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5
#204.
운영하다 (4)
“오천을 주고 왔다고?”
“……예.”
“아니, 이 미친놈아. 벤츠라도 박았냐? 뭔 오천이야?”
“벤츠가 아니라 완전 폐차 직전의 똥차던데요.”
“그걸 박고 오천을 줬다고?”
“소문 안 나게 잘 합의하라면서요?”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아.”
“당장 안 주면 죽일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해요.”
“하…… 씨, 이 또라이 새끼.”
더 보이스의 로드 매니저 김신은 준영을 보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철이 없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철이 없을 줄은 몰랐다. 안 그래도 열애설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강세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까지 찾아가서 구설수가 될 만한 일을 만들더니, 그 와중에 눈탱이까지 맞고 온 것이다.
“너, 내가 강세아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한 말 못 들었어? 진짜 너 뒈질래? 어? 형이 성격이 좋아서 참고 있는 것 같아?”
“아, 씨발. 왜 나한테만 그래요? 대표님하고 이야기 끝난 건데.”
“……대표님이?”
“예.”
“대표님이 그걸 왜 허락했다는 건데? 너 씨발, 구라 치다 걸리면 진짜 매달아 버릴 거야.”
“진짜라니까요. 전화해 보세요.”
김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너 가서 강세아 만났냐?”
“그냥 얼굴만 보고 왔어요.”
“얼굴을 봤다고?”
“예.”
“……거기 강세아 말고도 누구 있었냐?”
“걔 아버지랑 오빠 있던데요.”
끼이이이익!
김신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급격하게 멈춰 선 바람에 대시 보드에 머리를 찧을 뻔한 준영이 쌍욕을 내뱉었다.
“아, 씨발! 진짜 왜 이러냐고!”
“거기 걔 아버지가 있었다고?”
“예! 있었다구요!”
“……와, 나 돌겠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안절부절못하던 김신이 엑셀을 전력으로 밟았다. 차가 급발진을 하며 요란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스타위즈?”
한선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 안 나십니까? 스타위즈 사태? 2년 전 일인데요.”
김신이 답답하다는 듯 말하자 한선구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뭔 일?”
“……아, 맞다. 사장님 그때 여기 안 계셨죠?”
‘빵에 있었지.’
김신은 이제야 이 상황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2년 전쯤에 스타위즈라는 기획사 하나가 완전히 개박살 난 적이 있었습니다.”
“가만있어 봐. 생각이 날 것도 같은데……. 스타위즈면 그…… 혁기가 하던 기획사 아냐? 박혁기?”
“예,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혁기를 본 적이 없다 싶었더니, 개박살이 났다고?”
“예, 완전 박살이 났습니다. 그때 그 사건 때문에 연예인 불공정 계약서 문제가 언론을 탔고, 연예 기획사 비자금 문제가 터져서 세무조사 다 받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어, 나 들은 거 같아.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그게 강세아 때문에 터진 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
한선구의 눈이 흔들렸다.
“가, 강세아?”
“예. 당시 스타위즈에서 키우던 연습생들은 다들 무직 상태가 되어서 이 바닥을 뜨거나 다른 데 오디션을 보고 다시 연습생으로 들어가거나 했는데, 강세아는 스타위즈가 터지자마자 코드로 이적하고 바로 솔로 데뷔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마치 강세아가 소속사를 터뜨려 버리고 이적한 것처럼 말이죠.”
“……이, 이게 뭔 소리야? 그러니까 스타위즈에서 혁기 그놈아가 강세아를 잘못 건드렸다가 소속사가 날아갔다는 거야?”
“예. 그리고 박혁기 대표는 지금도 감방에 있죠.”
“왜 그 이야기를 지금 해! 왜!”
“저야 사장님이 당연히 아시는 줄 알았죠. 그리고 준영이 통해서 강세아 작업 친다는 이야기를 저한테 안 해주셨잖습니까. 이전의 일이야 그냥 해프닝에 지나지 않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경고를 받고도 찾아갔으니, 저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한선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거 확실한 거야? 강세아가 스타위즈 날렸다는 거?”
“……확실하지야 않죠. 그런데 정황이 그렇잖습니까. 스타위즈가 공중분해됐는데, 강세아는 다른 데도 아니고 코드로 이적했고, 강세아 뒤를 재경이 봐준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야, 재경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기획사까지 일일이 건드려? 그러다가 역풍 불면 완전히 박살 날 건데.”
한선구의 말에 김신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역풍이 왜 붑니까? 역풍이 안 부니까 재경이죠.”
“응?”
“언론이고 어디고, 재경에 적대적인 곳은 없어요. 다른 대기업처럼 사람들 피 빨아먹고 자랐으면 지금 5대재벌이 아니라 대한민국 유일의 대기업이 되어 있을 거라고 평을 받는 곳이 재경입니다. 그런 데를 누가 건드려요. 괜히 건드렸다가 목 날아갈 텐데.”
“아…….”
“여튼 빨리 수습을 해야 합니다.”
“수습?”
“아! 회사 날아가는 꼴 보고 싶으십니까? 정신 차리세요, 사장님!”
“그, 그래야지.”
아직 얼떨떨함을 벗어나지 못한 한선구가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나를 생각할 때,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
액정에 뜬 재경 비서실장이라는 글귀를 확인한 한선구가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차마 받을 수가 없었다.
계속 울리던 전화가 끊어지고 나자 김신이 살짝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도 액정에 뜬 것을 두 눈 똑똑히 보았다.
우우웅!
전화가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받으셔야죠.”
김신의 말에 한선구가 반쯤 넋을 잃은 듯한 얼굴로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
[반갑습니다, 한선구 사장님. 일전에 뵌 적이 있지요? 조규민입니다.]“예! 예! 알죠! 알지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한 번 말씀을 드렸는데 상황이 전혀 달라진 것 같지가 않더군요. 그리고 그 청년이 꽤나 배짱이 두둑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상황 다 알고 온 것 같던데, 맞습니까?]“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럴 때는 잡아떼는 게 최고였다.
내가 가도 괜찮다는 말을 했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 눈에 훤했다.
[아, 그런가요? 그럼 소속사 연예인 관리가 제대로 안 이루어진 모양이군요.“]“하하하, 아시다시피…… 저희가 군소 기획사라 그 많은 애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감시할 수가 없거든요. 제가 분명이 단단히 일러뒀는데, 요즘 애들은 도무지 통제가 안 돼서요.”
[그렇군요.]그 말 이후로 조규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침묵이 한선구에게는 무엇보다도 무섭게 다가왔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역정을 냈다면 조금 더 담담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보니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았습니다.]“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가 확실하게 관리를 하겠습니다.‘
[다음이요?]“…….”
[다음에도 그런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장님께 다음은 없을 것 같군요.]“자, 잠시만요! 조규민 씨!”
조규민의 어투에 배인 싸늘함을 읽은 한선구가 전화기를 잡고 필사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실수! 실수입니다! 저희는 정말 그럴 의도가 없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이해를 해주신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시면 저 준영이 놈을 짤라 버리겠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사장님.]“예?”
자신이 뭘 착각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쪽 역시 그런 조무래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재경이라는 이름까지 포함하여 경고를 드렸음에도 이 일을 별것 아닌 일쯤이라 생각하는 사장님의 태도입니다.]“그, 그게 아니라…….”
[회장님의 지론 중 하나를 말씀드리지요.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알고 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이상입니다.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용서받는다고 해서 치러야 할 대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이제 아시게 되실 겁니다.]“이, 이보세요! 조규민 씨! 조규민 씨!
전화는 매정하게 끊겼다.
한선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하지?”
김신 역시 망연한 표정이었다.
“그러게 조심 좀…….”
“야! 이 새끼야! 내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리고 이미 벌어진 일을 탓해서 뭐할 거야! 해결 방법을 생각해야지, 해결 방법을!”
‘해결 방법은 얼어 죽을.’
상황이 이런데 해결은 무슨 해결이란 말인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대체 무슨 배짱으로 재경을 건드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르고 건드린 것도 아니고, 빤히 재경에서 손대지 말라고 경고까지 왔는데 그걸 배짱 좋게 건드리다니. 이러다 죽으면 다윈상이라도 줘야 한다.
‘발 빼야 돼.’
김신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경이 마음먹고 조지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다. 다른 대기업처럼 돈을 뿌리지 않아서 정계 쪽으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낮지만, 그 낮은 영향력으로도 그들 정도는 벌레 잡듯이 밟아 죽일 수 있는 곳이 재경이었다.
“사, 사장님!”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김신은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경리가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뛰쳐 들어오며 소리쳤다.
“큰일 났어요!”
“뭐, 뭐야?”
한선구도 되묻고는 있지만 이미 상황을 어느 정도는 직감한 모습이었다.
“2팀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번 주에 공중파 방송 잡힌 거 스케줄 다 취소됐대요!”
“……뭐?”
한선구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방송 하나를 잡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많은 술과 돈을 썼는데…….
피디 놈들에게 가져다 바친 돈을 다 세면 집 한 채 값은 쉽게 나올 것이다. 그렇게 작업을 해서 겨우겨우 잡은 방송인데, 스케줄이 날아가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공중파뿐 아니라 라디오 쪽도 취소됐대요.”
“고, 공문 왔어?”
“아니요. 전화 받았다고 하던데요.”
“왜, 왜 취소됐대? 왜?”
“그게 잘…….”
김신은 당황하는 사장을 두고 가만히 사장실을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왜긴 왜야.’
아무리 재경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려 한다 해도 굴지의 대기업이 아닌가.
방송가에 광고로 써주는 돈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재경이 불편함에 헛기침을 하면 중소 기획사 정도는 말 그대로 태풍에 휘말리게 된다.
‘구멍이 뚫렸네.’
망망대해에서 구멍 뚫린 배에 타고 있어봤자 같이 가라앉는 게 전부다. 김신은 품에 넣고 다니던 사직서를 경리의 책상에 올려두고는 지체 없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길가로 나와 그의 직장이 있던 건물을 보며 김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독하네.’
약하면 세무조사, 그게 아니라면 검찰 쪽에서 조사를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비리 천지였던 회사는 박살이 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저쪽은 이쪽을 확실하게 파멸시킬 수 있는 법을 알면서도 아주 서서히 말려 죽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한선구는 짐작도 못하겠지만, 김신은 충분히 그 의도를 감지할 수 있었다.
“독한 놈은 건드리는 게 아니지.”
김신이 혀를 차며 회사를 떠날 무렵, 비서실에 앉아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던 조규민은 연신 귀를 긁고 있었다.
“……어디서 내 욕 하나?”
욕먹을 짓을 워낙 많이 해서 범인이 누군지 짐작도 하기 힘든 조규민이었다.
조규민이 낄낄거리며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