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4
#193.
연기하다 (3)
“무슨 일이야?”
장학선 피디는 뛰어 들어온 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성격을 아는 조연출들이 별것 아닌 일에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지민호 씨가 연락이 안 됩니다.”
“연락이 안 된다고?”
장학선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잖아.”
“예, 그랬는데…… 지금은 연락이 안 됩니다.”
장학선 피디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야, 그냥 오는 중이라 전화 연결 안 된 거 아냐?”
“아, 아뇨. 지금 문제가 좀 심각합니다.”
조연출의 말에 피디가 인상을 굳혔다.
“뭐야? 말해봐.”
“여기서요?”
조연출의 말에 장학선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실수했네.’
조연출의 대응을 봐서는 민감한 문제가 나올 게 빤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자리를 옮기기에는 모양이 빠진다.
“이야기해.”
조연출이 힐끔 강진호를 바라보자 장학선 피디가 재촉했다.
“강세아 씨 오빠분이야. 그냥 말하라고.”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스캔들?”
“예.”
장학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스캔들이 뭐 별거라고 이 난리야!”
“그냥 스캔들이 아닙니다, 피디님. 스캔들 상대가 유부녀란 말입니다.”
“뭐?”
“불륜이라구요. 지금 인터넷에 난리가 났어요.”
“지민호 측은 연락이 안 된다고?”
“……예.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연락이 안 됩니다.”
“나가리네.”
장학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좀 기다려 주세요. 일단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좀…….”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장학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 씨! 담배는 또 어디 갔어? 야, 너 담배 있냐?”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
“안 피우면 끝나? 빨리 가서 안 가져와?”
“지금 바로 찾아오겠습니다.”
조연출이 뛰어나가자 장학선이 답답한 마음에 다시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말없이 그의 앞에 자신의 담배와 라이터를 내밀었다.
“어?”
내밀어진 담배를 바라보던 장학선이 고개를 들어 가만히 강진호를 보다가 조심스레 담배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금방 피우고 돌려드릴게요.”
“예.”
피디가 나가자 그를 따라온 여배우도 같이 밖으로 나갔다.
“헐, 대박.”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강은영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오빠, 들었어? 불륜이래!”
“그래.”
강진호가 물었다.
“그 지민호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야?”
“오빠, 지민호 몰라? 요즘 한창 뜨는 남자 배우잖아. 엄청 잘…….”
엄청 잘생겼다는 말을 하려다 강은영은 말끝을 흐렸다. 저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하튼 요즘 한창 뜨고 있었어.”
“그런 사람이 빠지게 된 거네. 문제 생긴 거 아니냐?”
“내가 알기로 그 사람, 1화만 특별 출연하기로 된 거라서 별문제 없을 거야. 원래 주연배우로 쓰려고 했는데, 요즘에 몸값이 너무 올라서 못 썼다던데?”
“그럼 다행이고.”
강진호는 이 해프닝이 큰 문제없이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래도 첫 드라만데.’
아이돌이라는 한계가 극명한 직업보다는 아무래도 배우가 장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강진호였다. 그러니 이왕이면 이 드라마가 잘되어야 한다.
“방금 들어온 사람이 주연 여배우?”
“헐…… 오빠, 최연하 몰라?”
“모른다.”
“내가 오라비가 연예계에 관심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최연하도 모를 줄은 몰랐어.”
강은영이 정말 질린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모를 수도 있지.”
“네, 어련하시겠어요.”
강은영은 도통 모르겠다는 듯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보통 강진호의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 최연하를 모를 수가 있던가?
이제는 단순히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상식의 영역이 되어버린 최연하가 아닌가.
“엄청 예쁘지 않아?”
“딱히.”
강진호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실물을 보고도 그런 말이 입에서 나와?”
“정말 모르겠으니 그리 말한 것뿐이다.”
“내가 예뻐, 최연하 선배님이 예뻐?”
“…….”
“오라비? 왜 대답을 안 하고 자꾸 뒤로 가? 오라비?”
“미치겠네, 진짜.”
장학선은 연신 담배를 피워 댔다.
“피디님,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인마. 담배도 제대로 못 구해 오는 놈이 뭔 상의를 하겠다고. 너, 인마. 이 담배 종류 제대로 기억해 놓고 바로 가서 한 갑 사서 가져다 드려. 알았어?”
“예.”
강진호의 담배를 피워 대며 장학선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 진짜. 첫날부터 이게 무슨 개꼴이냐?”
“그래도 다행이잖습니까. 그쪽에서 괜찮다고 강행한다고 해도 문제잖아요. 알아서 잠적 타주니까 자르기도 쉽고.”
“그건 그런데…….”
“역할 큰 게 아니니까. 빨리 적당한 대체자나 찾으면 되죠. 하고 싶다고 나설 애들이야 썩어빠졌잖아요.”
“하고 싶다고 할 애들은 넘쳐 나지. 내가 시킬 마음이 드는 애가 하나도 없어서 그런 거지.”
“상황이 상황이잖습니까.”
“야, 인마! 너 대본은 제대로 읽어보고 말하는 거냐? 내가 왜 지민호, 그 싸가지 없는 새끼를 굳이 쓰려고 했는데. 엄청 잘생긴 놈이 아니면 소화 자체가 불가능한 역할이란 말이야. 게다가 이거 초반이 너무 밋밋해서 그 정도 애가 화면 꽉 안 잡아주면 초반 시청자들 다 날아간다고! 몰라서 그래?”
“……죄송합니다.”
“오늘 촬영하는 걸로 일정 다 잡아놨는데, 그거 한 번 헝클어지면 드라마 찍는 내내 시간에 쫓겨서 박살 난다는 거 몰라?”
조연출은 조금은 불만스러운 모양새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지민호처럼 잘생겼는데 1화분만 출연해 줄 사람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그만한 마스크가 있으면 다들 주연배우, 최소 조연은 맡으려고 한다. 신인이라도 말이다.
“이거, 오디션 다시 보면…… 아니, 급하게 누구 하나 온다고 해도 오늘을 촬영 못해. 그럼 일정 하루 밀리는 거고, 그럼 우린 앞으로 드라마 끝나는 두 달은 잠도 못 자는 거야.”
“뒷장면 좀 당겨서 촬영하면 안 됩니까?”
“아, 그러시죠? 이 장면 아니면 바닷가에서 찍어야 할 장면이 없는데, 여기서 뭘 당겨서 촬영할까요? 내가 지금부터 시나리오 하나 만들면 됩니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조연출을 보며 장학선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담배를 물었다.
“망할 새끼.”
사실 촬영 다 해놨는데 스캔들 때문에 방영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거나 재촬영을 해야 하는 사태가 터지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방영까지 다 했는데 스캔들이 뒤늦게 터져서 드라마 이미지가 땅 파고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만세를 외쳐야 할 상황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런가.
“하…… 대체자를 어디서 찾나. 생각나는 사람들은 절대 안 맡을 역할인데.”
“얼굴만 잘생기면 되는 것 아니에요? 애초에 지민호 씨가 잘생기기는 했지만, 연기력이 있는 타입은 아니니까요. 연기야 봐주기 힘든 정도였는데 얼굴이 먹혀서 뜬 타입이잖아요.”
최연하의 말에 장학선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기야 하지만, 그 정도 얼굴을 가진 사람이 흔한 건 아니잖습니까.”
“있잖아요.”
“네?”
“연기력이 그리 필요 없는 배역에 쓸 만한 지민호보다 잘생긴 사람요.”
최연하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눈살을 찌푸리던 장학선의 눈이 순간 크게 떠졌다.
“어?”
있다.
그것도 엄청 가까이에.
* * *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조규민은 휴대폰을 보며 짜증을 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지민호에 대한 스캔들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었다. 연예란에 들어가 보니 거의 도배 수준으로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실시간 반응은 체크할 필요도 없었다.
포털 댓글만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 왜 하필 지금이냐고!”
강은영을 드라마의 비중 있는 배역으로 꽂아 넣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고 연기력이 검증이 안 되었다고 거들떠도 보지 않는 피디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가며 겨우겨우 얻어낸 배역이다.
물론 조규민이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드라마 첫 촬영날부터 초반에 비중이 높은 지민호가 스캔들로 하차를 하게 되다니.
“악재가 겹치네.”
조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빨리 강은영의 기획사인 코드로 전화를 해 상황을 파악해 달라는 지시를 내리고 나자 수행 비서가 조규민을 불렀다.
“들어오시랍니다.”
“알겠어요.”
조규민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회장실로 가 노크를 했다.
“들어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황정후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상황은 잘 알아보았는가?”
“예.”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앉지.”
황정후가 손을 뻗어 소파를 가리키자 조규민이 그리로 가 앉았다. 상석에 앉은 황정후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조규민이 설명을 시작했다.
“강진호 씨를 노리던 이들은 중국에서 온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중국?”
“예. 일전에 저와 중국으로 갔을 때, 충돌이 조금 있었습니다. 거기에 앙심을 품고 사람을 보낸 모양입니다.”
“흐음…….”
황정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굳은 얼굴로 깊숙이 담배를 빨았다.
“후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황정후가 물었다.
“중국 놈들이 원한을 품었다고? 어느 쪽이야? 사람을 보낸 거면 좋지 않은 일에 종사하는 놈들인 것 같은데. 그, 총 들고 쫓아왔다는 그쪽인가?”
“아닙니다, 회장님. 그…….”
설명을 하려던 조규민이 입을 닫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황정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회장님.”
조규민의 목소리가 달라지자 황정후가 허리를 조금 세웠다.
“먼저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봐.”
“저는 강진호 씨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황정후는 대답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이번 중국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강진호 씨만 특별한 것이 아니더군요. 세상에 특별한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황정후는 더없이 진중한 눈으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겁니까? 회장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황정후는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조규민은 그런 황정후를 방해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황정후가 눈을 뜨더니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조규민에게 내밀었다.
“피워.”
“회장님.”
“대답해 줄 테니까 피워.”
조규민은 황정후가 준 담배를 받아 들고는 입에 물었다. 황정후가 불을 붙여주자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였다.
“네가 강진호를 보좌하는 일을 맡았을 때,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했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가도 고민을 좀 했다. 그런데 결론은 빤하더군. 아는 걸 다 말해주마.”
황정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