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56
#1955.
교전하다 (5)
카가가가각!
길게 자라난 손톱들이 가슴 어림을 긁어 댄다.
저 손톱은 바위는 물론이고, 커다란 쇳덩이마저 종잇장처럼 찢어낼 수 있는 천고의 귀물(鬼物)이다.
하지만 그 지독한 손톱에 긁힌 가슴은 찢기거나 갈라지기는커녕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으…….”
이성을 상실한 실혼인들조차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당황’이라는 감정을 되살릴 수밖에 없던 모양이다. 실혼인들의 흐릿하게 풀린 동공이 짧게 흔들렸다.
“으허!”
비명인지 괴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실혼인의 손이 휘둘러진다. 그 손끝에 어린 우윳빛 강기는 이들의 정체성이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무인이었음을 입증하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육체의 손상에 대한 껄끄러움, 더 강한 상대와 맞서는 두려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가진 힘을 완벽하게 쏟아부을 수 있는 이들은, 어쩌면 혈왕이 말한 대로 전무후무한 최강의 병사들일지도 모른다.
콰쾅!
우윳빛 강기가 바토르의 어깨를 후려치며 커다란 폭음을 만들어냈다. 강기가 비산하며 사방으로 날아든다.
하지만…….
분명 가공할 강기가 어깨를 후려쳤음에도 일반인의 세 배는 돼 보임직한 바토르의 어깨에는 작은 찰과상 하나 보이지 않는다.
“별…….”
우드드드득!
바토르가 손을 뻗어 강시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솥뚜껑 같은 그의 손은 사람의 머리를 마치 사과처럼 한 손에 움켜잡아 버린다.
콰득! 콰드득!
강시의 머리가 이리저리 뒤틀린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조차 죽음의 공포는 느끼는지, 그게 아니라면 미약하게 남은 이성으로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힘든 건지, 뒤틀린 양손이 기둥 같은 바토르의 팔뚝을 잡아채며 긁어 댄다.
하지만 그건 그저 의미 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꾸우우욱!
뒤틀린다. 물이 가득 찬 풍선이 꽉 쥔 손안에서 이지러지는 것처럼, 사람의 머리가 두꺼운 바토르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밀려나온다.
“끄르르륵.”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니, 단련될 대로 단련된 무인이라고 해도 높아진 뇌압에 정신을 잃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강시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우윳빛의 강기를 머금은 손이 바토르의 팔을 미친 듯이 후려친다.
하나…….
콰드드드드득!
손에 잡힌 머리가 결국은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 나간다.
털썩.
머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진 강시의 육체가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킨다. 아무리 괴물 같아 보인다 한들 이들은 사람이다. 머리를 잃고는 살아날 수 없다.
“쯧.”
바토르가 손에 묻은 피와 뇌수를 무심하게 털어낸다.
단숨에 강시 하나를 처리해 버린 바토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시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 아니, 무슨 일을 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이 있든 없든 내게 이를 드러냈으면 죽어야지!”
홍왕조차 버거워한 강시들이지만, 바토르에게는 조금의 부담도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으하하핫! 버러지 같은!”
바토르가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러고는 그 우람한 어깨로 허우적대는 강시들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쾅!
크고 짧은 타격음.
강시들이 마치 거대한 트레일러에 치인 것처럼 튕겨 나간다. 안쓰럽게 허공으로 치솟았다 떨어지는 꼴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 준 모습이 무색하도록 절로 걱정이 될 정도다.
누가 그랬던가.
좀비를 상대하기 가장 좋은 장비는 기관총도 아니고, 폭탄도 아닌, 전신 갑옷이라고.
공포를 극복하고 지치지 않는 병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지를 낮춘다는 것은, 다시 말해 단순한 공격밖에 반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지를 상실하고도 평생 몸으로 익혀온 무학을 펼쳐 낼 수 있는 강시들은 그 수준에 따라서는 초인들마저 위협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 바토르는 다르다.
그의 육체는 저 하찮은 공격으로는 피해를 입지 않는다. 더구나 그는 다른 초인들처럼 육체의 강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별다른 소모값 없이 그저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강시들에게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홍왕이 강시들을 상대하며 일방적으로 손해를 떠안은 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흐하하하핫!”
바토르가 전방의 강시를 걷어찬다. 일격에 강시를 포탄처럼 차 날려 버린 바토르의 주먹이 그 옆에 있는 강시를 후려쳤다.
콰아앙!
사람의 몸이 주먹에 맞았는데 폭음이 터진다. 무릎이 꺾여 주저앉은 강시의 등으로 바토르의 주먹이 다시 한번 내려쳐진다.
콰아아앙!
이윽고 엎어진 강시의 등을 바토르가 연이어 짓밟는다.
한 번, 한 번 발길질이 이어질 때마다 강시의 몸이 움푹움푹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쿠우우웅!
강시 하나를 완전히 바닥에 박아 넣어 무덤까지 만들어준 바토르가 옅은 미소를 흘렸다.
“이딴 것들을 상대로 고전하다니, 홍왕도 다됐군.”
그 말을 들은 홍왕이 헛웃음을 흘렸다.
‘할 말이 없군.’
그는 하나의 강시에게 집중할 수 없고, 강시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내야 한다. 지금의 바토르처럼 강시 하나를 제압하는 동안 다른 강시들이 줄줄이 달려든다면, 아무리 홍왕이라도 치명상을 각오해야 하니까.
홍왕에게 있어서 이 강시들이 벌 떼라면, 바토르에게는 하루살이일 뿐이었다. 아니, 이들은 벌 떼일지 모르지만, 바토르는 말벌이다.
자신의 침이 박히지 않는 말벌을 상대로 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죽음을 각오하고 말벌을 둘러싸 체온으로 쪄 죽이는 게 전부다.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단 한 마리의 말벌에게 수백 마리의 벌이 떼죽음을 당한다.
벌 수백 마리가 사람을 노리고 달려든다면 맨몸의 사람은 절대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보다 몇 십 배는 나약한 말벌은 그런 벌 떼를 하루살이로 여길 수 있다.
이게 상성.
상성에서 앞서는 바토르에게 강시들은 그저 멍청하고 나약한 하루살이에 불과했다.
“뭐, 저런…….”
혈왕의 두 눈에 처음으로 당황이 어렸다.
갑자기 나타난 바토르가 그의 강시들을 말 그대로 쓸어버리고 있으니, 아무리 그라고 해도 당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체 어디서 저런…….’
물론 소문은 들었다. 저 총회, 마존의 수하들 중 강력한 외공을 지닌 이가 있다는 말은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외공은 혈왕이 알고 있는 외공에 대한 상식을 완전히 부숴놓고 있었다.
딱히 내력을 끌어 올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강기조차 튕겨내는 육체가 실존할 수 있딘 말인가.
홍왕이 생강시들의 존재에 충격을 받았듯, 지금 혈왕은 바토르의 존재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당연히 과거에도 외공을 익히는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강호에서 외공이란 기껏해야 보조적인 수단에 머무르거나, 제대로 된 내공을 익힐 수 없는 삼류들이 익히는 무학이라 천시받던 무학이 아닌가.
그런 외공을 저런 경지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건 충격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한 일이었다.
그 순간, 바토르가 또 하나의 강시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다른 강시들이 좀비처럼 달려들어 바토르의 팔과 다리를 잡고 늘어진다.
양손에서 피어오른 우윳빛 강기가 연신 몸을 긁고 때려 대지만, 바토르는 달라붙은 강시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움켜잡은 강시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이 벌레 같은 것들이!”
콰앙!
바토르의 한 손이 강시의 뒷목을 잡고, 다른 한 손이 얼굴을 후려친다. 마치 모루 위에 올린 물건을 해머로 내려치듯, 그의 주먹이 강시의 얼굴을 부숴놓는다.
몇 번이고 주먹을 후려쳐 대자, 발광하던 강시의 몸이 축 늘어진다.
“우와아아압!”
바토르가 손에 잡은 강시의 시체를 몽둥이처럼 휘두른다. 아직 그 단단함을 잃지 않은 강시의 몸이 주변을 둘러싼 강시들을 연신 후려쳐 날려 댄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지켜보던 혈왕이 이를 악물었다.
휘이이!
그의 입에서 높은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오자, 바토르를 상대하던 생강시들이 뒤쪽으로 빠르게 물러난다.
“흠?”
바토르가 물러나는 강시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자신의 손 쪽으로 옮겼다. 너덜너덜해진 강시를 미련 없이 바닥으로 던져 버린 바토르가 혈왕을 향해 걸어갔다.
“개를 때리면 주인이 나오는 법이라던데, 그래서 네게 저들의 주인인가?”
“…….”
혈왕의 미간이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꽤 신이 난 모양인데.”
“아니지.”
바토르가 피식 웃었다.
“지금은 신이 난 게 아니라 불만이 쌓였지. 내 먹이를 저 홍왕 놈이 강탈해 갔거든. 그리고 저런 쭉정이들만 상대하려니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지.”
“…….”
“그 불만을 네가 좀 풀어줘야 할 것 같은데?”
“흐흐하…….”
“응?”
혈왕이 웃기 시작한다.
검은 붕대로 전신을 친친 감고 있는 혈왕이 그 겉모습과는 너무도 이질적이게 배까지 부여잡고 광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흐하하하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혈왕이 허리를 들썩이며 한참 웃어 젖히자, 바토르의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비웃음?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저 웃음은 정말 기쁨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뭐가 그렇게 우습지?”
“아…… 하하하핫! 미안하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혈왕이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뜯어낸다.
그 붕대 아래에 드러난 모습을 본 바토르가 흠칫했다.
‘미라?’
말려 올라간 입술과 그 아래로 보이는 검은색의 잇몸. 마치 말라비틀어진 것 같은 피부를 본다면 누구나 바토르와 같은 평을 내릴 것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군. 그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면 여럿 심장마비로 죽었겠어.”
혈왕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다. 딱히 대단할 것 없는 동작이지만, 마치 미라 같은 그 외형은 그 빤한 행동에도 말도 안 되는 섬뜩함을 불어넣었다.
“그래. 너는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
“……음?”
“……이토록 가지고 싶은 놈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로군.”
“미안하지만, 난 그쪽으로는 취미가 없어. 특히나 너 같은 놈이랑은.”
“하하하하하핫!”
속을 제대로 긁어 대는 말을 들었음에도 혈왕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가 양손을 늘어뜨리며 천천히 바토르를 향해 다가온다.
“꿈이라도 꾸는 것 같군. 이토록 완벽한 육체를 찾을 수 있을 줄이야. 너만…… 너만 내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나는 저 흑왕조차도 뛰어넘을 수 있다.”
“……미친놈.”
“그 몸…… 그래, 그 몸! 그 완벽한 육체! 하하하! 사랑에라도 빠진 것 같군. 내 몸에 이렇게 피가 끓는 감각을 느껴본 게 대체 언제던가.”
두 눈에서 광기를 내뿜는 혈왕을 보며 바토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하튼 제정신인 놈이 없다니까.”
그가 두터운 검지손가락을 들어 가볍게 굽혔다.
“이리 와라. 그 비어버린 머리통을 통째로 부숴주지.”
“흐하하하핫!”
혈왕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붕대 사이로 붉은 피가 줄줄이 흘러내렸다.
‘응?’
바토르가 당황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공격도 안 했는데 갑자기 왜 피가 흐른단 말인가.
그리고 이내…….
흐르다 못해 콸콸 흘러내리기 시작한 피가 기화하며 핏빛의 안개가 혈왕의 전신을 뒤덮었다.
“진짜 별…….”
최근에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들과 싸우는 것만 같다. 하기야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겠지.
화아아아악!
그 순간, 혈왕의 몸 주위를 감싸고 있던 붉은 안개가 바토르를 향해 맹렬하게 뻗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