을 만난 사람은 그대로 굳어버린다. 머리로 계산하기 이전에 본능이 먼저 자신의 운명을 알아버리기 때문이다.
저 광경이 딱 그 꼴이었다.
전신을 검은 마기로 두르고, 인간을 말 그대로 도살하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항하겠다는 의지가 도무지 일지 않는다.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마스터는 이미 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강진호가 원탁의 최후의 보루였던 엘더 나이트들을 상대할 때 말이다.
그때의 강진호 역시 저항의 의지조차 꺾어버릴 정도로 강하고 잔혹했다.
원탁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엘더 나이트를 혼자의 힘으로 참살하던 강진호는 전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압도적인 힘 때문에 마스터가 저항을 포기하고 강진호에게 무릎을 꿇은 게 아니던가.
하지만…….
화면 너머로도 전해진다.
지금의 강진호는 그때의 강진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숨이 막혀온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저려오는 밀도 높은 마기.
그 마기를 화염의 재단처럼 뿜어내며 휘두르는 강진호의 모습을 대체 뭐라 해야 할까.
저건 정말…….
“무시무시하군.”
창왕이 허리를 좀 더 당겨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강진호의 일검에 달려들던 창왕계의 무사 수십 명의 목이 동시에 허공으로 치솟는다.
잘린 목으로 피 분수를 뿜어낸 몸뚱아리가 휘청이더니, 썩은 짚단처럼 바닥으로 털썩털썩 쓰러진다.
창왕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좁아졌다.
‘일검이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역시 삼왕 중 하나, 무의 정점에 선 자라 불리는 이니까.
하지만…….
‘결과가 같다고 그 과정도 같은 건 아니지.’
저 말도 안 되는 마기가 뿜어내는 위세는 창왕조차 전율하게 만들었다.
대체 어떻게 기운을 운용하면 저만한 밀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마기의 특성인가? 아니면…….
“흐음.”
창왕이 낮게 숨을 흘렸다.
그 짧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또 수십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무슨 장난감 병정의 목을 따는 것 같군.”
창왕이 키득대며 웃자 마스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시를 내리지 않습니까?”
“음?”
마스터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저런 병력으로는 마왕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후퇴를 명하고 다른 수를 쓰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로군. 아주 합리적이야.”
창왕이 미소 지으며 마스터를 돌아본다. 그믐의 달처럼 호선을 그린 눈으로 말이다.
“하지만 합리적이지 않군.”
“…….”
마스터가 창왕을 보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알 수가 없다.
얼굴은 웃고 있다. 눈 역시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얼굴과 눈빛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스터는 이자의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그 웃음이 어떠한 감정을 바탕으로 흘러나오는 건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창왕은 그의 긴 삶을 통틀어도 명백히 이질적인 유형의 존재였다.
“일전에 내가 왜 마왕을 놓친 줄 알고 있나?”
“텔레포트 때문입니다…….”
“아니지.”
창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결과론이야. 상황이 거기까지 가버린 것부터 잘못이었지. 내 계산으로는 그전에 끝나야 했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나?”
“글쎄요.”
“나는 강진호라는 자를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지. 기껏해야 홍왕 정도라고 생각했거든.”
이건 창왕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때의 그는 이미 과거 홍왕과 강진호의 전투에서 홍왕이 우위를 점했다는 정보를 얻은 뒤였다.
아무리 강진호가 날고 기는 재주를 지녔다고 한들, 그 짧은 시간 만에 그 수준에서 완벽히 벗어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강진호의 무위를 예측하지 못했음에도 그에 대처할 수 있도록 이중, 삼중의 안배를 깔아놓은 창왕이 오히려 대단한 것이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 중요한 건 실수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야. 내게는 마왕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해.”
“……여기까지 와서 말입니까?”
“지금이니 더욱 중요하지. 지금이 아니라면 전력을 다하는 마왕의 모습 같은 건 볼 수 없거든.”
창왕이 옅게 웃으며 말하자, 마스터가 이를 갈았다.
“겨우 그 정보를 위해 수하들을 희생시킨다는 말입니까? 저 많은 수를?”
“그게 합리적인 것 아닌가?”
“…….”
창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 정도의 무인이야 얼마든지 충원할 수 있지. 아니, 설사 충원할 수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저 별것 아닌 것들의 목숨과 마왕에 대한 정보 중 뭐가 더 귀한지는 빤한 일 아닌가?”
“…….”
“왜 대답이 없지?”
창왕이 비웃듯 마스터를 바라본다.
“합리는 서양인들의 자랑 아니었나? 그대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총회를 버리고 내게 붙은 걸 텐데 말이야.”
“……사람의 목숨은 당신 생각보다 귀합니다.”
“흐음, 오해하는군.”
창왕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나는 사람이 귀하지 않다고 한 적은 없어. 다만,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의미지.”
“…….”
마스터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도 알고 있다.
스스로의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를 말로 설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말을 섞지 않는 쪽이 낫다.
하지만 창왕은 그런 마스터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내게 붙었다는 것처럼 구는군.”
마스터의 몸이 살짝 떨린다.
“이게 네가 내게 원한 모습 아닌가? 어떤 수를 쓰든 반드시 강진호를 죽이고 총회를 무너뜨리는 것 말이야.”
“…….”
마스터는 다문 입을 열지 못했다.
창왕이 그런 마스터를 비웃듯 바라봤다.
“결과는 반드시 만들어내고 싶지만, 스스로의 손은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거로군. 좋아, 나쁘지 않지. 나는 그런 위선을 아주 좋아하거든. 하하핫!”
창왕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사람이라는 건 재미있는 면이 있다.
“걱정할 것 없어. 그렇다고 해도 약속은 지킬 테니까 말이야. 나는 신용이 확실한 사람이거든.”
“…….”
“다만…….”
창왕이 슬쩍 마스터를 보며 말했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겠지. 우리가 정말 신뢰할 수 있는 동료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계약을 주고받는 관계로 끝날 것인지는 그쪽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나?”
마스터가 질끈 눈을 감았다.
“실례했습니다.”
“용서하지.”
짧게 손을 내저은 창왕이 마스터에게서 눈을 떼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본다.
‘나약하군.’
유럽의 원탁을 이끌어온 이라고 해서 그래도 나름 강단이 있을 줄 알았건만, 도무지 상대해 줄 만한 그릇이 아니다.
하기야 그러니 강진호와 이현수에게 있는 대로 휘둘렸겠지.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반면…….
촤아아아아악!
피 분수가 허공으로 솟구친다.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조악한 화면을 통해 보는 광경임에도 숨을 죽이게 만들 만큼 어마어마한 박력이 전해진다.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군.’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했던가?
그 말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지금 강진호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상대가 되지 않는 이들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강진호에게서는 여유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위압이라는 건가.”
강자가 다수를 상대할 때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최대한 체력과 내력을 보존하려 드는 것이다.
그건 일견 합리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막상 상대하는 이들로 하여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렇다면 적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력으로 달려들게 된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상대가 감히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짓밟고 있다. 저 강진호를 바로 앞에서 상대하는 이들은 심혼이 얼어붙어 제 힘의 반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지.”
저들이 강진호를 크게 소모시킬 수 있다는 기대?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소모품은 소모품 나름의 역할이 있다. 저들 모두를 던져서 티끌만큼이라도 강진호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도 이득이다.
“진짜는 따로 있으니까 말이지.”
천천히 다리를 꼰 창왕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애초에 선두에 나설 생각도 아니었잖아? 그렇지, 마왕?”
그는 부하를 앞세우며 뒤로 숨어들고, 강진호는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서 선두에 섰다.
물론 강진호가 더 대단하고, 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왕은 애초부터 강진호보다 위대해질 생각은 없었다.
‘그런 건 네가 가지라고.’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결과.
비겁하든 비열하든, 그게 아니면 추잡하더라도 반드시 승리라는 결과를 손에 넣는 것이다.
“자, 그럼…….”
창왕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두 번째를 시작해 보지.”
그의 신호에 대기하던 이들이 바쁘게 무전을 치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슬쩍 바라본 창왕이 다시 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화염에 둘러싸인 사신이 그의 수하들을 짓뭉개며 돌진하고 있다. 저 걸음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이곳, 창왕의 목이 있는 곳이다.
창왕이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소름 끼치는 차가움을 내뿜었다.
‘아직 아니야, 아직.’
그가 진짜 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일전에 그가 강진호와 승부를 낼 때, 그는 전투 중에 한 가지를 느꼈다.
저 말도 안 되는 악귀는 싸우는 와중에도 강해진다.
마치 전투를 먹고 자라는 짐승처럼 말이다.
‘조금만 더.’
그가 해야 할 것은 지금의 강진호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전쟁 동안 얼마나 더 강해질지를 완벽하게 계산해 내는 것이다.
적을 완벽히 파악해 낼 수만 있다면, 그는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설사 그 적이 자신보다 더 강하다 해도 말이다.
“조금 더 보여줘 봐.”
창왕이 이를 드러냈다.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