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72
#1771.
울부짖다 (1)
콰아아아아아!
그건 더는 검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물건이었다.
불타오르는 검은 마기를 뒤덮은 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말로도 명확한 표현을 불허했다.
사신의 낫조차 그보다 섬뜩하지는 않을 것이고, 천신의 신검(神劍)도 그보다 위력적이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확실한 건…….
그 검은 닿는 모든 것에게 공평한 결과를 부여한다는 점이었다.
죽음.
모든 이가 결국에는 도달할 수밖에 없는 곳.
강진호의 검은 그 죽음으로 도달하는 시간을 확실하게 당겨주는 이능을 품고 있었다.
검은 화염을 품은 검이 인간의 육체를 짓이긴다.
생각해 보라.
살아 있는 개미를 사람이 칼로 내려친다면 그걸 과연 ‘벤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감당할 수 없는 강렬한 힘 앞에 놓인 육체는 베이는 게 아니라 짓눌리고 으깨진다. 그건 칼의 날카로움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검 앞에 놓인 이들의 처지는 사람이 든 칼을 상대하는 개미와 별다를 게 없었다.
어떠한 수로도 막아낼 수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더 불행한 점은…….
지금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이는 개미를 죽이는 아이보다 확연한 악의(惡意)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콰드드드득!
검에 베인 육체가 말 그대로 뜯겨 나간다.
“끄으아…….”
채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비명은 이제껏 들은 적 없는 괴이한 음성을 만들어냈고, 그 음성은 듣고 있는 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 충분했다.
육신이 비산한다.
짓뭉개진 육체가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피를 분수처럼 뿌려 댔다. 이곳에만 쉬지 않고 붉은 비가 내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붉은 빗속을 칠흑처럼 검은 불꽃을 둘러싼 악마가 걷고 있었다.
“흐…….”
저우룬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이가 제멋대로 맞부딪치고, 손이 덜덜 떨려 칼을 쥐고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그런 건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그가 있는 쪽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악마에게 쏠려 있으니까.
“끄으…….”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알고 있다.
아직 그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지금 거대한 거인이 자신을 밟아 터트리려는 것 같은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린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버겁다.
“마, 막아…….”
귓가로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해했다.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막으라고?’
육체가 통제를 잃은 상황에서도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저걸?’
이처럼 우습게 들리는 말도 없다.
개미와 사람?
아니, 아니다.
차라리 사람을 상대하는 개미의 입장이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떼로 몰려간 개미라면 사람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이 순간 저 악마를 상대하는 그들의 입장은 개미에게 비할 수 없이 초라했다.
파아아아아아앗!
일검에 수십의 몸이 동강 난다.
물러서야 함을 알면서도 물어나지 못하고, 달아나야 함을 알면서도 달아나지 못한 이들의 말로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 검에 실린 힘이 끊어진 육체에 남아 있는 의식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는 점이다.
미처 고통을 느낄 순간도 없이 숨이 끊어진다는 것이 죽은 이들에게 하나 남은 위안일 것이다.
그게 정말 위안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막으라고?’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저우룬은 알고 있다.
그가 백 명, 아니, 천 명이 있다고 해도 저 악마를 단 한순간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수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건 그냥 개죽음.
기름을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아니, 맨몸으로 용암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로 어떤 변화조차 만들 수 없는 일에 목숨을 내던지는 것만큼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흐으…….”
저우룬의 턱이 덜덜 떨렸다.
알고 있음에도 달아날 수 없다.
그의 의지는 그의 것이 아니다. 그의 모든 것은 오로지 창왕의 명을 따르기 위해 존재한다.
창왕계를 어설피 아는 이들은 그들을 잘 훈련된 군대 같다고 하지만, 이건 군대라기보다는 군체에 가까웠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저 창왕의 의지를 실현하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 의지에 따르지 않는 이들이 도달하게 될 결말은 저우룬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그러니 달아날 수도 없다.
“흐아아아아아악!”
공포와 공포.
어느 한쪽도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양쪽으로 짓눌린 저우룬이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조리 저우룬처럼 발작적으로 앞으로 뛰쳐나간다.
그의 손에 들린 칼이 새파란 도기를 내뿜었다.
단련된 일격.
평생 동안 쌓아온 그의 모든 것이 도를 새파랗게 물들였다.
“죽어어어어어엇!”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내지른 고함.
저우룬은 직감적으로 지금 자신이 생의 가장 완벽한 일격을 날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하나 그 순간.
검은 화염의 윗부분이 슬쩍 일렁인다 싶더니, 어둠 속에서 두 줄기의 핏빛 안광이 그를 응시한다.
도저히 눈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것과 시선이 맞닿은 순간, 저우룬의 심장이 절로 그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 후…….
파아아아아아앗!
검은 화염이 그를 덮쳐 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질릴 정도로 느리게.
저우룬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은 화염의 검을 보며 몸을 뒤틀었다. 아니, 뒤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허공에 못이 박힌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뭐…….’
죽음을 직감한 순간.
그의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만 흘러갔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시간이 느려진다 해서 그의 육체가 평소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고의 속도보다 닥쳐오는 위협이 더 강할 때, 느려진 시간은 그저 고문일 뿐이다.
한없이 느릿한 검은 불꽃이 저우룬의 옆구리에 맞닿는다.
우두둑.
대체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뜯어낸다?
아니면 갈아낸다?
그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것은 그의 옆구리로 파고든 검은 화염이 그의 육체를 아이 손에 쥐어진 찰흙덩어리처럼 완전히 으스러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우룬이 일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고통이 전신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끄…….”
비명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그는 이미 비명을 흘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없이 느려진 시간이 그 비명을 끝도 없이 늘리고 있을 뿐.
느릿하게, 너무도 느릿하게.
허리를 잘라내는 검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저우룬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는 악마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차라리 빨리…….’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파아아아아앗!
검이 척추에 닿는 순간, 느려졌던 시간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며 그의 상체가 단숨에 잘려 나가 허공으로 솟구친다.
시야가 기이하게 회전한다.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저우룬의 눈에 아직 바닥을 딛고 서 있는 그의 하체와 검은 화염으로 둘러싸인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온다.
쿵!
바닥에 처박힌 저우룬이 얕게 경련하다 숨이 끊어졌다.
그런 그의 시신을 강진호의 무심한 시선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그극.
적루를 움켜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파앗!
그의 발이 바닥을 박찬다.
공포에 질린 창왕계의 무인들이 발작적으로 그에게 달려든다.
달아나지 않고 되레 달려드는 건 분명 무인으로서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나…….
지금 이곳에서 용기란 죽음을 재촉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파아아아아아앗!
검은 화염에 둘러싸인 적루가 대기를 찢어발긴다.
육체는 터져 나가고, 영혼은 찢겨 나간다.
콰아아앙!
방대한 질량이 동시에 음속을 초월하며 소닉붐을 만들어낸다. 그 커다란 충격이 반으로 갈린 육체를 들이받으며 숨이 아직 붙어 있는 몸뚱아리를 튕겨 날려 보냈다.
솟구친 육체에서 뿜어진 피가 바닥으로 줄줄이 떨어진다.
“후.”
강진호가 짧게 호흡을 끊어냈다.
‘그리 유쾌하지는 않군.’
과거의 그였다면 이성을 놓고 오로지 적을 주살하는 것에만 몰두했을 것이다. 본능이란 이름으로 치장한 광기를 두르고, 더 많은 피를 보기 위해 눈을 뒤집고 달려들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마기를 끌어 올려도 마성이 솟구치지 않는다. 아니, 과거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던 마성이 지금은 바위 아래서 이글대는 것처럼 그의 내면을 달구고 있었다.
이성과 광기의 조화.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바라는 경지이지만, 막상 그 경지에 든 강진호는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하지 마라.’
강진호의 눈이 전방을 응시했다.
그는 지금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창왕에게까지 도달하는 길을 뚫는 것.
그렇다면 단 한순간도 주저할 수 없다.
콰앙!
바닥을 박찬 강진호가 쏘아진 포탄처럼 앞으로 날아든다.
두 검을 휘감을 불꽃이 검은 날개처럼 타오르고, 한 마리의 검은 매처럼 두 검을 펼쳐 낸 강진호가 겁에 질린 이들을 덮쳐 든다.
베고…….
파아아앗!
베고…….
서걱.
또 벤다.
“주, 죽어라, 괴물아!”
속도를 너무 높여서인지 등 뒤도 적으로 차기 시작했다. 강진호가 무심하게 검을 휘둘러 등 뒤에서 달려드는 이들을 베어 날린다.
“로드!”
등 뒤가 뻥 뚫리자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따라붙어.”
“…….”
“더 빨리 갈 테니까.”
위긴스들이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가 짧은 숨을 토해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뭐가 다르지?’
수백 년 전 이곳에서…….
그는 지금처럼 선두에 서서 싸웠다.
막는 이는 죽이고, 비는 이는 짓밟았다.
끝도 없이 죽이고 또 죽이고, 싸우고 또 싸워 마지막에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뭐가 다른가.’
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 세상으로 돌아왔음에도 강진호는 여전히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럼 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으아아아아아아아!”
공포에 질려 비명성을 내지르는 이들.
그런 이들을 바라보는 강진호의 눈이 스산하게 가라앉는다.
“달라.”
파아아아앗!
악마의 혓바닥처럼 휘둘러진 검에 달려들던 이들이 말 그대로 분쇄된다. 육편으로 화한 이들의 잔해가 짙은 피의 안개를 만들어냈다.
저벅.
그 피 속을 걸으며 강진호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과거의 그는 싸우기 위해서 싸웠다.
그 외에는 아무래도 좋았다.
싸우다 죽어도 상관없다. 딱히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싸우고 또 싸워 얻어진, 원치도 않는 결과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습지도 않지.”
적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싸우지 않기 위해서 싸운다.’
그 역설적인 말을 긍정해야 하는 게 우습다.
하지만…….
“죽일 적이 없어지면…….”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되겠지.”
그 낮은 중얼거림을 들은 이들이 알 수 없는 오싹함에 전율했다.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은 강진호가 더없이 섬뜩한 눈빛을 흘리며 앞으로 달려든다.
비명.
그리고 공포.
사람의 육체를 부수고 피의 비를 뿌리며…….
마왕이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